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로 선택된 맛디아와 열두 사도(행1:21-26)
1. 사도 보선을 위한 공동 의회.
사도 선택을 위한 공동 회의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감람산에서 승천하시기 직전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되라고 명하셨다. 제자들은 그 말씀을 실현하여야 했다. 그래서 본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12명을 제자로 삼으시고 가르치시고 보이시고 명령하셨다. 그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그 사도직을 버리고 죽게 되었다. 그리하여 가룟 유다 대신 한 사람을 채워야 했다.
그리스도께서 12명의 사도를 택하신 것은 이스라엘이 12지파로 기초되어 형성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도 12사도로 메시아 왕국을 이루시려고 12명을 선택하셨다. 12명을 선택한 뜻은 유대의 열두 지파를 기본으로 하여 한 한 사람당 한 지파를 감당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유대지파 외에 이방인 사도로 선택한 것이다.
구약의 하나님의 선민의 나라는 야곱의 열두 아들을 기초로 하여 이루었다. 신약의 메시아의 나라는 12사도들을 기초로 하여 이루시려 하심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12지파로 12사도로 이루시기 때문이다.
(계 21:12-14.)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 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 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 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13)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14)그 성에 성곽은 열 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 이 사도의 열 두 이름이 있더라.
계시록에 기록된 영원한 새 예루살렘은 열두 기초석 위에 세어졌고 그리고 열두 출입문에 12지파의 문패가 붙어있다. 열두 사도가 전한 복음의 반석 기초위에 선민을 위해 이루어진 영원한 메시아 왕국이다. 다시 말하면 이 열두 사도의 복음을 믿는 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인 것이다.
2. 사도의 자격자.
사도의 자격자 기준을 정함
(행 1:21-22.)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리워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22)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로 더불어 예수의 부활하심을 증거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세례요한 때부터 감람산 승천까지 그리스도와 제자들과 함께 출입한 자이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증인이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하고 확실하게 믿어야 한다. 믿지 않고 전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그리스도를 모르고 전하는 자도 거짓말 하는 사로 거짓 선지자이기 때문이다. 세례요한 때부터라는 말은 그리스도 사역 처음부터 승천 하시기까지는 마지막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자들과 함께 출입한 자라는 말은 처음부터 마지막 까지 그리스도와 동고동락하면서 처음부터 가르침을 받고 생애동안 그리스도의 행하심을 목격한 자이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그 선지자의 가르친 진리를 잘 알고 믿어야 하며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증거를 보이신 행적을 목격한 자이야 하며 대속자로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목격한 자이어야 하며 영생의 진리로서 부활을 목격한 자이어야 한다. 복음이란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늘의 선지자이며 우리의 대속자이며 우리의 영생 부활인 것이다.
3. 추천된 두 사람.
사도로 추천된 바사바 맛디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를 추종한 자로서 두 사람이 추천되었다. 한 사람은 로마식 이름으로 바사바(βασαβα)이고 히브리식 이름으로 요셉 유스도(יוׂסֵף Ιωσηφ Ιουστος-그는 더하심)이다 그리고 한 사람은 맛디아(μτταθιας 하나님 선물)이다. 당시에 사도들은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제자로 부름을 받지 않았어도 제자들과 똑같이 생활 한 사람들이다.
사도는 한 사람을 보선하는데 자격자는 두 사람이 추천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방법으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공평성에 위배되는 일이므로 부정한 것이다. 그래서 두 사람을 놓고 기도하고 제비뽑기로 선택했다.
제비뽑다란 말은 히브리말로 구랄(גזׂרַל), 헬라말로 에발론(ηβαλον)이란 말로 하나님께 뜻을 묻는 방법이다. 제비뽑기는 구약 시대에 모세 때 규정해주신 제도이다.
성막 시대 아사셀 양을 선택할 때에 제비뽑았다.
(레 16:7-10.)또 그 두 염소를 취하여 회막문 여호와 앞에 두고(레 16:8)두 염소를 위하여 제비 뽑되 한 제비는 여호와를 위하고 한 제비는 아사셀을 위하여 할지며(레 16:9)아론은 여호와를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를 속죄제로 드리고(레 16:10)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대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에 제비뽑기로 정하라 했다.
(민 26:55-56.)오직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그들의 조상 지파의 이름을 따라 얻게 할지니라 56)그 다소를 물론하고 그 기업을 제비 뽑아 나눌지니라
여호수아가 모세에게 주신 제도대로 제비뽑기로 땅을 분배하였다.
