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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전도단계

작성자바위섬|작성시간20.03.07|조회수120 목록 댓글 0

전도단계

 
기독교 신앙은 전인적 삶의 영역 가운데서 드러난다. 그리고 복음은 불신자들에게 전인적인 삶의 정황 가운데서 역사하고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그렇기에 불신자에게 복음을 증거한다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의 복음진리를 상대방에게 제시하고 소개하는데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이전까지 자신이 지켜왔던 방어벽과 자기중심의 환경속으로 복음이 스며들어 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음전도의 시작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전하는 복음제시, 그 이전의 단계가 필요함에 대해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전전도 단계(Pre-evangelism)에 대한 무지에서 오는 어려움
복음전도에 대해 이해를 갖는데 있어서 몇가지 기초적인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첫째로, 우리는 세상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을 벗어나서는 아무도 살 수 없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들 모두는 세상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들었고, 그 복음을 통해 이 세상에서 구원을 얻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복음증거자로서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계시는 주님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 가운데 보내셨다는 사실과 이 세상 가운데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 대해 알 수 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 가운데 보내신다. “(요17:18-21)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둘째로,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배워야 한다. ‘죄 많은 이 세상, 내 집은 아니네’라고 하면서 터부시하고 거부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학문과 문화와 관습과, 주요 사상과, 논쟁거리들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또한 어떤 면에서는 배워야 한다. 세상은 전혀 배워야 할 것은 없고, 배척하고 거부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는 크나큰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주인이기 전에 먼저 이 세상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세상속에서 세상을 알지 못하고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겠다고 뛰어드는 사람이 있다면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지하철이나, 공원, 터미날 등에서 아주 껄끄러운 목소리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을 만나게 된다. 이들 중 어떤 사람은 무례하고, 위협적인 분위기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되려 저주를 하기도 하는 모습을 간혹보곤 한다. 이들은 자신이 바로 이 세상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 대학 캠퍼스에서 한적한 벤취나, 운동장 스탠드에서 노방전도를 나온 선교단체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 어떤 학생들은 지금 운동장에서 학생회 집회가 열리고 학내 문제로 인해 떠들썩한 가운데서 지금 집회에 참가중인 한 학생에게 다가가 옆자리에 앉아서는 “복음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하면서 전도를 한다. 때론 이런 전도를 통해서 회심하는 사람들을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은 세상(캠퍼스)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세상(캠퍼스)를 통해 배울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세상속에서 세상을 통해 배워야 한다. 여기에 대해 죤 스토트는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이중적 귀기울임’이라고 묘사했다. 그렇다.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과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음성을 동시에 듣는 것이 필요하다. 이 두 음성은 종종 서로 모순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 두 음성을 듣는 목적은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이 되는가를 발견하기 위한 것이다. 이 이중적 기울임, 즉 세상속에서 세상을 배우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복음전도에 있어서 필수적인 삶임에 분명하다.

◉전전도 단계란?
그러면 왜 우리는 이런 세상을 이해하고 배워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전해야 할 대상자들이 있는 곳이요, 보다더 효율적이고 적절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함이다.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전전도 단계의 핵심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한 영혼이 전혀 복음에 대해 알지 못하다가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장하는 모습에 대해 제임스 F. 엥겔은 다음과 같은 도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재생산
양육 단계
청지기 직분의 수행
그리스도의 몸안으로 연합
결정후 평가
전도 단계
주인바꾸기
문제인식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긍정적 자세
복음의 의미 이해
복음의 기초지식
전전도 단계
무지
수용도

이 도식을 통해서 볼 때 전전도 단계란 바로 복음에 대한 무지 그 이전의 상태에서 복음의 기초지식을 이해하는 단계까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단계는 직접적인 복음 증거의 단계는 아니다. 그러나 이 단계를 통해서 대상자의 필요와 관심에 대해서 파악하고, 우리 그리스도인의 모습과 삶을 그들이 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다리놓기(Bridge Building)라는 단어로 묘사하기도 한다.

자아 이성 감정 환경 ⇦ 기독교 문화 신앙생활 복음
그림에서 보듯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곧장 한 개인의 중심원에 있는 자아에게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나름대로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통해 선택적으로 수용되어진다. 이 선택적 수용을 엥겔은 걸름막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이 걸름막에는 우리의 모든 가치, 신조, 지식이 포함되어 있다. 즉, 그 사람의 세계관인 것이다. 세계관이란 인생에 대한 기본적인 가치와 신조의 총체이다. 세계관은 일종의 창문이라 할 수 있는데, 이 창문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바라본다. 바로 이 세계관이라는 걸름막을 통해서 사람들은 복음의 메시지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기도 하고, 그 메시지에 선택적으로 자신을 노출시키고, 선택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 걸름막으로써의 세계관을 구성하는 요소에는 그 사람의 학문, 생활환경, 개성, 가정, 신조 등과 같은 전인격적인 요소들이다.

