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섶길 무봉산 둘레길
진위면사무소 - 원각사 - 무봉상 정상 - 경주이씨 문중묘 - 만기사 - 무봉산 수련원
- 진위향교 - 진위면사무소 ( 약11km, 4시간 )
진위면사무소
평택섶길 코스중 가장 난이도가 있는 무봉산 둘레길
원각사
매장문화가 화장문화로 바뀌면서 지금은 보기가 힘들어진 상여집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고 편의시설도 곳곳에 잘 설치되어 있다
마냥 걷고 싶은 오솔길
오산시가 한눈에 보이고
평택에서 가장 높은 무봉산
경주이씨 상서공파 종중묘
무봉산 아래 가곡리와 동천리 인근 지역은 경주이씨 상서공파 집성촌이다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대대로 정승을 배출한 조선 최고 명문가로서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대의가 있는 곳에서 죽을지언정 구차히 생명을 도모하지 않겠다" (우당 이회영)
서울 명동과 양주 일대의 대토지를 지닌 당대 최고의 부호였던 선생 일가는
현재 가치로 2조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비밀리에 처분하고 친일의 대가로
주어질 안락한 삶을 포기한채 일가 40여명이 중국으로 망명한다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항일전사 3500명을 배출하여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 되었다
6형제중 건국후 초대 부통령이 된 이시영을 제외한 5명은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채 중국에서 병사 또는 옥사했다,
모든것을 버리고 나라를 지켜낸 6형제
노불리스 오불리주의 표상이 된 경주이씨 6형제
만기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이다
만기사는 942년(태조 25년)에 남대사에 의해 지금의 위치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동천리에 창건 되었다고 한다
1900년대 초에 발간된 사탑고적고 에서도 옛터가 북면 동천리에 있다
수십전년에 이곳으로 이전 했다고 라고 언급돼 있다
대웅전에 모셔진 철조여래좌상의 양손과 오른쪽 팔이 떨어져 나간것을 복원한
것으로 보아 어느 시점에 폐사 되었다가 다시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만기사 5층석탑, 그 뒤로 원통전, 대웅전, 삼성각
만기사 철조여래좌상 (보물 567호)
불상 높이는 1.43m 이며 이 불상은 만기사가 고려초에 창건 했다는 유일한 증거이다
무봉산 수련원
진위 향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