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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경험

조난기 (뉴질랜드)

작성자Hobo|작성시간13.01.04|조회수721 목록 댓글 14

 

이런 한심한 조난기를 쓰기 위한 시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예기치않게 엄청난 시련을

산속에서 겪게 되었고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빚어진 결과이지만 행여 다른 이들에게 경계가

될까하여 적어 올리기로 한다. 며칠전인 지난 연말에 있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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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재작년 크리스마스 즈음에 와이타케레에 있는 Destruction Gully Track아래쪽 바닷가의 한

그마한 바위섬을 나만의 낚시터로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스런 길을 절벽에

내어 보려는 야심을 가지고 시도하다가 결국 해가 지고 밀물이 들어와 현장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바닷가 절벽 아래에서 밤을 지샌 적이 있었다. 소위 '모기 600방'(밤새 모기들 에게 600방 정도

물린 것) 사건은 내 주변사람들은 다 들어서 알고 있다.

 

그 바닷가 절벽길은 그 뒤로 한동안 포기했는데  다시금 의욕에 불을 댕긴 것은 다른 산악회

고참회원 한분의 귀뜸이었다. 한날 내가 와이타케레쪽에서 등산을 마치고 쉬고 있을때 

갑자기 나타나시어 알려주시기를 바로 그 절벽에 실은 낚시꾼들이 가는 길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목적지는 바로 내가 탐을 내던 바로 그 바위섬인 것이고 어디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지 비교적

소상하게 묘사하셨는데 나는 집에 와서 지도를 한번 들여다보고 그 정보가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설명에 의하면 Destruction Gully Track을 따라 내려오다가 개울물을 만나는

곳에서 옆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는데 지도로 보건데 딱 그 정도 위치에서 절벽의 옆을 가로질러

가야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이미 여러차례 그 일대를 헤집고 다닌적이 있어 사면을 따라

몇개의 구릉을 넘어야 바닷가로 내려갈 수 있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지가 나온다는 것도 나는

알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출발했다. 이번에는 성공하고 말리라는 다짐으로. 무엇보다도 길이 있다는 정보가

나를 고무시켰다. 길이란 경험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루트를 따라 나게 되어있는 것이 아니던가?

이번에야말로 성공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A : Destruction gully track (바닷가로 내려가는 트랙)

B : 내가 내고자 한 절벽의 사면을 따라 길의 개념

Han_Seom : 나의 목적지인 조그만 바닷가 바위섬 (트랙에서 바위를 타고 건너가려면

약 500미터 거리이나 중간에 장애가 두군데 있어 만조시에는 뛰어서 건너가기가 힘듦

 

이윽고 트랙을 내려가다가 개울을 만나는 곳이 나왔고 나는 약간 망설이며 왔다갔다 하다가

가장 그를듯 해 보이는 비탈을 택해 거기서부터는 나의 감각에 의존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기대하기로는 가령 내가 처음에 길이 아닌 곳을 가더라도 나중에 어딘가에서는 길을 만날것

이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뭔가 이상했다. 방향은 분명 제대로 잡고 나아가고는 있었지만 울창한

잡목숲이며 경사진 비탈이며 느닷없이 앞을 가로막는 큰 수직 바위벽이며 걸음마다 발에

걸리는 등나무같은 줄기며  모든게 작년에 내가 이미 겪었던 상황에 비해 나아진게 없었다.

길은 없었고 길을 낼 수도 없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미 내친 걸음이었다.  나는 꾸역꾸역 계속 나아가고 있었다.

도중에 목이버섯을 따기도 해서 약간의 기분전환도 되었는데 이미 길을 찾긴 글렀으나

내가 아닌 그 누구라도 이 사면을 통과하자면 갈 수 밖에 없는 길을 나라도 한번 개척해보자란

도전의식으로 스스로를 부추기며  계속 진행했다.

 

중간에 진행상황을 확인하려고 마침 아래로 내려가는 비탈이 덜 경사진곳에 당도하여 한번

내려가보기로 했다. 내려가서 가린 숲을 헤치고 내어다보니 아직 한 등성이가 더 남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 곳은 아직 절벽위였고 바다는 아득히 아래쪽으로 보였다. 나는 다시 비탈을

오르며 힘든 걸음을 계속했다. 목이 마를때 물을 마시면서 남은 물을 걱정해야 했다. 물을

1리터밖에 안가져간 탓이었다. 나는 이번에는 일찌감치 길을 찾아 그 바닷가에 당도하여 가고자

그 바위섬 뒤의 동굴천정에서 떨어지는 물을 받아먹을 심산으로 물을 넉넉하게 갖고 가지

않았다. 비상식량도 있었고 점심 도시락까지 들고 갔으나 목만 말랐지 배가 고프진 않았다.