(수 18:7-11.)레위 사람은 너희 중에 분깃이 없나니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이 그들의 기업이 됨이며 갓과 르우벤과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저편 동편에서 이미 기업을 받았나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그들에게 준 것이니라 8)그 사람들이 일어나 떠나니 여호수아가 땅을 그리러 가는 그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그려가지고 내게로 돌아오라 내가 여기 실로에서 여호와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제비 뽑으리라 9)그 사람들이 가서 그 땅으로 두루 다니며 성읍들을 따라서 일곱 부분으로 책에 그리고 실로 진에 돌아와 여호수아에게 나아오니 10)여호수아가 그들을 위하여 실로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고 그가 거기서 이스라엘 자손의 분파대로 땅을 분배하였더라 11)베냐민 자손 지파를 위하여 그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으니 그 제비 뽑은 땅의 경계는 유다 자손과 요셉 자손의 중간이라.
사람이 제비를 뽑으나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다고 했다.
(잠 16:33)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4. 선택된 맛디아(ματταθιας).
사도로 선택된 맛디아
맛디아는 당시 흔한 이름이다. 사도로 뽑혀 사도 중에 하나로 열두 사도중 하나가 되었다. 사도가 된 맛디아의 행적은 별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A. D. 1320년경에 활동했던 헬라 역사가인 니케포루스의 교회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유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카파도키아, 이집트, 에티오피아에서 복음을 전했고 80년경에 흑해 동부 연안에 위치한 오늘날의 조지아공화국에 해당하는 콜키스에서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승에 의하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서 돌에 맞은 후 목 베임을 당해 순교했다고 한다.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맛디아가 예루살렘에서 나이가 들어 자연사했다고 증언했다.
역사적으로는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1세의 어머니인 헬레나가 성지 순례 중 맛디아의 것이라고 여겨지는 유해를 발견하고 로마로 옮겨왔는데, 성 마리 대성당에 안치되었다가 아그리시우스(A.D. 322년경) 주교에 의해 트리어로 옮겨졌고, A. D. 1127년 그 유골 중 일부가 베네딕트 수도회 소속 성 맛디아 수도원 성당으로 옮겨져 안치되었다고 한다.
5. 그리스도 12인의 사도들.
그리스도의 12인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시작하여 땅끝 까지 증인 되라는 말씀을 따라 일생을 사명에 살면서 생명을 바쳤다.
1) 베드로(PΠετρος)
사도 베드로
베드로는 수제자(首弟子)라고 일컫는다. 원래 이름은 시몬(히 ןוׂמישׁ 아 Σιμων)이고 그리스도께서 지어준 이름 베드로(Πετρος 히 게바 כֵיפָא)이다
예수의 승천 후, 베드로는 명실공히 교회의 으뜸가는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마티아를 새로운 사도의 일원으로 뽑을 때 주도적 역할을 하였고, 이른바 오순절(五旬節) 이후 '성령의 도움으로' 많은 군중에게 설교하여 교도수가 급증하였다. 또 그는 사도들 중 첫 번째로 기적을 행하여, 절름발이를 고쳤다(사도 3:1∼11). 베드로는 아내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시작하여 로마까지 전도했다. 네로 황제 박해 때에 로마를 피해 나가다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다시 로마로 와서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헸다.
2) 안드레(Ανδρεας)
사도 안드레
그리스도의 12사도 중 한 사람. 갈릴리 호반 벳세다의 어부로서 베드로의 동생이며 최초로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 안드레는 원래 세례요한의 제자였다. 그러다가 세례요한이 그리스도를 증거하자 그리스도를 따른 사람이다. 그러므로 제자 중에서 가장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사람이다.
안드레는 갑바도기아, 비두니아, 갈라디아, 비잔틴에서 설교했다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전도한 곳이 수구디아 현재 러시아 콘트 족이다 코트 족은 난폭하기로 유명한 족속이다. 또 해적의 나라 영국, 스코틀렌드 이다. 이들은 섬사람들이기에 해적의 근성이 있었다. 안드레의 선교로 영국은 세계의 신사 나라가 되었다. 또한 이 스코틀렌드 신도들이 미국에 건너와 오늘의 기독교 국가를 만들었다.
안드레는 헬라지방 바스라스에 지사 아스라(Ασρας)란 사람이 있었는데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이었다. 아스라의 아내 맥시밀러(Μεσιμιλεα)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 아스라가 내 아내가 죽으면 자기도 같이 죽겠다고 칼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드레가 찾아가 기적적으로 살렸다. 이로 인하여 아내가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종이었던 스트라스토클레스(Στραστωκλες)가 중병에 들렸는데 안드레가 고치게 되니 이 종도 믿게 되고 그이 친구 종들이 믿게 되었다. 그 후에 아스라의 형제도 믿게 되자 안드레를 미워하고 안드레를 죽이려고 체포하였다. 그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면 쉽게 죽으니 고통을 더 주려고 나무에 매달아 주리고 목말라 죽게 하였다. 안드레는 자기를 X자 십자가에 달아 달라고 요청하였다. 집행자들에게 매를 많이 맞고 주리고 목말라 죽었다.
