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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타 도자기에 얽힌 이야기

작성자송명관(경기)|작성시간24.04.27|조회수221 목록 댓글 1

아리타 도자기에 얽힌 이야기

도자기 마을 아리타에서는 ‘자연에서 온 것이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의미로, 야키모노(도자기) 조각을 산에 버리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사진-이내)    

싱어송라이터인 이내가 최근 가지게 된 꿈은 “마을과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이다. 이 꿈을 꾸게 만든 씨앗 같은, 짧지만 강렬한 여행이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 후, 일본 여행이 재개된다는 소식과 함께 떠난 그녀의 우연한 여행은 거기서 그치질 않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이내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이미 연결되어 있었던 우리의 이웃 마을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과거의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함께 느끼게 된다. 인연의 꼬리를 물고 계속되는 이내의 로컬 여행기, 종착지가 정해지지 않은 마을 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주
 
도자기 마을 아리타, 그 시작은 조선의 도공 ‘이삼평’
 
아리타에 도착해 소라의 어머니 미와코 씨의 집에서 내가 처음으로 저지른 일은 샤워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도자기 비누 받침을 깨뜨린 것이었다. 너무 놀라서 한동안 일시 정지 상태로 멍하니 서 있었다. 조심조심 조각을 주워 창틀 한쪽에 옮겨놓고 일단 몸을 씻었다. 오자마자 사고를 쳤다고 고백했을 때, 미와코 씨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요. 도자기는 원래 깨지는 물건이니까.”
 

도자기의 일본말은 ‘야키모노(焼き物)’, 즉 구운 물건이라는 뜻이다. 이번 여행에서 처음으로 알게 된 단어다. ‘물건'에 관심이 도통 없는 편이다. 그런 나에게 도자기는 멀고도 먼 세계였건만,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만난 단어는 단연 ‘야키모노’였다.
 
아리타가 ‘야키모노를 위한, 야키모노에 의한, 야키모노의 마을’이기 때문이다. 가격대가 높은 고가품으로 알려져 쇼핑은 꿈도 못 꿨다. 일왕이 쓰는 도자기도 아리타에서 만들어질 정도니까. 반면 옆 마을 ‘하사미’의 야키모노는 젊은 층을 공략한 디자인과 저렴한 가격으로 최근 일본 내에서 인기를 얻는 중이라고, 소라가 심기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역시 라이벌 이야기는 재밌다.

마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깨진 도자기 장식, ‘아리타 야키’(아리타산 도자기라는 뜻, 일본 도자기를 대표하는 브랜드이기도 하다) 특유의 푸른색이 돋보인다. (사진-이내)    

 
나는 아리타 여행에서 도자기라는 ‘물건’ 대신, 아리타의 도자기 ‘이야기’를 잔뜩 들고 왔다.
 
알고 보니 아리타는 한국과의 인연이 매우 깊었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기술자를 노예로 잡아 올 목적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끌려 온 400여 명의 도공 중 한 명이었던 이삼평(李參平)은 아리타 지역의 바위가 도자기 원료로 적합하다는 걸 발견했다. 일본 도자기의 시초가 된 것이다. 그 결과, 4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리타는 도자기 마을이 되었고, 이삼평은 아리타에서 가장 중요하고 고마운 인물로 여겨져 일왕과 나란히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상은 아리타에서 초 중 고등 교육을 마친 소라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라며 알려준 것이다.
 

 
야키모노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교육하기 위해, 학교 급식도 아리타 야키모노에 담아 주었다는 이야기에 깜짝 놀랐다.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야키모노에 대한 감사와, 고가의 깨지기 쉬운 물건을 조심스럽게 다루는 감각을 가르치는 것이 학교의 교육 방침이었다고.
 
만약에 나도 플라스틱 식판이 아닌 아름다운 예술품을 일상에서 매일 섬세하게 배웠다면, 물건에 대한 태도가 조금은 다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보았다. 야키모노에 대한 소라의 애정을 전해 듣는 것만으로도 도자기에 자꾸 눈길이 갔다.
 

산 하나가 그릇이 되었다는 아리타의 채석장. 이삼평이 태토(도자기 원료가 되는 흙)를 발견한 이즈미야마 채석장은 몇 년 전부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채굴이 금지되어 있었다. (사진-이내)    

‘산’ 하나가 ‘그릇’이 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아리타 마을에는 도자기(야키모노)가 있었다. 작은 기차역의 간판도 야키모노, 마을의 이야기를 설명한 표지판도 야키모노, 신사의 입구를 알리는 ‘도리이’(鳥居)도 야키모노다. 게다가 적절한 포인트 정도라, 과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신비로워서 잊히지 않는 장면도 있다. 소라를 따라간 숲 속 계곡에 야키모노의 조각이 드문드문 보였다. 자연에서 온 것이니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깨진 야키모노 조각을 산에 버리는 풍습이 있다고 했다. 자연의 색 사이에서 하얗고 파란 조각이 드문드문 반짝이는 게 묘하게 아름다웠다.
 

조선의 도공 이삼평이 시작한 아리타의 야키모노는 돌을 깨서 낸 가루를 반죽해 모양을 만들고 굽고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야키모노를 만들고 있지만, 그가 발견한 채석장은 몇 년 전부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채굴이 금지되어 있었다. ‘산 하나가 그릇이 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일본의 도자기 시장과 문화를 지탱해 온 곳을 바라보았다. 작은 표지판에 적힌 설명이 요란스럽지 않아서 좋았다.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보호의 기본이다.
 
‘아깝다’ 정신으로 재사용하고 소중히 보전하는 그 마음
 
이 마을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모따이나이(もたいない, 아깝다)’ 정신이었다. 깨진 야키모노를 콘크리트 바닥 사이사이에 장식으로 사용하고, 수명이 다한 가마의 벽돌을 마을 담장으로 재사용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쓸모를 찾아낼 뿐 아니라, 아름다움까지 놓치지 않는다.

수명이 다한 가마의 벽돌을 재사용하여 만든 마을 담장. (사진-이내)    

 

일본 문화의 매력적인 점은 무언가를 오랫동안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마음이다. 나한테 특히 부족한 부분이라 더욱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감히 살 생각도 못 한 아리타의 야키모노였지만, 기념으로 하나라도 가지고 오고 싶었다. 아리타를 떠날 때 소라에게 구입 방법을 물었더니, 자기도 사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 얘기를 가만히 듣던 미와코 씨가 약간의 흠집이 있어 집으로 가져온 찻주전자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뚜껑에는 영어로 “Blue Note”라고 쓰여 있고, 몸체에는 트럼펫을 부는 흑인 음악가와 악보가 그려져 있다. 일본 전통 스타일은 아니지만, 미와코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 그려진 야키모노를 데리고 올 수 있어서 날아갈 듯 기뻤다.
 
매일 녹차를 우려 마시며 아리타를 추억한다. 아끼는 마음이 저절로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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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9115/ 대구 작성시간 24.04.27 나무밥그릇 국그릇 사용하다가 도자기그릇에 밥 먹으니 감사한 마음이 있었겠지요
    그러니 강제로 끌고 간 우리 도공의 능력을 인정하는군요

    일본특 능력 있는 자 강한 자에게는 머리 숙이는..
    과거사 확실히 사과받으려면 우리가 완벽하게 우위에 올라서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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