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재난영화/책

대재앙 이후 이야기 (25) - 군관계자의 시선에서 그려진 핵전쟁 이야기

작성자코난(경기)|작성시간14.03.03|조회수472 목록 댓글 0

미국과 소련간의 냉전과 핵전쟁 우려는 다 지난 시절 얘기라고 여겼었습니다만... 세상이 다시 한바퀴 돌아  신냉전 혹은 새로운(혹은 마지막?) 미국 러시아의 대결 우려란 기사가 연일 언론에 보도됩니다  어느 언론에서는 심지어 '제3차대전' 이라는 자극적인 제목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참 재밌는 세상이죠 ㅎ

 

 

러시아, 크림반도 군사점령…이대로라면 "제 3차 세계대전" 우려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8&news_seq_no=1684023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침공한 이상 이번주 어떤 일이 터질런지.... 붕괴되는 제국이라 비웃던 미국과 유럽이 어떻게 반응할런지가 참 무섭고도 흥미롭군요

 

 

 

 

군관계자의 시선에서 그려진 핵전쟁 이야기

SF관광가이드/대재앙 이후 이야기 (25)

 

미국작가 팻 프랭크(Pat Frank)의 장편 <아, 바빌론 Alas, Babylon, 1959>은 핵시대에 나온 초기 묵시록 소설 가운데 하나로 꾸준한 인기를 누렸으며 오늘날에도 아마존 닷컴에서 과학소설 베스트 순위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 장편은 미국의 한 소도시로 피난한 한 군인가족의 시선을 통해 강대국 간 핵전쟁의 여파를 그린다.


주인공 랜돌프 브랙은 플로리다 주의 한 항구도시에서 뚜렷한 인생목표 없이 겉도는 삶을 살다가 어느 날 공군대령이자 정보장교인 그의 형으로부터 형수와 두 조카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자신감을 얻은 소련정부가 전쟁을 불사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얼마 후 미국 전투기 한 대가 지중해 상공에서 적기를 막으려 발사한 사이드와인더 열추적 미사일이 궤도를 이탈하여 시리아의 라타키아 지방에 있는 탄약고를 맞춰 대폭발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명백한 선전포고의 명분이 되어 소련은 미국과 그 우방국들에 핵공격을 가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소련 영토와 바다 위 잠수함에서 발사된 핵미사일이 미국 영공에 들어서고 미국은 이에 응전하는 핵미사일들로 맞불을 놓는다.

랜돌프와 그의 집에 머물던 형의 가족은 폭격으로 땅이 요동치는 바람에 잠에서 깬다. 갑자기 모든 게 혼란의 도가니다. 여행자들은 호텔에 발이 묶이고 전신(電信)은 작동을 멈춘다. 감옥의 죄수들은 탈주하고 은행은 문을 닫는다. 폭발의 충격으로 조카 페이튼이 일시적으로 실명한다. 주인공은 이웃과 조직을 규합하여 숙식과 물을 자체 공급하려 한다. 몇 달 동안 뉴스는 라디오를 통해 간신히 들을 수 있을 뿐이다. 미소 정부 양측의 시설과 인력은 대부분 붕괴되었다. 전쟁 중 미국 대통령은 순직하고 그 자리를 원래 건강교육복지 장관이었던 인물이 승계한 상황이다.

예비군 장교로서 랜디는 폭도에 맞서 공동체를 수호할 자경단을 조직한다. 이듬해 공군헬기들이 이들의 항구도시에 찾아온다. 공군 측은 주민들의 대피를 권유한다. 이미 플로리다 지역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수의 주민들은 그냥 남기로 한다. 겉보기에 미국이 핵전쟁에서 이긴 듯하지만 브라질과 베네수엘라 같은 제3세계의 원조를 받아야 할 만큼 값비싼 대가를 치른다.

