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레/문정희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그리운 가슴 가만히 열러
한 구루 찔레로 서 있고 싶다
사랑하던 그 사람
조금만 더 다가서면
서로 꽃이 되었을 이름
오늘은
송이송이 흰 찔레꽃으로 피워 놓고
먼 여행에서 돌아와
이슬을 털 듯 추억을 털며
초록 속에 가득히 서 있고 싶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
아픔이 출렁거려
늘 말을 잃어 갔다
오늘은 그 아픔조차
예쁘고 뾰족한 가시로
꽃 속에 매달고
슬퍼하지 말고
꿈결처럼
초록이 흐르는 이 계절에
무성한 사랑으로 서 있고 싶다.
<시 읽기> 찔레/문정희
그대 사랑하는 동안 내겐 우는 날이 많았다
“인간의 행복을 이루는 것이 어째서 하필이면 불행의 원천도 되어야 한단 말인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기서 말하는 대상은 사랑이다. 나 역시 사랑이 과잉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효용 가치를 따지면 그렇다는 말이다). 때가 되면 초록빛 잎이 만발하며 깨끗한 흰 꽃을 피우는 찔레처럼 우리의 사랑도 그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은 꽃을 피우지 못하는 때가 더 많다.“조금만 더 다가서면/서로 꽃이 되었을” 사이지만, 딱 그 앞에서 멈추고 엎어져야 했던 일을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는다.
두 사람 중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를 진실하게 사랑하기 시작하면 기쁨 못지않게 슬픔이 밀려온다. 상대가 내 진심을 알아주지 않아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내가 상대방에게 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서, 그 깊고도 안타까운 마음을 다 표현할 길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대 사랑하는 동안/내겐 우는 날이 많았었다”는 진실한 사랑이 주는 어쩔 수 없는 아픔의 고백이다. “아픔이 출렁거려/늘 말을 잃어 갔다”는 고백 역시 마찬가지. 진정한 사랑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은 늘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인은 포기를 모르는 존재, 슬픈 예감이 주는 아픔에도 불구하고, 그 아픔마저 끌어안는 사랑을 꿈꾼다. 흙탕물도 시간이 지나면 흙이 가라앉고 맑아지듯이 그 어떠한 아픔도 시간이 흐르면 “예쁘고 뾰족한 가시”정도로 여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꽃에 가시가 없다면 찔레는 더는 찔레가 아닐 테니까. 어쩌면 이 찔레야말로 가장 사랑을 닮은 꽃이 아닐까. 이 넓디넓은 수용의 자세가 ‘무성한 사랑’을 가능케 한다. 이별 후, 사랑에 끝도 없이 냉소적으로 되려 할 때 나는 이 시를 읽고 깊은 위로를 받았다.
―김경민, 『내가 사랑한 것들은 모두 나를 울게 한다』, 포르체,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