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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배우자에 대해 바른 확신을 갖는 방법

작성자바위섬|작성시간20.03.07|조회수48 목록 댓글 0

배우자에 대해 바른 확신을 갖는 방법


<<바른 확신을 가지는 법? >>

 

1. 바른 확신을 가지는 전제 조건은 깨끗한 마음이다.

욕심과 오염된 마음 상태에서는 도무지 바른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깨끗한 마음을 지닐 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기초가 놓인다.

2. 말씀의 묵상을 통해서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3. 충분한 기도 가운데서 파생된 확신이어야 한다.

4. 나의 지식과 의지와 감정이 함께 연결된 확신이어야 한다.

5. 외적 조건이나 한 부분이 아닌 전체(숲)를 보는 데서

나온 확신이어야 한다.

6. 성령님께서 깨닫게 해주신 확신이어야 한다.

 

이 여섯 가지가 함께 연결되어 복합적으로 파생된 확신일 때 가장 안전하다.

 

<<"이끌림에 대한 감정"을 이렇게 진단하라>>

 

이끌림의 감정은 진솔하고도 친밀한 대화를 통해

인격(성품)과 성격과 가치관과 신앙과 비전에 의해서 나온 이끌림이어야 한다.

어느 한 가지가 아니라 전체에서 풍기는 이끌림일 때

그것은 아주 이상적인 자신의 배우자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끌림의 감정 속에 내 욕심이 개입되어 있지 않은가?

이끌림의 감정 속에 정말 주님께서 동의하시는가?

이끌림의 감정 속에 이기적인 동기가 숨어 있지 않은가?

정신적 내면적이며 전체적이며 그 사람의 삶에서

느끼는 이끌림이 포함되고 있는가?


<<하나님이 예비해 주신 사람임을 분별하는 12가지 지혜 >>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나의 짝은 무엇이 다른가?"

사실 이 질문은 단순히 대답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정의를 내리거나 설명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선택해 주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도 나지 않고, 가난하지도 않고,

얼굴도 멋있고, 성품도 멋지고,

점도 흠도 없는 성자 같은 부류의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외관상 특별한 모습을 갖춘 것은 분명 아닙니다.

 

삭개오처럼 키도 작을 수 있으며,

바울처럼 조금 험하게 보일 수도 있으며,

가난할 수 있으며,

아주 조용할 수도 있으며,

베드로처럼 아주 적극적이며 다혈질의 기질을

소유한 성격의 사람일 수도 있고

심지어 모가 나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임을 분별하는

좀더 쉬운 방안은 이런 부분들입니다.

 

[첫째], 하나님이 그 사람 가운데 유일하게

내게만 끌리도록 어떤 매력적인 점들을

숨겨 놓았는데 그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그 매력이란 사람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둘째], 그를 향한 외적 끌림(유혹)이 아니라

그를 순수하게 아끼고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셋째], 예비된 사람을 만나 보게 되면

나의 마음이 그 사람을 잊혀질 수 없도록

가슴속에 각인됩니다.

그래서 기억 속에 평범하게 남는 것이 아니라

가슴 깊게 남게 됩니다.

 

[넷째], 그 사람과 진지하게 대화하고 싶은 마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다섯째], 그 사람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고 싶어하며

내 인생의 동반자로 맞이하고 싶어합니다.

 

[여섯째], 꿈이든 어떤 사역이든 취미든

그 사람과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좀더 특별하게 작용합니다.

 

[일곱째], 단점들을 포함하여 그 사람의 모든 부분들을

수용할 만한 마음의 준비가 형성됩니다.

 

[여덟째], 사귀어볼수록 하나님이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발견하며 감사하게 됩니다.

만일 두 사람이 좋아하여 사귀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진다면

두 사람이 하나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아홉째], 만나면 만날수록 상대방의 소중함을 느끼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소중한 메시지도 받고 느낄 수 있습니다.

 

[열번째], 상대방의 부족보다 자신의 부족을 많이 발견하고

좀더 자신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며,

겸손과 진실함으로 상대방을 좀더 세워주고픈

마음과 노력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 됩니다.

 

[열한번째], 때로는 상대방에 대해 성령의 감동을 느낍니다.

 

[열두번째], 거룩한 길로 두 사람이 더 진지하게 인도를 받습니다.

