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지/신미나
헤어진 애인이 꿈에 나왔다
물기 좀 짜워요
오이지를 베로 싸서 줬더니
꼭 눈덩이를 뭉치듯
고들고들하게 물기를 짜서 돌려주었다.
꿈 속에서도
그런 게 미안했다
<시 읽기> 오이지/신미나
사랑이 훑고 간 자국
헤어진 애인이 꿈에 나오는 설정은 흔하다. 고전시가에도 자주 나온다. 마음에 그 사람이 가득할 테니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애인은 꿈에서 오이지 물기를 짜준다. 일상에서도 꿈에서도 습관만큼 질기고 무서운 것은 없다. 나는 습관처럼 애인에게 부탁하고 애인은 늘 해줬던 대로 해준다. 두 사람에게 이러한 습관은 둘만의 추억이기도 하다. 이 추억은 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세계다. 적어도 추억에서는 이별 그 이후는 있을 수 없다. 이별 이전의 시간만 있을 뿐. 꿈은 그 시간을 보호하고 봉인하는 자물쇠이다. 적어도 이 꿈 안에서는 헤어진 연인이라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 꿈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꿈이 꿈인 줄 아는 것과 꿈이 꿈인 줄 모르는 것. 어느 쪽이 더 가슴 아픈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전자인 것 같다. 꿈인 줄 모르는 꿈은 깨고 나서 슬프고 허무할지언정 적어도 꿈속에서만큼은 행복할 수 있다. 그렇지만 꿈인 줄 알고 꾸는 꿈은 꿈에서도 애달프고 깨고 나서도 그러하다. 그렇다면 이 시의 화자는 어떤 경우인가. 그는 꿈이 꿈이라고 걸 알고 있다.
그 꿈속에서 화자는 헤어진 애인에게 미안하다고 느낀다. 왜 미안한가. 단순히 이별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어서라고 추측하는 것은 사랑을 너무 얄팍하게 보는 것이다. 누군가와 헤어진 사람에게는 떨칠 수 없는 근본적인 죄책감 같은 것이 있다. 사랑을 마지막까지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지킬 능력도 용기도 집념도 부족했다는 죄책감.
―김경민,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포르체,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