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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의 정체를 아는 단서는 적다. 왜냐하면 , 조선에는 고대의 역사서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이다.
따라서 , 화랑에 대한 기술은 , 거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지하게 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진흥왕 37년의 기술
「최초로 두 명의 미녀를 선택했지만 , 서로 아름다움에 질투해 , 서로 죽였으므로 , 살아 남은 여자는 처형했다.
다음에 , 미모의 남자를 선택해 , 화장을 시켜 , 호화롭고 아름다운 옷(기모노)를 입혔다. 이 남자를 화랑이라고 불렀다.
많은 남자가 (화랑이 될 것이다 ) 모여 와 , 논의하거나 시를 만들었다. 국중의 명소를 보고 광여행했다.
이러한 행동중에서 , 뛰어난 사람을 선택해 조정에 등용했다. 이렇게 해 등용한 화랑중에는 , 훌륭한 장군과 용졸이 있었다.」
화랑중에는 용감한 사람도 있었지만 , 전원이 용감하지 않았던 것이 , 이 기술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이하에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화랑의 일람을 싣는다.
| 王代 | 花郎名 | 出自 | 分類郎徒 | 典拠 |
|---|---|---|---|---|
| 第二十四代 真興王 | (南毛・俊貞) | 三国史記、三国遺事 | ||
| 斯多含 | 奈密王七世孫、真骨、父仇梨知級飡 | 武官郎 | 三国史記 | |
| 白雲 | 父某達官 | 金闡 | 東国通鑑、三国史節要 | |
| 薛原郎 | 三国遺事 | |||
| 未尸郎 | 僧真慈 | 三国遺事 | ||
| 第二十六代 真平王 | 金庾信 | 加羅王裔孫、真骨、父角干舒玄 | 三国史記、三国遺事 | |
| 金令胤 | 真骨、父級飡盤屈 | 三国史記 | ||
| 近郎 | 真骨、父伊飡大日 | 剣君 | 三国史記 | |
| 竹旨郎 | 真骨、父述宗 | 得烏(谷) | 三国史記、三国遺事 | |
| 好世郎 | 釈恵宿 | 三国遺事 | ||
| 瞿旵公 | 三国遺事 | |||
| 居烈郎 | 三国遺事 | |||
| 実処郎 | 三国遺事 | |||
| 宝同郎 | 三国遺事 | |||
| 第二十九代 太宗武烈王 | 官昌 | 真骨、父伊飡(将軍)品日 | 三国史記 | |
| 文努 | 金歆運・僧転密等 | 三国史記 | ||
| 第三十一代 神文王 | 宝川 | 真骨、王子 | 三国遺事 | |
| 第三十二代 考昭王 | 夫礼郎 | 真骨、父薩飡大玄 | 安常 | 三国遺事 |
| 俊永郎 | 真才・繁完 | 三国遺事 | ||
| 第三十五代 景徳王 | 耆婆郎 | 三国遺事 | ||
| 第四十七代 憲安王 | 金膺廉 | 真骨、王孫、父阿飡啓明 | 三国史記、三国遺事 | |
| 第四十八代 景文王 | 邀元郎 | 三国遺事 | ||
| 誉昕郎 | 三国遺事 | |||
| 桂元 | 三国遺事 | |||
| 叔宗郎 | 三国遺事 | |||
| 第五十一代 真聖王 | 孝宗郎 | 真骨、文聖王の裔孫、敬順王の父 | 三国史記、三国遺事 |
| 왕대 | 화랑명 | 출자 | 분류낭도 | 전거 |
|---|---|---|---|---|
| 제2십4대진흥왕 | (남털·정)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
| 사다함 | 나밀왕7세손 , 진골 , 부구이지급 | 무관랑 | 삼국사기 | |
| 백운 | 부모타츠관 | 금천 | 동국 자치통감 , 삼국사절요점 | |
| 설하라 츠카사 | 삼국유사 | |||
| 미시낭 | 승려진자 | 삼국유사 | ||
| 제2십육대 신페이왕 | 김신 | 가야왕예손 , 진골 , 부각 마르고 서현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
| 금령윤 | 진골 , 부급반굴 | 삼국사기 | ||
| 근낭 | 진골 , 부이 다이니치 | 검군 | 삼국사기 | |
