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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경험

재난시 여성의 생존

작성자스탠리(미국/대구)|작성시간12.04.24|조회수1,493 목록 댓글 35

출처 : http://shtfschool.com/

 

오랜만입니다. 한동안 뜸했군요.

오늘 게시물은 셀코라는 필명으로 활동중인 보스니아 내전(92-95)의 생존자의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몇 번 그의 경험담을 올렸는데 오늘 모처럼 시간이 나서 하나 더 올려

봅니다.

 

전쟁, 그것도 포위전이라는 좀 보기드문 상황이지만 추출해서 필요한 부분은 준비에 사용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그럼...(여기에 나오는 모든 이름은 가명입니다)

 

 

재난 상황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

 

JL은 나의 재난대비교육에 참석한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특징적으로 여성과 관련된 질문을 엄청나게 많이 했다. 그래서 나는 당시 내전에서 살아남은 여성을 인터뷰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나의 경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지만 여성은 때로 남자와는 다른 감정과 느낌을 가지기 때문이다.

 

 

 

 


내가 이야기를 한 여성의 이름은 Una(우나)이며, 지금은 52세이다.(그녀는 내전을 30살 즈음에 겪었다) 당시 그녀는 그녀의 가족 모두를 돌봐주는 역할을 했다. 나는 JL에게 궁금한 점을 보내달라고 했고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댓글로 달아달라. 나는 인터뷰 내용을 녹음했고 나중에 다시 영어로 번역을 했다 (내 영어가 별로인 점을 이해해달라 )


Una가 말한 당시 그녀의 상황

나의 가장 큰 근심거리는 나의 아이들에게 일어날 일들이었다. 나는 2명의 젖먹이를 데리고 있었고 무슨일이 벌어질지, 지옥같은 상황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알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런 상황이 우리에게 나타날것이라고 믿을수도 없었다. 우리는 수 킬로 밖에서 들리는 대포소리와, 강간, 살인같은 폭력적인 이야기를 들었지만 밖은 평화스러워 보였다.


처음엔, 상황이 시작되기 직전에 나는 내친구들, 동료들과 함께한 회의에서, 이 상황을 회피할 방법에 대해 논의를 했다. 곧 나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아이들을 안전한 지역(해외의 친지나 다른 지역)으로 보낼것이냐 아니면 내가 계속 데리고 있을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을 떠날 생각을 한적이 없었고, 내가 사는 도시에서, 나의 남편과 함께, 나의 집에 머물기로 했었는데 뒤돌아보면 이는 결정적인 실수였었다.

 

내게 그 기간동안 가장 우울했던 점을 이야기해보라 한다면 그것은 배고픔이나 위험, 화재, 추위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불확실한 미래였다. 내가 상황을 전혀 콘트롤하지 못하고 도움이 안되며, 추풍낙엽같은 상황이었다는 것이었다. 뭐든지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쨋든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있기로 했고, 그게 옳은 결정이었는지 아직 알수가 없다. 모든 것이 끝나고 나서도 내가 아이들을 보내려고 했었던 그 장소 역시 생존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쨋든 나의 아이들은 살아남았다.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정신적인 상처(mental trauma)를 가지고 있다.

 

어떤이들은 그들의 아이를 어떤 조직의 도움으로 해외로 보냈는데 아이들은 실종이 되는 경우도 있었고, 어떤 경우엔 아이들이 원래 목적했던 곳과 전혀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했었다. 어쨌든 아이들은 이미 부모와 완전히 연결이 끊어진 상황이었다. 부모가 살아남아도 아이들은 전혀 낮선 아이들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 상황이 어땠나 ?

 

내겐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다. 나는 도시가 천천히 망가져가는 것을 봤고, 사람들도 점차 평범한 것들을 잊어버렸다. 초기엔 사람들이 같이 모여서 지내려 노력을 했다. 같이 지낸다라는 말은 이웃끼리 도우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처음엔 그 사람들은 "평범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살인, 강간, 그리고 다른 범죄들이 기승을 부리면서 점차 그들의 관계는 퇴색되고 나중엔 공포만이 남았다.

