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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경험

119일간 표류 (뉴질랜드)

작성자Hobo|작성시간15.09.08|조회수2,906 목록 댓글 5

 

죤 글렌, 필 호프만, 릭 헬리겔 그리고 짐 날렙카 이 네명의 사나이들이 난파선에서 풍랑과 기아를
견디고 살아서 돌아온 이야기는 1989년 뉴질랜드 최고의 화제였다.

 

12.6 미터의 난파선이 뉴질랜드 북섬의 Great Barrier섬에 표착한 뒤 4명의 생존자들이 가파른 절벽을

필사적으로 기어올라 생존소식을 알렸을때 미디어들은 앞을 다투어 몰려들었다.

TVNZ의 헬리콥터는 TV3의 헬리콥터와 좁은 해변에서 자리다툼을 했고 유명 TV사회자 폴 홈즈는

난파선의 선장인 죤 글렌을 독차지하려고 붙들고 놔주지 않았으며 펭귄서적에서는 책을 쓰려고

달려와 싸인을 받고 있었다. 로즈노엘(Rose Noelle)호 이야기는 한마디로 인기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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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명의 사나이들이 뉴질랜드 남섬의 북단인 Picton(픽턴)에서 통가를 향해 모험항해를 시작한지 3일이

되던 1989년 6월 4일 오전 6시 그들이 탄 배는 거대한 파도를 만났다.

 

어둠속에서 거대한 화물열차와도 같이 구비치며 굉음과 함께 나타난 파도는 6.5톤의 Trimaran

(3동선이라고 하는데 선박의 본체 양 옆에 부력을 유지해주는 배모양의 동체가 각각 달린 갈매기 모양의 배)을

마치 욕조속의 아이들 장난감배처럼 가볍게 뒤집어 엎어버렸고 어둠속에 선체에 갇힌 4명의 선원들쪽으로

열려있던 선실 문을 통해 바닷물이 무차별로 들이닥쳤다.

 

그로부터 그들은 119일동안 바다에 표류하며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여야 했는데 다행히 뒤집어진 배 안에

생성된 약 45센티미터 높이의 에어포켓에 의지하여 그들은 처음 시간들을 버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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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장인 죤 글렌은 원래 Picton에 살고 있었고 필 호프만은 오클랜드 사람으로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여인 Karen과

결혼하여 뉴질랜드 전역을 떠돌면서 여기저기 목수일과 품팔이로 살아가던 중 그들의 배가 Picton에 머물때 정박한

장소가 죤 글렌의 배하고 바로 옆이어서 이들은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으며 둘 다 모험을 좋아하여 배를 타고 여행을

떠나고자 했던 이들 두 사람은 통가로 항해를 해보자고 의기투합했고, 선원을 더 구하기 위해  인근 Backpacker에

광고를 내어 두 사람을 더 모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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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를 위해 발신한 비컨의 신호는 아무도 받지 않았고 6월 13일, 선장인 죤의 48회 생일인 이날부터 비컨은

아예 작동을 멈추어버렸다. 이제 외부세계와의 연결도구가 없어진 것이었다.

 

여러가지 조건으로 보아 이 난파선은 남미쪽으로 흘러갔어야 했는데 그랬으면 선원들은 서서히 굶어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해에는 기후변수들이 작용하여 바람과 해류 등이 이 배를 크게 원형으로 표류하게 하여 뉴질랜드 북섬의

북동쪽에 있는그레이트 베리어 섬의 한 외진 해변에 표착시켰던 것이다. 참으로 기적이었다.

 

이들이 조난 상태에서 벗어나 처음 존재를 알렸을때 의심많은 세관원들과 해양조사관들은 이들을 잘 믿지 않았다.

지금은 배의 선장이자 당시 뉴질랜드 정부 해양교통국의 관리였던 멜 보웬은 이들 선원의 주장을 조사해보라는

지시를 상부로부터 받았다. 그는 선원들의 건강상태부터 우선 의심했다. 

