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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

조순조 화백 추모사

작성자김은숙|작성시간20.01.20|조회수60 목록 댓글 3

평생 예술혼 하나로 외길을 걸어온 한 별이 졌습니다.

무명의 판화가 조순조는
집도 없이 직장도 없이 이 악물고 조각칼로 자신의 살점 후비듯 쑥고개의 어둠을 파내고 있는데, 라면이라도 끓여먹을 분노를 키우고 있는데......

또 하나 천재 시인이자 동네 후배였던 박석수는, 젊은 시절의 그를 조각칼ㅡ쑥고개 38 이란 시에 그렇게 새겨 기록 했었죠. ''

화랑이라고 표구하느라 힘만 들었지 요즘 사람들 누가 미술품을 사나요? 더구나 제 판화 작품은 팔아본 게 언젠지 몰라요" 라고 자기 작품 속 가시나무, 아니 아름다운 가시 면류관처럼 욕심 하나없는 목소리로 담담히 말씀하셨었지요.

떠나시는 전날까지도 그 박제 되어가는 화랑 을 지켜오신 까닭은 아마도 속 깊은 미술 사랑 때문이 아녔던가 싶습니다. 파르르 경련하는 눈까풀 밑에서도 늘 따뜻하게 지켜보시던 눈빛 , 한참 후배들에게도 늘 깍듯한 예의로 말씀 하시며 고맙다는 말씀을 달고 사시던 분. 그리고 당신의 판화속에 등장하던 새와 꽃과 어린이, 예수님과 인간 사랑 !
소유한 집 하나 없는 분이 혼자 시작하고 외롭게 꾸려 오셨던 ㅡ국제아동미술교류전
동남아 오지로 간다며 그 어린이들 나눠 줄 학용품을 받으러 오셨던 모습도 생각 납니다 .
평택은 국제도시 라 하면서도 아무도 생각 못한 국제아동미술교류전ㅡ 세계와 평택의 어린이는 그렇게 솜씨와 마음을 나눠 왔지요. 문화예술이 한사람의 열정만 으로도 가꾸고 키울 수 있다는 것을 , 당신에게 우리는 배웠습니다.
그 세계 아동화 중 일부는 조순조 작가님의 손에 송탄 초입, 독곡동 언덕 방음벽에 이국적인 아동화로 그려졌었죠.

늘 꽃들을 , 좁은 화분에 대나무조차도 탐나게 키우시더니 어느사이 모두 흩어 나누고 한그루 남은 동백나무 화분
일전에 새해 인사갔다가 "어머 ! 분홍 동백이 꽃을 피었네요', 했더니 오래 키웠는데 주인 닮아 추위에 반이 죽었어요 ㅡ 그렇게 웃으셨죠.

며칠의 비움도 없이 화분에 물 주러 출근 하셨었던가 ? 손님없는 쓸쓸한 화랑문을 닫고 역시 쓸쓸한 집으로 퇴근 하신지 나흘, 열리지 않는 문에 옆가게 짚세기 사장님은 아마도 떨리는 예감을 하셨던가 봅니다. 깊은 잠자듯 홀로 세상을 등진 당신이 발견되고 안타까운 그 영면은 하마터면 아무도 모르게 아 아 ~! 무연고로 산화 될 번 하였네요 !

사람들은 화려한 업적과 명성만을 좇고 바라 넓은 세상으로 떠나곤 하지만 오직 작품에 매진 하고 예총일로 지역 미술인 일로 봉사 하셨을 뿐, 평생 소리없이 빛도 없이 오로지 향리 사랑과 예술사랑으로 살아온 당신 우리가 알되 그의 그 삶이 어찌 값지지 않겠습니까 . 눈물과 아쉬움으로 당신을 추모 하는 예술인들은 가시는 길에 꽃이라도 놓아 드리고 싶어하였고 예술인 장의 이름으로 마음과 정성을 모았습니다.
조순조 화백님! 가시면서 이렇게 우리에게 귀한 결집을 선물 하셨네요
당신이 사랑하던 송탄 지산 공원 느티나무 뿌리곁에 당신을 뉘여 드릴 수 있어서 다행 입니다.

이제 찬 하늘에 이름없는 별이 뜰때 그 나무 아래서 , 조순조 화백으로 불리길 원했던 ㅡ당신을 그리워하며 우리 예술인들이 모일 수 있겠습니다. 사랑합니다 조순조 화백님.

예원 김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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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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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김은숙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0.01.20 장순범 선생님 제게 추도사 써보라고 하셔서 이렇게 썼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광우 | 작성시간 20.01.20 추도사를 읽으니 조화백님께서 늘 어린아이같이 맑으셨던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김은숙화백님 수고하셨고 감사합니다.
  • 작성자광우 | 작성시간 20.01.20 참고로 이 추도사는 지역신문인 평택시민신문 1월 22일자에 실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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