◉다리놓기(Bridge-Building)의 과정
다리놓기라는 과정은 바로 사람들이 가진 선택적 수용과 노출과 반응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할 것인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접하지 않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 문화의 단면만을 보고서 기독교를 다 이해한 듯이 떠들어대곤 한다. 그러나 사실 그들은 기독교의 본질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채 모든 것을 이해한척 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은 사람들의 환경과 감정과 이성에 대해 깡그리 무시하고서 곧장 그 사람의 중심 내면에 호소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환상으로 인해 더욱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해 선택적인 수용 즉,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과 편견에 빠져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리놓기의 과정은 바로 이런 전인격인 접근을 통한 복음을 제시하기 위해 훌륭한 기초작업이다. 우리가 이미 사용하고 있는 우정전도의 방법에 있어서 이 다리놓기 과정은 대상자와 전도자 사이의 접촉점을 만들고, 복음을 인격적으로 수용하도록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기독교적 문화와 삶이 사람들의 삶과 환경속에서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이 바로 다리놓기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다리놓기의 과정은 아주 면밀하고도 주의 깊은 조사와 관찰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만약 당신이 어느날 배를 타고 항해 하다가 잘 알지 못하는 한 무인도에 배를 정박하고자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먼저 이 배를 어떤 곳에 정박할 것인지를 자세히 살피고 조사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가장 배를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는 곳을 발견하고나서 그 배를 안전하게 정박시킬 것이다. 이처럼 복음의 다리놓기 작업도 동일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런 온전한 다리놓기 작업을 통해서만이 진정한 인격적 복음증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다양한 전전도 단계의 활동들
이런 전전도 단계의 활동들은 너무나도 다양하고 방대하다. 사실 우리가 조금만 연구하고 관심을 가진다면 참으로 많은 방법과 아이디어들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개인적인 활동 뿐만이 아니라 공동체적인 활동에까지 적용할 수 있다. 아니 우리는 벌써 이런 활동을 하고 있다.
전전도 단계에 대해서 우리는 소극적인 방법과 적극적인 방법으로 크게 나누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활동영역과 범위에서의 소극적과 적극적이지 복음의 전하려는 열정이나 노력에 대한 개념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혀둔다. 세상에서 소극적인 전전도 단계의 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직접적이지는 않을지라도 복음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자신의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 그 자체가 도전이 되고,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능동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은 분명히 아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분명히 복음 증거하며 사람들이 그 빛에 드러나게 되는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이다.
전전도 단계의 활동들에 대해서 크게 나눠서 열거해 본다면 소극적 활동과 적극적인 활동들로 구분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소극적 활동들
성실, 사랑, 봉사, 희생, 권면, 우정, 상담, 따뜻한 분위기, 연합, 등의 그리스도인 개인과 공동체의 성품과 성격, 그리고 일상생활의 모습 등을 통해서 드러나는 활동들을 말한다.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자신이 속한 곳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개인적인 영향력을 발휘함을 통해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접촉점을 가지게 되곤 한다.


적극적 활동들
기아 난민 돕기 캠페인, 낙태반대 운동, 공정선거운동, 캠퍼스 건전문화 정착을 위한 모임과 홍보, 컨닝 추방운동, 순결 서약 운동 등과 같은 선전성 홍보와 캠퍼스 각종 행사와 학기 중에 가질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음악회, 연극공연, 친구초청 행사, 강연회, 대학 생활 세미나 등과 같은 보다더 적극적인 복음 증거를 위한 접촉점 마련을 위한 활동들을 말하는데 이런 활동들을 통해서 불신자 친구를 접촉하고 우정을 쌓고 이를 통해 전도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문화와 관심사들을 지닌 살아있는 사람들이 있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리가 그들로부터 배워야 하고, 그들은 우리를 통해 진정한 삶에 대한 정직한 질문과 대답을 얻어야 한다. 이러한 전도적 삶에 대한 전제들이 없이 섣불리 복음을 증거하고자 달려드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고, 오히려 복음을 향한 사람들의 문을 닫아버리도록 하는 최악의 경우까지도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전전도 단계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러한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과 복음을 전할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그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상황과 문화를 초월하여 역사하시는 복음의 능력이라는 삼차원적 관점에서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실제 우리는 성령의 능력과 복음 전도자의 자세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는 많은 관심과 연구와 준비가 있어왔지만, 실제 복음을 전해 들어야 할 대상자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선지식이 참으로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복음의 다리 놓기를 위한 단계로서의 전전도 단계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관심과 연구가 아직도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더 공부해 볼만한 책들
「당신의 메시지는 전달되고 있는가?」
「사귀는 전도 나누는 전도」
「Bridge-Building」

