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싸리산 팔각정 여강정
여주여강길 10코스 - 천년도자길
도보구간 : 여주보문화회관-여주보-수변무대-천남공원(스탬프)-싸리등산로입구-싸리산팔각정(스탬프)-
싸리산주차장-현암가로공원-오학동행정복지쎈터-여주대교-여주박물관-신륵사입구(스탬프)
(실 천년도자길 구간이 행사로 인하여 여주보 건너에서 수변무대까지 추가됨)
도보거리 ; 약 7.2km (실 7.46 km)/약 3-4시간 0분 (실 시간은 의미없음 )
교 통 편 : < 분당선(강남역)-경강선(판교)-세종대왕릉역(셔틀버스)-여주보입구
(여강길 10코스 도보시 여주역-천남2리마을회관(972-2번)이용 하실것)
> 신륵사(992번)-여주역(경강선)-판교역(분당선환승)-논현역
※ 천년도자기길 이야기
천년도자길은 천남공원에서 출발하여 싸리산 정자를 경유, 신륵사 관광단지입구
여주시종합관광안내소까지 걷는 길이다. 여강의 오른쪽으로 걷다가 싸리산 정자에서 남한강 물줄기의 경관을
조망한다. 싸리산 아래 달팽이공원과 팔수장림의 시작점 부터 여주대교까지 이르는 구간에는
키 큰 벚꽃나무가 길 양쪽에 있어, 봄이면 꽃 터널이 길게 펼쳐져 매우 아름답다. 걷고 싶은 길 옆 마을인
오학동은 예전 여주팔경 중 하나인 ‘학동모연(학동의 저녁밥 짓는 연기)’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오학동은 도예촌이어서 여주를 도자기 고장으로 알리게 된 중요한 마을이기도 하다.
천년도자길은 여주 팔경 중 팔수장림(오학 강변의 무성한 숲이 물에 비치는 전경), 학동모연,
(신륵사에서 울리는 저녁 종소리)의 배경이된 곳이라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현재는 여주대교 북단에
여주시도서관과 여주박물관이 자리하며 이곳을 지나면 신륵사 관광단지 입구에 도착하게 된다.
※ 여주보 입구의 안내판
※ 여주보를 건너 천남공원 수변무대로 ~
※ 여주보 문화관과 여주보 전망타워
※ 여주보 위에서 바라본 수변무대 행사장
※ 여주보 전경
※ 신청 부스에서 등록 확인후 배번호와 기념품수령
※ 사전 재즈 공연
※ 축제에 함께한 일행들과 출발을 앞두고 ~
※ 각자 개인출발
※ 여주보 정자
※ 천남 1길을 따라서 ~
※ 삼거리로 나선후 우측 현남길로 ~
※ 싸리산 등로 입구로 ~
※ 싸리산 팔각정 아래 공터에서 오카리나및 트럼펫 연주
※ 싸리산 팔각정 여강정 정자
※ 싸리산 팔각정 여강정
싸리산은 여주시 오학동 현암리와 대신면 천남리에 있는 산으로
마당바위에서 쌀이 나왔다는 전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마당바위 바로 아래서 쌀 대신
백토가 나와 여주에서 질 좋은 도자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해발 192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지금의 여주를 있게 한 강한 힘을 지닌 산이 아닌가 싶다.
고령토를 채취하는 굴이 많아 서로 맞 뚫릴 정도가 되어
‘관산’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
※ 숲길을 내려서며 ~
※ 싸리산 주차장 입구 10-1출발점 스탬프함
※ 여주북로 고가밑 강변북로 현암 교차로
※ 달팽이 고개
※ 강변북로옆 가로수 공원길을 따라서 ~
※ 현암가로공원에서 가위바위보 게임.
※ 오학동 행정복지센터
※ 해동대현 목은 이색 선생 추모비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시대 삼은 중 한 사람 임.)
※ 한 글 마 당
※ 원형아치를 지나 강변으로 내려설것
※ 여 주 대 교
※ 여주대교 밑을 지나 다시 여주도서관으로 올라설것
※ 도서관옆 여주박물관 사잇길 숲길로 ~
※ 여주 박물관
1994년 1월 4일 여주박물관(당시는 여주군향토사료관) 추진위원회를 구성, 건립을 추진하여
1996년 12월에 건축 공사를 완료하고 1997년 5월 9일 개관식을 가졌다.
여주시의 역사자료와 문화예술, 민속유물, 유품자료를 수집, 보관, 전시하고 향토사를 조사 연구 하는
여주시의 공립박물관이다. 소장 자료 수집·보관·고증평가·복제·전시, 유물 기증·기탁 및
구입, 향토유적의 조사 및 향토사의 연구,특별전시회 개최, 『여주시사』 편찬 업무를 담당한다.
