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차 2-1코스 장서방네노을길 걷기안내
► 일시 : 2022년 3월 12일 토요일 오전 09시부터 12시까지
► (팽성읍 신대리 산 7-2)
• 섶길 2-1코스 장서방네노을길 9Km, 소요예상시간 3시간
• 팽성읍 신대2리 삼거리-노양리-홍학사비각-노래비-신대2리 삼거리
※ 장서방네노을길은 순환형코스이므로 자차 이용하실 분들은 출발, 도착지점에 주차하시고, 걷기 후 자차 귀가 가능합니다.
- 장서방네 노을길
이계은(평택섶길 해설사, 전 평택시송탄출장소장)
‘장서방네 노을길’은 팽성 신대리 버스종점에서 노양리 수변과 들과 마을, 그리고 계양산 중턱의 언덕길을 넘는다. 음유시인 정태춘의 유명곡 ‘장서방네 노을’을 모티브로 이름지어졌다. 계양산 중턱 길 곁엔 섶길지기들이 앉힌 작은 시비가 있다. 그곳에선 도두리 벌판이 내려다보이고 정태춘은 그곳 도두리에서 나고 자랐다.
함께 걷는 이들이 ‘장서방’은 누구였을까 궁금해한다. 나 역시 궁금했던 터라 친구인 그에게 물었다. 어릴 적 노양리에 서낭이 있었고 거기에 함께 있었을 장승을 의미한다는 것과 당시 계양 앞바다를 가득 메웠던 숭어잡이 배와 새우젓 돛배의 꿈같았던 정경을 회고하며 자신의 노래 에세이집을 보내준다.
340여 쪽의 책엔 그가 지은 120여 곡의 노래가사와 노래에 얽힌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40년 넘은 그의 노래 세계를 다 알 수는 없으나 그중 여러곡엔 계양바다, 물이 벌창한 도두리들, 또 이웃마을 지명인 선말산, 아리랑고개, 봉아재산, 도깨비 씨름터 등 고향 떠난 이의 서정이 노래 곳곳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의 노랫말엔 꾸밈없는 담담함이 있다. 그래서 때론 가슴 저린 서사가 느껴진다.
그리스 유명 여가수와 음색이 닮은 가수 박은옥은 그의 부인이다. 그들은 부부로, 같은 음악인으로 4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동지 사이다. 몇해 전 그들의 노래 인생 40년 행사를 크게 가졌다. 초로의 문턱에서도 전국투어 공연과 자신들의 기록 영화를 만드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얼마전 한 중앙지의 오피니언란에 ‘나 보다는 인생의 번뇌를 덜 겪었을 법한 한 친구가 부럽다’고 쓴 그의 글을 본 일이 있다.(글의 앞뒤 정황상 내 얘기임이 틀림없다) 필부인 나도 매사 걱정 없이 살아온 건 아니지만 사실 그는 신념 강한 행동주의 예술가로서 스스로 곡절 많은 험한 길을 걸어오느라 많이 지치기도 했으리라. 그에게 바라건대 가끔은 고향 친구들과 옛날 얘기하며 소주 한잔하는 휴식도 가져 보길 권한다.
국제대교 교각 아래 평택호 수변엔 음악카페가 있다. 유명 마에스트로 최선용이 운영하는 곳이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땅이라는데 아담하게도 가꾸어 놓았다. 희끗한 구레나룻이 멋진 그는 서울시향과 경기도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를 했었고 성악가인 부인과 두 아들 모두 음악인들인 음악가족이다. 그와 정태춘은 인근 계성초등학교 동기동창이다. 조그만 시골 초등학교에서 걸출한 음악인 둘이 배출된 것이 놀랍다. 계양의 갯바람, 봉아재산의 기운, 도두리 벌판의 정기, 분명 이쪽이 터가 좋은 곳이다.
노양리(계양)는 팽성에서도 오래된 동네다. 안성천과 둔포천의 하구지역인 경양포(계양바다)는 옛날부터 포구와 나루가 발달하고 어염이 풍부했다. 오래전에 간척된 둔포천변의 넓은 들과 함께 일찍부터 사람들이 모여들기에 좋은 여건들이 있었다.
노양리 서낭자리가 궁금하여 나이 드신 분들에게 알아보니 서낭의 회화나무 고목은 진작에 베어졌고 지금 그 자리엔 렌탈하우스가 들어서 있다. 이렇듯 사라진 옛것들이 그뿐일까마는 철모르는 아이가 집안의 골동품을 엿바꿔먹듯하는 무지스러움이 안타깝고 허망하다.
다행히 노양리 동네 뒤에 오래된 회화나무가 있어 멀리 고용산으로 해 기울 무렵 장면을 잡았다. 정태춘의 추억 속 장면과 닮았길 바라면서...
계성초등학교를 지나면 본정리 302 야산에 병자호란 때 척화파였던 화포 홍익한을 기리는 비각 포의각이 있다. 경기도문화재자료 제5호다. 광해군은 세자시절 임진왜란 중 팔도를 돌며 항전독려를 했다. 백성들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 군주였다. 반정에 성공한 새 임금과 득세한 세력은 나라 주변 실정에 캄캄하고 성리학의 명분만 집착하는 청맹과니들이었다. 애꿎은 수십만 조선 여인과 백성들이 줄에 묶이어 노예로 끌려가고 죽어갔다. 길이 새겨야 할 교훈의 장소다.
본정리 마을 오른쪽에 있는 서부체육공원 자리는 옛날 공동묘지 터였다. 둔포장을 본 본정리와 도두리 쪽 장꾼들은 그 앞을 꼭 지나야하는 길목이다. 장터에서 해 떨어지도록 술추렴에 취한 사내가 밤이 이슥하여 지나갈 때 도깨비들이 나와 씨름을 건다. 도깨비는 왼다리가 약하건만 술취한 이는 생각할 겨를이 없다. 밤새 용을 쓰다가 첫닭이 울고 날이 밝아오면 술기운 가신 사내 앞에는 싸리빗자루 하나가 있을 뿐이다. 사내의 무용담은 기실 술 좋아하는 이의 뻥이었을 지, 외박의 합리화를 위한 꾀였을지 증인은 없어 알 수 없으되 아무튼 그곳은 도깨비 씨름터로 전해진다.
길어진 해가 봉아재산을 넘는다. 붉은 노을에 눈 내린 도두리 벌판이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