| 죽지낭 | 진골 , 부술종 | 득오(골짜기)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
| 호세낭 | 석혜숙 | 삼국유사 | ||
| 구공 | 삼국유사 | |||
| 거열낭 | 삼국유사 | |||
| 실처낭 | 삼국유사 | |||
| 보 동츠카사 | 삼국유사 | |||
| 제2십9대 태종 공적왕 | 관 창 | 진골 , 부이(장군) 품일 | 삼국사기 | |
| 문노 | 금전운·승려전밀등 | 삼국사기 | ||
| 제3십일대신 문왕 | 보천 | 진골 , 왕자 | 삼국유사 | |
| 제3십2대고아키라왕 | 부례낭 | 진골 , 부살대현 | 안상 | 삼국유사 |
| 영낭 | 진세·번완 | 삼국유사 | ||
| 제3십오대 경덕왕 | 기파낭 | 삼국유사 | ||
| 제47대헌야스왕 | 금응렴 | 진골 , 왕손 , 부아 계명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
| 제48대경 문왕 | 요원낭 | 삼국유사 | ||
| 예낭 | 삼국유사 | |||
| 카츠라 겐 | 삼국유사 | |||
| 숙종낭 | 삼국유사 | |||
| 제5십일대 마사키요왕 | 효종낭 | 진골 , 문장 성왕의 예손 , 경순왕의 아버지 | 삼국사기 , 삼국유사 |
화랑의 리스트 중(안)에서 , 굵은 글씨가 군사 관계자. 불과 5명.
여기에는 활약했을 때에는 이미 화랑은 아니었다고 생각되는 인물도 넣고 있다.
기록에 남아 있는 화랑의 대부분은 , 군사와는 무관계.
그리고 사다함이나 관 아키라 , 김? 운등의 군사에 관계한 화랑은 , 종군때에 , 재차 무관에 임명되고 있다.
즉 , 화랑은 원래 정규의 군사 조직의 밖에 있는 집단이다.
여기까지로 밝혀진 사실을 확인하자.
화랑의 특징은 ,
1 미녀의 대체품으로서 선택되었다
2 미남자인 것이 조건
3 주된 일은 국내의 여행과 시가를 음일
4 기본적으로 군사 관계자는 아니다
5 화장을 해 , 깨끗한 옷을 입는다
6 전장에 가는 일도 있다
이것으로 분명할 것이다.
화랑은 남창이다.
........................-ㅁ-
출처 : 엔조이재팬
http://bbs.enjoyjapan.naver.com/tbbs/read.php?board_id=thistory&nid=1573340
댓글
댓글 리스트-
작성자해돌이 작성시간 06.02.05 뭐 기모노 벗는게 용이한 건 xxX 한 거라고 쓰시는 한국의 애국자 문필가도 50년대 있었는데요. 50보 100보 입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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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살라자르 작성시간 06.02.05 실제 화랑은 남창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충성을 중요시하는 사무라이단체도 아닌 지금의 보이스카우트 같은 단체였다고 하네요 또한 그 당시에는 유교도 퍼지지 않았던지라 그 단체에서 동성애자가 있던경우도 있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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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거북선 작성시간 06.02.06 가부키하고 비슷하네요. 처음에는 여자 배우였다가 문제가 되자 여장남자를 쓰는데. 그때 동성애가 된것 하고 아주 비슷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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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거북선 작성시간 06.02.06 대학교때 일본문화시간에 미소년을 어릴때 데려다가 다이묘가 동침을 하면 전쟁터에 데리고 나가 바로 뒤에 세운다고 합니다. 그러면 평생 배신을 않한다고 들은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