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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통독

26.6.17. (시편 108~112장) 하나님의 마음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작성자Hyun|작성시간26.06.17|조회수28 목록 댓글 0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서도

많은 생각과 교훈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제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조금씩 성숙해 가게 하여 주십시오.

 

1.

먼저 109편에서

조금의 문제 의식을 가졌습니다.

다윗의 기도가 너무 거칩니다.

 

악인을 향해

수명을 줄이시고,

일자리를 빼앗으시고,

자식이 고아 되고,

아내가 미망인이 되고,

자식들이 구걸하게 하고,

집에서 쫓겨나 노숙자가 되고,

재산을 차압하고,

족보가 끊기고,

죄악의 기념비까지 세워 달라고 기도합니다.

 

저주가 너무 많고

그 강도 또한 매우 셉니다.

그러면서 이런 의문이 듭니다.

하나님의 원리는

징계조차 회복을 위한 것이고,

사람에게 부정적 결과가 따르더라도

존재와 죄악은 구별하여 바라보아야 하며,

사랑의 본질은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데,

다윗의 저주는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선 듯한 느낌입니다.

 

이미 다윗의 저주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기보다,

존재를 품으려는 마음보다는

응징의 마음이 훨씬 크게 드러납니다.

 

다윗의 고통은

인간으로서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신앙에서는

문제 의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하나님의 최종적인 뜻이나

사랑의 완성된 모습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악 앞에서 울분을 토해 낼 수밖에 없는

인간의 거친 마음마저 숨기지 않으시고

성경 안에 그대로 담아 두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이런 걱정도 들었습니다.

만약 '성경무오설'을 앞세우며

성경의 음절 하나,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법규처럼 절대화하여

그대로 삶에 적용한다면 어떨까요?

 

지금 다윗의 지극히 인간적인

응징의 분노마저

오늘 내가 따라야 할

종교적 규례처럼 받아들인다면 어떨까요?

 

너무 과한 걱정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 안에서도

그보다 더 황당한 일들이

적지 않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무오함은

하나님의 사랑에는

일체의 빗나감이 없다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입니다.

하나님, 제가 틀리나요?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격적 존재,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로 창조하신 이상,

성경 또한

인격적으로 읽고,

사랑의 맥락 속에서

끊임없이 해석하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 가도록

허락하셨다고 믿습니다.

 

저 멀리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를

탐험하듯 찾아가는 과정,

우리에게 주신 해석의 능력과

각기 다른 기질과 인격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가는 과정입니다.

 

성경은

글자 하나,

단어 하나를

로봇처럼 법규로만 받아들이라는

몰인격적인 책이 결코 아닙니다.

 

오늘 다윗의 거친 말과

응징의 마음은

그 자체를 본받으라는 것이 아니라,

그토록 분노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아픔을

하나님께서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는

사랑을 보여 주시는 것 아닙니까?

 

다윗처럼

무너뜨리고 싶을 만큼

울분에 차 있는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 마음을 받아주시고,

들어 주시고,

마침내 사랑으로

그 분노를 넘어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2.

또 하나 생각하게 되는 대목은

111편 4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그분의 기념비.'

 

글자 그대로

기적은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흔적입니다.

 

그런데 저는

기념비의 희귀성에 주목합니다.

 

기념비는

아무 곳에나,

아무 때나 세우지 않습니다.

특별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세우고,

오랫동안 기억하게 하기 위해 세우며,

다음 세대에게

의미를 전하기 위해 세웁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흔치 않은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성경 전체를 보면

하나님은 대부분의 일을

기적보다

섭리로 이루어 가십니다.

 

씨를 뿌리면 자라는 원리,

계절의 순환,

인간의 성장,

역사 속의 작은 만남,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

대부분 그 속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의 신앙 안에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명목으로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책임과 원리,

상식과 지혜,

현실의 의무를 외면한 채

기적만을 기다리는 태도가

깊이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됩니다.

 

노아는 방주를 지었고,

요셉은 행정가로 살았고,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했고,

바울은 선교 계획을 세웠으며,

예수님도

씨 뿌리는 농부,

어부,

목수,

포도원 주인의 비유를 통해

일상의 삶을 말씀하셨습니다.

 

최근 어떤 목사님의 설교에서는

오후 다섯 시에 고용된 일꾼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탄하면서도,

마감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

고용되기를 기다린

그 일꾼의 성실함과 인내를

다시 보게 해 주셨습니다.

그런 일상의 충실함 속에도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는

함께합니다.

 

예수님께서도 광야 시험에서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는 유혹을 받으셨지만,

굳이 기적을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시지만,

대부분의 시간에는

오늘 이 순간의

섭리와 질서,

그리고 현실 속에서

묵묵히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저도 기적을 믿습니다.

그러나 기적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제 삶 속에 심어 놓으신

하나님의 섭리와 질서,

책임과 사랑 안에서

오늘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념비와 같은 은혜를 허락하실 때마다

그것을 평생 기억하며,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며,

더욱 하나님을 닮아 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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