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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책

지구를 탈출하라...... 인터스텔라

작성자코난.카페장(경기)|작성시간14.10.30|조회수1,968 목록 댓글 9

재난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개인 혹은 인류에게 낯선 가공할만한 위험과 재난이 닥치고 주인공은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며 살길을 만들어나가는것이죠 물론 그과정에서 패닉에 빠지는 주위사람들과 그 반응을 지켜보는것도 재미있습니다

다음주에 개봉하는 인터스텔라는 재난 + SF로 수십년후 근미래 환경재앙으로인한 지구와 인류의 종말을 다룬영화입니다

배트맨과 인셉션의 감독이 만들어서 올겨울 최고의 화재작으로 호기심을 끄는 영화입니다 벌써부터 예매1위라고...

이에관련된 영화평이 있는데 흥미로워서 퍼와봅니다 좀 길지만 천천히 보시면 재미있으실듯^^

 

 

영화 <인터스텔라>-아쉽지만 역시 놀란 감독이다

글 | 현문동 영화애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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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 해도, 올 하반기 할리우드의 최고 기대작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였다. 관객들만 이 영화에 기대감을 가지는 게 아니다. ‘워너 브러더스’는 ‘파라마운트’가 단독으로 제작하던 이 영화의 제작과정에 끼어들기 위해 ‘13일의 금요일’ 시리즈와 ‘사우스 파크’ 극장판 시리즈의 판권을 5년 동안 파라마운트에 넘겼다. ‘13일의 금요일’과 ‘사우스 파크’가 현 시점의 ‘베스트셀러’ 는 아니더라도 각각 1980 년대와 2000 년대를 상징하는 작품들 중 하나이자 못해도 반타작은 하는, 평타는 쳐 주는 스테디셀러들이다. 그런 작품들의 판권을 단 하나의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5년 동안 넘긴다. 언뜻 생각할 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극히 상업적인 할리우드에서는 특히나.

●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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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을 기대감에 젖게 만들고 지극히 냉철한 할리우드의 사업가들이 이런 무모한 투자를 할 수 있게 만든 것은 모두 ‘크리스토퍼 놀란’ 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그 이름을 가진 인간이 이룩해 낸 업적에 기인한 무게감 때문이리라.

놀란은 출세작인 ‘메멘토’를 할 때부터 할리우드의 틀을 벗어난 시도를 해 왔다. 할리우드는 모험을 철저히 지양한다. 지금까지 나온 성공작, 실패작의 각본을 모두 철저히 분석해 ‘이 요소를 넣으면 관객이 몇 명에서 몇 명 정도 늘고, 이 요소를 넣으면 몇 명 정도 줄어든다.’ 라는 귀납적, 선형 회귀적 분석을 통해 각본을 만들어 나간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의 각본이 다 비슷비슷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놀란은 ‘메멘토’처럼 이야기를 역순으로 진행시켜 나가거나, ‘다크 나이트’처럼 고전적이면서도 비장한 그리스 비극을 영화에서 구현해 내거나, ‘인셉션’처럼 현란한 편집으로 시간 축을 나누고 나누다가 마지막에 그 모든 시간 축에서 벌어진 사건을 하나로 폭발시키는 등 온갖 변칙적인 시도를 해 왔다. 이미지는 정 반대지만, 모험성으로 따지자면 할리우드의 악동 ‘쿠엔틴 타란티노’ 못지않은 모험을 즐긴 것이 놀란이라는 감독이다. (재미있게도 둘의 출세작인 ‘메멘토’와 ‘펄프 픽션’은 모두 시간 순서를 뒤틀어 편집한 영화들이다.)

놀란의 천재성은 여기에서 발휘된다. 그는 이 모든 모험을 성공시켰다. 9백만 불의 제작비로 제작된 ‘메멘토’는 전 세계적으로 4천만 불의 수익을 거두었으며, 1억 8천 5백만 불을 들인 ‘다크나이트’는 10억불, 1억 6천만 불을 들인 ‘인셉션’은 8억 2천 5백만 불의 수익을 거두었다. 말 그대로 그는 최고의 도박사다. 그의 도박은 매번 점점 거대해지지만, 동전을 던질 때 마다 앞, 주사위를 던질 때 마다 6, 카드를 받을 때 마다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꺼내드는 기적을 보였다. 특히나 복잡하고 혁신적이다 못해 이질적이기 짝이 없는 ‘인셉션’의 성공은 ‘저런 시나리오로 1억 6천만 불을 투자받은 것도 기적적인데, 그게 저런 수익을 내다니 마법을 부리는 것 같다’ 는 평마저 들을 정도였다.