문화적 접근
오늘날 시대적 문화와 환경의 변화가 급변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의 요구와 관심은 나날이 변화되고 진보되어 간다. 이런 시대적 환경과 여건속에서 아직도 우리 기독교는 복음의 전달방식에 있어서 전도의 미련한 것(?)을 주장하며 버텨오고 있다.
세대가 지나오면서 이제는 이런 전도방식들이 갈수록 효과적이지 않고 사람들이 거부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는 사람들이 달라져 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상에 대한 이해없이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너무나 일방적이며, 대상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얘기가 될 수 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유대 지도자들(마12:1-37)이나, 사마리아 여인(요4:1-26)에게, 바울이 루스드라(행14:8-20)나, 아데네(행17:16-34)와, 아그립바 왕(행25:13-27)에게 전도할 때 사용했던 것처럼 복음을 듣는 사람들의 문화를 중심으로 그들이 갖고 있는 전제(문화적)를 대화의 접촉점으로 삼고 토론을 전개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도 각 사람마다의 상황에 맞도록 다르게 접근하셨고, 바울도 다른 세계에 다른 접촉점으로 접근했던 성경의 교훈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전도를 위해 복음을 온전히 이해할 뿐 아니라 전도를 받을 신세대에 대한 온전한 이해 역시 선행되어야 한다. 즉 복음증거를 위한 문화적 접축점으로써의 다리놓기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무엇이 달라지고 있는가?
첫째, 사람들의 인식체계가 달라지고 있다.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보를 분류, 단순화, 개념화하는 작업의 요구가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정보를 영상화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외부 세계를 인식하는데 시각이 70%를 자치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인식의 혁명을 가정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영상화는 폭넓게 수용되고 있다.
둘째, 사람들의 판단 성향이 달라지고 있다. 근대 문명을 꽃피운 공로로 인간 스스로 자랑했던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이 오히려 인간 파괴와 소외라는 결과를 가져왔음을 인식하면서, 사람들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감성적인 판단의 경향을 띠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날 젊은 세대는 복잡하고 골치 아픈 것, 어렵고 피곤하게 따지는 것을 싫어하고, 반지성적이고 피상적인 태도를 일종의 유행으로 혹은 시대적 풍조로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다. 때문에 ‘그냥’이라는 말이 광고의 주제어가 되기도 한다.
셋째,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이 달라지고 있다. 산업화에 의한 대량 생산과 대량소비는 문화의 대중화를 창출해 냈다. 현대의 대중문화는 언제 어디서나, 아무런 지식이나 준비없이, 즉각적인 충족감을 만끽할 수 있도록 창안되고, 팔리고 있다. 여기에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좀더 강력하고 색다른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고 있다. 문화적 조급성과 인스턴트적 쾌락에 대중화 되어버린 젊은 세대의 기형적 자아상을 이해할 수 있다.
넷째, 사람들의 진리 추구가 달라지고 있다. 오늘날 세대는 풍요로운 성장 배경에 의한 확고한 자기의식 뚜렷하다. 그래서 ‘나’의 판단과 경험과 느낌을 절대시하는 경향은 ‘직관적 주관주의’로 나타난다. ‘내가 좋으면 그만’이고, ‘어느 누구도 나를 판단할 수 없다’는 자유주의적인 주장은 절대적 진리를 인정하지 않다.
과거의 사회적, 문화적 전통과 도덕적 규범은 약화되고, 종교적 절대 진리는 진리의 상대주의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사회 심리의 배경에는 ‘인간은 마땅히 모든 사회적 제도와 생활방식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개인을 억압하는 것은 타파되어야 한다는 ’자율적 인간‘사상에 기초해 있다.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은 ‘믿어야 할 진리가 없는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삶의 가치관과 윤리가 퇴락하고 있는 것이다. 복음 전도는 바로 이런 이들에게 유일하신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는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변화하는 세상의 문화와 사상을 가운데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인간의 죄성과 또 그것을 치료하는 복음의 능력이다. 하지만 그것을 담아 내야 할 전도의 방식은 변화하는 세상과 사람들에게 맞춰져야 할 것이다.


