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세연정 洗然亭
1637년(인조 15), 병자호란으로 왕이 청나라에 항복하자 통분을 참지 못한 고산 윤선도(1587-1671)는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의 절경에 매료되어 이곳에 터를 잡았다.
섬의 산세가 연꽃 봉오리 같다 하여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 짓고, 이후 13년간 정자·연못·석물 등을 조성하며 자신
만의 낙원을 일궜다. 조선 최고의 별서정원이자 한국 3대 전통 정원 중 하나다.
보길도 세연정 洗然亭
사백여 년 전, 자연에 귀의한 한 선비의
삶과 철학이 지금도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곳, 보길도 세연정.
이곳에는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일부를 빌려 정자를 세운 한 선비의
깊은 사유가 깃들어 있다. 산과 바위,
물과 나무, 그리고 바람과 달빛을 벗
삼아 시를 짓고 노래하며 살았던 사람.
고산 윤선도
그는 주변의 사물 다섯 가지를 벗으로
삼아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을
꿈꾸었다. 세상의 번잡함에서 한 걸음
물러나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과 푸른
숲이 어우러진 이곳에서 시를 읊고
마음을 다스리며 유유자적한 삶을 누렸다.
세연정에 앉아 있노라면 사백 년의
시간이 결코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정자 아래를 흐르는 물소리와 숲 사이를
스치는 바람은 그 시절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자연 속에
자신을 낮추고 세상과 화해하며 살고자
했던 고산의 마음도 그 풍경 속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듯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풍경을 바라본다.
자연을 소유하려 히기 않고 그 일부가
되어 살아가려 했던 한 선비의 지혜가
새삼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세연정洗然亭은 단순한 정자가 아니다.
자연을 사랑한 한 선비의 마음이
사백 년의 세월을 건너 오늘까지
흐르고 있는,
살아 있는 시 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