<아, 바빌론>은 1960년 버트 레이놀즈 주연의 TV 단막극으로도 제작 방영되었으며 미국의 과학소설 작가 데이빗 브린(David Brin)은 <아, 바빌론>의 2005년 판 서문에서 이 책이 핵전쟁에 관한 그의 견해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자신의 장편소설 <우체부 The Postman, 1997>의 집필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 미국 SF잡지 [어메이징 스토리즈] 1953년 12월~1954년 1월 합본호 표지. 핵탄두가 끝없이 늘어선 세상을 통해 핵전쟁이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 있음을 노골적으로 시사하는 일러스트다. 냉전이 심화되고 핵폭탄 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1950년대에는 특히 이러한 핵공포에 대한 정서가 미국사회 대중에 큰 영향을 미쳤다.  ⓒAmazing Stories

유태계 미국작가 모오데카이 로쉬월드(Mordecai Roshwald)의 <지하7층 Level Seven, 1959>은 핵폭발에도 견뎌낼 수 있는 지하 1,200미터 깊이의 군사시설인 일명 ‘지하7층’에서 핵미사일 발사 버튼을 담당하는 소령 X-127이 일기 형식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다. 이 장편이 이전이나 이후 씌어진 핵전쟁으로 인한 대재앙 이야기들과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점은 핵전쟁의 원인을 동서냉전의 주축인 미국과 소련 중 어느 한쪽에 전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작가는 번호로만 호칭되는 화자(話者) X-127의 국적이 미국인지 소련인지 아니면 서방권인지 동구권인지 드러내는데 관심이 없다. 정부 관료들과 정치인들 또한 일부러 탈국적성 내지 탈이념성을 띤 채 보편적인 캐릭터들로 묘사된다. 이는 인류가 모두 공멸하는 전면 핵전쟁의 위기 앞에서 네 잘못 내 잘못 따질 개제가 못된다는 의미로 해석되며, 작가의 취지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어느 국가이든 간에 핵무장 자체에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경고하는데 있다. 이러한 의도는 아래와 같이 이 장편의 후기에서도 확인된다.(국내번역판에는 후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은 중립적이다. 동구나 서구 중 어느 쪽을 변호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중립적이 아니다. 사실 양쪽 다 비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 책은 동구와 서구 뿐 아니라 그 사이에 놓인 이들 모두에게 호의를 얻고자 하는 의도에서 씌어졌다.

작가는 핵전쟁의 귀책사유를 미국과 소련 중 어느 한쪽에 묻지 않지만, 의외로 핵미사일을 목적지까지 유도해야 하는 정교한 전자제어 시스템의 불안정성에는 깊은 관심을 보인다. 핵전쟁의 원인을 핵무기의 불안정한 관리체제에서 찾았다는 점에서는 피터 조지(Peter George)의 장편소설 <적색경보 Red Alert, 1958>와 이를 원작으로 스탠리 큐브릭이 영사으로 옮긴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또는 나는 원자폭탄에 대한 근심을 멈추고 사랑하는 법을 어떻게 배웠나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3>와 동일하지만 불안정 요소의 구체적 근거에서는 차이가 난다.

▲ 모오데카이 로쉬월드(Mordecai Roshwald)의 <지하7층 Level Seven, 1959> 초판본 표지. 전면핵전쟁의 원인과 진행과정에 대한 설득력있는 묘사로 독자들의 주목을 받아 여러 차례 재간되었다.  ⓒMcGraw Hill Book Company

<적색경보>와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서는 공산주의자를 극도로 혐오하는 미군 내 극우파 공군사령관이 자의적으로 미대통령의 재가도 없이 핵폭탄을 장착한 전폭기 편대를 모스크바로 띄운다. 즉 핵무기 제어시스템에 국가지도층의 집단의사가 반영되는 대신 정신 나간 한 개인의 주관이 과도하게 개입될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반면 <지하7층>에서는 미소 양국이 인간이 아니라 아예 기계에게 핵무기 발사시스템 제어관련 업무 전반을 위임한 결과 예기치 못한 재난을 자초한다.

처음에 적국의 수소폭탄 10발이 제어컴퓨터의 오작동으로 주인공의 나라로 발사되면서 이에 자동으로 대처하는 양국의 보복공격 시스템이 작동한 결과, 결국 양쪽 모두 괴멸될 때까지 경쟁하듯 핵폭탄을 비처럼 퍼붓는다. 지하7층의 주인공을 비롯한 핵미사일 발사담당자들은 자동머신의 명령에 따라 수족처럼 움직인다.

