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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무석

수필 -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작성자소나무|작성시간19.08.18|조회수31 목록 댓글 0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2019.3.25.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을 처음 읽었을 때 내 마음이 환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쩜 이렇게 삶과 세상, 그리고 죽음마저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까?'. 그러나, 그의 삶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그의 시구는 역설로만 생각된다.


김동길 교수의 글에 따르면 “천상병 시인은 중학 5학년 때 유치환의 추천을 받아 '강물'이라는 시를 '문예'라는 잡지에 발표하였고 1952년에는 '갈매기'가 시인 모윤숙의 추천으로 또다시 '문예'에 게재되어 시인으로서의 추천받는 일이 완료되었다.”고 한다. 김현옥 부산 시장의 공보비서로 일하는 등 평탄해 보이던 그의 삶은 동백림 사건에 얽혀 완전히 바뀌고 만다. 그는 죄 없이 잡혀 전기 고문을 받고 몸과 마음이 완전히 망가졌다. 그런 그는 서울시립 정신병원에 수용되어 있었다. 거기서 문병 온 친구의 동생을 만나 결혼하게 되지만, 그는 아이를 낳을 수도 없는 몸이었다. 그는 한 병의 술이면 하루가 행복한 여생을 살았다. 아마도 그의 아내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종교에 의지하지 않았다면 그는 도저히 남은 생을 살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천상병 시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물질적으로도 풍요롭고 월등히 건강도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걱정과 염려가 없는 날이 있을까? 있는 것을 온전히 지키는 것은 물론 무언가 더 가지려 하지 않는가? 그것이 금전이건 사회적 지위이건. 자신을 자기 처지를 다른 사람과 여러모로 비교하고 남보다 못하면 속상해하기도 한다. , 다른 사람에게 뭔가 자랑하려고 소셜 미디어에 사진과 글을 올리면서 애쓰고. 그뿐이 아니라 우리는 지금의 이 행복을 잃을까 걱정하고, 더욱 풍족하고 편안한 미래를 위해 고민한다.


천상병 시인은 그런 근심과 욕심을 내려놓은 분으로 보인다. 아이들처럼 순수하게 그냥 있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기쁨을 찾은 분 같다. 그의 신앙은 그에게 이 세상의 삶이 그저 짧은 나들이 정도로 생각하게 했나 보다. 사후에 행복하고 영원한 삶을 누릴 테니 뭐 그리 애착을 가지고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할 일이 무엇인가? 우리도 그처럼 삶을 그저 색다른 여행을 한 번 하고 간다고 생각하면 그런 편한 마음을 갖게 될까?


그의 어린이 같은 천진난만한 태도는 생의 고통을 초월한 성자와 통하는 점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늘 그런 현실을 초월하는 태도로 살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런 술 한 병으로 행복할 만큼 소박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근심하지 않고 있는 대로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한다면 밤에 잠을 못 이루며 괴로워하는 날은 줄어들지 않을까?



**2019.8.30. 밴쿠버 중앙일보 게재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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