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는데,그말이 실감이난다.
벌써,2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선친을 회고하면 눈물이 앞을가린다.
너무,불효를 많이한 자식이므로.....
선친은 1917년 평북 정주군에서 중농집안의 차남으로 출생하셨다.
큰아버지의 방랑벽으로 졸지에 8남매의 장남 역할을 하셨다고 한다.
그년배에는 드물게 공부를 하신편이라,아뭏든 선친에 대한 기억은 형제들중 내가 아마
가장 많지 않을까?라는 자위를 해본다.
4남1녀의 막내로 태어난 덕분에 형들이 누려보지 못한 온갖혜택과 그무뚝뚝한 선친으로
부터 남달리 사랑을 받았다고 자부한다.(다분히 내생각이다)
별로 말씀이 없으셨고,어딘가 모를 위엄이 서려있던 분이다.
공직을 그만두시고 동네일을 볼때도 선친을 존경하면서도 마을 분들이 어려워했던 기억이
난다.
전형적인 대쪽 선비랄까?
빈틈이라곤 찾아볼수 없고 어떤일을 처리함에 있어 한치의 오차도 용납을 하지 않으셨다.
월남 하셔서 전매청 하위직에서 시작하여 사무관까지, 5,16 혁명이 나고 군사정권이 들어서
서 3년을 버티시다가
도저히 박정권 하에서는 공직생활을 하는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퇴직을 하셨다.
그때 내나이 8살 국민하교 1학년때이고 큰형이 대학교 1년때이니 소천하신 모친이 볼때는
아주 무책임한 가장 이셨다.
그때 우리집에 춘천 전매청 직원들이 몰려와서 퇴직하지 마시라고 선친께 간곡히 청을 해
도 요지부동 이셨다.
이박사 시절에 전매청 사무관 정도면 서울에 집을 5채도 더샀을 거라고들 한다.
그만큼 부정부패가 심했어도.
선친은 외눈하나 깜박도 않했다고 한다.
충주전매 지청에 근무 하셨을때는 수납하러 "최주사"가 나온다면 아예 담배농사 짖던 농민
들이 "오늘은 재수없군 "이라고 아예 포기했다고 선친의 친구분들께 애기를 들었다.
그만큼 공복으로서 철두철미 하셔서 훈장도 여러개 받았었다.
그때 같이 근무했던 친구분들 중에는 지금도 알만한 부자들이 꽤있다.
아뭏든 그뒤 부터는 돌아가신 모친께서 가정경제를 책임 졌다고 할까?
우리집의 별호가 "서부시장 탑앞에 담배가게집"하면 근동에선 모르는 이가 없었다.
이제야 선친이 무슨일을 하셨는지 알지만 유년기,내가 바라본 선친은 동네일 보는분
바쁠때나 잠간 상점일 보시고 한달에 두어번 물건하러 서울에 다녀오신 기억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이지만 선친은 차라리 교육 공무원이 나을뻔 했다.
실지로 선친 제자 대부분이 경희대 교수를 하신분이 많았다.
내가 어려서 의아했던 것중에 하나가 대학교수들이 설날에 우리집에 와서 선친보고 선생님
하면서 세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성인이 되서 알았던것이 북에 계실때 몇년 북간도에 계실때 교편을 잡으셨다고 한다.
내가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것중에서 ....중2때 까지 공부를 잘했었다.
1학기말 석차가 전교 2등 이었는데 자랑 스럽게 선친한테 성적표를 보여 드렸는데,
아무 반응이 없는것이었다.
그리고는 내이름을 부르며 너 수업 시간에 산만하다고 담임 선생이 행동발달란에 글이
써있었던 모양이다.
"자중자애" 하라고 한 말씀만 하셨다.
얼마나 실망을 했는지 그날 괜히 저녁도 않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성적 보다는 인간의 품성을 함양해야 된다고 일깨워 주신걸 .....그때는 몰랐었다.
선친의 교육관은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민주적이었다.
세째형은 그것이 방임이라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을 않한다.
우리 오남매는 선친으로 부터 매한번 안맞고 컷다.
우마나 매로 다스리는 것이지.인간을 매로 교육 시키는것은 참교육이 아니고, 공부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것이고 실력이 안되면 분수에 맞게 행동하라 하셨다.
아뭏든 우리는 그래도 좋은 부모덕에 배않골코 공납금 제대로 내고 학업을 마쳤으니
부자는 아니었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것이 두분의 근검절약에서 비롯된 것임을 뒤늦은 나이에 깨달았으니.......
두분다 생활력은 강하셨다.
또,그래야만 오남매를 키우셨으리라 생각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선친 세대는 우리나라 현대사의 한중심에 있었던 세대로 ......
일제시대.해방공간,6,25사변 ,4,19혁명,5,16 군사 쿠테타.유신시절,전두환 5공 ....등등
근현대사를 살고 가신분들 중 하나다.
필부중의 한분이셨지만 나에게는 누구보다도 소중하고 존경하며 사모하는 인간으로 자리매
김 되어있다.
"생즉필멸"인간은 누구나 나서 한줌의 흙으로 돌아간다.
그러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는 본을 보이신것만 해도 우리 자식들은 크나큰
은혜를 입었다.
나는 선친의 반에반도 못미치는자로 유구무언이다.
오늘따라 선친의 얼굴이 더욱더 보고싶고,
"아버지" 라고 불러 보고싶다.
부디 천상에서는 평안 하시길 두손모아 기원하면서......
불효자.술한잔 올립니다......
다음검색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朴胥暎 작성시간 06.02.16 아버님께서 본받을 만한 훌륭하신 어른이셨군요, 지금 두미르님 보면 알만 합니다 맞아요 댓쪽, ^^ 두미르님도 그러하신데 다 아버님 으로 부터 비롯된것이었군요. 거기다가 최씨 셨군요, 어제 티브이에서 경주최씨 부자 이야기 보며 존경스런 맘이 우러나던데, 잠시 스칩니다, 아버님의 대한 회고, 잘 읽었습니다,
-
작성자불새 작성시간 06.03.24 멍멍아! 잘 지내노? 내가 요즘 조금 할일이 있어 오지 못하는데 글을 보니 방가 방가.. 봄 산나물이 나면 서방과 함께 오면 나가 말이시 만난거 해 줄께.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