특이한 것은 A.D. 337년 헝거스(Hernggers)가 스코틀렌드 왕이 되었을 때 남쪽 잉글렌드와 전쟁을 하게 되는데 어느 날 저녁 꿈에 안드레가 나타나 이기리라 예언하였다. 그리하여 그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승리하기까지 그의 눈에는 안드레의 십자가가 떠나지 아니 하였다. 그리하여 파란 하늘에 X형 십자가를 새긴 국기를 삼아 마침내 채택 되었다. X현 십자가는 스코틀렌드 국기가 되었다.
3)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Ιακωβος)
.사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신약성서에 야고보가 3인이 나타난다. 하나는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그리스도의 동생 요셉의 아들 야고보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인데 요셉의 아들 야고보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후에 믿은 사람이다.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이고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살로메는 마리아와 자매지간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육신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사촌 형제지간이다.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는 큰 야고보라 칭했고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라 칭했다.
야고보는 사도시대 아그립바 1세(헤롯 아켈라오의 아들)에게 주후 37년-44년에 순교한다. 헤롯의 가문이 3대를 이어 오면서 왕위에 있었는데 아그립바는 바로 헤롯의 4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 아켈라오에게 낳은 손자이다. 야고보는 최연소자로 아그립바 1세에게 참수형으로 순교했고 아그립바 1세는 몸에 벌레가 먹어서 죽었다.
4) 요한(Ιωαννης).
사도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신약성서에 야고보가 3인이 나타난다. 하나는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그리스도의 동생 요셉의 아들 야고보이다. 이 세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의 제자인데 요셉의 아들 야고보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후에 믿은 사람이다.
야고보는 요한의 형제이고 요한의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살로메는 마리아와 자매지간이다. 그러므로 야고보는 육신적으로는 그리스도의 사촌 형제지간이다.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는 큰 야고보라 칭했고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는 작은 야고보라 칭했다.
야고보는 사도시대 아그립바 1세(헤롯 아켈라오의 아들)에게 주후 37년-44년에 순교한다. 헤롯의 가문이 3대를 이어 오면서 왕위에 있었는데 아그립바는 바로 헤롯의 4째 부인에게서 낳은 아들 아켈라오에게 낳은 손자이다. 야고보는 최연소자로 아그립바 1세에게 참수형으로 순교했고 아그립바 1세는 몸에 벌레가 먹어서 죽었다.
4) 요한(Ιωαννης).
사도 요한
신약 성서에 요한이 여러 사람이 있다. 세례요한, 베드로의 아버지 요한, 마가 요한, 제사장 요한, 세베데의 이들 요한 즉 사도 요한이다.
세베데의 아들 요한은 야고보와 형제지간이다.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갈릴리의 어부로서 종업원을 두고 어업을 했던 그 당시 부유한 가정의 아들이다. 요한도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요한의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 황경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극성스러운 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적극적인 분이었다. 예베소 교회 감독의 플라크라테스 서신에 이런 글이 있다.
예루살렘 뒷골목에 그슬린 작은 집이 있다 지금은 아랍 사람의 집인데 원래 세베대의 집이었다. 세베데는 갈릴리에서 생선 업을 하였는데 예루살렘에 지점을 경영하였다. 이때 제사장의 가정에는 생선을 늘 공급하는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의 가정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영향을 받아 사랑의 사도라는 칭하게 되된 것이다.
요한의 이름을 요하네스라고도 한다. [의미는 여호와의 깊으신 은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별명을 주셨는데 보아너게이다.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랑의 제자로 부드러운 제자로 나타난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릴 때에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와 함께 조용히 골고다까지 따라갔던 사람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신임을 받은 자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면서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의 부양을 이 요한에게 의탁했다. 요한은 그를 에베소교회에 정주할 때에 같이 모시고 있었고 마리아는 거기서 죽었다고 한다. 요한은 에베소에 있다가 주후 81-96년에 도미티안 로마 황제의 핍박에 의하여 밧모 섬에 위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받아 기록하고 에베소에 돌아와서 순직했다고 한다. 사도 요한은 성경 요한복음, 요한1. 2. 3서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기록했다.
