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는 이 오래된 가르침은, 머리로는 익히 알면서도 몸으로는 지키기 어려운 진리다. 결국 중용(中庸)이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삶의 중심을 잡는 일인데, 그 중심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평생의 수양임을 나이 들어 더욱 절감한다.
칠십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나는 여전히 욕심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때는 그 욕심이 나를 앞으로 밀어주었다. 배우고자 하는 간절함 하나로 숱한 고난과 역경을 견디며 달려왔고, 마침내 경영학박사라는 이름과 강단에 서는 기쁨을 얻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보면 나쁘지 않은 결실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무리한 시간과 과도한 열정이 남긴 흔적은 몸과 마음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얻은 것만큼, 아니 그보다 더 깊이 새겨진 것은 ‘지나침의 대가’였다.
노년의 삶도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조심해야 할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습관처럼 몸을 몰아붙일 때가 있다. 적당한 운동, 절제된 식사, 그리고 여유로운 호흡이 필요한데, 어느새 승부욕과 인정에 이끌려 선을 넘는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좋아하는 테니스 복식경기에서 한 발 물러서도 될 일을, 끝내 이기겠다고 달려들었다. 네트 앞에 떨어진 공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온 힘을 다해 뛰었고, 한두 게임이면 충분한 몸 상태였음에도 동료들의 권유를 마다하지 못했다. 그렇게 세 게임을 채운 뒤에는 자전거를 타고 텃밭에 다녀왔다. 잘 자란 상추와 쑥갓을 수확해 지인들과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또 나를 움직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다시 모임에 나가 스크린골프 한 게임까지 더했다.
돌아와 보니 몸이 무겁다.
피로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느낌이다.
‘이건 아니다’라는 신호를 몸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보내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것은 나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 나누고 싶은 마음, 그리고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겹쳐진 결과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지나치면 균형을 잃는다. 중용이란, 단순히 욕심을 줄이는 일이 아니라 좋은 것조차 적절히 멈출 줄 아는 지혜일 것이다.
다행히 아직까지 큰 탈 없이 운동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그러나 감사는 동시에 책임을 동반한다. 이제는 ‘더’가 아니라 ‘적당함’을 선택해야 할 때다.
조금 덜 뛰고, 조금 일찍 멈추고, 조금 더 쉬는 것. 그것이야말로 앞으로의 삶을 지키는 길일 것이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시 한번 마음속에 새긴다.
중용의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가에 달려 있다는 것을.
내일은 오늘보다 한 걸음 더 절제하며,
조금 더 지혜롭게 살아가기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