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문학23호 수필 (최경순)

작성자최경순|작성시간16.04.28|조회수108 목록 댓글 0



추억나들이

 

최경순

 

남쪽에서 올라오는 꽃바람에 전국이 들썩이고 있었다. 창밖의 새들이 창문을 열어젖힐 즈음 전화벨이 울린다. 공부하느라 쉴 틈 없이 달려온 딸이 바쁘게 살아온 엄마와 단 둘이 여행을 가자는 전화였다. 마음이 바빠졌다. 서둘러 남아 있는 식구들의 식사를 챙겨 놓고 집을 나섰다. 대전가는 길은 언제나 마음의 햇살로 충만한 길이다. 학교에 도착하니 딸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는 추억을 들춰보고 딸은 추억을 만들자며 엄마의 고향을 가보고 싶다는 딸을 태우고 화개로 향했다. 주말인데도 고속도로는 한산했다. 마음이 가벼우니 봄이 통째로 들어왔다. 보들보들한 연둣빛 들판에 나온 농부들의 모습이 한 폭의 명화 같다. 구례로 가는 길에 남원 광한루 들렸다. 연못가에서 500년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왕버들나무가 돌 지팡이에 의지한 체 우리를 살펴보는 것 같았다. 고작 100년도 못사는 우리네 인생인데 500년 수령의 나무 앞에서 두 손을 모으지 않을 수 없었다. 구례는 산수유 축제가 한창이었다. 도로에 갇혀버린 우리가 안타까운지 바람이 꽃향기를 실어다 준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꽃담 길을 걸으며 우리는 추억의 사진을 남기기 시작했다.

 

구례와 화개는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있다. 구례에서 다리만 건너면 화개장터다. 하얀 백사장에서는 씨름 등 어린이날 행사를 하던 곳이며 방학 때 고전읽기를 할 때 강 건너 마을에서 뗏목을 타고 오는 친구를 기다리는 곳이기도 했다. 5일장이 열리던 날이면 어머니 아버지의 손에 푸짐한 먹거리를 안겨주던 인심 후한 장터였다. 그런데 불에 타서 새로 지은 장터는 먹거리와 특산품 판매장으로 변해 있었고,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도 없이 꽉 차 있다. 우리는 출출한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부터 찾는다. 재첩회 정식에 참개정식 은어튀김을 재첩국을 먹으며 시장기를 달랜다. 딸은 저만의 추억을 만들고 있는 듯하다. 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친척집을 방문했다. 오랜만의 회포를 풀며 시간가는 줄 모르다가 잠자리에 든다. 창가에 기댄 하얀 달도 잠을 청하고 있었다.

 

아침이 오고 일찍 깨어났다. 여명의 창밖을 바라보다 딸아이를 깨운다. 눈 비비며 일어나는 앞마당 수선화와 매화꽃, 화개천의 맑은 물소리가 있는 아침을 기억 속에 넣어주고 싶었다. 그러는 사이에 푸짐한 아침상이 나왔다. 애기쑥국 머위와 달래무침 민들레 고들빼기와 파김치 갈치속젓 묵은지까지, 따뜻하고 조미하지 않은 구수한 맛들이 잊혀져가는 고향을 상기시켜주었다. 화개는 녹차가 유명하다. 준비된 작설차가 초록물을 우려내는 모습이 꼭 새싹 같았던 나의 어린 시간들을 풀어 놓는 듯했다. 한 모금을 마시자 입 안 가득 퍼지는 향기가 오래 오래 남는다. 동네를 둘러보는 사이 골목 돌담에는 담쟁이가 초록의 길로 내달리고 여기저기서 그리운 얼굴들이 불쑥불쑥 뛰어나와 시끌벅적 할 즈음 갱조개 사리오를 외치는 구수한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린다. 갱조개는 재첩의 경상도 사투리다. 툇마루에 둘러앉아 먹던 가족들의 얼굴이 보였다 사라진다. 앞마당에는 졸시 <동백꽃>을 낳아준 나의 어린 시절과 엄마의 붉은 청춘을 고스란히 간직한 동백나무가 붉은 모가지를 툭툭 떨구며 쓸쓸함을 더하고 있었다. 딸아이는 엄마의 고향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고 셔터 소리는 텅 빈 골목을 채워나갔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십리 벚꽃 길을 혼례길이라고도 한다. 연인들이 함께 걸으면 헤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린 시절 꽃비가 내리면 꽃잎을 뭉쳐 눈싸움을 하던 그 길이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한 체 서로의 어깨를 맞대고 양쪽 가로수는 서로 손을 맞잡고 꽃 터널을 이루고 있다. 엄마의 고향이 아름다운 줄 알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줄 몰랐다면 연신 감탄사를 쏟아낸다. 한 그루 한그루 함께 만들어 낸 저 꽃길은 서로를 다독이며 가는 우리의 가족이며, 더불어 살아가는 이웃이며, 함께 만들어 가는 아름다운 세상의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지금 서로를 받쳐주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한 그루의 나무를 심고 가꾸는 일이라고 한다. 청춘을 지나는 딸도 자기만의 향기를 품은 한 송이 꽃을 활짝 피워내길 기도해 본다. 화개천 물소리 들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가다보니 어느새 쌍계사에 도착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을 가던 곳이며, 절행사가 있는 날이면 엄마를 따라 가던 곳이다. 엄마의 엄마가 오르고, 할머니의 할머니가 오르던 길, 오늘 엄마와 딸이 오르고, 먼 훗날 딸의 딸이 오르게 될 것이다. 경내에서 시원한 물 한 모금에 마음을 씻어내고 고개를 드니 벚꽃을 매만지던 바람이 풍경을 치고 지나간다. 은행나무 밑에 앉아 숨은 고른다. 다람쥐 한 마리가 눈을 맞춘다. 바람 한 자락 구름 한 점 모두 여유롭다. 옥천교를 건너 108계단을 올라가면 금당에 이른다. 이곳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불상이 아닌 사리탑을 모세 놓은 곳이다. 탑을 세 번을 돌고 탑 뒤에서 손을 넣고 한 가지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도 두 손 모아 소원을 빌었다.

초등학교와 강 건너 광양의 매화 축제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남해로 향했다. 하동포구 은빛 모래와 갈대가 어우러진 강가에서 나룻배 한척이 강물을 거슬러 올라온다. 나룻배는 분주하고 바쁜 생활을 벗어난 20대 청춘 딸과 50대 엄마의 이야기를 싣고 천천히 흘러갔다. 남해대교를 끝으로 우리의 여행은 모두 끝이 났다. 바쁠 것도 정해진 시간 안에 갈 곳도 없이 꽃길 따라 물길 따라 딸과 함께한 12일은 해마다 봄이 되면 십리벚꽃 길에서 추억의 엽서를 보내 올 것만 같다.

딸아이가 가는 길이 저 꽃길이길 바람 한 자락에 실려 온 봄꽃 같은 향기로움이며, 햇살을 등에 업고 반짝반짝 빛을 내며 저 평온한 물길이길 기도해 본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니 골목을 지키던 낯익은 불빛들이 반갑게 맞아 준다. 일기장에다 추억의 봄나들이를 빠짐없이 기록한다. 오래오래 새겨볼 추억으로 기록한다. 책상위에 올려놓은 액자 속에서 봄꽃처럼 웃고 있는 우리모녀의 사진을 다시 한 번 쳐다보며 잠을 청한다. 행복은 늘 가까이 있는 것임을 확인하면서 잠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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