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데 사역자 디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혔다가 잠시 풀려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1차 투옥 후 풀려나서 2차 투옥되기 전에 지중해에 방문했다고 전해집니다. 그 때 그리스 남쪽 큰 섬인 그레데에 들렀다가 함께 했던 디도를 그곳에 남겨두었습니다.
디도는 바울의 제자이며 동역자이고 영적이 아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4절에 보면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디도를 그레데 셈에 사역자로 남겨둔 이유는 교회에서 일부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 또 무엇보다 교회에 지도자를 세워서 바로 교회를 세워나가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 지도자는 당시 5절 말씀처럼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장로는 ‘프레스뷔테로스’라는 말인데, 마을의 어른을 뜻할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의 족장과 같이 지도자로 쓰임 받는 연장자라는 의미입니다.
신약교회에서는 교회의 지도자로서 교회를 다스리고 이끌어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당시 초대교회에서는 목사와 장로가 구분되지 않았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초창기에 영수같이 선교사가 안 계실 때 그 교회에 영수를 세워서 교회를 치리하고 어떤 경우 설교도 하는 그런 지도자였습니다.
교회에는 지도자, 직분자가 있어야 든든히 세워나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으로 은혜를 받기를 원합니다. 이단에 휘말리지 않고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교회의 직분자들이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멘
첫째, 장로는 책망할 것이 없고 가정을 잘 다스리는 자여야 한다.
디도서 1:6에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꼭 장로 뿐 아니라 교회의 직분자들은 대체로 오늘 이 말씀대로 합당해야 되는 줄 믿습니다. 교회에 주의 일꾼들을 세워서 이끌어 가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목사가 있고 장로, 안수집사, 권사, 서리 집사가 있습니다. 목사는 신학대학원 수학을 하여 일정의 과정의 수련하고 노회에서 안수를 받은 사람으로서 설교권이 있으며 교회 장로이며 목사로서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장로는 평신도 중에서 믿음이 출중한 사람을 공동의회서 선출하여 일정의 교육을 거쳐서 장로 시험을 치고 노회 허락을 받아 교회에서 안수하여 세웁니다. 당회를 이루어 목사와 장로가 함께 교회 행정을 책임집니다.
안수집사는 안수 받은 집사로서 목사와 장로와 같이 항구직이며 교회의 재정이나 행정 등 여러 사무를 담당합니다. 권사는 여성도 중에서 신앙이 좋은 사람을 공동의회에서 선출하여 안수는 하지 않지만 항구직에 준하는 직분입니다. 교회의 봉사를 담당하여 약한 성도들을 심방하며 섬기는 사역을 합니다.
서리집사는 안수집사가 되기 전 임시집사로서 매년 직분을 임직하는 집사입니다. 교회의 여러 봉사직을 감당하여 다른 직분자들도 다 당회 지도를 받아 봉사하는 일꾼입니다.
직분자들은 먼저 책망할 것이 없는 자라야 합니다. 여기서 ‘책망할 것이 없는’ 이 말은 이전 개역성경에는 ‘흠이 없는’이라고 했습니다. 즉 흠이 없다, 책망할 것이 없다는 말은 완전하여 흠도 점도 없는 그런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범죄함이나 성경에서 벗어나는 잘못된 일이 없는 그런 사람을 의미합니다. 즉 당회에서 치리를 받을 정도의 죄를 범하지 않은 사람을 의미합니다.
믿음과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 하면서 사람들이 보아도 책망할 것이 없는 그런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하고 임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이방인들로부터 비방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교회 직분자들은 집을 잘 다스리는 자라야 합니다. 6절에 [한 아내의 남편이며]라고 했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일부다처제가 흥행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한 아내를 두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신 것처럼 하나님은 한 남편과 아내를 두기를 원하십니다. 여러 아내가 있으면 분란과 시기가 끝이 없습니다.
한 아내라는 말은 살아 있는데 한 아내이입니다. 만일 아내가 천국 가고 없으면 재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배우자가 있는데 또 다른 배우자를 만들면 안 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는 목사나 장로나 반드시 결혼을 해서 한 아내를 두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정이 되고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없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직분자들은 자녀 신앙교육을 잘 해야 합니다. 6절 후반절에 [~방탕하다는 비난을 받거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고 했습니다. 지도자는 자녀교육에 힘써야 합니다. 특히 신앙교육을 말씀으로 잘 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교육을 하여 예수를 잘 믿는 믿음의 자녀로 양육해야 합니다. 그래서 방탕하거 비난 받는 그런 자녀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믿음의 직분자 자녀가 신앙이 없어서 사회에서 방탕한 모습으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자녀 신앙교육은 말로만 안 됩니다. 부모가 스스로 본을 보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직분자들은 믿음이 삶이 되고 인격이 되어야 자녀들이 바른 교훈을 따르고 신앙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믿은 가정의 자녀들이 교회생활을 하지 않는 비율이 많습니다. 자녀들이 부모의 신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개의 경우 부모가 교회에서는 예배와 믿음생활을 하는데 실제로 가정에서는 믿음으로 행하지 않거나 가르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하여 복음화를 이루는 것도 해야 됩니다. 그러나 먼저 믿은 집안의 자녀들을 신앙으로 양육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믿음의 가정의 자녀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으니 시대가 얼마나 어려운 시대입니까! 그래서 가정에서 신앙이 삶이 되는 믿음의 가정, 아브라함 같은 믿음의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둘째,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7절에 보면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라고 시작합니다. 여기서 감독은 ‘에피스코폰’입니다. ‘에피스코포스’라고 하면 ‘살피다’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oversee’라는 뜻입니다. 마치 양을 치는 목자가 높은 곳에서 넓은 들에 풀을 뜯고 있는 양을 돌보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에서 양들을 돌보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당시 목사와 장로의 구분 없이 교회의 감독을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목사는 장로이며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입니다. 교회의 장로라는 말은 교회의 감독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일반장로는 설교는 할 의무가 없고 행정을 목사와 같이 담당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꼭 목사와 장로가 아니더라고 교회의 직분자들은 다 하나님의 교회의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라는 말은 ‘오이코노모스’입니다. ‘오이코스’는 집을 의미합니다. ‘네모’는 ‘관리하다’는 의미입니다. 집을 관리하는 사람, 즉 옛날에 우리나라 큰 대궐집에 집사가 있었습니다. 양반 집에 집사는 그 집 주인은 아닌데 집안 일을 맡아서 하는 사람을 집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에서 집사라는 이름을 직분자에게 붙였습니다. 원래 집사라는 직분자는 ‘디아코노스’입니다. 이 말은 봉사하다는 말의 뜻입니다. 봉사라는 직분을 영어로 ‘deacon’이라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집사라고 부릅니다.
