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6:1~12)
하나님께 헌실된 자로 살기를
스스로 자발적으로 서언한 나실인들이 지켜야 할 규례는 다음과 같다.
* 포도주와 독주를 멀리한다.
*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다.
*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는다.
만약 이것이 지켜지지 않고 몸이 더렵혀지면
제사장을 통해 제물을 드림으로써 정결함을 회복해야 한다.
<적용점>
1. 본질은 형식에 담는다.
나실인의 규례를 보며, 그것이 하나님 앞에 구별된 자로 사는 전부일까?
라는 생각을 한다. 절대 아닐 것이다. 단, 그런 규례를 지키라고 하는 것은
그 일을 통해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삼가하는 출발점, 중요한 계기가 되라고
하는 것이다. 본질은 형식에 담는다. 하나님을 향하여 철저히 구별된 거룩의
삶을 사는 본질을 깨달았다면 이것에 대한 선한 의무감으로 행동으로 옮기도록
노력하는 것이 수순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절차이다.
그러기 위한 과정으로 규례를 지킨다. 이런 형식, 즉 규례가 없다면
생각으로 본질을 깨달았다고 해도, 실체화시킬 수 있는 어떤 수단도 얻지 못한다.
때로는 이런 규례나 형식이 본질을 더욱 강화시키고, 망각하지 않게 하고
내 주변의 사람과 현실에서 본질을 실체화 하는 매우 중요한 기능을 한다.
2. 왜 그렇게 하는지에 대한 본질을 항시 잊지 말고 행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연, 거룩해져야 하는 본질을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해야 한다.
혹 행동이나 절차, 규례가 균형을 깨고 과도하게 되면 본질은 사라지고
규례만 남을 수 있다. 그것은 오염된 것이다. 욕구와 경향성으로 왜곡된 상태이다.
오늘 외적 거룩함의 규례가 어겨질 때 제사를 통해 정결함을 회복하라는 것도
깊은 의미에서는 일체의 왜곡(규례나 형식을 강조하여 본질을 망각하는 것 포함)이
발생하였을 때, 그것을 돌이켜 회복시키는 하나님 앞에서의 과정을 밟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단지 3가지 위반으로만 여겨서는 안 될 것 같다.
<적용>
구별된 삶. 참으로 Long and winding road이다.
나에게 특히 그렇다.
그래도 너무 절망하지 말자.
내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나에 대한 기적을 인정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으니.
아무튼 고민하고 조금이라도 미동한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실망의 권한을 주님께 드리고
나는 분투하며 살려고 하자.
여기서라도 이렇게 반성하고
나와 타자와 공동체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유익한 일을,
사랑의 일을 하도록 기도하며 행동하자.
오늘을 구별된 삶으로 드리고
내일 제자훈련, 목장 모임 준비, 강의 준비
모레 예배와 목장모임 준비/모임
월요일 졸업생 기념 사진 촬영 참가, 강의 준비
화, 수요일 학생들과의 교감
목요일 부목사님 가족과의 만찬과 티타임 등...
일단 기본적으로 내게 닥친 일을
정성껏 함으로 사랑을 실천하자.
<오늘의 명언>
'최고의 서원은 주님을 신뢰하고 자기 삶을 주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다.'
-빌 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