그는 마치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 선수 ‘가린샤’와도 같은 존재였다. 한쪽 다리는 짧고 지능마저 낮았던 가린샤지만 그 짧은 다리에서 오는 이질적인 드리블 리듬이 상대하는 수비수들을 쩔쩔매게 만들며 축구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 자리에 이름을 올렸듯이, 늘 망할 것 같은 복잡하고 이질적인 시나리오로 영화의 작품성과 상업적 흥행을 움켜쥐는 그는 마술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인터스텔라에 쏟아지는 기대감, 그리고 ‘문 뒤의 괴물’

그런 그가 우주를 무대로 한 SF 영화를 만든다고 한다. 1~2 억불의 제작비로 8~10 억불을 벌어들이는 성공을 세 번이나 연달아서 (다크나이트, 인셉션, 다크나이트 라이즈) 한 그에게 투자하지 않는 게 이상한 일이리라. 그 때문에 회사들은 이 영화에 투자하지 못해 안달을 내었고, 연달아서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작품성을 잡아내는 연출 실력을 가진 그의 영화를 보지 못해 관객들은 안달이 나 있다.

사실 인터넷 상에서, 그리고 놀란의 영화를 좋아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이 영화에 가지는 기대감은 제 3 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지나치게 높아보였다. 그들이 가지는 기대감을 볼 때마다 나는 미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스티븐 킹’ 이 그의 저서 ‘매혹적인 글쓰기’에서 소설 내에서 공포와 서스펜스를 연출할 때 제일 고역인 부분을 묘사한 게 떠올랐다.

스티븐 킹이 ‘문 뒤의 괴물’ 이라 부르는 것은 공포 소설에서 독자들에게 공포를 주는 공포의 근원이다. 공포 소설 작가는 독자를 독방에 가둬 두고 문 뒤에서 소리를 낸다. 손톱으로 문을 긁기도 하고, 노크 소리를 내기도 하고 비명을 지르거나 울부짖거나 문을 발로 차면서 독자를 자극한다. 하지만 문은 닫혀 있기에, 독자는 ‘무엇’ 이 이 끔찍한 소리를 내며 자신에게 공포심을 주는 지 알 수 없다. 독자는 ‘문 뒤의 괴물’ 이 무엇일지 상상하며 공포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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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마침내 소설이 절정에 달하면, 작가는 ‘짠!’ 하며 문을 연다. 그리고 문 뒤에는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30 미터짜리 괴물이 등장한다. 괴물을 처음 보는 순간 독자는 경악한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마음은 놀라울 만큼 빠르게 진정되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와, 큰 괴물이네. 하지만 300 미터는 아니잖아?’ 작가는 상심했지만 포기하진 않았다. 이번에는 더더욱 노력해 300 미터짜리 괴물을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여전히 독자는 문을 연 순간만 놀랄 뿐, 이내 ‘와, 큰 괴물이네. 하지만 3000 미터는 아니잖아?’ 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히 공포 소설에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사람들은 싸이가 강남 스타일 이후 다음 곡을 낼 때, 애플이 매번 신제품 발표회를 가질 때, 더 소소하게 파고들면 어린 시절 세뱃돈 봉투를 열어볼 때, 연인의 선물을 끌러 볼 때 기대감을 가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현실은 우리의 기대감을 배신한다. 정확히 말하면 공급자의 준비는 우리의 욕심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그렇다면 ‘인터스텔라’는 어떨까? 할리우드의 떠오르는 감독의 반열에서 거장으로 올라가는 놀란의 작품은 우리의 기대를 배신할까, 아니면 그의 전작들이 그래왔듯이 우리를 놀라게 하는 데에 성공할까. 그의 전적을 고려하면 성공할 법도 하지만, ‘인터스텔라’ 가 받는 기대감은 그의 전작들과 비교해도 유례가 없을 정도라는 걸 고려하면 불안하기도 하다.

