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55명이란다.
필자가 작년 진위현길부터 시작한 섶길을 다녀본이래 가장 많은 인원이다. 오늘도 서울, 천안, 안성, 익산 등 각처와 지척 평택에서도 많이 오셨단다.
아무래도 인원이 많이 움직이는 만큼 조금 늦게 출발하면 또 어떠랴. 버스는 달려 수도사 시작점에서 먼저 도착한 길벗들과 합류한다. 위원장님의 간단한 인사와 안전사항을 듣고, 남기범 대장님이 준비한 15km 소금뱃길 관절약을 처방받는다. 준비체조라는 약이다. 처방약을 받자마자, 단체사진 촬영은 햇살들농장에서 하기로 하고, 대장님의 힘찬 호르라기 소리로 서둘러 길은 시작된다.
지난 21일이 춘분이었다. 밤 길이보다 낮 길이가 길어지는 춘분이 지나자, 봄 햇살이 겨우내 길게 누워있던 그림자를 점점 더 세우나 보다. 이제 봄은 하루하루가 달라짐이 확연하다. 지난주 다갈색 산도를 열어가며 산통중이던 목련도 요 며칠 사이 하늘못에 연꽃을 순산했다.
수도사에서 남양호 강길로 안내하는 좁은 골목길에서부터 벌써 매화, 수선화, 민들레 등이 미리나와 우리 일행에게 환송을 보낸다.
여러 꽃들의 인사를 받아서 일까. 남양호를 시원하게 직선으로 뻗은 강둑길에, 얼굴을 살짝 내민 들꽃과도 눈빛을 나눠본다.
보통 봄꽃을 이야기하라면 매화, 산수유, 생강나무, 목련, 개나리, 벚꽃 등 나무에서 화려하게 피는 꽃만을 이야기하게 된다. 필자도 그랬다. 그런데 봄꽃이 어디 나무에서 피는 꽃만 있을까.
"자세히 봐야 이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꽃들은 바로 풀꽃인 들꽃이렸다. 또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면 친구가 된다"하였다.
더우기 안도현 시인은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도 못하는" 자신을 "무식한 놈"이라고 까지 했다.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말라' 호통하던 유명 시인조차 이럴진데 필자는 어떤가. 머리에 꼴밤을 맞은듯 하였다. 이에 필자도 작심 무식쟁이를 면하려 꽃 이름을 하나 둘 알아가기 시작한게 작년이다.
사진은 이번 소금뱃길 길에서 만난 들꽃과 나무꽃이다. 우리 들꽃들은 자세히 보아야 알아가는 기쁨을 준다. 핸드폰의 탁월한 접사력을 이용하면 기쁨은 배가됨이다.
그런데 오늘 필자도 모르는 꽃이 있었다. 아래 첫번째 사진이다. 들꽃 이야기로 화제를 꽃 피우던 섶길의 뒷줄 일행중 어느분이 '요! 들꽃은 머시라'고 이름을 쥐어주었는데 어디다 두었는지 잃어버렸으니 말이다. 다음 섶길에서 꼴밤을 맞을 각오를 해야한다.
어디에 나투셨나 이른 봄 금불님들
백팔번 낮추어서 알현을 청해보니
그제야 용안을 뵙네 촛점거리 0.1m
요즈음 봄햇살이 오글거리는 양지쪽에 드문드문 금빛의 아주 작은 꽃대를 올리는 '꽃다지'를 보고 디카시조 한수를 적었다. '꽃다지'라는 들꽃을 모른다면 위 사진 끝에 있는 노란 '꽃다지'를 보고 오시라. '꽃다지'를 제대로 뵈올려면 꽃대 가까이 절하듯 엎드려야 한다. 촛점거리 0.1m, 즉 10cm 촛점거리 앞뒤로 여러번 잘 맞추어야 비로소 꽃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접사하여 확대해야 얼굴이 제대로 보인다. 또 다른 키 낮은 들꽃들은 어떤가.