그건 내가 조금씩 긴장하고 있음을 뜻한다. 힘도 점점 소진되고 있는 상황을 스스로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길이 없는 절벽의 사면을 온갖 장애물을 헤치며 옆으로 나아가는 것은 매우 피로로운 일이다.

땀이 비오듯 쏟아졌으나 나는 물을 아꼈다. 그리고 계산상 아직 남은 마지막 한 고비를 기어이

넘어갔다. 이제 다시 아래쪽으로 내려가는 골짜기였고  예상대로 비탈의 경사가 그리 심하진

않았다. 그러나 어마어마하게 우거진 잡목의 숲이 문제였다. 단 한 걸음도 수풀을 제치지 않으면

전진할 수가 없었고 중간에 거대하게 무너져있는  큰 나무등걸은 그 와중에 또 다른  거대한 

장애였다. 아무려면 내려가는 길인데 못가기야 하겠는가..빌어먹을 내 비록 이 길을 따라 그

바닷가에 도착한다한들 다시는 이리로 오지 않으리라 하는 생각을 하고 안간 힘을 내어 아래로

아래로 전진했다.

 

그런데 얼핏얼핏 보이는 바다물이 생각보다 멀었다. 왠지 불길했다. 그런 경우 반드시 절벽이

가로막고 있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천신만고끝에 당도한 비탈의 끝에서

내려다보니 여전히 바다는 수십미터 아래인데 절벽이어서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이다.

 

 

나는 작년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며 어리석은 시도를 감행한 스스로를 질책했다.

그리고 서둘러 철수를 시작했다. 남은 물을 계산해서 가급적 물을 아끼며 온 길을 되짚어

가야 했다. 꾸역꾸역...그야말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다.  어디어디로 해서 왔는지는 기억

에도 없고 내내 또 그렇고 그런 장애물들을 헤치고 넘으며 힘겹게 나아갔다.

도중에 비가 조금씩 오기 시작했는데 수통의 물을 아끼고자 나뭇잎에 묻은 빗물을 핧아보기도

했으나 빨아들이는 빗물보다 나뭇잎에 묻히는 침의 양이 더 많을것 같아 그 짓은 몇번 하다가

단념했다. 힘이 부치면서 뭘 먹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긴장하여 그런지 여전히 식욕은

없었다.

 

나는 어쨌거나 계속 걷고 있었고 이런저런 장애로 인해 막히면 조금씩 옆으로 돌아가는 짓을

반복하고 있었으며 아무려나 이렇게 계속 나아가면 나중엔 출발지점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윽고 내 계산으로 그 계곡이 있는 골짜기로 들어선 것

같았다. 물도 거의 떨어져 가는 판에 바위를 타고 쨀쨀거리고 흐르는 물줄기를 발견하고 매우

반가왔다. 수통을 꺼내서 물을 보충했다. 바위에 기대어 붙은 나뭇잎을 타고 흘러내리는 매우

가느다란 물줄기였는데 한참을 서서 채워도 수통의 반도 채우지 못했고 그 사이에 모기에게

여러군데 당했으나 물을 다소 보충한 것은 큰 안도였다.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계곡물을

발견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닌게 아니라 얼마 가지않아 본류에 해당하는 계곡물을 만났다. 조금전에 물을 보충한

곳은 지류였던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이제 살았다를 외치며 한걸음 아래로 내딛었을때 두 다리가

함께 주욱 미끌어지며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양손에 잡고가던 스틱도 어디론가 날아갔고 그

보다도 안경이 벗겨져 어디론가 날아가버린게 낭패였다. 다행히 다친데는 없었다.

 

안경이 있어야 안경을 찾지...젠장 안경이 없는데 뭘 찾는가? 안경을 여벌로 갖고 가지 않은게

무척 후회가 되었다. 옷을 버리고 안버리고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바짝 엎드리어 땅에

붙어 기면서 풀을 더듬었다.  하지만 내 허약한 시력으로는 안경도 스틱들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잠시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조난이 달리 조난이 아니라 산에서 안경을 잃어버린게 나에게는

더 없는 조난이었다. 아직 해는 두시간여 남아있어  생각할 시간은 있었고 바로 옆에 계곡물이

흘러 물걱정도 없었고 베낭속에 점심도시락을 비롯하여 먹을꺼리도  있었으나 앞이 보여야

나아가지...이제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정말 감감했다. 핸드폰을 열어보니 여전히화불가

지역으로 표시되고 있었고 자동차를 주차한 곳에 다른 차량들이 없었던 것으로 보아 그날 따라 

그 계곡에 낚시나 산행을 온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걸 내가 아는지라 무슨 고함을 지르는 것도

이득이 될게 없었다. 이러다가 해가 지면 거기서 밤을 새워야 할 것이고 그러면 지난번보다 훨씬

더 많은 피를 모기들에게 헌납해야 할 것이 뻔한 일이 아닌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는 안경을 조금 더 찾아보기로 하고 절망적으로 주변을 더듬거려 보았으나 다시 실패했다.