● 결론부터 이야기하자

소제목 그대로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미묘하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을 떼 내고 이 영화를 보면 그럭저럭 만족할 만한 SF 블록버스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이름이 그 앞에 붙는 순간? 글쎄, 섣불리 영화의 평을 말하기 조심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켰다면, 혹은 우리의 기대를 완벽히 처절하게 배신했다면 속 시원히 말이라도 했겠지. 하지만 세상 모든 게 ‘모 아니면 도’ 혹은 ‘1 아니면 0’ 또는 ‘All or Nothing’ 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터스텔라’에 가졌던 기대감은, 누구나 이 영화를 보는 순간 박수를 치고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게 만드는 것이었으니, 그에 실패한 이 영화는 ‘기준을 엄격히 적용한다면’ 놀란의 실패작이라 봐도 무방하리라.

이 영화는 그가 감독한 배트맨 삼부작처럼 인물간의 강렬한 갈등과 대립, 혹은 액션으로 관객을 끌어들이지도 (사실 놀란이 액션 시퀀스 연출에 재능이 없다는 건 그의 팬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인셉션’처럼 독특한 세계관과 현란한 연출로, 그리고 역대 영화를 통틀어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마지막 장면 연출로 관객을 긴장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영화로써, 놀란이라는 이름을 떼고 보았을 때 관객이 투자한 만원에서 만 이천원의 돈과 세 시간의 시간을 완벽히 아깝게 만들 정도로 엉망진창인 작품인가? 위에서 말했듯이, 차라리 그랬다면 속 시원스레 ‘놀란 이번 작품은 망작이니까 보지 마라.’ 라고 말이라도 했을 것이다.

● 간략한 영화 줄거리.

영화는 수십 년 후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병충해가 심해져서 모든 식물이 말라죽고 심을 수 있는 작물이 옥수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세상. 사라진 식물들 때문에 황사가 심해져 매일 아침 일어나면 집안 까지 모래로 덮여 있는 세상. 달에 간 인류의 업적을 ‘쓸데없던 짓, 사기극’ 정도로 치부하고 인류 개개인의 재능을 거세하고 무조건 농부로써의 재능만을, 삶만을 강조하는 세상. 미국의 상징인 뉴욕의 상징인 ‘뉴욕 양키스’가 그저 동네에서 야구 좀 잘하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인 야구단이 되어 버린 세상. 그리고 NASA 는 해체 되어 버린 세상.

주인공인 쿠퍼는 나사가 해체되기 전, 인류 문명이 붕괴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그 문명의 영화를 누린 경험을 갖고 있는 세대다. 그는 대학을 나왔고, 뛰어난 엔지니어에 고도의 훈련을 받은 나사의 파일럿 출신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런 그의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주를 날기 위해 받았던 훈련과 쌓은 지식은 농장의 트랙터를 정비하는 데에 쓰이고 있다.

그는 ‘우리는 모험자였고, 개척자였다.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우주를 탐험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모래바람 속에서 어떻게 하면 내일 먹을 것을 찾을 수 있을까 땅만 바라본다.’ 며 쇠퇴해가는 사회와 별의 운명을 한탄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아들과 딸이 있고,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그가 그렇게 싫어하는 농사를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누구보다도 효과적으로 한다.

어느 날, 딸인 머피의 방에서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진다. 꽂아놓은 책들이 자꾸 떨어지고, 방 안에 쌓인 모래 위로 이진법 숫자가 적힌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니라고 치부하던 쿠퍼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마침내 이 숫자가 특정한 좌표임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좌표를 향해 간 쿠퍼는 그의 은사인 브랜드 교수와 만나 대외적으로는 폐쇄되었다고 알려진 나사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나마 인간의 삶을 유지시켜주던 옥수수도 몇 십년 안에 멸종할 것이라는 사실을, 머피의 세대가 지구에 살아남는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선택의 여지는 없다. 쿠퍼는 나사가 멀쩡하게 돌아가던 때 양성해 낸 파일럿 중 유일한 생존자로써, 인류의 생존을 위해, 아니 그보다도 딸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지구를 대신할 행성을 찾아 나서야 한다. 희망은 있다. 누군지 모를 어떤 외계의 존재들이 인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으며 목성에 웜홀을 열어두기까지 했다. 인류는 이미 선발대도 보내 두었다. 쿠퍼는 머피를 위해 이 모험을 나서기로 한다. 흐느끼고 분노하고 화내며 아버지를 붙잡아 두려는 딸이 마음에 걸리지만 그는 이것이 딸을 위한 길이라 굳게 믿으며 브랜드 박사의 딸 아멜리아, 물리학자 로밀리, 도일, 그리고 인공지능 로봇 타스와 함께 먼저 떠난 선발대의 흔적을 찾아 우주로 나아간다. 