 

이상의 12가지는 반드시 처음 한 번 만나자마다

강력하게 느껴지거나 빠르게 순식간에 다가오는

현상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처음엔 그런 부분을 거의 느끼지 못한 연인이 사귈수록

그러한 마음들이 집결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의 진정한 배필인지 확인하는 7가지 열쇠>>

 

증거를 발견해야 한다. 그가, 그녀가 나의 사람임을...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가?

물론 사람을 선택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하지만 분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다.

 

[첫째], 당신의 지식과 감정과 의지로 확인하라.

하나님은 당신에게 지식과 감정과 의지를 주셨다.

그것을 가지고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견주어보아야 한다.

단지 그 지식과 감정과 의지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다스림 받고 조절되어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둘째], 기도로 분별의 지혜를 얻으라.

분별의 지혜, 지각력을 소유하지 못하면

우리가 만나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인지 알 수 없게 된다.

분별의 지혜를 기도로 구해야 한다.

 

[셋째], 사랑의 감정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는가?

여기서 사랑의 감정이란 온전한 형태의 것이 아니라

이끌리는 감정이다. 하지만 그 이끌림이 상대방의

육체적인 부분으로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인격과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이끌림이어야 한다.

 

[넷째], 충분한 대화를 통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서로 교제할 수 있는 대화라는 채널을 주셨다.

그 대화의 채널을 통해서 서로를 알아가도록 만드셨다.

커뮤니케이션은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증거 중에 하나이다.

 

[다섯째], 사귐을 통해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또 성장하는가?

처음에 좋았을지라도 사귈수록 서로에게 거리가 생기는 경우가 있다.

반면에 처음엔 무척 싫어했는데 깊이 사귈수록 더욱 좋아지는 경우가 있다.

사귈수록 서로를 배려하고 유사한 방향과

더욱 하나되는 방향으로 성장하는지를 살피라.

 

[여섯째], 삶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가?

다른 부분들이 많더라도

현실인 삶 속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상대방의 삶의 특성과 습관을 이해할 수 있고,

그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단점까지 수용할 만한 믿음이

생길 때 바로 그런 사람이 나의 진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일곱째], 선한 비전의 유사점이 발견되는가?

직업의 세계, 소원들, 작은 꿈들은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거대한 비전, 선한 비전의 물줄기는

서로가 이해하고 바라고 기대하는 것이어야 한다.

 

 

<퍼옴>

만남과 헤어짐의 뒤안길에서-성경적인 이성교제(1)

 

 

 

결혼은 인생에 있어 하나님과의 만남 다음으로 중요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결혼과 결혼에 이르는 과정인 이성교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실제로 대부분의 미혼 남녀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입니다.

 

이성교제를 시작하려는 사람, 또는 이미 데이트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점검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교제가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한 것인가'라는 질문입니다.

 

당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인 이라면 당신은 '하나님은 나의 통치자'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백 속에는 무엇이든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합법적으로 그것을 허무실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 13절에서 예수님은 '심은 것마다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신의 이성교제 기간이 얼마나 오래 되었든, 상대를 얼마나 헌신적으로 사랑하고 있든 그런 것과 관계없이 그 관계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그 관계를 합법적으로 깨뜨리실 수 있습니다.

 

교제 중이던 사람들이 갑자기 서로에 대해 만남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거나, 헤어진 후 왜 만났었나 싶은 생각과 함께 만남이 공허하고 의미 없게 느껴지거나, 주위 사람들의 계속적이고 갈수록 심해지는 반대-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관계라면 그런 반대는 극복되어질 것입니다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그 반대는 계속될 것입니다-등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되지 않은 관계를 합법적으로 깨뜨리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출발하지 않은 교제일 경우 그 기간이 길면 길수록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교제기간이 길수록 더 깊이 정이 들고, 그래서 헤어졌을 때 상처가 더 깊고 심각한 상태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하나님의 확인 아래서 시작된 관계인지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고 시작된 교제일 경우,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확인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라면 그들이 교제를 시작했던 첫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그 교제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다음의 세가지 경우로 시작된 관계라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첫째, 상대방의 외모에 호감을 느껴서 시작된 교제입니다. 외모에는 얼굴 뿐 아니라 몸매나, 분위기 같은 것도 포함됩니다. 상대에게서 어떤 기품이 느껴졌다거나, 느낌이 특별했다거나, 첫눈에 반했다거나, 이상형이었다든지, 운명적으로 사랑을 느꼈다든지 하는 등의 말들은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상대의 외모에 끌려서 시작된 경우입니다.