 

천천히 사람들은 멀어져갔고, 그들 그리고 우리들이란 단어만 남게되었다. 그룹은 더 이상 남에게 열린 존재가 아니었고 누구도 환영받지 못했다.

 

나는 내가 강인한 여자라는 생각을 했으나, 그것은 우리에게 음식과 일상의 콘트롤이 존재할 경우였다. 재난 전엔 나는 교사였고, 재난 당시엔 당연히 다른 사람들처럼 일자리는 사라졌다. 원래 대로 유지되던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우리 아이들조차도 가르칠수가 없었고 그 비슷한 것 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생존 그 자체가 나의 모든 에너지를 소모했다.

 

 

당신이 만약 혼자였다면 어떻게 생존을 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

 

나는 나의 남편과 우리 가족들이 함께 했다. 만일 혼자였다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내가 정신이 나약한 여자여서가 아니라 그 상황이 "이 세상것이 아닌 것" 같아서 발생하는 상황에 도저히 혼자서 대처를 할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족들과 함께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의 부분이 된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이 당신을 의지하면 당신은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그것을 헤쳐나가기 위해 더욱 강하게 현실과 부디치게 된다. 나는 포기하고 스스로를 죽음으로 가게 만든 사람들을 이해한다.


여자인것이 어떤 이익 혹은 불이익을 줬다고 느끼는지 ?

 

나는 내가 여자라서 득을 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생존의 가장 혹독한 부분인 식량과 자원을 찾고, 전투를 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었다. 이런 일들은 남자들이 했다. 나는 운이 좋았던 것이다. 여자들은 다른 부분에 쓸모가 더 많았는데 아이들을 돌보거나 상처를 치료하는 것같은 일이다. 여자들은 남자들처럼 폭력에 쉽게 노출되지 않을거라는 느낌도 당시엔 있었다.

 

당시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나 ?

 

아니다. 절대 아니다. 많은 시간동안 나는 이 상황이 최악이겠지 했지만 항상 상황은 더 나빠졌다.
생존을 위한 싸움은 사람들을 거의 동물로 만든다. 어떤 경우엔 그들 혹은 우리가 사람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경우도 많았다. 우리가 인간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고, 그 자리엔 본능적인 것들과 야만적인 것들만이 남아 있었다. 그 시간 이후 나는 절대 전처럼 사람을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과 가까웠던 주변 사람들이 당신을 어떻게 대했나?

 

나는 내가 여자라서 많은 부분 보호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슨 신사도같은 것이냐 아니냐 하는것은 문제가 아니었다.나는 나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고 (애를 돌봐준다던지 요리를 한다던지, 청소를 한다던지 하는 여자들의 역할)그것으로 인해 그런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격을 해야만 할 경우에, 아무도 내가 여자라서 하면 안된다고 한 적이 없었다. 그룹내의 모든이는 나름의 역할이 있었고 그 역할을 잘해낸다면 그들은 대우를 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룹에 있었나 ?

 

당시 나의 그룹에는 6명의 남자와 3명의 여자, 그리고 4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지금 당신이 준비한 것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그 재난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꿔놨는가 ?

 

나는 수개월치의 식량, 무기를 집에 가지고 있으며 내가 경험한 재난과 유사한 어떠한 징조가 보일경우 이 모든것을 포기하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그 재난은 나의 삶을 전부 바꿔 놓았다. 전부...


당신이 그럴것이라 기대했던 것과 다른 무엇이 있었다면 ?

 

난 당시 상황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예측과)뭐든 다를 수 있다". 당신은 당신이 상상하던 것과 완전히 다른 상황으로 빠져들수 있고, 이로서 당신이 무얼 해야한다고 예측해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나는 매우 강한 사람도 무너지고, 약한 사람이 강해지는 것을 봐왔다. 재난 전엔 정말로 강하던 사람이 맨 처음 무너지게 된다. 나 역시 부서지고 깨진 사람이었지만 사람들이 나에게 의존을 하는 부분이 있었고 나는 내 역할을 해야만 했었다.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유지했지만 내 맘엔 지울수 없는 큰 상처가 많이 남아있다.