● 그의 연출은 여전히 명불허전

영화 곳곳에서 보이는 그의 재능의 발현은 이 영화가 그저 그런 감독의 작품이 아닌,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뜨거운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영상미는 훌륭하다. 다만 현대의 평론가들이나 관객들이 선호하는, 데이빗 핀처의 그것처럼 날카로우면서도 차갑거나 라스 폰 트리에처럼 음울한 퇴폐미를 발산하거나 웨스 앤더슨처럼 아기자기하면서 짜임새가 있는 영상미는 아니다. 그의 영상은 항상 직선적이고 강건하다. 초반부 옥수수 밭을 내달리는 장면은 아직 지구의 숨결이 붙어 있음을 보여주지만, 그 이후 이어지는 모래바람은 지구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압도적 스케일로 보여주며, 이어지는 검고 어두운 우주 공간과 목성, 웜홀, 블랙홀, 해일이 이는 행성, 구름마저 얼어붙은 행성 등은 인류가 이 우주에서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이 우주가 얼마나 거대한 공간인지 우리의 눈을 통해 간접 체험하게 해 준다.

간혹 ‘편집증 아냐?’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적인 영상 연출에 집착하는 그의 성향은 여전하다. 이 작품에서는 사실적인 우주 공간의 묘사와 구상을 위해 우주 물리학자 킵 손의 자문을 받아 시나리오를 짜고 블랙홀의 이미지를 시각화 했다.
 

영상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도 우주 공간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하도록 써졌다. 킵 손이 말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중 유일하게 상대성 이론을 제대로 적용해 써진 시나리오다.’ 라는 말은 자화자찬이 아니다. 개나 소나 다 초광속으로 이동하고, 또 은하 전체와 전 우주가 동일한 시간축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말도 안 되는 대 다수의 SF 영화들과 달리 인터스텔라는 상대성 이론에 매우 충실하게 이 우주를 그려낸다.

천천히 관객들을 달구지만 절정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을 미친 듯이 긴장하게 몰아붙이는 그의 연출은 여전하다. 우주선과 우주선의 도킹 장면을 절정에 이르러 이토록 미친 듯이 긴장하게 만드는 감독은 아마 놀란이 유일하리라. 이 영화는 그토록 거대한 우주 공간으로 나아갔으면서 절정을 2층 가정집의 여자아이 방에서 맞이하는 것이 또 특이하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조금도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역시 놀란’ 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다.

이젠 너무 많은 영화와 게임 음악을 작업해 스텝롤에서 그 이름을 보는 것 자체가 지겨운 ‘한스 짐머’ 음악감독 (이젠 공장장이라는 직함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의 음악은 지겹긴 해도 여전히 훌륭하며 여전히 영상과 잘 어울린다.

● 우리도 잘못했고, 그도 잘못했다.

하지만 우리의 기대는 너무 컸다. 우리가 상상한 ‘문 뒤의 괴물’은 3000 미터, 3만 미터, 아니 이 우주보다도 훨씬 거대한 크기의 괴물이었다. 놀란이 준비한 것은 충분히 훌륭하긴 했지만 우리의 욕심을 모두 만족시킬 정도의 괴물은 아니었다.

사실 대중이 그의 영화에 거는 기대감이 지나친 측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본 뒤 느끼는 일말의 실망감을 단순히 ‘우리의 지나친 기대가 문제였다.’ 라고 자책하며 놀란을 옹호하기에는 명백히 그의 전작에 비해 이 작품은 부족한 부분들이 있다.

