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립문자不立文字/박 수 호
한 사내가 담벼락에 대고
오줌을 싼다
고개를 처박고 중얼거린다
씨펄 씨펄
니미 씨펄
고개를 저렇게 깊이 처박은 것은
떨어지는 오줌발로 무엇을 해보려는 것인지
후회스러운 지난날을 반성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느리게 뱉어내는 소리
아무리 두드려도
쉽게 열릴 것 같지 않은 문을 향해
서 있는 저 자세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바람 때문인가
몸이 흔들리는 것은
술 때문인가
뱉어낸 말도 흔들린다
니 기…… 씨—이
멀어지면서 소리는
뚝뚝 끊어졌지만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집
문을 밀고 들어설 때까지
어쩌지 못하여 끌려가듯,
하찮고 허름한 무언가를 흘리듯
씨 펄 네 에 미 씨 이 벌
<시 읽기> 불립문자不立文字/박 수 호
흔히 ‘시(詩)’라고 하면 서정시를 떠올리고 곧이어 아름다운 언어를 생각한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분명 시는 문학의 한 갈래요, 언어를 표현수단으로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것이기에 시를 생각하면 아름다운 언어 그리고 서정시를 떠올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기는 독자들이 좋아하는 시인 김소월, 한용운, 김영랑, 정지용, 서정주…… 그들의 시어에는 바로 아름다움이 있지 않은가.
사실 우리 시는 1930년대 시문학파의 영향으로 서정시가 주류를 이루었고, 이들이 6~90년대 국어와 문학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뇌리에 남아 ‘시는 서정시요, 시어는 아름다워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만들어 놓았다. 또한 소설과는 달리 관용어 혹은 속담과 같은 표현은 가급적 배제한다. 왜냐하면 그런 것들은 이미 그 의미가 굳어져 있기에 시인 혹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라고 해서 꼭 그런 표현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서정시를 생각할 때에는 아름다운 언어를 생각할지 몰라도, 시에는 서정시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는 관념어를, 혹은 관용어를, 나아가 속담과 온갖 상스런 말까지 자신이 의도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그런 표현을 통해 시인은 자신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박수호의 시 <불립문자不立文字>가 바로 그런 시이다. 전체 9개의 연으로 구성된 이 시에서 2, 6, 9연은 1행 혹은 2행의 욕으로만 표현되어 있다. 시 속 상황을 요약하면 간단하다. 바로 ‘노상방뇨하는 남자가 하는 욕’이다.
1연은 상황이다. 즉 ‘한 사내가 담벼락에 대고 / 오줌을’ 싸며 ‘고개를 처박고 중얼거’리는데 그 중얼거림이 2연이다. 바로 ‘씨펄 씨펄 / 니미 씨펄’이다. 연 하나가 통째로 일상생활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욕이다. 3연에서 시 속 화자는 남자의 행위와 욕을 이해해 보려고 한다. 노상방뇨를 하며 고개를 처박은 이유를 ‘떨어지는 오줌발로 무엇을 해보려는 것인지 / 후회스러운 지난날을 반성하겠다는 것인지’ 유추를 해 보는 것이다.
4, 5연 역시 화자의 유추이다. 화자는 남자의 오줌발을 봤을 것이다. 그러니 오줌발로 ‘아무리 두드려도 / 쉽게 열릴 것 같지 않은 문을 향해 / 서 있는 저 자세로 /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지 않을까 유추하면서 바람 때문인지 술기운 때문인지 몸이 흔들리고 그가 하는 욕도 흔들리는 것처럼 들린단다. 6연의 욕 ‘니 기…… 씨—이’에는 말줄임표와 이음줄까지 표현되었다. 즉 남자가 하는 욕이 분명하지 않고 늘어졌다 줄어들었다 하는 발음을 잘 전달한다.
7연도 남자의 욕을 이해해 보려는 화자의 유추이다. 뚝뚝 끊어지는 남자의 욕을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생각해 보는데 8연에서는 남자의 상황을 설명해준다. 그는 ‘골목 끄트머리에 있는 집’에 사는데 오줌을 누고 그 집 ‘문을 밀고 들어설 때까지’ 술기운이겠지만 발걸음은 ‘어쩌지 못하여 끌려가듯,’ 했고 ‘하찮고 허름한 무언가를 흘리듯’ 다시 욕을 했다는 것이다. 그 욕이란 9연 ‘씨 펄 네 에 미 씨 이 벌’이다.
그런데 여기서 독자는 감지한다. 즉,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뱉어내는 남자의 욕 - 9연은, 시 속 남자가 뭐라 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은 시 속 화자가 그렇게 들었다는 것이고, 이는 세상을 향한 화자의 발언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분명 ‘씨펄 씨펄 / 니미 씨펄’과 ‘니 기…… 씨—이’는 술에 취한 남자가 하는 욕이지만 ‘씨 펄 네 에 미 씨 이 벌’은 화자가 그 남자를 대신하여 세상을 향해 퍼붓는 욕이다.
왜 이런 욕이 나왔을까. 시 속에 다 있다. ‘후회스러운 지난날을 반성하’는 자신을 향한 욕이기도 하고, ‘아무리 두드려도’ 열리지 않는 ‘문을 향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이며 세상살이 ‘어쩌지 못하여 끌려가듯’ 살아가는 것에 대한 한, 그렇기에 ‘하찮고 허름한 무언가를 흘리듯’이 뱉어내는 욕이다. 그러니 개인적인, 사회적인, 혹은 이 세상을 향한 불만과 한이 그런 욕으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제목이 불립문자(不立文字)이다. 불립문자라니, 본디 불도의 깨달음을 일컫는 말이 아닌가. 즉,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기에 말이나 글로 전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럼 시 속에서는 전하려는 것은 무엇일까. 이쯤에서 독자들은 파악한다. 개인적인, 사회적인, 혹은 이 세상을 향한 불만과 한풀이가 욕으로 나왔고 왜 그런 욕을 하는지를 알았기에 따로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즉, ‘씨펄 씨펄 / 니미 씨펄’, ‘니 기…… 씨—이’ 그리고 ‘씨 펄 네 에 미 씨 이 벌’이란 욕을 하는 이유를 따로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뜻이다. 그래서 제목이 불립문자이다.
그런데 우리 박 시인이, 정색을 하며 화내는 것을 본 적이 없는 박 시인이 이런 욕을 다 알고 있고 이를 시에 표현했다니…… 말하지 않아도 세상을 향한 시인의 분노를 대충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역시 불립문자이다. ♣
―http://blog.naver.com/lby56(이병렬 교수의 블로그, 현산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