옛날에 큰 집에 집사는 그 집 주인이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그 집의 재산이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단지 맡겨준 재산이나 일들을 책임을 지고 관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을 집사라고 불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나라의 청지기는 교회의 재산이나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그 소유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입니다. 청지기는 자신에게 맡겨준 것을 잘 관리하고 책임을 지고 맡은 업무를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청지기 의식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맡긴 교회의 사역을 내가 최선을 다하여 감당하였을 때 주님이 반드시 우리들에게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청지기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 성실하게 자신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아멘
직분자들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결정적으로 문제가 있으면 안됩니다. 그리고 제 고집대로 사면 안 됩니다. 교인이라 해도 다 생각이 다를 수가 있고 의견이 여럿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럴수록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 의논을 나누고 의견을 조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없이 제 고집대로 모든 것을 해버리면 안 됩니다. 더구나 성도들이 의논이 안 맞는 가운데서 자기 마음대로 가지 고집대로 교회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급히 분내어서도 안 됩니다. 혈기로 분을 내면서 교회 일을 하면 안 됩니다. 차분하게 기도하면서 맡겨준 일에 성실히 감당해 나가야 합니다. 의논할 것이 있으면 성의껏 의논해서 진행을 하면 됩니다. 자기 생각대로 안 된다고해서 분을 내고 혈기에 못 이겨 다른 성도들에게 회를 내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자들은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물론 의분은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너무나 성경에 맞지 않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면 바로 잡아야 하며 시행이 되지 않을 때는 반드시 의분으로 막아야 합니다. 그것도 분명한 뜻을 가지고 명확해야 하지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고 하는 의도는 좋지 않습니다.
술을 즐기지 않는 자라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술에 취해 살아가기도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술에 취하지 말고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했습니다. 술을 조금 마셨다고 해서 천국 못 가는 것은 아니지만 직분자가 술에 임박이면 안 됩니다. 술에 취하면 실수를 하기 마련이고 세상에서 빛이 되지 못 합니다.
구타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는 사랑의 힘으로 이끌어야지 폭력으로 행사하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어떤 경우 믿지 않은 때 폭력적인 사람도 예수를 믿어 변화되어 온화한 사람이 됩니다. 더구나 직분자는 특히 구타는 절대 용납할 수 없죠. 그런 자들은 직분자가 될 수 없습니다.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더러운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교회에서 재정은 투명해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재정을 감당해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부정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주의 일을 하는데 뇌물을 받거나 부정한 청탁을 받아서도 안 됩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주의 직분을 사용해서도 안 됩니다. 지도자는 더욱 이 일에 조심해야 합니다.
셋째, 주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야 합니다.
9절에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직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라야 합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훈계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지도할 때 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도 지키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당회원은 자신이 말씀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들이 부정을 행할 때 치리를 해야 합니다.
또한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들은 먼저 본을 보이며 성도들로 하여금 따르도록 해야 합니다. 아멘 예로 구역장이 자신이 하지도 않는 봉사를 구역식구들을 보고 하라면 누가 하겠습니까! 자신이 먼저 본을 보이고 헌신하면서 성도들을 지도할 때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서 선한 일을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8절 말씀에 [오직 나그네를 대접하며 선행을 좋아하며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라고 했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구약이나 신약이나 늘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고아와 과부와 그리고 나그네는 약자의 부류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고아와 과부는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나그네는 먼 타향에 와서 생명부지의 사람들 속에 있기에 현지인들이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선행을 좋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의 자녀로서 우리는 빛의 사람들이며 당연히 이웃에서 선을 행하여야 합니다. 아멘
‘신중하며 의로우며 거룩하며 절제하며’라고 했습니다. 신중하다는 말은 경건하다는 말입니다. 깨어 있는 성도를 말합니다. 세상에 취하여 있는 자가 아니라 주의 말씀과 성령에 깨어 있는 자라야 합니다.
그리고 의로운 자입니다. 사람은 원래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대속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의인의 자리에 머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거룩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거룩하게 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주의 피로 죄씻음 받아 말씀과 성령으로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변화되어집니다. 아멘 그리하여 매사에 절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말과 행동에 절제가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결론) 교회의 성도들은 훌륭한 믿음의 직분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자들이 교회의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젊은 그리스도인들은 젊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배우고 자라서 이제 어른이 되어 교회의 직분자들이 되고 충직한 사명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
그리하여 주의 나라를 위해 충성과 헌신을 다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