- 높은 문턱

가장 큰 문제는 문턱이 높다는 점이다. 사실 놀란의 작품들 중 문턱이 높은 작품은 많다. 하지만 ‘인셉션’은 내용을 100% 이해했든 아니든 마지막 순간 숨을 멈추고 집중하게 만드는 흡인력이 있으며, ‘메멘토’ 역시 내용을 추적하는 데에 실패해도 역순으로 흘러가는 그 참신한 편집 자체에 매력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인터스텔라’는 전작들과 비교해도 관객들이 쫓아가기 힘든 부분이 있다. 평소에 물리학에 관심이 없었다면, 혹은 자연과학대나 공대, 관련 학과를 졸업하지 않았다면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이해하기도 힘들다. ‘5차원의 생명이라면 시간도 넘나들 수 있겠지, 하지만 우린 아니야.’ ‘블랙홀 근처에 가면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니까…….’ 라는 이야기를 당연한 것처럼 하고 넘어가는 대화를 따라가기가 버겁다. (첨언하자면, 아마 ‘엘러건트 유니버스’ 라는 책을 읽고 나면 이 영화를 보기가 한 결 편해지시리라 생각한다. 현대 물리학을 일반 대중도 알기 쉽게 풀어낸 책이니 ‘시크릿’ 같은 해괴한 자위물을 읽을 시간에 이런 책을 읽으시는 걸 추천한다.) 사실 수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라면 늘상 말은 3차원, 4차원을 해도 3차원이 무엇인지, 4차원은 도대체 뭔지, 5차원은 또 뭘 말하는 건지 개념조차 잡히지 않으리라.

- 느린 호흡

영화의 호흡이 느리다는 말은 무엇일까?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정해진 시간 안에 벌어지는 사건의 밀도다. ‘다크 나이트’의 시작 시퀀스를 보자. 강도들이 가면을 쓰며 준비를 하고, 총을 쏘며 들이닥치고, 전기를 끊고, 금고를 열고, 경비들을 죽이고, 이 때 강도들이 서로를 한명 씩 죽이고, 결국 마지막에는 조커만이 돈을 들고 달아난다.
 
놀란의 영화는 언제나 완급 조절이 뛰어났다. 스피드를 강조하는 현대 영화의 추세에 걸맞게 그는 ‘다크나이트’, ‘인셉션’, ‘다크나이트 라이즈’ 등 그의 최근 히트작은 모두 스피드를 강조하며 시작했고 그의 히트작인 ‘메멘토’는 처음부터 정신을 못 차리게 관객을 몰아붙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예외인 작품이 있으니, 알래스카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수사하는 수사물 ‘인썸니아’다. 이 영화는 백야의 설원을 상징하기라도 하듯 숨 막힐 듯 느릿하면서도 무겁게 영화가 진행된다.

그리고 ‘인터스텔라’는 그 ‘인썸니아’보다도 느린 호흡을 자랑한다. 끔찍한 폐허가 되어버린 지구의 일상을 담담히 그려내는 도입부분은 자극적이지도 않고, 관객의 시선을 잡아 끌만큼 매력적이지도 않다. 결국 이 부분에서 감독은 노골적으로 관객에게 요구를 하는 셈이다. ‘조금만 인내심을 가져주세요.’

게임이든 영화든, 특히 대중적인 게임이나 영화는 절대로 사용자와 관객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위가 하나 있다. 바로 ‘돈’ 이외의 것을 ‘요구하는 행위’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재미있어져요, 그러니 기다려 주세요.’ ‘이용법을 익히는 게 힘드시죠, 그래도 조금만 공부해 주세요.’ 돈도 필요 이상으로 요구해선 안 되지만, 관객이 정당하게 지불한 대가 이외의 것을 초과로 요구하는 것은 게임이라면 기획자가, 영화라면 감독이 가지는 오만이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그런 오만을 한 번쯤은 부려볼 수 있는 감독이긴 하다. 허나 그것이 미덕이 될 순 없다.

