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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집 안에 머무는 평화

작성자정운복.|작성시간26.06.11|조회수10 목록 댓글 0

칼집 안에 머무는 평화

세상은 종종 날카로운 칼날을 번뜩이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라 유혹합니다. 
화려한 언변으로 상대를 제압하고, 서슬 퍼런 기세로 우위를 점하는 것이 승리라 믿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높은 경지에 이른 고수는 자신의 날카로움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예리함을 칼집이라는 인격 속에 깊이 감추어 둡니다.

고수가 칼을 뽑지 않는 것은 힘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 힘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휘두른 칼날은 상대뿐만 아니라 결국 자신까지 베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칼집 속에 머무는 칼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일단 뽑혀 나온 칼은 소모될 뿐입니다. 
비워냄으로써 채우고, 멈춤으로써 나아가는 역설적인 평온이 그곳에 있습니다.

진정한 강함은 요란한 금속음이 아니라, 상대를 압도하는 깊은 침묵에서 나옵니다. 
억지로 증명하려 애쓰지 않아도 뿜어져 나오는 기운, 즉 부동심(不動心)이야말로 고수의 가장 날카로운 무기입니다. 
그는 갈등의 파도가 밀려올 때 칼을 들어 맞서기보다, 
스스로 바다가 되어 그 파도를 품어 안습니다. 
칼을 뽑지 않고도 승리하는 것, 그것이 고수가 지향하는 최고의 도(道)입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말을 아끼는 것, 
오해 앞에서 변명을 내려놓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재능을 시기적절할 때까지 묵묵히 갈고닦는 것. 
이 모든 것이 마음의 칼을 함부로 뽑지 않는 고수의 자세입니다. 
날카로운 실력은 갖추되, 그 마음은 솜털처럼 부드럽게 유지하는 것이 외유내강의 미덕입니다.

가장 날카로운 칼은 마음의 칼집에 머물 때 가장 빛나며, 
가장 강한 사람은 꼭 필요한 순간이 아니면 그 힘을 꺼내지 않습니다.
진정한 고수는 화려한 검무(劍舞)가 아니라, 
칼을 뽑지 않아도 주변을 평온하게 만드는 그 뒷모습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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