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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거리는 물고기를 닮은 미술관

이제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보자. 강변에 접한 북쪽 면이 완만한 곡선으로 볼륨을 강조했다면 도심에서의 접근이 용이한 미술관의 남쪽 메인 입구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공공 건축물의 입구가 일반적으로 상승 계단인 반면,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광장의 넓은 공간을 지나 하강하며 좁아지는 계단을 만들었다. 방문객은 건물의 높이에 압도당하며 입구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마치 어린 시절 읽었던 피노키오의 그림책에서처럼 거대한 고래의 입안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긴 입구의 동선은 일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예술에 접할 수 있도록 마음을 정화시켜준다. 그리고 내부에 들어서서 물고기 등뼈를 연상시키는 아트리움을 만나는 순간 건축 디자이너의 컨셉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외부가 360도 입체적이었던 것에 이어 내부 또한 곡선적이다.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마냥 꿈틀거린다.
11,000평방미터에 이르는 19개의 전시공간은 중심의 아트리움을 둘러싼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중 9개의 전시실은 라임스톤으로 마감된 외장에서 짐작할 수 있는 박스형이고 다른 9개의 전시실은 각각 다른 면적과 높이를 가진 비정형이다. 나머지 하나는 티타늄 패널이 외장처리된 길고 큰 부피의 특징적인 볼륨으로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조각이 영구 설치된 공간이다. 모든 전시실에는 자연 채광이 되도록 하여 편안하고 자연스런 분위기를 연출한다. 물론 전시품을 손상시키지 않도록 고려되었다.
이런 곳에서 미술작품을 제대로 전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기획전과 상설전에서 작품에 몰입하는 동안 굽어진 벽마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전시와 건축이 잘 융화되어 있었다. 특히 사방으로 배치된 전시실을 중심으로 연결하고 있는 아트리움은 관람자가 작품을 감상하다가도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은 도시의 오브젝트, 랜드마크로서의 역할과 함께 미술관 자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Collections at the Guggenheim

From Private to Public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방대한 컬렉션에 대해 소개하기에 앞서 구겐하임 재단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구겐하임 재단은 미국 철강계의 거물 솔로몬 구겐하임(Solomon R. Guggenhein)이 직접 수집한 현대 미술작품들을 보관, 연구, 전시하기 위하여 1937년에 세운 것으로, 1992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설계로 뉴욕에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을, 1995년에 베니스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을, 베를린에 독일 구겐하임 분관을 세웠으며 현재에도 왕성한 예술품 수집과 컬렉션을 선보이고 있다. 이들 미술관은 소장품을 공유하면서 작품을 역동적으로 로테이션한다. 따라서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을 방문하면 기획전시뿐만 아니라 구겐하임 솔로몬 재단이 소장한 작품들을 시즌별 컬렉션에 따라 상설 전시하는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이 컬렉션들은 19세기의 아방가르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시각적 예술품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현재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의 3층에서 'From Private to Public'이라는 주제로 전시되고 있는 작품은 칸딘스키, 잭슨 폴록, 피카소, 호안 미로, 몬드리안, 샤갈, 고흐, 고갱, 마네, 세잔등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추상주의, 입체파, 인상파까지 볼 수 있다. (2010년 5월 종료 예정)
The Matter of Time
후기 미니멀리즘 조각의 거장인 미국 조각가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가 'The matter of time'이라는 주제로 미술관 1층의 가장 큰 공간을 채우고 있다. 이 전시장은 리처드 세라의 여덟 작품이 영구적으로 설치된 장소다. 196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리처드 세라는 조형물의 재료로 익숙하지 않은 산업용 자재를 도입하고 그 물리적 특성을 강조하면서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데에 기여했다. 1997년 길이 31미터, 높이 4미터, 중량 180톤의 철재 조형물 [Snake]의 설치를 시작으로 거대한 7개의 일련의 작품이 추가 설치되었다. 이 거대한 쇳덩이 사이를 거닐 때 조형물이 예상치 못하게 뒤틀린 공간 속에서 관찰자는 어지러움을 느낄 정도다. 끝을 짐작할 수 없는 원의 중심으로 향하는 동안, 관람객은 높은 철판에 가려 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기도 하고 방향감마저 상실하기도 한다. 그 순간 작품의 주제인 'The matter of time'을 떠올리며 우리의 인생과 어두운 기억의 파편이 작품과 섞이는 체험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