- 그의 고질적인 단점, 평면적인 인물

놀란의 영화가 가지는 단점으로 꾸준히 지적받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지나치게 평면적이라는 점이다. 단적인 예가 배트맨이다. 놀란의 배트맨은 내적 갈등을 하긴 하지만 인류 정의의 화신이자 의지의 화신이다.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고담 시를 위해 바치고 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며 ‘당신이 이들에게 모든 걸 줬어.’ 라며 같이 떠나자는 캣 우먼에게 ‘아직 전부는 아니야’ 라고 대답한다. 현실적이지 않은 인물이다.

사실 다른 이들이 단점으로 지적하기에 여기에 놀란의 단점으로 평면적인 인물들을 거론하긴 했지만, 나는 그것이 단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이 한 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에는 한계가 있다. 세계관을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인물의 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인물마저도 복잡하게 만든다? 안 그래도 따라가기 힘든 정보량을 관객에게 쏟아 붓는 ‘인셉션’의 등장인물들이 다 내적 갈등을 한다고 해 보자. 그 영화는 망작이 될 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세계적인 명작 ‘레 미제라블’ 역시 평면적인 인물상을 보여주지만, 그 인물 하나하나를 모자이크의 조각으로 삼아 만들어 낸 작품 ‘레 미제라블’ 자체는 충분히 복잡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현대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유효한 것은 어쩔 수 없다. 현대의 관객들은 입체적인 인물에 익숙해져 있다. ‘아이언맨’의 ‘토니 스타크’가 대표적이다. 놀란의 인물들은 인물 그 자체로써의 매력은 부족하다.

● ‘그 크리스토퍼 놀란’의 블록버스터로는 부족하다.

짧게 줄여서 말하자면, 이 작품은 놀란이 보여줄 것이라 기대하던 블록버스터,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잡고 있는 작품으로 보면 아쉬운 부분이 많은 작품이다. 내용을 보면 항상 문턱이 높아야만 하는데 괴물같이 문턱을 낮추던 그의 능력도, 완급 조절을 귀신같이 해 내던 능력도 보이지 않는다. 세 시간이라는 상영 시간은 부담스럽다. 이 작품은 어느 정도 조건이 맞지 않는다면 온전히 즐길 수 없는 작품이다.

이 작품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아마 영화평 사이트인 http://www.rottentomatoes.com/ 에 올라왔던 평 중 하나가 아주 적절하리라. ‘Science Report’, 즉 과학 보도문 내지는 과제물을 읽는 느낌이다.

● 하지만 SF 덕이라면 어떨까? S! F! 덕!

당신이 만약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를 즐겁게 읽었다면, 호시노 유키노부의 ‘2001 스페이스 판타지아’를 읽고 감명이 깊었다면 이 작품을 즐겁게 볼 수 있다. 아니, 당신에게는 이 영화를 적극 추천한다. 특히 유키노부의 작품과 이 작품은 통하는 면이 많다.

이 작품은 ‘하드 SF’ 가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비로 만들어진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영화다. 하드 SF 는 과학적 이론에 충실하게 써진 SF를 말한다. ‘스타워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와 같이 말초적인 재미를 추구할 수 있는 ‘스페이스 오페라’, 내지는 과학적 이론을 크게 신경쓰지 않는 ‘소프트 SF’와 달리 하드 SF 는 문턱이 높기 때문에 흥행을 기대하기 힘들어 대규모의 자금을 지원받아 만들어 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마 ‘크리스토퍼 놀란’ 이 감독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 SF 에 대한, 예술에 대한, 인간에 대한 예찬과 희망적인 찬가.

이 영화는 노골적인 인간에 대한 찬가다. 물론 우리의 부정적인 면을 짚고 넘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은 결국 그 부정적인 면을 딛고 일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인터스텔라’는 골수 환경론자나 과학 긍정론을 부정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불편할 영화다. 과학의 발전이 가져다주는 폐해를 우리는 결국 ‘과학의 발전’ 그 자체로 극복할 것이며, 지구가 파괴된다면 우리는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해서라도 살아남을 것이라고 해석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놀란은 말한다. ‘그럼 우리에게 다른 방법이 뭐가 있는데?’ 땅만 바라보면서 살아가기, 위를 바라보지 않고 살아가기. 그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선천적으로 혐오하는 족속인지, 인간이라는 종이 정체와 퇴보를 얼마나 혐오하는지 그는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학교 선생을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가 그녀에게 느끼는 혐오를 통해 우리에게 역설한다. ‘이렇게 살자고? 이렇게 되자고?’