 

둘째, 상대의 능력 또는 재능 때문에 시작된 교제입니다. 상대의 학력, 외국어 실력, 탁월한 리더쉽 등 능력 또는 재능 때문에 호감을 갖게 되는 경우입니다. 찬양사역자인 형제가 피아노 반주를 잘하는 자매를 보고 그것 때문에 교제를 시작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교제의 관계가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께로부터 확인되어진 관계 안에서 사역과 비젼이 일치 된다면 더 좋은 것이겠지만, 단지 상대의 재능 때문에 호감을 느껴 시작된 관계라면 그것은 바르지 않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상대의 신분 때문에 교제를 시작한 경우입니다. 의사, 변호사, 재벌, 교수 등 상대의 신분 또는 지위 때문에 시작된 교제입니다.(많은 경우 부모나 친척 어른들의 중매를 통해 맞선이 들어오는 경우 이것이 중요시 됩니다).

 

그 교제의 시작이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해당된다면, 그 관계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관계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이 세가지는 요한일서 2장 15, 16절에서 말하는 육신의 정욕(외모)과 안목의 정욕(재능, 능력)과 이생의 자랑(신분)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이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온 것임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진정 당신의 통치자시라면,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은 어떤 것이든 그 분은 합법적으로 그것을 깨뜨리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나의 원하는 것을 가로막는 독재자의 횡포가 아닌, 당신을 가장 잘 아시는 그 분의 깊은 사랑과 관심의 배려로부터 나온 것입니다.(계속)

 

 

 

 

만남과 헤어짐의 뒤안길에서-성경적인 이성교제(2)

 

이성교제에 관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되어야할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확인을 받기 전에 먼저 상대방에게 감정적으로 몰입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일단 감정적으로 몰입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감정이 앞서게 되면 기도도, 설교 듣는 것도, 말씀 묵상하는 것도 모든 것이 자신의 감정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되기 쉽습니다.

 

기도를 해도 객관적인 시각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 아닌 "이 사람과 어떻게 되게 해 주십시오"라는 식의 기도를 하게 되고, 어떤 말씀을 보아도 두 사람의 관계를 지지하고 인정하는 말씀으로 끼워 맞추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잠재의식으로 스스로가 만든 환상을 보기까지 합니다.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얼마 전 저에게 a라는 형제가 와서 기도 중에 b자매에 대한 하나님의 확신을 얻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며칠 뒤에 그 b자매가 와서 자기는 c형제에 대해 호감을 느끼며 하나님께서도 그 관계를 기뻐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이야기했던 확신들은 모두 자신들이 만든 것이었습니다.

 

20대 초반에 저도 어떤 자매가 저의 배우자가 될 것인가에 대해 빨리 알고 싶은 마음에 조급해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다니던 교회는 금요일에 청년회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혼자 기도하며 하나님께 저의 배우자가 될 자매가 우리 청년회 가운데 있다면 이번 금요일에 빨간 스웨터를 입고 오도록 해 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엡3:20) 하나님께서 그날 그 모임에 빨간 스웨터를 입고 온 자매가 3명이나 되도록 해주셨습니다!

 

진흙탕 물을 세수 대야에 퍼 와서, 그 속을 들여다 본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잘 보려고 해도 뿌연 물 속이 잘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룻밤 가만히 두었다가 다음날 들여다 본다면 진흙 성분은 다 가라앉고 그 위에 따로 구분된 맑은 물을 통해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잘 보이게 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향한 감정이 다 가라앉고 정리되기까지는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원칙적으로 '감정'이라는 것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조절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설사 자신이 꿈꾸던 모든 것을 갖춘 이상형의 사람이 나타났다 할지라도 자신의 의지로 상대방에 대한 감정에 몰입하지 않도록 다스려야 합니다. 그리고 빈 마음으로 객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기도를 해야합니다. 물론 이 때의 기도는 감정이 조금도 개입되지 않은 기도이어야 하며, 기도의 확신도 그렇게 감정적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받은 내적 확신이어야 합니다. 감정이 이미 개입되었다면 기도의 응답이나 확신도 스스로가 만든 것이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착각하는, 그러나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오류가 있습니다. 일단 느낌이 좋거나 호감이 가는 사람이 있으면 먼저 교제해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제 해 봐야 그 사람에 대해서, 또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사귐을 갖기 시작하면 사랑의 감정에 빠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객관적인 시각으로 서로에 대해서나 하나님의 뜻에 대해서 올바로 아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린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했을 때 그 기도의 응답은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기도한 사람이 정직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알 수 있습니다. 외형적인 특별한 증거가 없을 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확신은 본인 스스로 분명히 알 수 있으며, 그것은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마치 거듭난 사람이 자신의 거듭남에 대해 말로는 잘 설명할 수 없을지라도 스스로는 흔들리지 않는 확신 속에 거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일까, 아닐까?"라는 의심이나 의문, 흔들림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에 대한 증거일 수 있습니다.(계속)

