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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의 시대

코난님과의 인연(스압 주의)

작성자루크라이저|작성시간16.08.20|조회수1,405 목록 댓글 28

제가 사는 경기도에는 경기도교육청이 주최하는 경기꿈의학교라는 교육사업이 있습니다.

학교밖 학교라는 부제가 붙어 있죠.

교육에 대한 의미 설명은 과감하게 skip하겠습니다.

 

 

이 꿈의학교 중에 가장 핵심적인 형태로 학생이 만드는 꿈의학교가 있습니다.

초중고 학생들이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을 스스로 학교로 만들어 실행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당연히 기획도 학생들이 하고, 운영도 학생들이 합니다.

들어가는 비용은 경기도교육청에서 지원해 줍니다.

(다만, 교육 예산을 쓰는 일이라 행정적인 부분이 어렵고, 체험 학습이 많아 안전에 대한 부분도 그렇고 여러 면에서 어른들의 경험과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각 꿈의학교에는 꿈지기라는 어른 선생님들이 퍼실리테이터로써 존재합니다. 최소한의 도움만 주게 되어 있습니다. 실패를 통해서 배우고,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저는 교사는 아니고 중학생(그것도 북한이 가장 두려워한다는 2학년 -_-;) 아들을 둔 학부모입니다.

 

제 아들과 그 친구들이 지난 6월에 학생이 만드는 꿈의학교공모사업에 도전했습니다.

친구들과 몇 번 모여서 회의를 하더군요.

드론, 전동휠, VR 같은 첨단기기 체험학교, UCC 제작학교, 지니어스 같은 집단 게임, 모의 법정(녀석들 인문학 수준에서는 가당치도 않은...), 파쿠르(헐...) 등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나오더니 결론은 생존 캠프로 결정되었습니다.

애나 어른이나, 도시에 사는 남자들은 맨 인더 와일드, 베어 그릴스 같은 컨텐츠에 로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남학생 못지않은 여학생들도 있긴 하더군요. ^^;)

 

이 애들이 기획을 시작합니다.

(2 아이들 특성 상, 한 시간 회의하면 10분 진지하고 50분 삼천포로 가 있으니 지켜보는 저는 미처 돌아가십니다. .)

어떤 프로그램을 배우고 어떤 식의 수업을 하는 학교를 만들 것인가?

처음에는 야생에서 생존하기 위한 다양한 것들을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불 피우기, 물을 구하는 방법, 집 짓기(!), 사냥(!!)... 정말 와일드 하더군요. -_-;

 

제가 생존21 카페를 살짝 알려줬습니다.(비록 눈팅족이지만 카페의 정보만으로도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대부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여기서 아이들의 커리큘럼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합니다.

 

기본생존능력(매듭법, 불 피우기, 물 구하기, 각종 야영의 기술 등)

생존배낭과 비상식량(생존물품 만들기, 배낭꾸리기, 멀티툴 활용법, 통조림 따기, 비상식량 비축요령, 전투식량 먹어보기 등)

재난(재해와 사고)과 대처방법(방독면 사용법, 화재 탈출, 건물 붕괴, 고립, 태풍, 지진, 쓰나미 대피 방법 등)

응급처치와 구조요청(심폐소생술, 하임리히법, 자상, 화상, 골절 처치, 부목, 들것, ORS 만들기, 탈출 하기, SOS 요청하기, 나침반 활용 등)

 

이제 프로그램이 야생에서 안전으로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재미와 교육의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공모에 응모하여 서류 심사를 통과하고, 면접을 거쳐, 최종 선정되었습니다.

경기도 내 150개 학생이 만드는 꿈의학교의 하나로 출발을 하게 됩니다.

물론... 체육, 문화예술, 방송연예, 인문과학 등의 전통적인 컨텐츠 사이에서 독보적인 야생이라는 주제로... 주목을 받습니다.(논란도 있었죠. 네이밍을 드림스카우트라고 했으니 심사위원들이 보이스카우트로 오해하고 꿈의학교로서는 지원하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전단지도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습니다.)

 

경기도교육청 꿈의학교 컨퍼런스에 참가하고, 여름 방학이 시작되고, 본격적인 학교 만들기 작업이 시작됩니다.

 

 

(쇼미더스쿨이라는, 경기꿈의학교 학생연수입니다. 카메라 보는 녀석들이 주인공들이죠.)

 

 

그런데 고민이 생깁니다. 어디서 누구에게 배울 것인가?

여기서 대책이 없어집니다. 위의 것들을 속시원히 강의해줄 강사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처음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는 한계가 학교와 학원을 벗어나기 어렵거든요.(나중에는 비약적으로 생각이 확장되기는 합니다만 초짜들한테는 경험이 문제죠.)