우리는 길가에 흔히 피어있는 하나 하나의 작은 들꽃들의 이름을 모르니, 통칭하여 들꽃이라고 한다. 들꽃마다 모두 이름이 있음이다. 들꽃 이름을 알고 부르는게, 우리 들꽃에 대한 예의일것이다. "이름을 알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면 친구가 된다"하지 않았는가.
들꽃 사진을 찍는 재미에 어느덧 배고픈 길은 햇살들농장으로 빠르게 안내한다. 기업형 농장인듯 규모가 크다. 넓다란 캠핑장을 지나 식당 문을 넘는 순간, 냉이를 넣었는지 구수한 된장 냄새가 벌써 후각을 넘어와 미각을 자극한다. 정성으로 준비해 놓은 부페식 만찬에 민들레 식재료가 들어가서인지, 초록 빛의 봄내음이 가득하다. 직접 재배한 표고. 느타리 등 여러 버섯류 반찬에 드레싱한 소스의 맛 또 어떤가. 어느 분은 "사찰음식을 먹는듯 하다"했다. 모든 음식이 정성과 생명의식이 깃든 편안한 우리 음식이었다.
반납하는 접시를 유심히 보았다. 모두 남김이 없었다. 아니, 그런데 주방에서 궂은 설겆이와 주방일을 하시는 분들이 우리 섶길 길벗들 아닌가. 금동항 선생님, 나윤이 선생님, 양미선 총무님, 그리고 또 여러분이 계셨는데 이름을 몰라 이 지면에 적질못해 너무 죄송하고, 애써 주심에 감사를 드린다.
섶길 길벗들과 어느덧 한식구가 되어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박선이 대표님이 냉이와 민들레를 손수 뜯기까지 한, 귀한 생명의 음식을 정성으로 준비해주시고, 우리 섶길 일행들에게 귀한 말씀을 주시고, 무지개다리까지 배웅해주신 성재준 대표님 아니 교장님에게도 깊은 감사를 보낸다.
유기농 식단으로 기운을 얻은 길은 다시 힘을 내어 걷는다. 남양호 큰 물길을 따라 걷던 길이, 오르면 오를 수록 강폭이 점점 좁아진다. 멀리서 보이던 청북시내가 한걸음인듯 지척이다. 이번 섶길에서 만나는 들꽃 이야기로 많이 길어졌다. 섶길 위원장님이 들려주었던 역사와 설움이 담긴 소금뱃길 이야기는 청북면사무소에서 소금뱃길이 끝나듯, 이야기도 다 풀어낸듯 더 이상 풀려지지 않았다. 귀에 잘 담아두었던 소금뱃길 이야기, 내 자식이나 지인들에게도 두고두고 옮겨야겠다.
오늘 소금뱃길 모든 일정에 빛이 되어주신 위원장님과 대장님 그리고 총무님에게 감사와 햇살들농장 대표님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보냅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식구처럼 함께하는 모든 길벗님께도 찬사를 보냅니다.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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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황의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3.27 계절은 강에서 시작되고 또 그 끝은 강이지요
남양호 소금뱃길의 봄을 어찌 다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 느껴셨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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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지금 작성시간 23.03.27 광대나물꽃, 별꽃도 찍으셨네요. 역시 예리하신 통찰이십니다. 무수한 탐진치를 내려놓고 백팔배를 하듯 머리를 조아려야 제대로 보여 주는 들꽃의 매력을 디카시조로 근사하게 표현해주시는 황작가님 멋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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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댓글 작성자황의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3.27 만물에 불성이 깃들어
아니 부처가 없다하지요
별꽃과 광대나물 사진 걸어놓고
'금불님들'을 살짝 '꽃부처님'이라고 바꾸어도...
섶길에서 '광대나물'이라고 쥐어 주셨는데
잃어버렸다가 어제야 되찾았습니다.
담에 꼴밤 안주시리라ㅎ
덕분에 글이 풍성해져 감사합니다~~ 이미지 확대 -
답댓글 작성자지금 작성시간 23.03.27 황의수 꽃부처님에 🙏🏻🙏🏻🙏🏻
세상에 부처아닌것이 없다네.
진리를 알게된다면...
매순간이 극락이겠죠! -
답댓글 작성자황의수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3.03.27 지금 나무(歸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