항해경력이 많은  보웬이 보기에는 4개월이상이나 표류했다는 이 선원들의 행색은 뭔가 이상했다.

한명은 깨끗이 면도를 하고 있었고 다른 이들도 나름 수염과 머리를 다듬은 상태로 보였으며 게다가 이들은

깨끗한 의복을 입고들 있었다. 몇달간 바다에서 뒹굴었다는 사람들에게서 짠물의 냄새를 맡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 모두 마르긴 했으나 나름 외양은 건강해보였고 지저분한 흔적도 없었다.

 

4개월이나 태평양을 표류했다면 당연히 칠레쪽으로 흘러갔어야 할 사람들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다.

이것저것 이들을 조사해보고 그가 내린 결론은 이들이 좀 애매하고 혼란스럽고 세부적으로 기억들이

서로 엇갈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퇴직하여 로토루아에 살고 있는 보웬은 아무래도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했다.

 

세관에서는 마약을 의심했다. 시간의 흐름으로 보아 4개월이면 남미에 도착하여 마약을 픽업해서 다시

그레이트 베리어에 돌아와 마약을 전달할 충분한 기간이었다. 막 상륙할 즈음에 네비게이션 기계가 망가져서

바위에 부딛치어 파산한 것인가 하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아무래도 수상했던 보웬은  첫날 함께 이들을 트럭에 실어 이동시켜준 지역 경찰관인 쉐인 고디넷을 데리고

그들이 표류해왔다는 Little Waterfall Bay로 달려갔다.

그곳은 그들이 타고 표류하던 배가 바위에 부딛쳐 부서졌던 곳이다.

 

표류자들이 첫날 밤 깡통하나를 따서 나눠 먹으며 버텼다는 절벽위의 숲과 절벽 아래의 해변을 번갈아

오르내리며 그들의 행적을 밝혀줄 무슨 단서를 찾고자 했다.

해안을 이쪽에서 저쪽까지 살피기도 하고 잠수복을 입고서 배가 가라앉은 바다속을 뒤지기도 했다.

 

탐사결과 그 배가 마약운반선이 아니라 선장인 글렌의 평소 주거용도로 쓰이던 잘 만들어진 요트라는

심증이 굳어졌다. 배에서 나온건 자전거와 주방기기 등 온통 살림살이 도구들 뿐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가장 강력한 증거는 그 배의 꼭대기 부분으로 벗겨진 페인트위에 조개껍질이 자라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배가 거꾸로 물속에 잠겨있지 않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며칠 뒤 그 섬의 주민인 데이브 메드랜드는 배가 난파한 지역의 물속에서 반짝이는 뭔가를 발견했다.

그것들은 4개의 사이클링 메달로서 2개는 선장인 글렌의 것이었고 나머지 2개는 글렌의 부친이 획득한

것이었다.

몇개의 미국동전도 함께 발견했는데 선장 글렌과 그의 동생이 60년대에 그들의 첫번째 태평양 항해를 마치고

LA에서 그들의 첫번째 Trimaran(앞서 언급한 3동선으로 아마 대양항해에 유리한 안정적인 요트인듯 함)

Highlight호를 팔고 남은 동전이었다. 드릴도 한개 줏어서 집으로 갖고 왔는데 4개월간이나 바닷물속에 잠겨

있었는데도 세척을 한뒤 전기선에 연결하자 놀랍게도 여전히 작동이 되었다.

 

이들 4명의 선원들에 대한 개별조사가 끝난 뒤 모든게 명확히 밝혀졌다.

이들은 난파선의 배 밑 조그만(퀸 사이즈의 침대크기) 공간에서 생존했으며 나중에는 빗물을 받아먹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고 뒤집힌 배에 조개들이 붙어 자라자 이들은 이 조개와 작살을 이용해서 물고기를 잡았다.