◉전도 그 문화적 접근
이전 까지의 사용해 왔던 모든 전도의 방식들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사용하실 하나님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좀더 성경적이 되어서 복음을 듣게 될 사람들을 이해한다면 전도의 접촉점이 옮겨져야 된다는 것 또한 믿는다. 그것을 문화적 측면에서의 다리놓기라고 볼 수 있다.
문화는 하나님께서 주신 세상에서 인간이 행한 모든 수고의 열매이며 복음의 다리가 된다. 오늘날과 같은 대중문화 시대에는 문화매체를 통한 복음 전파라는 것은 중요한 전략임에 틀림없다. 지금은 기독교인들끼리 옹기종기 모여 만든 종교적 영화나 노래를 부르면서 ‘기독교 문화’를 즐길 때가 아니다. 하나님을 떠난 세속문화에 종노릇하고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키는데 눈을 돌려야 한다. 문화는 현대인들을 만나는 접촉점이다. 현 시점에서 대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노력은 ‘문화적 변증가’의 마음을 갖는 것이다. 즉 현대 문화의 양식뿐만 아니라 그 철학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것을 접촉점으로하여 복음을 전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독대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이런 일을 하는데 실패하고 있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사실은 한국교회가 현대 문화의 방향과 그 위험성을 연구하는데에 투자하지 못한 결과이다. 지금이라도 현대의 세속적인 문화의 거친 파도 앞에서 굳건히 살아갈 수 있는 바른 정신과 마음을 갖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화적 접근은 크게 문화 비평을 통한 접근과 문화매체를 통한 접근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문화비평을 통한 접근이 가능해야 한다. IFES의 미디어 사역자인 에릭 밀러는 그의 간사 사역 중 학생들과 식사하면서 록 뮤직에 관해 토론하는 방법을 사용해 왔다고 한다. 미국의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록 뮤직들의 가사를 분석함으로써 대부분의 가사들이 고독과 좌절과 의미없음 등 그것들이 죄의 결과들이라는 사실들을 발견하게 함을 통해 학생들의 변화와 회심을 체험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바른 성경적 문화관을 정립해야 한다. 아직도 문화 창조를 개인전도보다 부차적인 것으로 보거나, 세상에 문화적 영향을 나타내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고립을 자초한다든지, 세상 문화를 변력하기보다는 모방에 앞장서는 행위 등을 그만두어야 한다. 특히 세속문화가 쳐들어올까봐 종교라는 성안에 꼭꼭 숨어 바깥으로 돌이나 던지는 방어적인 문화관에서 해방되어 적극적인 문화관을 가져야 한다.
다음은, 우리의 문화관을 캠퍼스에서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특히 신앙과 공부, 신앙과 생활의 일관성을 찾는 것이 시급하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이 만든 문화만이 절대적이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기독교적인 주제를 다루지 않거나 기독교적인 냄새가 나지 않는 문화는 비기독교적이라는 자세와 같은 독선을 버려야 한다.
둘째, 문화매체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 말은 전도를 위한 문화적인 매체들을 개발하고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화 매체에는 영상매체가 있을 수 있겠고, 춤이나 음악 등의 예술 매체, 콘서트나 행사 같은 이벤트 매체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 매체를 사용함에 있어서 논의를 일으킬 수 있는 문제를 먼저 확실히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복음이 과연 대중매체를 통해(그것이 소그룹에게 보여지는 것이든, 무한대의 시청자들에게 보여지는 것이든) 일시에 대중에서 전도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1대1의 인격적인 채널을 지향해야 하는가?’ 하는 대중성에 대한 문제이다. IVF의 전도전략과 관련해서는 ‘매체를 쓰는 이유가 대중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통한 다리놓기 작업을 위한 것이다’는 전제에서 시작하고 있다. 전도는 대상이 개인이든지, 그룹이든지 인격적이어야 한다. 익명의 ‘전도 대상’들에게 살포되는 식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문화적 매체를 사용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우리의 청중, 우리의 대상이 그것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TV나 영화 등을 통해 거의 비슷한 시청각적 감각을 키워왔기 때문에 우리가 그러한 매체들을 이용한다는 것은 복음전도를 위해 훨씬 용이할 수 있다.


◉어떤 다양한 문화적 접근 방식이 있는가?
오늘날 우리가 속한 캠퍼스와 사회에서 어떤 문화적 다리놓기 작업으로서의 활동들을 가질 수 있겠는가? 아직도 많은 연구와 시도가 필요한 분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여기 몇가지의 활용할만한 방법들을 소개할까 한다.
▶행복에의 초대
전통적인 IVF멤버들의 전도활동을 위한 행사이다. 이날 멤버들은 그동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을 모임에 초대한다. 초대받은 친구들은 모임에서 레크레이션과 다과와 Sing-Along과 메시지 등을 통해서 복음에 대해 소개받고, 그리스도인의 모습에 대해 발견하는 시간을 갖는다.
▶비디오 촬영
축제 기간중 IVF 학생들은 학교에 대해서와 축제에 대한 생각들을 학생들에게 비디오 카메라를 통해 인터뷰하는 형식을 통해 모임을 소개하고 저녁에 있을 IVF모임에 초대하기도 한다.
▶비디오 상영
대학생들이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들과 관심사들을 자연스럽게 담고 있으면서 복음메시지를 전하려고 하는 비디오를 저녁 시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관람하도록 한다.
▶캠퍼스 거리극
IVF학생들은 십자가 사건을 재현하기 위해 유대 전통의상을 입고서 캠퍼스를 활보한다. 이 거리극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한후 강사가 나와서 소책자와 성경을 나눠주고, 메시지를 전한다. 또, 부활절 기간 중 학교에서 예수님의 일생에 대한 거리극을 준비해서 예수님의 사역과 십자가 사건, 그리고 부활에 대해 공연하는 것을 통해 복음을 소개한다.
▶기독교 기념행사
불교학생들은 석탄일에 캠퍼스에서는 연등을 캠퍼스 곳곳에 달고 기념하곤 한다. 우리는 부활절에 찐 계란을 학생들에게 나눠주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짤막한 소개를 한다. 크리스마스 때에도 크리스마스의 본래적 의미를 학생들에게 소개하고 전달하기 위해 조그마한 친구초청 크리스마스 행사를 계획하고 기독교와 예수 탄생의 의미에 대해 소개한다.
▶각종 대학생활 세미나
대학생과 아르바이트, 재정사용, 리포트 쓰는 법, 시간 활용 가이드, 이성교제 등의 주제를 가지고 학생들을 초대해서 초청강사를 통해 강의와 토론의 시간을 갖는다.
▶즉석 사진기
축제 기간이나, 입학식 등의 행사 때 즉석 사진기를 가지고 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것을 통해서 간단한 복음이 담긴 쪽지와 메모를 전달할 수 있고, 이후에 서로 연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도 한다.
▶일일 찻집
학교앞 커피숖을 빌려서 일일 찻집을 연다. 이 일일 찻집을 통해서 참석한 학생들에게 대학생활에 도움이되는 자료들과 안내를 해 주기도 한다. 그리고 CCM 가수를 초청하거나 음악을 들려주면서 서로 대화의 장을 가지기도 한다.
▶캠페인
선명회, 기아대책기구, 남북나눔운동 등의 활동들을 소개하고 홍보하는 시간을 가진다. 함께 바자회나 헌옷 수집, 모금활동을 하기도 한다. 이를 통해 캠퍼스에서 그리스도인의 사회활동과 그 동기에 대해 소개한다.
▶작은 음악회
다양한 볼거리와 문화에 식상한 친구들을 초대하기 위해 CCM가수나 복음송 가수, 혹은 IVF학생들 중에서 은사가 있는 친구들을 통해서 조그마한 콘서트를 개최한다.
▶학교지도 나눠주기
입학식에 참석한 신입생들에게 커피 한잔과 함께 학교 건물과 시설 이용을 위한 도움이 되는 지도를 만들어서 신입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한다.