5) 빌립(Φιλιππος)
사도 빌립
성경에 빌립이 3사람 나타난다. 1) 분봉 왕 헤로디아의 남편 빌립이 있다. 2) 초대교회 집사 빌립이 있다. 3) 사도 빌립이 있다. 제자 빌립이라는 이름의 뜻은 필립(φιλιπποs)이다. “말(馬)을 좋아하는 자”란 뜻이다.
빌립은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이 벳세다 사람이다. 세례요한의 집에서 그리스도를 처음 본 사람이다.
빌립은 가시 채찍에 맞아 순교한 사도이다. 역사적인 구전에 의하면 빌립은 철학의 도시 아덴에서 전도하였다. 한번은 300명의 철학자들을 모여 있는데 설교하게 되었다. 새 학설이라 하는 면에서 모였을 때에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유창하게 전했다. 빌립은 아덴에 1년을 유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여러 이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고 교회를 설립하였다.
빌립은 전도 마지막에 히에라포리스에서 순교 하였다. 순교하게 된 이유는 이 지방은 큰 뱀을 섬겼다. 빌립이 전도하자 많은 사람이 개종하였다. 그리하여 그 지방사람 총독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리하여 빌립을 죽이려 하고 잡아다가 거꾸로 매달아 가시 채찍에 맞아 순교했다.
6) 바돌로매(Βαθολομαιος)
사도 바돌로매
바돌로매는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이다. 이는 빌립에게 전도를 받고 빌립과 친절한 사이가 되었다. 갈릴리 가나 출신이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다. 바돌로매(나다나엘)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인정할 만큼 신앙성품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사도가 되어 인도와 아르메니아에서 전도하였다.
빌립이 그에게 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나사렛 예수라 하니 어떻게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 하였다. 다시 성경에는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신다고 예언되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라 하니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바돌로매는 인도에 선교한 사람이다. 바르톨로메오는 그리스도가 승천한 후 소아시아 지방인 프리기아와 리카오니아 등지를 거쳐 아르메니아에 도달해 그 곳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이교 사제들의 선동을 받은 아스티아제스라는 왕에 의하여 참수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돌로매가 왕의 미친 딸을 고치고 왕이 섬기는 우상의 거짓됨을 폭로하고 거기에 접한 악마를 추방하고 임금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바돌로매를 미워하였다. 임금이 형제인 아스터아케스에게 모함하여 모함의 서신을 보냈다. 왕의 형제 아스티아케스는 바돌로매를 체포하여 곤봉으로 많이 때렸다. 그 후에 산 채로 전신의 가죽이 벗겨지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머리가 베어지는 등 갖은 혹형을 당하였다.
7) 도마(Θωμας).
사도 도마
성경에 도마의 이름이 세 가지로 나타난다. 토마(Θωμας), 디두모(Λιδυος), 유다(יהוּדָה)이다 이는 제자 중에 의심 많은 제자로 알려 졌으나 확신을 얻은 후에는 성자로써 주님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다.
도마는 인도에서 선교하고 순교하였다. 사도들이 선교지역 제비를 뽑을 때에 인도가 뽑혔다. 도마는 자신이 어떻게 인도 같은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가? 하고 염려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겁내지 말고 가서 전하라 명하셨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항상 있으리라 하셨다. 그러자 도마는 다른데 같으면 몰라도 인도에는 못가겠습니다. 했다.
얼마 후 아바네스라는 인도의 장군이 왕의 명령을 받아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다. 이는 궁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목공을 구하려 왔다. 이 때에 예루살렘 시장에 아바네스에게 나타난 사람이 있으니 은 30을 주고 목공을 사가라 하여 거래가 마쳤다. 도마는 자기도 모르게 은 30에 팔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도마는 임금에게 소개되고 궁전과 신전을 짓기 위해 설계하였다. 임금은 넉넉하게 돈을 주었다.
도마는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서 궁전은 모르지만 신전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궁전만 짖고 신전은 짖지 않기로 결심하고 궁전을 짓는 동안 열심히 전도하다가 죽기로 결심하였다.
임금의 신하가 개종하고 많은 사람이 전도를 받기 시작하였다. 임금이 도마에 대하여 소문을 듣고 신하에게 물었다. 신하는 도마가 특별한 성자인 것과 그의 생활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주 금식과 단식을 하며 소금에 빵을 찍어 식사하며 냉수를 마시고 살며 날이 춥거나 더웁거나 한 겹의 옷을 입고 살며 누구에게도 요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있는 것을 아낌없이 가난하고 어려운 자에게 나누어 주며 일생을 보냅니다.
