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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자 율리아누스의 무모한 행동

작성자아이크|작성시간11.08.18|조회수103 목록 댓글 2

배교자로 불리는 율리아누스는 기독교를 교묘하게 탄압하면서

이교 부흥을 위해서 노력한다.

원래 기독교도였던 그가 이교 숭배자로 변절하자 기독교인들은

그를 배교 황제라고 불렀다.

 

이교의 재흥을 위해 애쓰던 그는 페르시아 원정을 감행한다.

6만 5천 명이라는 대군을 동원해서 페르시아를 완전히 정복하려고 했다.

알렉산더 대왕처럼 되고자 했던 모양이다.

 

군대를 둘로 나눠서 3만 5천명은 자신이 직접 이끌고

3만명은 친척인 프로코피우스에게 맡겨서 후방의 안전을 도모했다.

 

황제 직속 1군은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서 메소포타미아 중부로 진출했으며

2군은 아르메니아쪽으로 북상해서 1군의 후방을 엄호하는 한 편, 아르메니아군과

연합해서 티그리스강을 따라 내려온다는 전략이었다.

두 부대는 사산조의 수도인 크테시폰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황제는 직접 용맹한 군대의 선두에 서서 진격했고, 연전연승을 거둔다.

티그리스 강을 건너서 크테시폰 앞까지 파죽지세로 진격해 갔고

크테시폰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주력은 궤멸당한다.

 

사푸르2세는 수 차례 사절을 보내서 강화를 요청하지만, 거부당한다.

한편 로마군은 연전연승을 거두면서 크테시폰 성문 앞까지 진격했지만

갑자기 전황이 미묘하게 변한다.

아르메니아군과 동맹해서 오기로 한 프로코피우스의 2군이 기한을 넘기면서도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2군과 연합해서 크테시폰 공략을 행하면 전쟁에서 확실한 승기를 잡게 되는 셈인데도

2군으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그래서, 1군 단독으로 크테시폰 공략을 행하려고 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공략전은 실패할 확율이

많으며 오히려 위험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 된다.

과거 로마군에게 무려 3차례나 공략당한 크테시폰인데도 로마 수뇌부들은 공략이 실패할 거라는

비관적인 분위기였다.

 

지금까지 파죽지세로 연전연승을 달려온 로마군답지 않게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태도로 변모했다.

할일 없이 크테시폰 성 앞에서 2군의 도착을 기다리던 중,.. 한 명의 페르시아인이 등장한다.

페르시아의 명문 귀족인 그는 율리아누스 황제에게 최고의 경의와 찬사를 표하면서 접근해 왔다.

 

그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황제의 용맹과 위업을 찬양하면서, 충성스러운 안내자가 되겠다고 나선다.

황제의 페르시아 정복을 돕기 위해 이 한 몸을 바치겠다고 나선 페르시아인은 충성을 보증하기 위해서

다수의 페르시아인을 이끌고 와서 황제에게 의탁한다.

로마 지휘부는 이 인물의 신용에 대해 의심을 품었고 황제에게 충고했으나, 황제는 이 인물을 완전히

믿고 만다.

장차 페르시아의 위대한 애국자로서 찬양받게 될 이 페르시아인은 황제를 교묘하게 속이고, 유인하기 위해서

파견된 첩자였다.

 

소신이 직접 황제를 사푸르 왕의 앞으로 인도하겠나이다. 그러면 폐하는 1번의 전투를 통해서 사푸르 왕을

사로잡고 페르시아의 정복자가 되실 겁니다.

 

이렇게 말하자... 황제는 알렉산더 대왕처럼 될 수 있다고 믿었고, 이에 따른다.

그래서, 크테시폰 공략을 포기하고~ 내륙 깊숙이 들어가기로 한다.

로마 지휘부에서 이러한 황제의 무모함을 만류했지만, 황제는 전혀 듣지 않았다.

 

황제는 다수의 함선과 중장비, 식량, 자재를 전부 불태워 버리도록 했다.

단지 가교용 함선들과 33일 분의 식량을 지니도록 했다.

적지 한 가운데서 벌인 이런 행동을 율리아누스의 배수진이라고 불렀다.

나지안즈의 그레고리우스는 이를 배교자의 미친 행동이라고 비웃었다.

 

율리아누스의 행동은 확실히 무모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고국에서 멀리 떨어진 적지 한복판에서 3만이 넘는 병력을 보급 수단도 없이

위험에 내팽개치는 꼴이었다.

그만큼 황제는 전적으로 페르시아인을 신용했던 것이다.

 

페르시아인의 안내를 따라서 수사로 진격하면 식량 보급 문제가 단숨에 해결될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수사, 엑바타나 같이 풍요한 지역을 점령하면 알렉산더 대왕처럼 페르시아 정복을 이룩할 수 있다는

황제의 믿음이 이런 상황으로 몰고 갔다.

 

하여튼 로마군은 페르시아인의 안내를 받으며 티그리스 너머의 내륙 깊숙이 들어간다.

호랑이 아가리 속으로 들어가는 사실도 모른 채....

페르시아인에게 유인되어 가는 로마군의 모습은 카르헤로 유인당한 로마군과 흡사했다.

오지 깊숙이 유인해 가던 페르시아인은 어느 날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사라진다.

 

페르시아인이 이끌고 왔던 부하들을 문초해 보고 나서야 철저하게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지리도 잘 모르는 오지 속에 버려진 로마군의 식량도 이미 바닥나는 중이었고, 좌절과 낙망에 빠진

황제는 탈출에 나선다.

페르시아는 이미 로마군이 지나가는 모든 지역을 철저하게 초토화시켜서 식량 공급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식량이 떨어져서 기아로 죽기 전에 재빨리 탈출해야 한다.

일단 로마의 동맹인 코르두에주로 이동해서 활로를 찾기로 결정한다.

전속력을 다해서 티그리스를 따라서 북상해 간다.

 

후퇴하는 로마군의 배후에 갑자기 거대한 흙먼지 구름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저 황야를 방랑하는 야생 당나귀 떼인지 알았는데....

로마군의 주위는 어느 새 어마어마한 규모의 대군에게 둘러 싸인다.

 

페르시아 최고의 용장인 메라네스와 노호르다테스 두 장군이 이끄는 선발대를 시작으로

귀족과 태수들, 사푸르 2세의 왕자들, 제일 마지막에 사푸르 2세의 본대가 등장한다.

무려 10만이 넘는 대군이 로마군을 포위한 것이다.

사푸르2세는 매우 교활하고 인내심 있게 함정을 팠고, 로마군이 걸리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적지 한 가운데서 보급도 끊어진 채 포위당한 로마군의 운명은 실로 백천간두였다.

율리아누스 황제의 무모함이 아니었다면 이런 상황으로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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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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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빤스지기 | 작성시간 11.08.23 군사적 경험이 율리아누스가 어느정도 있었다지만 그것을 로마의 지원능력과 병력등을 무시하고 무리하게 전투를 끌었죠.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트라야누스와 닮기도 한 삶이었습니다.
  • 작성자아이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8.23 적어도 트라야누스는 저런 무모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죠. 율리아누스라는 인물은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고, 무모한 모험을 했다가 요절한 인물이죠. 이미 로마 제국의 기독교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인데도 이를 거부하고 이교화를 시도했죠. 로마인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페르시아 원정을 감행하다 제 명에 못살고 갔다는 사실을 보면 무모한 영웅 심리에
    사로잡혔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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