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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화랑은 남창?????

작성자김정현|작성시간06.02.05|조회수565 목록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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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의 정체를 아는 단서는 적다. 왜냐하면 , 조선에는 고대의 역사서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이다.
따라서 , 화랑에 대한 기술은 , 거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지하게 된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진흥왕 37년의 기술

「최초로 두 명의 미녀를 선택했지만 , 서로 아름다움에 질투해 , 서로 죽였으므로 , 살아 남은 여자는 처형했다.
다음에 , 미모의 남자를 선택해 , 화장을 시켜 , 호화롭고 아름다운 옷(기모노)를 입혔다. 이 남자를 화랑이라고 불렀다.
많은 남자가 (화랑이 될 것이다 ) 모여 와 , 논의하거나 시를 만들었다. 국중의 명소를 보고 광여행했다.
이러한 행동중에서 , 뛰어난 사람을 선택해 조정에 등용했다. 이렇게 해 등용한 화랑중에는 , 훌륭한 장군과 용졸이 있었다.」


화랑중에는 용감한 사람도 있었지만 , 전원이 용감하지 않았던 것이 , 이 기술로부터 이해할 수 있다.
이하에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오는 화랑의 일람을 싣는다.

王代 花郎名 出自 分類郎徒 典拠
第二十四代 真興王 (南毛・俊貞) 三国史記、三国遺事
斯多含 奈密王七世孫、真骨、父仇梨知級飡 武官郎 三国史記
白雲 父某達官 金闡 東国通鑑、三国史節要
薛原郎 三国遺事
未尸郎 僧真慈 三国遺事
第二十六代 真平王 金庾信 加羅王裔孫、真骨、父角干舒玄 三国史記、三国遺事
金令胤 真骨、父級飡盤屈 三国史記
近郎 真骨、父伊飡大日 剣君 三国史記
竹旨郎 真骨、父述宗 得烏(谷) 三国史記、三国遺事
好世郎 釈恵宿 三国遺事
瞿旵公 三国遺事
居烈郎 三国遺事
実処郎 三国遺事
宝同郎 三国遺事
第二十九代 太宗武烈王 官昌 真骨、父伊飡(将軍)品日 三国史記
文努 金歆運・僧転密等 三国史記
第三十一代 神文王 宝川 真骨、王子 三国遺事
第三十二代 考昭王 夫礼郎 真骨、父薩飡大玄 安常 三国遺事
俊永郎 真才・繁完 三国遺事
第三十五代 景徳王 耆婆郎 三国遺事
第四十七代 憲安王 金膺廉 真骨、王孫、父阿飡啓明 三国史記、三国遺事
第四十八代 景文王 邀元郎 三国遺事
誉昕郎 三国遺事
桂元 三国遺事
叔宗郎 三国遺事
第五十一代 真聖王 孝宗郎 真骨、文聖王の裔孫、敬順王の父 三国史記、三国遺事

 

 

왕대 화랑명 출자 분류낭도 전거
제2십4대진흥왕 (남털·정) 삼국사기 , 삼국유사
사다함 나밀왕7세손 , 진골 , 부구이지급 무관랑 삼국사기
백운 부모타츠관 금천 동국 자치통감 , 삼국사절요점
설하라 츠카사 삼국유사
미시낭 승려진자 삼국유사
제2십육대 신페이왕 김신 가야왕예손 , 진골 , 부각 마르고 서현 삼국사기 , 삼국유사
금령윤 진골 , 부급반굴 삼국사기
근낭 진골 , 부이 다이니치 검군 삼국사기
죽지낭 진골 , 부술종 득오(골짜기) 삼국사기 , 삼국유사
호세낭 석혜숙 삼국유사
구공 삼국유사
거열낭 삼국유사
실처낭 삼국유사
보 동츠카사 삼국유사
제2십9대 태종 공적왕 관 창 진골 , 부이(장군) 품일 삼국사기
문노 금전운·승려전밀등 삼국사기
제3십일대신 문왕 보천 진골 , 왕자 삼국유사
제3십2대고아키라왕 부례낭 진골 , 부살대현 안상 삼국유사
영낭 진세·번완 삼국유사
제3십오대 경덕왕 기파낭 삼국유사
제47대헌야스왕 금응렴 진골 , 왕손 , 부아 계명 삼국사기 , 삼국유사
제48대경 문왕 요원낭 삼국유사
예낭 삼국유사
카츠라 겐 삼국유사
숙종낭 삼국유사
제5십일대 마사키요왕 효종낭 진골 , 문장 성왕의 예손 , 경순왕의 아버지 삼국사기 , 삼국유사

 

화랑의 리스트 중(안)에서 , 굵은 글씨가 군사 관계자. 불과 5명.

여기에는 활약했을 때에는 이미 화랑은 아니었다고 생각되는 인물도 넣고 있다.

기록에 남아 있는 화랑의 대부분은 , 군사와는 무관계.

그리고 사다함이나 관 아키라 , 김? 운등의 군사에 관계한 화랑은 , 종군때에 , 재차 무관에 임명되고 있다.
즉 , 화랑은 원래 정규의 군사 조직의 밖에 있는 집단이다.


여기까지로 밝혀진 사실을 확인하자.

화랑의 특징은 ,

1 미녀의 대체품으로서 선택되었다

2 미남자인 것이 조건

3 주된 일은 국내의 여행과 시가를 음일

4 기본적으로 군사 관계자는 아니다

5 화장을 해 , 깨끗한 옷을 입는다

6 전장에 가는 일도 있다

 


이것으로 분명할 것이다.
화랑은 남창이다.

 

 

........................-ㅁ-

 

출처 : 엔조이재팬

 

http://bbs.enjoyjapan.naver.com/tbbs/read.php?board_id=thistory&nid=1573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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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해돌이 | 작성시간 06.02.05 뭐 기모노 벗는게 용이한 건 xxX 한 거라고 쓰시는 한국의 애국자 문필가도 50년대 있었는데요. 50보 100보 입죠
  • 작성자살라자르 | 작성시간 06.02.05 실제 화랑은 남창은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충성을 중요시하는 사무라이단체도 아닌 지금의 보이스카우트 같은 단체였다고 하네요 또한 그 당시에는 유교도 퍼지지 않았던지라 그 단체에서 동성애자가 있던경우도 있다나 ;
  • 작성자거북선 | 작성시간 06.02.06 가부키하고 비슷하네요. 처음에는 여자 배우였다가 문제가 되자 여장남자를 쓰는데. 그때 동성애가 된것 하고 아주 비슷하군요.
  • 작성자거북선 | 작성시간 06.02.06 대학교때 일본문화시간에 미소년을 어릴때 데려다가 다이묘가 동침을 하면 전쟁터에 데리고 나가 바로 뒤에 세운다고 합니다. 그러면 평생 배신을 않한다고 들은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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