왕은 도마를 불러 신전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도마는 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왕이여 왕이 요구하신 신전보다 왕이 영원히 거하실 수 있는 신전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보실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 가지실 수 있습니다. 제가 지은 건축은 지상의 것이 아니고 천상의 것입니다. 이것이 죄가 되거든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했다 왕은 분노하여 왕명을 어긴 죄로 투옥시키고 죽이라 명하여 창에 맞아 순교했다.
다고 한다.
8) 마태(Mαθθαιτοs).
사도 마태
마태라는 의미는(μαθθαιτοs) “하나님의 은사”라는 의미이다. 마태는 가버나움 인근 항구의 세리였다. 세관에 앉아 있다가 그리스도에게 부름을 받았다.
마태는 최초의 2복음서 기록자이고 히브리인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대망하는 메시아 즉 왕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이 복음서를 기록하여 전하였다. 이 당시 저술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유명 작가도 아닌 자연인으로서 이 장구한 복음서를 기록한다는 것은 사명감이 기록할 수 없다.
당시 세리는 인간이 아니고 개 짐승 취급받는 계급이다. 유대 사회에서는 로마에게 세금 내는 것을 불신앙이고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세금을 잘 내지 않는다. 마태는 그 세리장이 채용한 사람이다. 세리는 종교적으로 민족적으로 버림받는 사람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으로 뷸행한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기를 부르실 뿐 아니라 제자로 삼으신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었고 감사한 나머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자기의 직업을 버리고 따랐다.
마태는 글로 복음을 전한 사람이다. 마태의 행적은 그다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마태가 예수님 당시에 당장에는 활동하지 않았지만 그의 저서 마태복음은 대대에 수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의 순교하여 생명을 바쳤다. 소크라테스의 말에 의하면 사도들이 선교지를 놓고 제비를 뽑았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 할당되었다. 마태의 죽음에 대하여 클레멘스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에 의하여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
9)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Ιακωβος).
사도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야고보는 알패오와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며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라는 것 외에는 거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신약성경에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리고 구전에 의하면 그는 페르시아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한 사실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은 간략하게 알페오의 아들로 태어나 사도로 부름 받아 순교하여 일생을 마쳤더라고 기록된다.
야고보는 알패오와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며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라는 것 외에는 거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다음의 행적은 알패오의 야고보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동일 인물이라는 가정 하에서 기술된 것이다.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그를 시기하고 경계하던 바리새파에 의해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바리새파는 부활절 날 야고보를 강제로 끌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 끌고 가 각종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배교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야고보가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며 버티자 화가 난 바리새파는 즉시 그를 성전 꼭대기에서 떠밀려 떨어뜨린 다음 일제히 돌로 쳤기 때문에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10) 다대오(Θαδδειος)
사도 요한
신약 성서에 요한이 여러 사람이 있다. 세례요한, 베드로의 아버지 요한, 마가 요한, 제사장 요한, 세베데의 이들 요한 즉 사도 요한이다.
세베데의 아들 요한은 야고보와 형제지간이다. 어머니는 살로메이다. 갈릴리의 어부로서 종업원을 두고 어업을 했던 그 당시 부유한 가정의 아들이다. 요한도 세례요한의 제자였다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요한의 하나님을 잘 섬기는 가정 황경에서 자랐다. 어머니가 극성스러운 만큼 하나님을 섬기는 일도 적극적인 분이었다. 예베소 교회 감독의 플라크라테스 서신에 이런 글이 있다.
예루살렘 뒷골목에 그슬린 작은 집이 있다 지금은 아랍 사람의 집인데 원래 세베대의 집이었다. 세베데는 갈릴리에서 생선 업을 하였는데 예루살렘에 지점을 경영하였다. 이때 제사장의 가정에는 생선을 늘 공급하는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의 가정이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 영향을 받아 사랑의 사도라는 칭하게 되된 것이다.
요한의 이름을 요하네스라고도 한다. [의미는 여호와의 깊으신 은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별명을 주셨는데 보아너게이다. [우뢰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랑의 제자로 부드러운 제자로 나타난다. 요한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릴 때에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와 함께 조용히 골고다까지 따라갔던 사람이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신실한 신임을 받은 자로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면서 그리스도의 모친 마리아의 부양을 이 요한에게 의탁했다. 요한은 그를 에베소교회에 정주할 때에 같이 모시고 있었고 마리아는 거기서 죽었다고 한다. 요한은 에베소에 있다가 주후 81-96년에 도미티안 로마 황제의 핍박에 의하여 밧모 섬에 위배되었는데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받아 기록하고 에베소에 돌아와서 순직했다고 한다. 사도 요한은 성경 요한복음, 요한1. 2. 3서 그리고 요한 계시록을 기록했다.