선장인 글렌은 수시로 물속으로 다이빙해 선실로 들어가서 그곳의 남은 음식들을 더듬어 찾아 나왔다.

덜 익은 키위과일들이 서서히 익어 훌륭한 비타민씨를 보충해주었다.

 

................

해변으로 기어 올라 숲에서 하루밤을 보낸 뒤 그들은 이 섬의 한 바닷가 별장에 무단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그들은 몸을 씻고 면도를 하고 머리손질을 하고 옷장에서 발견한 옷으로 갈아 입었으며 음식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거기서 잤다.  다음날 날이 밝자 그들은 근처 민가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

 

................

그 3개월전 그들의 배가 뒤집혔을때 발신한 비컨의 신호를 듣고 공군기가 커머덱 해역을 잠시 뒤졌으나

사고 해역에서 다소 떨어져 있었고 신호가 미미한데다 그들의 행선지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 곧 포기하고

말았던 사실이 나중에야 밝혀졌다. 비컨의 신호가 중단되자 구조대는 그들이 모두 죽은것으로 판단했던 것이다.

1989년 뉴질랜드 해상안전협회 8월/9월의 기록에는 Rose Noelle호의 선원들은 모두 커머덱 해역에서 익사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뒤집힌 난파선의 빈 공간에서 추위와 허기를 견디며 물과 음식에 대한 공상을 하며 시간을 이겨냈다.

이들은 애초에 서로서로가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어쩌다 정박한 곳에서 배가 옆에 있어서 만나게 된 두

사람과 항해를 위해 백패커에서 모집한 두사람, 이렇게 모인 4명이었다.

26년이 지난 지금 방송기자들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두 사람은 죽고 이제 남은 두 사람도 서로 연락하지 않는다.

 

선장 글렌은 미국으로 이주하여 결혼을 했고 릭 헬리겔은 그 여정이 끝난 2년 뒤 뇌암으로 죽고 필 호프만은 그 뒤에

아이를 둘 더 낳아 먼저난 세명의 아이와 합쳐 다섯 자녀들과 와이프 Karen과 함께 오클랜드 앞바다의 와이헤케섬으로

이주하여 살다가 2014년에 죽었다. (캐런은 아직도 남편 필의 체취가 남아있는 져지를 베개머리에 두고 잔다고...)

 

[주] 그들이 그 배안에서 그렇게 생사고락을 함께 나눈데 비하면 그 뒤의 서로에 대한 무심함이 다소 이해가 안가지만

그게 또 인생이다. 삶은 다만 앞으로 나아갈 뿐.

 

당시 사건을 담당한 섬의 경찰관 쉐인 고디넷은 이제 퇴직이 가까왔는데 그는 아직도 그 사건에 대한 신문기사

스크랩과 사진들을 잔뜩 지니고 있으며  그 사건을 생생히 기억한다. 그는 배 Rose Noelle호의 깃발을 액자로

만들어 걸어놓았으며 선장 글렌의 동전과 난파선에서 나온  Winch(크랭크)로 장식물을 만들 작정이라고 한다.

그는 그 4명의 선원들이 지독히도 운이 좋았다고 회고한다. 그들의 배가 부딛친 그 바위가 그 해안에서 유일하게

절벽같은 비탈이 아닌 바위여서 그들은 부서진 배에서 탈출하여 그나마 해안으로 올라올 수 있었다는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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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Gott(경기) | 작성시간 15.09.08 Good
  • 작성자비미르 ㅡ 문승현 (숲에인) | 작성시간 15.09.08 한마디 천운...그리고 생존 의지 그 자체 입니다
  • 작성자즈나(부산) | 작성시간 15.09.08 정말 대단합니다. 4개월이나 살아남다니...
  • 작성자카카로트(부산) | 작성시간 15.09.08 바닷물이 차갑지 않았나 봅니다.. 지독하게도 운이 좋구요..
  • 작성자코난.카페장(경기) | 작성시간 15.09.08 영화로도 나오겠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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