 

 

 

 

 

만남과 헤어짐의 뒤안길에서-성경적인 이성교제(3)

 

두 사람의 교제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인을 받았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상대에게 정식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고, 교제를 시작해야 합니다. 자매들의 경우 이렇게 하는 것이 어렵다면 다른 분의 중재를 요청할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을 잘 알고 계시는 교회의 목사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교제를 시작하려 할 때의 주의점이 있습니다.

'조작'을 피해야 합니다. 좋아하는 상대의 관심을 끌기 위해 일부러 손수건을 떨어뜨려서 그것을 빌미로 말을 걸도록 한다거나, 청년회원들이 함께 그 사람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일부러 화장실에 시계를 풀어놓고 온다거나 해서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꾀에서 나오는 조작이며, 이러한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상대에게 분명한 관심을 표현했을 때, 상대도 같은 마음이라면 아무런 문제없이 본격적인 교제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이 두 사람의 교제에 전혀 확신이 없어서 반응을 보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결혼이란 한 사람만의 일방적인 것이 아닌 쌍방의 합의를 전제로 하는 것이니만큼 상대방도 동일한 하나님의 확신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이런 경우 함께 기도해 보자고 해 놓고는 만날 때마다 "도대체 기도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겁니까?"라든지 "아직도 응답을 못 받았습니까?"라고 재촉해서는 안됩니다. 또는 교회에서 기도할 때 일부러 상대방의 귀에 들리도록 "저 사람에게도 속히 저와 같은 확신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거나 주위 사람들에게 두 사람이 곧 교제하고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 소문을 내는 등의 행동은 상대방에게 압력을 주어서 인간의 방법으로 무언가를 이루어 나가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확신이 진정한 것이라면 그 이후의 과정도 하나님께서 친히 이끌어 가시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확인 가운데 시작한 교제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교제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사실 그러한 경우의 확률은 황소가 뒷걸음질을 쳐서 쥐를 밟는 정도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남녀 관계는 감정으로 인한 합리화의 가능성이 너무 크기 때문에 이미 시작된 관계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뜻인 것 같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설사 결과적으로 그 관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관계가 맞다고 하더라도 결혼 전에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리 신앙이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 결혼하여 살더라도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는다거나, 자녀가 아프다거나 두 사람 사이에 일시적인 갈등이 생긴다거나 하는 등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뜻을 확인한 부부는 이런 어려움이 있더라도 하나님과 서로에 대한 신뢰로 잘 이겨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확인 없이 결혼한 부부는 그런 상황이 되면 근본적으로 흔들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결혼관계의 지속적인 안정을 위해서라도 원점으로 돌아가 하나님의 뜻을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물론 이미 시작된 교제를 원점으로 돌이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이 때 두 사람은 서로의 감정을 내려놓고 기도할 수 있는 '냉각기'를 갖도록 해야 합니다. 2주 내지 한달, 또는 그 이상의 시간을 만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에는 전화나 편지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시간 동안 서로에 대한 감정이 차분히 가라앉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정직하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응답이 'yes'라면 다시 교제할 수 있으며, 'no'라면 헤어져야 합니다. 만일 헤어져야 하는 경우라면 마지막으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누십시오. 그리고 서로의 앞날에 대해 축복하는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것이 두 사람이 다음에 다시 교회에서 만나더라도 상처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성교제와 결혼-우리의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최선의 것, 최고의 배우자를 주시길 원하십니다. 아울러 우리가 이 사실을 신뢰하고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 이 문제를 헌신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믿음으로 그 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나아갈 때 우리는 나에게 가장 적절한 배우자를 만남과 더불어 개인적으로 신앙의 놀라운 성장을 경험하는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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