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싱그러운 아침인데
저는 피곤한 몸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오늘 본문 다섯 편 가운데
앞의 네 편은 은혜와 찬양으로 가득 차 있는데,
마지막 한 편은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102편의 소제목이 이렇습니다.
‘삶이 산산조각 난 사람이 하나님께 어려운 형편을 토로하는 기도’
시편 기자의 고백에서
그는 불치병으로 거의 죽음의 모습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뼈와 가죽만 남은 형국입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처량하게 중얼거리기만 합니다.
뼈와 가죽, 잠 못 이루는 밤.
간단히 몇 마디 글로 쓸 수 있지만,
당하는 이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저주를 쏟아냅니다.
위로나 공감은 없습니다.
비웃음을 던지고,
사랑이란 없는 딱딱한 재와 같은 음식만 던질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서 여전히 통치하시고
언제나 영원토록 다스리신다.’
고 고백합니다.
이것이 신앙인의 참모습,
실제적인 모습입니다.
내 욕망이 채워진 축복을 누리는 것이
신앙인의 궁극적 모습이 아니라,
뼈저린 현실의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하나님이라 고백할 수 있는 믿음,
고통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아는 것이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복으로 여기는 것에도,
사람이 재앙으로 여기는 것에도,
그 너머에는 모든 것을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실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런 이들에게 보여 주실 하나님의 축복이
98~100편까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비로소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이들도
듣고 볼 수밖에 없을 만큼
크고 거대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98:3)
그때 사람뿐 아니라
만물도 함께 찬양할 것입니다. (98:4~9)
사람은 관현악단을 조직하여
사람이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도
정성스러운 찬양을 연주할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모든 생물들도
몸짓과 소리로
그들의 한껏 고양된 감정을 표현할 것입니다.
미물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들이 찬양할 것입니다.
대양의 파도는 그 거대한 움직임으로,
산들은 웅장한 모습과 색깔,
그 안에 품은 수많은 생명들로,
길가에 흔하게 피어 있는 꽃들은
비록 소리는 없지만
섬세한 색깔과 다소곳한 아름다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모든 만물은 그 찬양과 함께
하나님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갈 것입니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가볍지 않습니다.
불치병에 걸린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결코 웃을 수 없는
각양각색의 고통을 통과한 사람들의 웃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과 내가 좋은 나라에서,
그 좋은 나라에서 만난다면
우린 서로 아무 말 못 하고
그저 마주 보며 웃기만 할 거예요.’
타지 선교지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내를 그리며
그의 무덤 곁을 몇 년 동안 떠나지 못했던
한 선교사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애통한 사연 속에서
‘좋은 나라’라는 저 가사와 곡조를 들으며
저 역시 깊은 슬픔과 함께
‘아픈 위안’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웃음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때 비로소
고통의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평화와 사랑만이 가득한 곳,
고뇌와 눈물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춤을 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