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감사하옵고 또 감사합니다.
우리의 부족함과 한계를 직면할 때마다
마음이 뒤숭숭하고 무너짐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면
비로소 인생의 소망을 발견합니다.
하나님이 존재하셔서,
하나님이 만유의 주인이셔서
너무나 다행입니다.
오늘 해당 본문의 시작인
113편 1~3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라,
찬양하라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언제까지나,
동에서 서로,
새벽부터 해 질 때까지
그렇게 하라고
거의 명령조로 외칩니다.
얼핏 보면
하나님의 원리와 맞지 않게
강압과 지시의 어조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주의 거대한 거시적 세계로부터
도저히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적 세계까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능력이 닿아 있음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되면,
그것은 강제가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감탄일 뿐입니다.
그런데 해당 장의 말미를 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열하면서
'버림받아 불쌍한 이를
쓰레기 더미에서 구해 내신다.'
고 고백합니다.
저는 이것이 너무 실감납니다.
최근 유튜브를 통해
마약, 특히 펜타닐에 중독된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큰 고통과 괴로움이 밀려왔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중독성 앞에
사람들이 하나둘 멸절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간 것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중추신경계가 무너져
단순한 의지나 상식만으로는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경입니다.
미국에서는
1년에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마약으로 생명을 잃습니다.
거대한 전쟁의 사상자보다도
더 많은 숫자입니다.
몸은 좀비처럼 움직이고,
모든 관계는 끊어지며,
도저히 인간다운 삶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거리는 오염되고,
도시는 피폐해집니다.
이 모습을 보게 되니
'버림받고 불쌍한 이를
쓰레기 더미에서 건져 내신다.'는 말씀이
더욱 실감나면서도
오히려 더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디 하나 현실적인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
운명처럼 받아들이고
포기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조차
하나님은
결코 소망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소망'이라는 단어조차
차마 붙이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소망이 되어 주십니다.
그 사실 앞에서
저는 또 혼자 눈물을 흘립니다.
하나님!
쓰레기처럼 되었다는 표현조차
부족하지 않을 만큼
무너진 사람들에게도
소망을 불어넣어 주시는 주님,
정말 감사합니다.
저들에게
회복의 기적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 모든 비극은
하나님을 외면한 자리에
붙들게 되는 '우상'이 가져오는 결과입니다.
115편 3~8절은
우상의 속성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손으로 만든 것,
새긴 입이라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고,
목구멍에서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다.
이 우상을 만드는 자와
의지하는 자도 그와 같아질 것이다.'
하나님,
어찌 이 말씀이
형상으로 만든 우상에만
적용되겠습니까?
이것은
모든 우상의 속성입니다.
진리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
진리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수많은 사랑의 손길을 보지 못하는 것.
향기로운 진리의 향기를
맡지 못하는 것.
입으로는 수많은 말을 하지만
사랑의 한마디조차
내뱉지 못하는 것.
하나님의 손길이 닿은 피조물이기에
능력은 있습니다.
보고,
듣고,
느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리와 괴리된 채
참된 유익은 만들어 내지 못하고,
오히려 해로운 것들만
보고,
듣고,
말하며,
생산해 낼 뿐입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진리 안에 있다고 하면서도
그럴 수 있습니다.
116편 5~6절에서 고백하듯,
오직 하나님만이
은혜를 베푸시고
모든 것을 바로잡아 주실 수 있습니다.
참된 긍휼은
하나님께로부터만 나옵니다.
비록 어긋난 사람이라도,
힘없고
의지할 곳 없는 사람이라도,
하나님만이
도움을 주실 수 있고,
마침내
인생을 구원하실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다른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게 하소서.
마지막 117편은
온 세상을 향해 외칩니다.
"모든 민족들아,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모든 백성들아,
하나님을 찬송하여라!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고,
그분의 신실하심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하나님,
결국 저희 인생은
이 고백으로 돌아오는 것 같습니다.
삶이 흔들려도,
세상이 무너져도,
인간의 죄가 아무리 깊어 보여도,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이시고,
여전히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저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모든 영혼이
이 찬양에 함께하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