이것 외에도 아주 많은 문화적 접근 방식들이 있다고 본다.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문화적 접근법은 효과적으로 전도라는 미련한 것을 완수하기 위해 마련된 세련되어진 활동들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오늘날의 문화와 관심들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 전도자가 가져야 할 자세는 무엇인가? 수천년을 걸쳐 내려온 복음의 메시지는 불변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나 복음의 전달방식으로써의 겉옷은 이제 시대적 유행(?)을 따라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프란시스 쉐퍼는 복음의 내용을 변질시키지 않으면서도 현대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어쩌면 인간의 문화는 사람들의 종교와 사상 그리고 윤리의 표출이기 때문에 복음이 문화 속에서 죄인을 만나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문화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복음의 다리를 놓을 것인가하는 문제인 것이다. 이제 우리의 다양한 창의력과 복음의 진실성을 토대로 다양한 문화적 접근을 시도해보자.

노방전도
그저 시골 전도사가 기차간에서 약장사 약팔듯이 외쳐대던 것, 지하철에서 전도지를 나눠주며 심판을 외쳐대던 전도자들, 역전이나 터미널, 공원에서 나이든 할아버지가 확성기에 대고 목터져라 외쳐대던 시끄러운(?) 소리들, 가끔 전도 주일에 띠를 두르고 ‘교회 좀 나와 달라’는 식의 홍보, 캠퍼스에거 다른 선교단체 학생들이 짜증을 내고 있는 사람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던 모습 따위를 전도라 착각하는 우리에겐 벌써 노방전도란 개념은 낡아빠진 반 지성적 이상한 짓(?) 처럼 보인다. 복음을 가장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공부한다고 자긍하는 기독 지성인들에겐 노방 전도는 지적이지 못한 구시대의 한 방편이라는 선입관이 지배적이지 않나 하는 우려를 해본다.

1. 간증 두 편을 통한 도전
A. 간사님, 아침에 하나님이 예레미야서 20:9의 말씀으로 강하게 도전하셨습니다.-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참을 수 없어 학교 연못에 나가보니 세 사람이 벤치에 앉아 시험공부를 하더군요. 양해를 구하고 3분 정도 예수님을 소개했는데 그 중 한사람이 관심을 보이며 더 알기를 원했지요. 결국 매일 만나게 됐는데 벌써 그 형제는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어제도 도서관 휴게실에서 낯선 형제에게 커피를 권하며 그리스도를 소개했는데 굉장히 반응이 좋았어요. 계속 기도하니까 그리스도 앞에 돌아올 겁니다. “영접한지 채 1년도 안된 형제가 확신에 찬 승리의 간증을 하는 동안 나는 들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뜨거운 심정으로 지난 겨울엔 시험 보러 온 예비 신입생들을 노방전도하여 27명을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했다는 기적적인 고백을 접하면서 살아있는 하나님을 생생히 접할 수 있었다.