사실 대부분의 컨텐츠는 많은 강사군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원하는 톡톡 튀는 컨텐츠일수록 진보적이거나 덕후적인 것들이 많아서 강사 구하기 쉽지 않습니다.(자유학기제 컨텐츠, 방과후 학교의 컨텐츠들이 천편일률적인 이유가 그렇습니다. 대개는 구축된 인프라를 활용하기 편한 방식으로 과정이 편성됩니다.)

 

누가 학생들을 가르치지?”

저는 해결책 또한 아이들한테 맡겨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녀석들... 아주 잠시 고민하더니 답을 냅니다.

우리가 가르치지.”

 

, 정말... 처음에는 뿜었죠. 파이어 스타터는커녕 라이터도 제대로 못 켜는 것들이...

사실은 나름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고 기특하기도 했지만, 정말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모집 정원은 30.

30명의 중학생들을 모아 놓고 8명의 꿈짱(꿈의학교를 기획, 운영하는 학생)들이 강의를 한다? 제대로 안되면?

기대를 가지고 모인 30명 학생들의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에 대한 걱정 따위는 애당초 계산 하지 않는 이기적인 모습이라니...

 

이 시점이 퍼실리테이터(꿈지기)가 나서야 할 시간입니다.

저 역시 막연한 관심이 있었지, 제대로 생존 대비 활동을 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생존21 카페도 가끔 재미삼아 눈팅만 했을 뿐이구요.

하지만 아이들의 실험 정신(?)을 본 받아 과감하게 코난님께 메일을 보냈습니다.

아이들 좀 가르쳐 주세요. 강사 양성하는 강의 해주세요. 강사료는 경기도교육청 규정대로 드려야 해서 아주 적습니다. -_-;”

갑작스런 메일에 당황하셨을텐데, 또 평택에서 파주는 두 시간(편도 120km)의 거리입니다.

무더위에 그 먼 거리를 왕복하기 쉽지 않을텐데, 코난님이 안전 교육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고 도와주시기로 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뜨거운 감사를 올립니다.

 

그래서 725일부터 28, 293일간 하루 3시간, 9시간의 꿈짱 학생 8명을 대상으로 한 강사 양성 집중 강의가 시작됩니다.

동영상과 실습 위주의 생생한 강의가 펼쳐집니다.

온갖 생존 물품들이 등장하고, 갖가지 실습이 즐겁습니다.

수업이라고는 평소 단 1분도 집중해본 적이 없다는 놈들도 열심히 듣습니다.

 

 

 

 

 

 

 

 

 

 

 

 

 

각자 스스로 정보를 모으고 강의 자료를 만들어 왔었는데, 코난님 강의를 듣고 더욱 풍부하게 자료를 보강 합니다. 생존 강의 요령을 배웁니다. 해야 할 실습을 구상합니다.

연습과 리허설을 통해 서로 모니터링을 해주면서 준비를 합니다.

720일부터 82일까지 14일간 거의 매일 회의를 하고, 모여서 연습을 하고 단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83일 개교식을 합니다.

물론 개교식에 필요한 인트로 영상도 직접 만들고 진행도 스스로 합니다.

간단하지만 72시간 생존배낭 부스도 만들어 전시합니다.

이날 코난님이 오셔서 별도의 특강도 무료로 해주셨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 ^^*

 

 

 

(72시간 생존배낭)

 

(가운데 코난님입니다.)

 

드디어 84일 역사적인 첫 강의가 시작됩니다.

중딩의, 중딩에 의한, 중딩을 위한 재난 대비 생존 강의가 시작됩니다.

긴장됩니다.

 

... 개판입니다.

그렇게 많은 연습을 했어도 버벅댑니다.

목소리는 작고 연결은 매끄럽지 못합니다.

학생들은 지루해 합니다.

강의하는 꿈짱들은 당황합니다. 이게 현실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퍼실리테이터가 등장합니다. ㅎㅎㅎ

원래 수업 자체가 토론식이고 참여형이고 실습 위주인데, 교실에서 할 수 없는 실습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불 피우기 실습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불 피우는 방법을 동영상으로 보여주고, 실제 코난님과 외부에서 실습했던 영상(스틸컷)을 보여 주는 것으로 대체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비상상황입니다. 안전을 이유로 금지했던 실습을 해야할 때입니다.

 

학생들을 우르르 데리고 나갑니다. 교문 밖으로 나가 안전하다고 판단되는 곳에서 파이어 스타터를 가지고 휴지에 불을 붙입니다. 학생들의 눈이 커집니다. 각자 해봅니다. 불장난은 예나 지금이나 매력적이죠. 즐겁습니다. 분위기가 반전됩니다. 꿈짱들도 다소 여유를 가집니다.