 

셀코(인터뷰 중), 당신처럼 그 상황에서 강인함을 발휘하고 그 상황에 빠르게, 문제없이 적응하는 조용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당신같은 사람들을 죽을때까지 이해할 수 없을것이다.


위생문제라든가, 여성의 신체적 청결문제 같은 것은 없었나 ? 물부족은 어떤 문제를 일으켰나 ?

 

그 시간동안 우리는, 그 말에서 느껴지는 만큼처럼, 위생이 가장 큰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것들-아이들을 뭘 먹일것인지, 아니면 별로 없는 자원들을 사용해서 식사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지 하는- 이 나의 마음을 꽉 매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있다면, 여성들이 어떻게 다르게 처신을 했는지 ?

 

나는 특별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는 단지 눈을 감고 나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식의 모든 생각과 걱정거리를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개인적인 방법이군요) 내 남편이 모든 것이 끝장날 것처럼 걱정을 하거나 혹은 거기서 어떻게 견뎌 나갈지를 생각한다면, 나는 전혀 그런걸 생각하지 않았다. 나의 가장 큰 걱정은 식사를 어떻게 만들지, 아이들을 어떻게 보온을 유지할 지 하는 것들이었다. 그런것들은 남자들의 일이 아닌것들이었다. 그들은 큰 이슈를 생각했지만 난 아니었다.

 

난 교육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난 작은 것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차 있었다. 이런 것들이 날 미치지않도록 해주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팬케익을 먹고 싶다고 하면 난 하루종일 팬케익을 어떻게 만들까 궁리를 했다. 그리고는 팬케익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만들고 "이건 특별한 팬케익이란다" 하고 아이에게 말을 해주는 미션으로 나 자신의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뭔가 당신이 기대하던 대로 이루어진 일이 있는지 ?

 

아무것도 없다. 사실 뭘 기대해야 할 지 몰랐다. 당신은 완전히 새로운 상황에 놓이면 뭘 기대해야 할 지 알수가 없다. 완전히 막다른 골목인 것이다. 나는 별 기대없이 나날을 보냈다.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당신은 그걸 포기하게 될것이다. 나와 내가족이 생존을 했다. 그게 전부다. 다음번엔 무슨일이 터질지 모르겠지만 난 이제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영적인 힘의 근원이 있었나 ?

 

상황마다 달랐다. 완전히 신을 믿지 않는 상황에서 신이 뭘 해주길 바라는 상황까지. 나는 믿음을 잃고 되찾고를 몇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 의지와 힘을 주고 평범함을 잃지 않도록 해준 것은 바로 아이들이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돌볼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이 모든 문제에서 매우 중요한 포인트이다.

 

—————————————-

 

나는 인터뷰의 두번째 부분을 번역하고 있다. 이 여성은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그룹에서 생존한 사람이다. 현실은 그들에게 더욱 더 힘이 들었다. 이 부분은 회원란에(컥!) 올리겠다.

여성으로서 궁금한 점은 Q&A에 올려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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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스탠리(미국/대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4.25 네..ㅎㅎ 안녕하셨어요 장아찌님...홀로 버티기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혼자 숨어 있다면 몰라도...
  • 작성자논산댁 | 작성시간 12.04.25 잘 읽었습니다. 건강하게 몸 잘 보살피세요
  • 답댓글 작성자스탠리(미국/대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4.25 오랜만입니다...잘 계시죠 ? ^^
  • 작성자주니에바(서울) | 작성시간 12.05.17 재난시에 여성이 어떤 그룹에 속해있다면 그룹내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겠지만, 그 그룹의 룰이 깨지면 여성으로서는 위험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 디바이드 같은 상황이라면. ㅠ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 있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스테파노(경기) | 작성시간 13.06.16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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