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百年/문태준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
처럼 쓸쓸히 술을 마셨네
내가 그대에게 하는 말은 다 건네지 못한 후략의 말
그제는 하얀 앵두꽃이 와 내 곁에서 지고
오늘은 왕버들이 한 이랑 한 이랑의 새잎을 들고
푸르게 공중을 흔들어 보였네
단골 술집에 와 오늘 우연히 사랑에 쌓인 베개들을
올려보았네
연지처럼 붉은 실로 꼼꼼하게 바느질해놓은 百年
이라는 글씨
저 百年을 함께 베고 살다 간 사랑은 누구였을까
병이 오고, 끙끙 앓고, 붉은 알몸으로도 뜨겁게 껴
안자던 百年
등을 대고 나란히 눕던, 당신의 등을 쓰다듬던 그
百年이라는 말
강물처럼 누워 서로서로 흘러가자던 百年이라는 말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하루를
울었네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
지금은 고색창연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결혼할 때 ‘백년가약을 맺는다’는 표현을 쓴다. 백 년 동안 함께 할 아름다운 약속이라는 의미로, 이 ‘백 년’은 숫자 그대로의 백 년이 아니라 한평생, 오랜 세월을 뜻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옛날에는 딸을 시집보낼 때 엄마는 딸의 무병장수와 백년해로의 소망을 담아 베갯모에 수壽, 복福, 백년百年 등의 글자를 수놓아 혼수로 보냈다(요즘엔 찾아보기 어렵지만 나 어릴 적만 해도 집집마다 이런 베개가 있었다).
끝까지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고 해도 부부가 한 날 한 시에 죽지 않는 한 이별은 피할 수 없다. 결국엔 누군가 홀로 떠나고, 남은 이는 홀로 살아가야 한다. 아무리 백 년이라는 말에 영원의 소망을 담았다 해도 불사조가 아닌 인간에게 이별은 피할 수 없는 일.
“와병 중인 당신을 두고 어두운 술집에 와 빈 의자처럼 쓸쓸히 술을 마시는” 시인의 눈에 “百年”이 수놓아진 베개가 눈에 들어온다. 시렁에 쌓여 있는 걸로 봐서 그 배개의 주인들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다. ‘百年’이라는 불가능한 소망을 품었던 베개를 보며 단지 쓸쓸했던 시인은 비로소 눈물이 난다. 그는 와병 중인 당신과의 이별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으리라.
삶과 죽음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아니 사실 삶과 죽음은 서로 포개져 있다. 장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 건강한 습관을 유지한다면 혼자 백 년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백 년을 사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한 땀 한 땀 간절한 소망을 담아 수를 놓아도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약속. 그걸 알면서도 기어이 ‘백년가약’이라는 말을 만들어내는 게 우리다.
―김경민,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포르체,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