여주박물관 건물은 건축대상을 받기도 한 곳이다.
※ 여주박물관 신관
※ 여주 박물관
※ 한 양 장
※ 음료 시음장
※ 도자기 축제 중앙 공연무대
※ 푸드트럭 먹거리 장소
※ 정자 쉼터
※ 여강길 걷기 도자기 축제에 함께한 님들과 ~
※ 평택 섶길 회원 님들 ~
※ 경기둘레길 33 / 34출 도착점 스탬프함
※ 여강길 3 / 5 출발점 스템프함
※봉미산 신륵사 일주문
※ 신 륵 사
신라진평왕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한 근거는 없다.
고려 말인 1376년(우왕 2) 나옹, 혜근이 머물렀던 곳으로 유명한데, 200여 칸에 달하는
대찰이었다고 하며, 1472년(조선 성종 3)에는 대비인 정희왕후 윤씨의 지시로 영릉 원찰로 삼아 보은사라고 불렀다.
신륵사로 부르게 된 유래는 몇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하나는 “미륵(혜근을 가리킴)이,
또는 혜근이 신기한 굴레로 용마를 막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고려 고종 때 건너마을에서 용마가 나타나,
걷잡을 수 없이 사나우므로 사람들이 붙잡을 수가 없었는데, 이 때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자 말이
순해졌으므로, 신력으로 말을 제압하였다 하여 절 이름을 신륵사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불 이 문
※ 여강의 황포돛배
※ 세 심 정
※ 범 종 각
※ 구 룡 루
※ 신륵사 극락보전
※ 범 종 각
※ 다 층 전 탑
※ 대장각 기비각
※ 신륵사 은행나무에 오신 관세음 보살님
※ 신륵사 은행나무에 오신 관세음 보살님
신륵사 은행나무는 660여년 전 고려말 공민왕사 나옹스님이
심은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불,법,승 삼보를 상징하듯이 세줄기의 가지로서
모습을 갖추었고 관세음보살이 나투신듯한 회유한 모습으로 자라났으며
또한 관세음보살님이 대자대비로서 모든중생들의 괴로움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발원으로 신륵사 은행나무에 나투신것처럼 보인다.
※ 강 월 헌
※ 삼 층 석 탑
※ 원호장군 임진전승비 (임진왜란 때 여강 일대에서 왜적을 대패시켰던 의병장)
※ 여주시 종합 관광안내소
※ 셔틀버스 승차장
※ 솟을삼문을 나서며 여주역으로 ~
제 15회 여주여강길 걷기축제 천년도지기道 참석을위해 새벽부터 서두르며
첫 천철을 환승해가며 함께 동행할 일행들과 판교에서 경강선으로 갈아타고 확인하니
대부분 오늘 도자기축제 행사에 참석하는 분들인듯 너나없이 같은마음으로
세종대왕릉역에 내려서 셔틀버스로 이팝나무가로수 길을따라 왕대 1리 여주보 문화관
입구에내려 여주보를 건너서 천남지구 행사장으로 다가서며 신청 부스에서
등록확인후 배번호와 기념품을 수령하고 재즈공연을 감상한후 개별 출발을
위해 함께동행할 일행들과어울려 행사장을떠나며 천남공원을 돌아나와 천남로를따라
삼거리에서 현암로를 따라가다 도로건너 싸리산입구로 들어서며 숲길따라
오르는 동안 팔각정아래 공터에서 오카리나 연주를 들으며 팔각정 여강정에 올라섰다
주능선을 내려서는 갈림길에서 싸리산주자장 10-1출발점 입구로 내려선후
여주북로 고가밑 강변북로 현암교차로를지나 달팽이고개를 넘어서 가로수
공원길을따라 가는동안 주최측의 참석자를 위한 퍼포먼스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잠시
쉬어가며 계속이어지는 가로수길을 따라서 오학동 행정복지센터를 지나며
고려 말의 문신이자 학자인 목은 이색 선생 추모비와 한글마당의 훈민정음 조형물을
둘러보고 여주대교전 갈림길에서 강변으로 내려서서 여주대교 밑을통과후
다시 여주도서관 앞으로 올라선후 신관여주박물관옆 사잇길숲길을 벗어나
분수광장을지나 도착점인 주자장건너 신륵사 문화관광단지로 다가서니 도자기축제
공연무대와 푸드트럭이 줄지어 늘어선 파라솔밑에 자리를잡고 상품권으로
중식을해결하고 여강길걷기축제 천년도자의 길을끝내면서 신륵사를 그냥 지나칠수
없기에 신륵사경내곳곳을 둘러보고 나선후 도자기축제장을 벗어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