5) 빌립(Φιλιππος)
사도 빌립
성경에 빌립이 3사람 나타난다. 1) 분봉 왕 헤로디아의 남편 빌립이 있다. 2) 초대교회 집사 빌립이 있다. 3) 사도 빌립이 있다. 제자 빌립이라는 이름의 뜻은 필립(φιλιπποs)이다. “말(馬)을 좋아하는 자”란 뜻이다.
빌립은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같이 벳세다 사람이다. 세례요한의 집에서 그리스도를 처음 본 사람이다.
빌립은 가시 채찍에 맞아 순교한 사도이다. 역사적인 구전에 의하면 빌립은 철학의 도시 아덴에서 전도하였다. 한번은 300명의 철학자들을 모여 있는데 설교하게 되었다. 새 학설이라 하는 면에서 모였을 때에 십자가와 부활에 대하여 유창하게 전했다. 빌립은 아덴에 1년을 유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여러 이적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믿게 되고 교회를 설립하였다.
빌립은 전도 마지막에 히에라포리스에서 순교 하였다. 순교하게 된 이유는 이 지방은 큰 뱀을 섬겼다. 빌립이 전도하자 많은 사람이 개종하였다. 그리하여 그 지방사람 총독에게 미움을 받았다. 그리하여 빌립을 죽이려 하고 잡아다가 거꾸로 매달아 가시 채찍에 맞아 순교했다.
6) 바돌로매(Βαθολομαιος)
사도 바돌로매
바돌로매는 나다나엘과 같은 사람이다. 이는 빌립에게 전도를 받고 빌립과 친절한 사이가 되었다. 갈릴리 가나 출신이며 부유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이다. 바돌로매(나다나엘)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인정할 만큼 신앙성품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는 사도가 되어 인도와 아르메니아에서 전도하였다.
빌립이 그에게 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나사렛 예수라 하니 어떻게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있는가 하였다. 다시 성경에는 메시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신다고 예언되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라 하니 인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바돌로매는 인도에 선교한 사람이다. 바르톨로메오는 그리스도가 승천한 후 소아시아 지방인 프리기아와 리카오니아 등지를 거쳐 아르메니아에 도달해 그 곳에서 선교 활동을 하다가, 이교 사제들의 선동을 받은 아스티아제스라는 왕에 의하여 참수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돌로매가 왕의 미친 딸을 고치고 왕이 섬기는 우상의 거짓됨을 폭로하고 거기에 접한 악마를 추방하고 임금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우상을 섬기는 제사장들은 바돌로매를 미워하였다. 임금이 형제인 아스터아케스에게 모함하여 모함의 서신을 보냈다. 왕의 형제 아스티아케스는 바돌로매를 체포하여 곤봉으로 많이 때렸다. 그 후에 산 채로 전신의 가죽이 벗겨지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머리가 베어지는 등 갖은 혹형을 당하였다.
7) 도마(Θωμας).
사도 도마
성경에 도마의 이름이 세 가지로 나타난다. 토마(Θωμας), 디두모(Λιδυος), 유다(יהוּדָה)이다 이는 제자 중에 의심 많은 제자로 알려 졌으나 확신을 얻은 후에는 성자로써 주님을 위하여 일생을 바쳤다.
도마는 인도에서 선교하고 순교하였다. 사도들이 선교지역 제비를 뽑을 때에 인도가 뽑혔다. 도마는 자신이 어떻게 인도 같은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가? 하고 염려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에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겁내지 말고 가서 전하라 명하셨다. 나의 은혜가 너에게 항상 있으리라 하셨다. 그러자 도마는 다른데 같으면 몰라도 인도에는 못가겠습니다. 했다.
얼마 후 아바네스라는 인도의 장군이 왕의 명령을 받아 예루살렘에 오게 되었다. 이는 궁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목공을 구하려 왔다. 이 때에 예루살렘 시장에 아바네스에게 나타난 사람이 있으니 은 30을 주고 목공을 사가라 하여 거래가 마쳤다. 도마는 자기도 모르게 은 30에 팔리게 되었다. 이리하여 도마는 임금에게 소개되고 궁전과 신전을 짓기 위해 설계하였다. 임금은 넉넉하게 돈을 주었다.
도마는 자신이 주님의 제자로서 궁전은 모르지만 신전을 지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궁전만 짖고 신전은 짖지 않기로 결심하고 궁전을 짓는 동안 열심히 전도하다가 죽기로 결심하였다.
