CAFE

▷ 좋은시 감상

첫사랑/이윤학

작성자박수호|작성시간26.06.15|조회수22 목록 댓글 0

첫사랑/이윤학

 

 

 

그대가 꺾어준 꽃,

시들 때까지 들여다보았네

 

그대가 남기고 간 시든 꽃

다시 필 때까지

 

 

 

<시읽기>  첫사랑/이윤학

 

추억 속의 화양연화

 

고등학교 교사 시절에 가끔 활용하던 수업의 도입활동이 있다.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짧은 시 한 편을 칠판에 적고, 5분 안에 제목을 맞히는 게임(혹은 시어 하나를 괄호 쳐서 그것을 맞히는 게임). 정답이 아니더라도 정답보다 더 그럴듯한 대답이 나오면 그것도 인정! 상품이라 봤자 초코우유 정도의 소소한 것들인데, 평소 돈이 없어서 못 사먹는 애들도 아니면서 이런 게임을 하면 일종의 군중심리 때문인지 평소 멍하니 앉아 있던 학생들까지 합세해 분위기가 순간적으로 과열되곤 했다. 말하자면 본격 수업에 앞서 분위기 환기를 위한 활동인데, 이걸 하다 보면 감수성과 통찰력이 남다른 문학영재를 알아보게 되는 의외의 소득도 있었다.

하루는 이윤학 시인의 <첫사랑>을 칠판에 적었다. ‘기다림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이 가장 먼저 나왔지만, 더는 진척이 없었다. 나는 예상대로 이번 문제는 쉽지 않군.’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한 학생이 손을 들며 첫사랑이라고 말했다. 신기해서 수업 후, 그 아이를 따로 불러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물어보았다. 그 아이 왈, “얼마 전에 남자 친구랑 헤어졌는데요, 그 애가 준 꽃이 다 시들고 말라버렸어요. 그런데도 저는 그 꽃을 버리지 못하고 매일 들여다봐요.”

첫사랑은 문학의 흔한 소재다. 모르긴 몰라도 전수조사(?) 같은 걸 해보면 첫사랑의 환희나 슬픔을 표현한 작품이 꽤 많은 비율을 차지할 것이다. 왜 그럴까. 첫사랑은 너무나 강렬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생로병사를 겪으며 지지고 볶는 서사가 아니라 엄청난 충격을 남기는, 잊을 수 없는 사건말이다. 그 사건에는 구질구질한 생활이 없고, 그저 가슴 시리고 눈이 부신 순간만 있다. 한국인에게 첫사랑의 원형적 이야기로 남아 있는 황순원의 소나기는 말 그대로 소나기이기에 아름답다. 길고 지루한 장마였다면 이토록 사랑받을 수 있었겠는가. 그 작품의 소년과 소녀는 결혼해서 새벽 세 시에 아기 기저귀를 갈아보지 않았다. 첫사랑과의 결혼은 문학 작품의 소재라기보다는 그저 그런 생황 다큐멘터리일 뿐이다.

상대가 꺾어준 꽃을 시들 때까지 바라보고, 그 시든 꽃이 다시 피는 불가능한 소망을 품게 되는 이유는 첫사랑을 사랑의 사건으로만 간직하려는 심리 때문이다. 굳이 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이유는 그다음 사랑이 있다는 것이기에 첫사랑은 사랑이면서 동시에 이별의 사건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그 이별을 부정하고 싶은 심리를 어찌 조롱하거나 비난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화양연화의 기억 하나쯤은 마음속에 담아놓아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내 기억 속의 그 사람은 너무나도 특별한 존재(!)인 것을.

―김경민『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포르체, 2020.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