B. “간사님 저는 대학 입학 후 훈련만 받으면 된다고 하기에 열심히 각종 수련회와 모임에만 쫓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생활은 피폐해졌고 생생한 삶이 없었습니다. 지난 봄 전도학교에서 접한 야고보서(1:22)의 말씀은 저의 생활 방향을 바꾸어 놓고야 말았습니다.-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그날 저녁 저는 기도실에서 엉엉 울었고 도를 행하는 것이 전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후로 도서관에 올 때마다 잠시 학교를 돌아다니다 보면 꼭 저를 기다리는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뭐 이런 사람이 있나 하는 눈치를 보이다가도 복음의 능력 앞에 호기심과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나는 더욱 더 신이나 열변을 토하며 확신을 갖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허락하신 생명이란 확신이죠. 요즘은 시험때라 하루 1시간밖에(?) 못해요. 기도가 충분하지 않으니까 힘만 들고 헛수고할 때가 많아요. 그 때마다 기도하죠.”
이것은 결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만난 이 두명은 다른 선교단체 소속의 형제들이다. 이들의 공통적 이야기는 IVF-멤버는 각종 모임에는 헌신적이지만 전도하지 않는 것이 단점이라는 것이다. 만약 전도가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악세사리에 불과하다면 그리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지상 최대의 명령이 전도라는 점에서 치명적인 지적이라 아닐 수 없다. 이런 소문을 기분 나빠하거나 변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더이상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약 1:22)가 우리 속에 없길 위하여 이 운동-노방전도-을 대대적이고도 감동적으로 전개하고 싶다. 우선 잠시 성경으로 돌아가 몇 가지 점들을 상고해 보도록 하자.

2. 성경 두 편의 교훈
A. 예수님의 사마리아 행
요한복음 4장을 묵상하다 보면 흥미있는 내용을 보게 되는데 바로 4절에 “예수께서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must) 하겠는지라”이다. 영어의 ‘must’는 강한 의지로 자기의 뜻을 관철시키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정통적 유대인이라면 보통 사마리아를 통과하지 않고 우회도로로 갈릴리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영혼을 위해 강한 애착을 갖고 보통 사람들이 꺼리는 길을 갔다. 그리고 보통 사람이 꺼리는 사마리아 여자를 만났다. 결국 부도덕한 삶으로 고민하던 여인에게 생수를 주었고, 조상들의 예배 문제(20절), 나름대로의 메시아 대망을 가지고 갈등했던 이 여인에게 메시아를 보여주셨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그 큰 환희를 외치러 마을로 내려가던 여인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오늘날 황량한 캠퍼스 구석구석에서 우리가 맛보아야 할 모습이 아닐까 한다. 예수님의 사마리아 강행(?)은 오늘 우리가 가고 싶지 않고 마음 내키지 않는 캠퍼스 연못가나 벤치, 잔디밭, 학생 식당, 휴게실 등 곳곳으로 발길을 옮기도록 재촉한다. 아마 우연히 대화를 나눈 어느 누구에게서 본문의 사마리아 여인처럼 부도덕의 문제와 종교적 갈등, 기독교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을 발견하게 되며 어쩌면 단번의 기회에 생수와 메시아를 동시에 볼 수 있게 할 것이다.

B. 빌립의 광야여행(행 8:26-40)
큰 기적과 은혜로 부흥에 접한 사마리아성은 흥분의 도가니였고, 그곳 전도자 빌립은 인기 정상 가도를 달리고 있는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묵상 중에 주님은 전혀 상식밖에 말씀을 구에게 주신다. 그곳의 군중과 성의 분위기를 떠나서 약 100여 Km 떨어진 사막 지대 가사(Gaza)에 가라는 말씀이었다(26절). 빌립은 늘어난 교인들을 관리하며 전도성경공부를 하고, 소그룹을 활성화시키고, 리더 모임을 자주 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확신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주님은 혼잡한 성에서 황무지 사막으로, 군중에서 한사람의 영혼에로 빌립을 인도하셨다. 빌립은 전술한 바와 같은 구실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따지거나 늦추지 않고 27절에서 있는 것처럼-“일어나 가서 보니”-무식하게 순종했다. 그 결과 그는 내시를 만났고 그를 통해 아프리카에 복음이 수출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 IVF멤버들은 진짜 바쁘다. 학과 공부와 아르바이트, 취업준비, 영어회화, 교회봉사, 취미생활, IVF 활동 등 진짜 잠깐의 짜투리 시간조차 내기 힘든게 IVF 멤버들의 현실이다. 게다가 리더들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다 우리에게는 노방전도를 안해도 되는 좋은 핑계 거리가 있다. 특히나 IVF에서 강조하는 우정전도는 노방전도와는 다르게 눈에 보이지도 않고, 금방 결과를 드러나게 하는 것도 아닌데다, 우정전도하고 있다는 한마디 말로 전도에 대한 부담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전도를 맡기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용납되기 어렵다. 그분의 진정한 관심은 한 영혼에 있다. 늘 사마리아 성의 부흥에 우리의 눈이 멀지 않도록 그분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3. 노방전도의 개념과 제 방법
A. 노방전도란?
말 그대로의 뉘앙스가 주듯이 길거리에서 하는 전도를 흔히 말하며, 혼자이건 2,3명, 아니면 단체로 하건 개의치 않고 비공식적인 장소나 시간속에서 행해지는 전도의 개념을 말한다.
노방전도란 참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접하고 그분을 체험할 수 있는 자발적 복음의 복종행위를 위한 방법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노방전도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노방전도에 대한 잘못된 인상들로 인해서 우리의 미간을 찌푸리곤 한다.
실제 노방전도를 우정전도를 위한 시발점으로써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신은 어디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가? 또 당신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는 기회를 자주 갖곤 하는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노방전도를 통해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와 우정을 쌓아가며, 복음을 증거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 노방전도를 나가보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를 찾고 있다는 것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그런데 노방전도는 분명히 짧은 2,3분 동안에도 죄의 선포(롬 3:23, 사 53:6)가 있어야 하며, 어느 인간도 스스로 구원할 수 없기에(행 4:12)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벧전 2:24)을 받아들여야만 한다(요 1:12)는 엄숙한 외침이 있어야 한다. 그렇기에 교회나 IVF모임에 한번 들러 보라는 유혹은 초청은 될 수 있어도 ‘전도(傳道)’라 할 수 없지 않은가? 또한 진정한 우정을 쌓기 위한 사람의 행동이라고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B. 몇가지 방법들
누가 이것 이것이, 이런 방법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정의한 것은 없으나 통용되고 있는 몇가지 것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ⅰ) 개발된 전도지 활용법
각 교회나 선교단체들은 자체적으로 전도지를 개발하여 보편화시켜서 많은 효과를 보고 있다. C.C.C.의 사영리 전도지는 상당히 많은 영혼을 돌아오게 하는 도구가 되었는데 영접의 개념이 모호하여 가끔 혼돈될 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네비게이토 선교회의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도 보편화되었고, 교회나 출판사 계통에서 나온 <잠깐! 영혼을 위한 5분을…>, <당신의 생명은…>등은 많이 사용되어지고 있다. IVF도 <빛으로 가까이>라는 전도지를 사용하고 있다(전도지 활용법에 대해서는 부록에서 자세히 다루고 있음). 이런 전도지들은 5분 이내에 복음을 전달하기 위해 사용되어질 수 있으며 상대방의 동의만 있으면 자세히 읽어가면서 설명하도록 되어있어 효과적이다.