결국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해서 그 선택이 언제나 최악이 아니라고 놀란은 역설한다. ‘우린 앞으로 나아갈 거고,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혹은 그는 소위 실질강건을 외치며 ‘왜 우주로 돈을 들여 나가냐. 왜 쓸데없이 영화를 찍냐. 왜 과학을 지나치게 발전 시키냐. 먹고 사는 기술 외에는 필요가 없다. Over Educated 된 인간들을 찍어내지 말아라.’ 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경멸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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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사의 아담 스텔츠너씨를 모셔봤습니다. 아담, 이 우주선 쪼가리들이 우리 실생활에 어떤 실질적인 도움을 주나요? 
안녕하세요 셰퍼드. 당신과 이렇게 ‘위성을 통해’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정말 반갑네요.]

● 그리고 우리.

놀란의 이런 지적을 듣고 가장 뜨끔해야 할 나라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특히 국내의 경우 SF를 경멸하고 제대로 된 문학이 아니라 생각한다. 심지어 작가들까지도. 하지만 난 감히 말하고 싶다. SF가 한국에서 제대로 안 먹히는 것, 그리고 제대로 써지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사회가 SF 라는 문화를 향유할 만큼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SF 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증명한다. 사람들은 SF를 두고 ‘황당무계하다, 와 닿지 않는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래, 아마 조선시대 유생은 상대성 이론이나 맥스웰의 전자기학, 하다못해 뉴턴의 역학조차도 이해하지 못하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그런 코쟁이들의 황당한 소리 따위 들을 필요 없어!’ 라고 말했으리라.

SF를 무시한다는 것은 한 마디로 과학적 상상력을 무시하고 황당한 것으로 치부한다는 이야기다. IT 강국이라는 말, 공학 강국이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과학과 테크놀로지는 그저 ‘돈이 되는 그 무언가’ 일 뿐이다.

그리고 SF 에 대한 취급은 순수 과학, 예술에 대한 취급으로 이어진다. 실사구시, 먹고 사는 문제에만 집착하는 대한민국. 엔지니어에게는 감사조차 하지 않고 당연한 노동으로 여기는 대한민국. 게임을, 만화를, 순수한 여흥을 무시하고, 모든 예술에는 사회적인 메시지가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며 정치 담론만을 최우선 하는 대한민국. 우리의 모습은 ‘인터스텔라’ 초반에 나오는, 아폴로 호의 달 착륙을 거짓이라 여기고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가 멸망했으니 과학의 모든 업적도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금발 여선생만큼이나 추한 것은 아닐까?.

상상력 없이는 발전도 없다. 맥스웰은 상상력으로 전자기학을 창시했고, 상상력은 현실이 되어 현대의 전자문명을 이룩하게 해 줬다. 아인슈타인은 상상으로 상대성 이론을 만들어 냈고, 이를 바탕으로 인공위성에서 발생하는 시간차를 맞춰주며 위성으로 발달된 통신 문명을 향유할 수 있다.

놀란은 우리에게 말한다. 끊임없이 상상하고,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자. 그게 쓸데없어 보일지라도, 그 쓸데없는 것이 언젠가는 우리를 구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만 집착하고 상상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우리 사회가 과연 제대로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인터스텔라’를 보고 든 의문이다.

http://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5&mcate=M1003&nNewsNumb=20141015936&nidx=15937&cho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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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탄소중독화성인(창원) | 작성시간 14.10.30 봐야겠네요~ 본문은 읽지 않았습니다. 일단 영화보고..ㅎㅎ
  • 작성자和敬淸淑 | 작성시간 14.10.30 기대되네요
    동료들을 다 처리하고 지페뭉치를 실고 무자비하게 떠나는 미스테리의 남자.
    믿을것은 의리의세계인데...배반하고 배반하는 세계에 ...?
  • 작성자BladeRunner(포항) | 작성시간 14.10.30 근데요...
    그 감독은 왜 놀랐데요??
  • 작성자블루데이(울산) | 작성시간 14.10.31 꼭 화장실부터 들럿다가 입장 해야 겠네요..ㅋ
  • 작성자헐랭이 | 작성시간 14.11.01 쌩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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