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좋은시 감상

이별의 능력/김행숙

작성자박수호|작성시간26.06.17|조회수20 목록 댓글 0

이별의 능력/김행숙

 

 

 

나는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당신의 폐로

흘러가는 산소.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 거야.

당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알고 있었니?

당신이 혐오하는 비계가 부드럽게 타고 있는데

내장이 연통이 되는데

피가 끓고

세상의 모든 새들이 모든 안개를 거느리고 이민을

떠나는데

 

나는 2시간 이상씩 노래를 부르고

3시간 이상씩 빨래를 하고

2시간 이상씩 낮잠을 자고

3시간 이상씩 명상을 하고, 헛것들을 보지.

매우 아름다워.

2시간 이상씩 당신을 사랑해.

 

당신 머리에서 폭발한 것들을 사랑해.

새들이 큰 소리로 우는 아이들을 물고 갔어. 하염없이

빨래를 하다가 알게 돼.

내 외투가 기체가 되었어.

호주머니에서 내가 꺼낸 건 구름. 당신의 지팡이.

그렇군. 하염없이 노래를 부르다가

하염없이 낮잠을 자다가

 

눈을 뜰 때가 있었어.

눈과 귀가 깨끗해지는데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는데

털이 빠지는데. 나는 2분간 담배연기, 3분간 수증기.

2분간 냄새가 사라지는데

나는 옷을 벗지. 저 멀리 흩어지는 옷에 대해

이웃들에 대해

손을 흔들지.

 

 

 

<시 읽기>  이별의 능력/김행숙

 

한없이 가볍게 헤어질 수 있다면

 

이별의 능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별해야 할 때 주저하지 않고 이별하기, 이별 후에 밀려올 심리적 공황상태를 잘 이겨내기, 사랑했던 기억을 성공적으로 추억화하기 등등이 이별의 능력일까.

이별의 대상과 상황은 사람마다 다르더라도 이별을 한 번도 겪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쓰나미처럼 밀어닥치는 이별의 고통은 일상의 평온함을 한순간에 뒤집어버린다. 이별의 고통을 다룬 노래나 시가 그토록 많은 것도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노래나 시는 이별의 고통에서 벗어나 이별을 극복하는 능력에 도달하는 길을 간절히 찾고 싶은 마음에서 탄생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 별에 대해 말하는 시는 아주 많지만, 지금껏 내가 읽은 작품 중에서 이 시만큼 독특하게 이별을 노래하는 버전을 본적이 없다. 이별의 상황에 놓인 시적 화자는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것인 기체의 형상으로 명명한다. 담배연기, 수증기, 산소를 열거하는 시적 화자에게 심각함이나 어두움은 보이지 않는다. 이별의 고통을 기체의 형상을 하는 것들에게 아주 가볍게 실어버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태울거야.”라고 선언한다. 세상에나, 이토록 밝고 가벼운 태도라니!

 

당신을 기체로 태워버리니 당신의 존재감은 그저 피어오르는 연기수준에 지나지 않게 된다. 연기는 한 번 들이마시면 그만인 것. 그러니 이제 당신을 잊으려고 굳이 노력할 필요도 없다. 나는 그저 노래를 부르고, 빨래를 하고 낮잠을 자고, 명상을 하고 헛것을 볼 뿐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 왜 굳이 노래를 두 시간 이상씩이나 하고, 빨래를 세 시간 이상씩이나 한단 말인가. 그런 걸 하는데 헛것은 왜 보이는 건가.

 

사실 이 시의 화자는 썩어 문드러진 속을 감춘 채 세상 가장 밝은 모습으로 웃고 있는 사람이다. 적어도 노래를 하고 빨래를 하고 낮잠을 자는 동안엔 이별의 고통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다. 그렇지만 낮잠에서 눈을 떴을 때 이별의 고통은 어김없이 그를 덮친다. 그 순간, “이별의 능력이 최대치에 이르고 그는 자신의 존재를 다시 한 번 과감하게 담배연기, 수증기, 냄새로 만들어버린다. 한없이 가볍지만 어디에든 흘러갈 수 있는 존재로, 그 가벼울 수 있는 힘으로, 옷이라는 최소한의 껍데기까지 벗어던진 채 이웃들에게 손을 흔들면서 말이다. 이별의 능력은 정말이지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경민『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포르체, 2020.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