ⅱ) 소책자 활용법
IVF멤버들에게는 많이 보급된 방법이지만 10분 이상의 시간을 요한다는 단점이 있다. IVP에서 출간된 <참 사랑은 어디에>, <오염된 사랑 이야기>, <고독>, <한 지성인의 회심>, <행복은 당신에게도>, <부활의 증거>, <참 자유를 찾아서>, <차마 신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 등이 그 대표적 도구들인데 상대방과 교독형식으로 같이 읽고 토론하면서 복음에 접근하는 것이 보통이다. 특히 요즘 대학생들의 관심사를 주제로 다룬 소책자이기에 호응이 좋지만 상대방이 지루해하기 때문에 끈질긴 기도와 사랑으로 준비하며 상대하여야 한다.

ⅲ) 성경만 사용하는 법
성숙된 신앙을 갖춘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의 능력을 믿고 성경 한 권만으로 뛰어든다. 기본 성경귀절을 모두 암송하며 대화중 필요한 성경귀절을 직접 찾아 상대방에게 읽도록 권유하면 더욱 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성경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성경을 처음 대하더라도 직접 낭독하다가 감동을 느낄 수 있다. 그때 우리는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방법을 많이 사용하기를 권하고 싶다.

ⅳ) 자연스런 대화법
벤치에 나란히 앉거나 휴게실에서 마주 앉은 사람에게 미소를 띄운 후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한수 읊으면 공감대가 형성되어 대화가 시작된다. 특히 요즘의 퇴폐문화를 촛점으로 두고 대화하다가 자연스럽게 로마서 1장으로 넘어가는 것이 널리 통용되는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 매스컴이나 대학문화의 흐름, 대학생들의 의식구조에 민감해야 하며, 박학다식한 지식을 섭렵하도록 하는 게 좋겠다. 요즘 변증학 분야에 관심이 없으면 전도하기 힘들다는 것과 상대방이 침을 튀기며 열을 올릴 때 잘 제어하는 지혜도 필요하다는 것을 첨가해 둔다.

ⅴ) 특공대 전도법
2,3명씩 팀을 구성해 전도하는 법이다. 선배와 후배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선배가 상대방과 대화하며 복음을 전파할 때 후배는 옆에서 진정한 기도로 측면공격을 시도, 서로에게 큰 힘이 된다. 어떤 경우에는 한사람이 간증을 하고 다른 한사람은 복음을 소개해 효과적으로 역할을 분배해서 전도할 수도 있다. 혼자보다는 둘이 강하다. 뭔가 터트리고 부수는 특공대의 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4장에서 더욱 자세히 설명하게 될 것이다.
그 밖에 대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대학로나 광장에 대중을 모을 수 있는 집회를 만들어 찬양도 하고 드라마, 메시지도 하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 중 은사 있는 지체들을 통해 다양한 전도매체와 방법의 개발이 있어야 할 것이다.

4. 그래도 몇가지 제안할 것들
A. 성경 암송을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하라.
마음에 새겨진 성경귀절들은 전도 시에 순간순간 적절하게 성령의 방법으로 공급되어진다. 적어도 One to One 성경공부교재에 나오는 기본 성경귀절은 잠꼬대에서도 할만큼 새기도록 하라. 그리고 한가지 더 유념해야 할 것은 어려운 성경 구절은 오늘날 상황에 맞게 번역해서 설명해 줄 수 있으면 좋다. 즉 성경 번역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한글 개역성경이 때론 영어성경보다 어려울 때도 있기 때문이다.