다시 교실로 돌아와서는 강의가 한결 나아집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잘하는 아이들과, 그래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4일간(12시간)의 강의가 잘 끝났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 정도면 듣는 학생들도 재미있었고, 강의한 녀석들도 배운 것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생존 강의가 끝나고, 4차례의 12일 야영(생존 캠프)을 합니다.

첫 야영은 기록적인 무더위를 기록했던 지난 813~14일 진행했습니다.

앞으로 3번의 야영이 남았지요.

그 이야기도 할 것이 많지만, 여기서는 그만 하겠습니다.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지금부터는 코난님께 드리는 이야기지요.)

 

이 아이들이 주변 마을에 있는 작은 도서관들에서 초중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상시적인 재난 안전 강의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자원봉사로요!

아이들이 재밌어할만한 실습들이 많습니다. 코난님 철학에서 배운대로, 실생활에서 구할 수 있는 재활용품들을 이용한 생존 물품들을 만들어보는 과정에서, 과학적 원리를 배우고 창의성을 키울 수 있을 것입니다. 코난님 말씀대로 위기 시 살아남게 해주는 것은 장비보다는 기술이죠. 창의력이 필요할 겁니다. 물론 이 교육의 정점은 안전에 대한 평상시의 의식이고, 가장 중요한 생존에 대한 의지를 키우는 것입니다.

강의를 들은 아이들은 지하철을 탈 때에도 방독면의 위치와 사용법을 눈여겨보고, 객실의 비상 탈출 방법을 읽어볼 것입니다. 벼락이 칠 때에는 어디가 안전하고, 태풍이 오거나, 불이 나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지진에는 어떻게 대처하고, 여름철 계곡에서는 무엇을 조심해야할지, CPR은 얼마만큼의 압력으로 해야 할 지를 생생하게 기억할 것입니다.

대단히 과학적이고, 창의적이고, 평소의 안전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좋은 교육입니다.

이런 교육을 중학생들이 스스로 하려고 합니다. 마을에 전파하려고 합니다.

(사실 사명감보다는 재미로 하려고 한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재밌어 한다는 것만 해도 저는 고무됩니다. )

아이들 눈높이에서 하는 교육이라 효과는 더 좋겠죠?

 

놀라운 일입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할까요?

 

노하우입니다.

코난님이 그동안 축적해 놓은 생존의 기술, 매뉴얼, 커리큘럼, 강의 자료들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열심히 한 것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코난님의 도움이 정말 컸습니다.

또한 코난님의 철학과 아이들의 니즈가 공명하였다고 생각합니다.

형식적인 안전 교육이 아닌 생존 확률을 높여주는 실효적인 교육, 재미있고 참여할 수 있는 수업.

 

재난과 사고는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고 평생에 만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안 만나는 게 좋겠죠. 그런데 만일 위기에 직면하였을 때, 우리 아이들이 했던 교육 때문에 한 사람이라도 더 생존하게 된다면, 혹은 누군가를 살리게 된다면, 우리 아이들이 그 목숨을 구한 영웅의 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가르친 코난님도 영웅이 되는 것이죠.

며칠 만나 뵈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코난님의 철학은 평범하면서도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아이들보다 제가 더 많이 배우고 느낀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아이들과 젊은이들, 그리고 사회의 안전망을 책임지고 있는 자들 중 어리석은 자들에게 깨우침을 줄 수 있는 목소리를 더 많이 내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야할 길을 가는 사람은, 앞만 보지 말고 옆도 봐야한다고 합니다.

옆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이 가는 사람들이요.

갈등이 존재하고, 상처입고, 좌절을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가는 미련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법이지요.

혹시 어떤 변곡점이라 느껴지는 순간이 올 때, 힘이 필요할 때, 코난님이 키운 제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상상이 세상을 바꿉니다.

 

ps. 도서관에 책 요청은 꼭 하겠습니다. .

(사진도 정리해서 보내드릴게요. ^^*)

 

 

ps2. 아이들 수업 중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장면입니다.

진짜 깨끗한 물이 저렇게 많이 생길 줄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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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허수아비(익산) | 작성시간 16.08.21 이게 미래의 청소년들에겐 실전 참 교육이죠
  • 작성자홍이야(경기) | 작성시간 16.08.21 코난님 화이팅!!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작성자여신님 | 작성시간 16.08.21 지금처럼 하수상한때에 꼭필요한 소중한시간이었겄네요~이런인연 참소중하고 값진것같네요~^^
  • 작성자아침바다 | 작성시간 16.08.23 와 멋지네요
    고생하신 코난님과 아이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 작성자더높이 | 작성시간 16.09.14 홧팅~~~
    스카웃에서 주로 했었던 훈련인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지만,
    이런 기회를 학생들이 자주 가지고 계속 연구하면서
    인류에 기여하는 일군으로 자라도록 도와주시는 일에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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