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봉산 둘레길의 가을풍경
일 시 : 2022. 11. 1 (화)
위 치 : 평택시 진위면 봉남리, 동천리, 가곡리
평택섶길 무봉산 둘레길 표식작업을 하다가 날이 어두워 마무리 짓지 못했는데
오늘 나홀로 몇군데 표식작업도 하고 무봉산의 가을풍경도 볼겸해서 집을 나선다
출발지와 도착지인 진위면사무소
장미는 5월에 피는 것으로 아는데 요즘은 따로 철이 없는것 같다
원각사 담을 돌아
무봉산 둘레길 표지판을 따라 우측으로 오르면
솔잎도 노랗게 단풍이 들고
능선에 올라서 우측 청소년 수련원을 향해 발길을 옮긴다
무봉산 도예체험관
경로를 잠시 이탈하여 좌측으로 오르면
무봉산 청소년 수련원
재직시 1박2일 연찬회가 있어 몇번 왔던 기억이 있다
청소년수련원에서 돌아와 만기사 방향으로
만기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다
만기사는 942년(태조 25년)에 남대사에 의해 지금의 위치에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동천리에서 창건 되었다고 한다
조선 세조때 왕명으로 중수 하였고, 대웅전에는 보물 제567호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을 비롯하여 탱화 등이 봉안되어 있다
천왕문 지주대에 새겨진 글
우주는 한가정, 중생은 한가족, 세상에 행복을,
마음에 평화를, 원수 갚지 말고, 은혜는 갚아라
불상들이 바라보는 방향이 제각각이다
만기사 철조여래좌상 (보물 567호)
불상 높이는 1.43m 이며 이 불상은 만기사가 고려초에 창건 했다는 유일한 증거
화장실 앞 벽면에 연꽃을 그리고 있는 자원봉사자
진위면 동천1리
경주이씨 상서공파 종중묘
무봉산 아래 가곡리와 동천리 인근 지역은 경주이씨 상서공파 집성촌이다
백사 이항복의 후손으로 대대로 정승을 배출한 조선 최고 명문가로서
1905년 을사조약으로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대의가 있는 곳에서 죽을지언정 구차히 생명을 도모하지 않겠다" (우당 이회영)
서울 명동과 양주 일대의 대토지를 지닌 당대 최고의 부호였던 선생 일가는
현재 가치로 2조원에 달하는 전 재산을 비밀리에 처분하고 중국으로 망명한다
그리고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항일전사 3500명을 배출하여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의 주역이 되었다
6형제중 건국후 초대 부통령이 된 이시영을 제외한 5명은 끝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한채 중국에서 병사 또는 옥사했다,
경주이씨 묘역에서 깔닥고개를 오른다
정상에 장미꽃이 아직도 피어 있다니...
무봉산 정상 (208 m)
봉황이 춤을추는 형세라 하여 무봉산 이라고 ...
평택에서는 가장 높은산 이다
누군가가 정상 부근을 청소하기 위해 빗자루를 나무에 묶어 놓은것 같다
그래서 인지 정상 부근이 항상 깨끗하다.
진위현 성황사
조선시대 진위현의 공공시설인 성황사이다
조선은 지역의 수호신인 산천, 성황, 풍운, 뇌우의 단을 성황사로 통합하여
고을 수령이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
진위 향교
무봉산 기슭에 진위천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자리잡은 진위향교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지방교육 기관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