자동머신과 핵무기 발사를 연계시킨 것은 유사시 기습공격으로 미처 정치가나 군부 고위 장성들이 제때 대응/보복 공격을 할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안전조치였고, 이러한 자동경보 및 대응시스템이야말로 적국의 핵 기습공격을 확실하게 억제하는 예방수단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기계시스템의 오작동 앞에 모든 것을 기계에 일임한 인간들은 그냥 넋 놓고 세상의 파멸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사건의 진상이 명확해졌다. 이 전쟁은 사고로 시작되었다. 보복공격은 자동으로 행해졌다. 이후 이 보복공격에 대한 보복공격도 마찬가지로 이것의 되풀이였다. 보복공격은 자동적으로 이를 유발한 공격보다도 강력한 것이 되므로, 드디어 한쪽의 병기고가 텅 빌 때까지 전쟁이 점점 맹렬한 것으로 되어가는 건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 <지하7층>, 국내 번역판1), 192쪽


훈련소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고 소위로 임관한 주인공 X-127은 휴가는커녕 가족과 전화 한통 못하고 모처 지하의 비밀군기지로 배속된다. 이곳은 유사시 정부기간인력과 주요 군인사들 그리고 핵심전략설비 등을 보호하기 위한 특수구역으로 일단 들어가면 시설통제요원들은 봉인되어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영원히. 대신 천정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단조로운 음성은 조국 수호에 일생을 바치는 가치의 의의를 역설한다.

여러분은 진리와 정의의 수호자입니다. 우리의 비열하고 악독한 적은 공격력을 크게 발전시켰습니다. 우리 자신을 적의 불시공격에서 지키고 보복공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우리 방위군을 보호하는 일과 그들을 위해 안전한 피난소를 확보하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지하7층에 내려온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기서 절대 위험에 처하지 않고 조국을 방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곳에서 적의 공격을 받는 일 없이 그들을 공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손끝에 지상세계의 운명을 쥐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여러분 중 몇 분이 버튼을 누르라는 명령을 받아 여러분의 손가락이 적을 전멸시켜 승리를 우리의 것으로 할 날이 올 것입니다.

그날까지... 여러분은 지하7층에서 조국과 인류를 위하여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이것은 특권적인 지위입니다...(중략)... 지상의 친구나 친척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그분들에게는 여러분이 사고에 의해 아무 고통 없이 죽었으며 잔해도 남기지 않았다는 통지가 갈 것입니다. 이것은 유감스럽지만 여러분의 실종을 절대 비밀로 해두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이 지하에서 새로운 친구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 같은 책, 27~28쪽
 
▲ [제3차 세계대전]이란 타이틀로 1952년 3월 3일 발행된 미국만화. 핵무기를 동원한 미국과 러시아 간 3차대전을 묘사하고 있다.  ⓒAce Comics

통상 애국심 앙양은 민족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으로 이해되지만, 전면 핵전쟁에서 가치판단이 마비된 병사들의 과잉 애국심은 한 국가의 자존심 회복을 넘어서 인류 공멸의 위기로 치닫게 한다. 지하7층의 핵심중추인 보복용 미사일 발사 버튼 조작실에는 모두 4종류의 버튼이 설치되어 있다.

제1버튼은 1~5메가톤 폭탄으로 군사시설과 공업시설 폭격에 사용된다. 제2버튼은 10~50메가톤 폭탄으로 공중에서 터져 대도시와 인구밀집지역을 광범위하게 초토화한다. 제3버튼은 제2버튼과 같은 위력의 폭탄이 땅 속 깊숙이까지 파고들어가 터지게 하며 유해 방사능을 퍼뜨린다. 가장 강력한 제4버튼은 원자폭탄이다.

폭탄의 살상력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것들을 조작하는 군인들의 기계와 같은 상명하복의 절대복종 메커니즘이다. 이들에게는 원자폭탄으로 비록 적국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즉사하고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죽을 때까지 그 후유증에 고통 받을지에 관한 번민이 일체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인간적인 감정에 쉽사리 휘둘리지 않는 인성의 소유자들을 선발해서 유사시 맡은 임무대로 기계처럼 처리하도록 훈련시켜놓았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탄을 투하한 전폭기 에놀라 게이 호의 두 조종사들의 인성은 소설 속의 X-127 일행에 비하면 양반이다.)

우리 동료나 나 자신도 언제 어떤 버튼을 누르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 우리의 일은 때가 오면 스피커가 전하는 명령대로 실행하는 것뿐이다. 우리가 이 일을 해내면 조국의 병기고가 텅 비겠지만 세계의 나머지 반쪽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리는 것이다.
                                                                                                                 --- 같은 책, 41쪽


<지하 7층>의 과학소설사에서의 가치와 의의에 관해서는 지면관계상 다음 회에서 논의하기로 한다.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todo=view&pageno=&searchatclass2=111&atidx=74484&backList=list&seriesidx=list&menuclassidx=111&%BF%AC%C0%E7=%BF%AC%C0%E7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