이러다간 해가 질 것 같아서 더 이상 그곳에서 지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위치에 손수건 하나를 나무에 묶었다. 다음에 다시 와서 안경과 스틱을 찾기 위함이다.

그리고 지갑과 핸드폰을 비닐로 된 나름의 방수팩에 넣고  배낭 가장 위쪽칸에 넣은뒤

잘 보이지 않는 맨눈으로 사지를 드듬어 계곡을 그냥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내려가다가 내가 처한 위치가 다소 헷갈려 한번 도로 올라가기도 했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할지 내려가야 할지를 몰랐던 것이다. 그럴땐 매우 당황스럽다.

그러다가 결론은 내려가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올라가면 힘도 들뿐더러 어딘지 전혀 모르는

곳이지만 내려가면 얼마 지나지 않아 늘 가던 그 바닷가에 당도할 것을 알기에 그게 차라리

안심이란 생각이었다.

 

바위를 타고 계곡을 기어 내려가는 행위는 베어그릴스가 하는걸 재미있게 지켜보긴 했으나

시야가  제대로 확보가 안되는 상황에서 내가 직접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약 2미터 가량 높이의 미끄러운 바위가 나오고 그 아래 소가 있을때는 난감했다.

가급적 온 몸을 바위에 붙인채 미끄러져 물에 빠져드는 수 밖에 없었는데 뼈가 부러지거나

살갗이 길게 찢어지지 않은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천천히..조금씩 조금씩 나는 그야말로 엉금엉금 기고 더듬어 바위를 건너고 물속을

헤치며 아래로 내려갔는데 등산로에서 마주칠때 보이던  그 조그만 계곡의 상류에 내 허리가

잠길 정도의 소가 몇군데나 있을 줄은 몰랐다. 등에 진 베낭이 물에 빠지지 않게 들어올려야

하기도 했다.

 

고맙게도 .... 아래로 내려가는게 방향이 맞았고 나는 크게 다친데 없이 출발했던 장소로 도로

나올 수 있었다. 트랙을 다시 발견한 것이다. 이제 살았다란 소리가 나왔다. 트랙도 문명의 일부

인 것이다. 신고 간 군화속에서 물이 절벅거렸고 안경이 없으니 여전히 희미한 시야를 지니고

있었지만 나는 매우 행복했다. 그냥 올라가기만 하면 나의 자동차를 만날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생각해보니 내 차에는 도수가  좀 약하게 들어가긴 했으나 선글라스가 있어 그럭저럭

운전을 해서 집으로 올 수가 있을 것이었다. 

 

...............

 

결론

 

1. 문명의 역사가 이 정도의 세월을 지났고 이 땅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지 벌써 수백년이면

길이 있을만한 곳에는 이미 길이 만들어져 있다. 없는 길을 찾지 말고 길이 아닌 곳에 함부로

들어가지 말자.

 

2. 경사가 높고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수백미터 거리 안에서 탈진할 수 있다. 길을 모르고

갈때에는 왕복거리 개념하에 물과 음식 그리고 비상도구 등을 갖추어야 한다.

 

3. 시력이 나쁜 사람은 반드시 산에 갈때 여벌의 안경을 소지해야 한다. 안경을 순간적으로

잃게 되면 일행이 찾아주지 않는 한 본인이 스스로 안경을 찾을 수 있는 확률이 희박해진다.

숲이 매우 우거지고 경사가 심한 비탈에서는 특히 그렇다. (미끄러지면서 나뭇가지가 안경을

걸고 날려버리는 경우가 이번 나의 경우였다.)

 

4. 가급적 혼자 산에 가지 말자. 조난시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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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Hob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07 조난치고는 좀 허접하죠. ㅍㅎㅎ
  • 작성자dragon | 작성시간 13.01.05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가지고 순식간에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결론 4가지는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에 저장하겠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Hob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07 체험으로 얻은 결론이니....혹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거라고 믿죠. 꼭 누군가가 앞서서 바보같은 짓을 해야 뒷사람은 현명하게 처신합니다. ㅍㅎㅎㅎ
  • 작성자사마엘(경기) | 작성시간 13.01.05 완전 스펙타클 긴장감...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 답댓글 작성자Hobo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3.01.07 네...팔에 좀 긁힌 자국 이외엔 별 상처 없어요...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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