임금의 신하가 개종하고 많은 사람이 전도를 받기 시작하였다. 임금이 도마에 대하여 소문을 듣고 신하에게 물었다. 신하는 도마가 특별한 성자인 것과 그의 생활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주 금식과 단식을 하며 소금에 빵을 찍어 식사하며 냉수를 마시고 살며 날이 춥거나 더웁거나 한 겹의 옷을 입고 살며 누구에게도 요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있는 것을 아낌없이 가난하고 어려운 자에게 나누어 주며 일생을 보냅니다.
왕은 도마를 불러 신전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도마는 올 때가 왔다고 생각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왕이여 왕이 요구하신 신전보다 왕이 영원히 거하실 수 있는 신전을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보실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실 때에 가지실 수 있습니다. 제가 지은 건축은 지상의 것이 아니고 천상의 것입니다. 이것이 죄가 되거든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했다 왕은 분노하여 왕명을 어긴 죄로 투옥시키고 죽이라 명하여 창에 맞아 순교했다.
다고 한다.
8) 마태(Mαθθαιτοs).
사도 마태
마태라는 의미는(μαθθαιτοs) “하나님의 은사”라는 의미이다. 마태는 가버나움 인근 항구의 세리였다. 세관에 앉아 있다가 그리스도에게 부름을 받았다.
마태는 최초의 2복음서 기록자이고 히브리인을 대상으로 하여 그들이 대망하는 메시아 즉 왕이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이 복음서를 기록하여 전하였다. 이 당시 저술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유명 작가도 아닌 자연인으로서 이 장구한 복음서를 기록한다는 것은 사명감이 기록할 수 없다.
당시 세리는 인간이 아니고 개 짐승 취급받는 계급이다. 유대 사회에서는 로마에게 세금 내는 것을 불신앙이고 수치스럽게 생각했다. 그래서 세금을 잘 내지 않는다. 마태는 그 세리장이 채용한 사람이다. 세리는 종교적으로 민족적으로 버림받는 사람으로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으로 뷸행한 사람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자기를 부르실 뿐 아니라 제자로 삼으신다는 사실에 감사하지 아니할 수 없었고 감사한 나머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자기의 직업을 버리고 따랐다.
마태는 글로 복음을 전한 사람이다. 마태의 행적은 그다지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는다. 마태가 예수님 당시에 당장에는 활동하지 않았지만 그의 저서 마태복음은 대대에 수많은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마태의 순교하여 생명을 바쳤다. 소크라테스의 말에 의하면 사도들이 선교지를 놓고 제비를 뽑았다. 마태는 에디오피아에 할당되었다. 마태의 죽음에 대하여 클레멘스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에 의하여 사형을 당했다고 한다.
9)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Ιακωβος).
사도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
야고보는 알패오와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며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라는 것 외에는 거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신약성경에 사도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 외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그리고 구전에 의하면 그는 페르시아에서 전도하다가 순교한 사실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은 간략하게 알페오의 아들로 태어나 사도로 부름 받아 순교하여 일생을 마쳤더라고 기록된다.
야고보는 알패오와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며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이라는 것 외에는 거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다음의 행적은 알패오의 야고보고 예수의 동생 야고보가 동일 인물이라는 가정 하에서 기술된 것이다.
전승에 따르면, 야고보는 그를 시기하고 경계하던 바리새파에 의해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바리새파는 부활절 날 야고보를 강제로 끌어내어 예루살렘 성전에 끌고 가 각종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배교할 것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야고보가 끝까지 배교를 거부하며 버티자 화가 난 바리새파는 즉시 그를 성전 꼭대기에서 떠밀려 떨어뜨린 다음 일제히 돌로 쳤기 때문에 돌에 맞아 순교했다고 한다.
10) 다대오(Θαδδειος)
사도 다대오
다대오(Θαδδειος)는 그리스적 이름이고 히브리 이름은 유다(יהוּדָה)이다. 유다는 ‘존경받는’ 또는 ‘찬미하리’라는 뜻이며, 타대오는 ‘마음이 크고 넓다’는 뜻이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형제 관계이며 가룟 유다와는 다른 사람이다. 누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서는 그를 유다라고 부르고 있지만(루카 6,16; 사도 1,13), 마태오 복음서와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그를 타대오라고 부른다. 신약성서에서는 그에 관한 언급은 유일하게 사도들의 이름을 나열할 때뿐인데, 총 4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최후의 만찬 당시 유다 타대오는 예수를 향해 “주님, 주님께서 왜 세상에는 나타내 보이지 않으시고 저희에게만 나타내 보이시려고 하십니까?” 라고 물어보기도 하였다(요한 14,22).
