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흰 바람벽이 있어’, ‘여승’ 등으로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시인인 백석을 시 한 편 한 편이 아닌 시집 한 권으로 만나니 느낌이 색달랐다. 전체적인 느낌이라하면, 고향에 온 것 같은 따스함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항상 무언가를 추억하고 있는 것 같은 그의 시는 행복하고 따스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에 아련하고 쓸쓸한 느낌을 주는 것 같았다. 그래서 인지 유독 다른 시를 읽었을 때보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진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유명한 시인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읽어본 시가 꽤 많았는데, 특히 ‘쓸쓸한 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일제 강점기, 모두가 힘든 그 시절에 거적장사를 하며 하루하루 연명해가는 이의 고달픔과, 마지막 가는 길임에도 아무도 뒤따르지 않는 이의 쓸쓸함이 한 데 뒤섞여있었다.
그의 유명한 시 중 하나인 ‘고향’에서는 독자로 하여금 고향에 와 있는 것 같이 따스하고 포근한 느낌을 가지게 한다. 나도 지역 후배와 얘기를 하다보면 왠지 전주가 아니라 고향에 와 있는 것처럼 느끼곤 하는데, 이처럼 타향살이에 있어서 같은 지역 출신 사람, 즉 ‘지연(地緣)’은 굉장히 의지가 되는 존재인 것 같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지연이 이렇듯 포근한 느낌이 아니라, 높은 직위를 얻거나 취직을 하는 등의 개인적 이익을 위한 보조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시를 좋아했다. 몇 줄 안 되는 분량임에도 여러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점이 좋았고, 시어 하나하나 마다 깃들여져 있는 숨겨진 의미를 찾는 것 또한 시의 매력인 것 같았다. 시인 중에서는 정호승을 좋아하는데, 그의 시 특유의 조곤조곤한 말투와 다독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아서이다. 가끔 힘들 때 정호승의 시를 읽으면서 힘을 얻곤 하는데, 특히 ‘수선화에게’라는 시가 그렇다. 그에 반해 백석 시의 느낌은 ‘나를 위로하고 다독거려준다’라기 보다는 ‘같이 힘든 처지니까 같이 힘내자’라는 느낌이 강했다.
어느 날 문득, 시인들이 시를 쓰는 이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들은 분명 독자들에게 어떠한 느낌을 전달하고 싶었을 것이고, 그를 더욱 인상에 깊이 남기기 위해 시로써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한민국의 수험생의 대다수는, 그러한 시들을 시집이 아닌 문제집에서 읽곤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시인의 눈이 아닌 출제자의 눈으로, 시를 시가 아닌 그저 ‘획일화된 해석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한창 여러 문학 작품을 읽고, 많은 일들을 경험하며 가치관을 정립해야할 나이에 의자에 앉아 문제집에 빨간 줄, 파란 동그라미 열심히 그려가며 시를 해석해가는 우리들을 그들이 본다면 얼마나 속상해할까. 언젠가는 고등학생들이 시를 평가의 대상이 아닌 감상의 대상으로 여기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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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
정호승
밥그릇을 들고 길을 걷는다
목이 말라 손가락으로 강물위에
사랑한다라고 쓰고 물을 마신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리고
몇 날 며칠 장대비가 때린다
도도히 황톳물이 흐른다
제비꽃이 아파 고개를 숙인다
비가 그친 뒤
강둑 위에서 제비꽃이 고개를 들고
강물을 내려다본다
젊은 송장 하나가 떠내려오다가
사랑한다
내 글씨에 걸려 떠내려가지 못한다
저번 활동지에서 좋아하는 시 소개하기 할 때요, 그 때는 이 시 내용이 생각안나서 다이어리에 적혀있던 다른 시를 소개했는데
그게 갑자기 생각나서 썼어요ㅎㅎ 제가 제일 좋아하는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