전승에 의하면, 성령 강림 이후 유다 타대오는 시몬과 함께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페르시아 제국 지역으로 가서 포교 활동을 벌였는데, 예수에 대해 설교한 뒤 그 곳의 신상을 파괴하였다. 그러자 자신들이 여태껏 섬겨왔던 신상이 부서지자 분노한 현지인들은 그들에게 달려들어 포박한 후 죽였는데, 어떻게 순교하였는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다.
11) 가나안인 시몬()Σιμων)
사도 가나안 시몬
시몬(שימון)은 그리스도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주의 정당인 혁명당젤롯당(Ζηλωτης)원 이었다고 한다. 이름의 뜻은 ‘응답하셨다’ 또는 ‘들으심’이다.
구전에 따르면 시몬은 알패오와 클레오파스의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아들로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와 형제지간이라고 한다. 성서에 따르면, 시몬은 가나안에서 태어나 자랐으며(마태10,4), 사도가 되기 전에는 바리새파로 구성된 극단적인 유대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열심당의 일원이었으며, 마카베오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유대인 해방을 부르짖었다. 시몬은 그리스도의 설교와 기적을 듣고 본 후 감화되어 열심당에서 탈퇴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시몬은 이집트에서 설교하다가 유다 타데오와 함께 페르시아 지역으로 가서 포교 활동을 벌였는데, 예수에 대해 설교한 뒤 그 곳의 신상을 파괴하였다. 그러자 자신들이 여태껏 섬겨왔던 신상이 부서지자 흥분한 이교도들은 그들에게 달려들어 포박한 후 죽였는데, 시몬은 기둥에 거꾸로 매달려 사타구니에서부터 머리까지 톱으로 육신이 두 동강이 나는 형벌을 당하여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12) 바울(Παυλος)
사도 바울
바울(Παυλος)은 로마식 이름이고 사울(שָאול)은 유대식 로마 전역을 다니며 전도했기에 바울이란 이름으로 불려졌다.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출생. 했다. 그는 유대인 혈통에서 태어났으며 바리새인으로 유대교의 교육을 받았으며 예루살렘에서는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청년 때 이미 지도자로 인정되었다.
바울은 철저한 유대교 신봉자라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했다. 기독교인 청년 스데판이 순교당할 때 앞장섰던 사람이다. 발해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안디옥과 다메섹에 모이게 되었는데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기 위해 공식 공문을 받아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나면서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 바울은 율법에 능통한 사람이고 언어에 능숙한 사람이며 특히 로마의 시민권을 소지한 사람이라서 어느 로마 전역의 전도자로 자질을 갖춘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방인 사도로 선택했다고 성서는 기록하고 있다.
바울은 안디옥교회서 선교사로 파송 받아 전도가 시작된다. 그는 결혼도 하지 않고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 오직 전도사역에 전염했다.
파울은 초대교회를 이끈 뛰어난 지도자 중 한 사람이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교의를 전하려는 열정으로 아프리카(북아프리카) 지역을 제외한 로마 제국의 주요도시를 돌아다녔다. 바울은 1차 2차 3차 4차 전도 여행을 하면서 무려 20,000km에 이르는 거리를 돌아다니면 전도했고 많은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신약성서 27권 중 13권에 달하는 그의 이름으로 된 서신은, 초대 교회사에 있어서 기념비적인 업적이다.
바울은 전도자로서 열렬한 사람이었고 학자로서 그리스도교의 신학의 초석이 되었고 오직 그리스도를 전하는데 일생을 산 사람이다. 기독교 역사에 가장 교회를 많이 세웠고 사도로서 가장 일을 많이 한 사람이다.
바울은 3차 선교 여행 시에 에베소에서 3년을 머물렀다. 선교 여행 중에 가장 긴 시간을 이곳 에베소에서 보냈다. 결국, 바울은 적대적인 유대인들에 의해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천부장의 허락 하에 영문 층계에 서서 스스로 변호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행 22:30~23:10). 특히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베스도에 의해 심문을 받을 때 가이사 앞에서 재판을 받겠노라고 호소하였다(행 25:11). 그리하여 로마로 호송되었다.
로마로 압송된 바울은 가이사 앞에서 재판받을 날을 기다리며 2년 동안 연금 상태에 있었다(행 28:30~31). 그 가운데서도 그는 상당한 자유를 허용 받았다. 그는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자유스럽게 만날 수가 있었다. 심지어 방문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도 하였다. 후에 바울은 다시금 체포되어 로마에서 두 번째 구금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바울은 구금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A.D. 67경에 참수형으로 순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