◉전도동기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인간창조의 이유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 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당신의 상태
사 59:2 오직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 고 너희 죄가 그 얼 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 시게 함이니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지 못함
사 64:6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엡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지 못함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잠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해주신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음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 의 사랑을 확정하셨느니라.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어떻게 영생을 얻는가 ?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음이란 ?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당신은 선택해야 합니다.
요 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결과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B. 지속적인 교제와 돌봄이 필요하다.
일단 복음에, 기독교에 호감을 갖고 관심을 보이면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계획을 작성하고, 상대방이 부담되지 않도록 상대방의 상황에 맞추어 지속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자. 혹시 관심 없던 자라도 이름과 학과를 기억하였다가 엽서 등을 띄우면 후에라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 소책자 등을 선물로 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자.

C. 될 수 있는 대로 대화법, 자기 표현법 등을 개발하길 바란다.
그리스도인들은 입만 동동 뜬다는 말이 있지만 쓸데없는 말보다 한두 마디에 녹아질 수 있는 화술, 화법이 중요하다. 어떤 경우엔 상대방이 좋은 반응을 안보이니까 지옥에 가라는 식으로 몰아치고 훈계까지 해서 돌려보내는 경우가 있다. 그 영혼은 앞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지혜와 절제가 필요하다.

D. 유치한 것이지만 치아를 닦고 전도하라.
물론 여기에는 여러 가지 함축적인 의미가 있다. 즉 단정한 옷차림, 호감 있는 얼굴, 잘 빗어 넘긴 머리, 관심 있는 눈동자, 심지어 앉는 자세까지 중요하다. 세수할 때 풀던 코가 이마에 붙어있는 형제가 10분 동안 얼굴을 들이대고 전도한다면 가관일 것이다. 우스개 소리이지만 생활 에티켓은 전도의 효과를 극대화시킨다.
E.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이제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 것인가와 준비가 끝이 났다면 실제 전도하러 나가야 한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여기에는 왕도가 없다. 무조건 나가서 전도해 보면 된다. 사실 이것 저것 살피고 상황을 따지면서 스스로 전도를 하지 않아도 될 변명거리들을 찾을만한 시간적 여유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먼저 기도하라. 오늘 노방전도 가운데 함께 하실 성령님과 그분의 인도에 대해서 신뢰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도가 끝이 나면 본격적으로 복음을 전할 대상자를 찾으러 돌아다녀야 한다. 이 때, 번잡하고, 분주한 장소나 시간대를 피해서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또 혼자 앉아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대상자를 선택하고 그에게 다가가고 있다면 이제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한 뒤 자신에 대해 간략하지만 분명히 소개한다. 그리고 잠깐 시간을 내어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나서는 함께 앉는다. 이 때는 서로 마주보고 앉기 보다는 오히려 비스듬히 앉거나, 나란히 앉는 것이 서로의 시선을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좋다.
함께 자리에 앉은 뒤에 서둘러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곧장 복음소개로 들어가서는 안된다. 요즘의 날씨나, 학교 생활, 방송 이야기 등과 같은 가벼운 주제를 통해서 서로의 긴장을 완화시킨 뒤에 복음에 대해 설명을 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오로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 사람에게 접근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나몰라라 하는 그런 식의 관계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설사 오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할지라도 인생의 좋은 친구나 선.후배를 만나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새로운 우정관계가 시작되려하고 있기 때문이다(이 다음 단계의 복음의 제시와 영접에 대해서는 부록에 있는 전도지 활용법을 참고하기 바란다.)
F.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렇다 사실 우리에게 가장 큰 문제는 직접 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가장 간절한 소원을 망각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무디 성서학원의 2대 학장인 R.A. Torrey 박사는 “나의 한가지 꿈은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많은 영혼들을 얻는 것이다. 그것은 일평생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가장 가치 있는 일이 영혼을 살리는 일이라면 또 그 영혼 사랑하는 가슴이 뜨거워 예레미야처럼 견딜 수 없다면 오늘부터 캠퍼스 구석구석을 뒤져서 웅크리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과 궁금증에 괴로와 하는 이디오피아 내시를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용케도 잘 참는다. 그 뜨거운 복음, 예수를 잘 참아들 낸다. 용하다. 이것은 참아야 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 터트려야 할 것이기에 나는 지금까지 두편의 간증, 성경적 교훈, 그 개념과 방법 그리고 몇가지 유의 사항을 소개하여 왔던 것이다. 미래의 복음 한국을 만들 뜨거움을 참지 못하는 신실한 젊은이들을 우리 속에서 만들어 내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우정전도
1.오늘 우리에겐 우정전도가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다양성과 대중성 그리고 그속에서의 익명성으로 특징지워지는 사회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즉 많은 만남과 접촉들이 있지만, 진정으로 인격적이며, 인간적인 만남들의 부재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오늘날의 현실은 더욱 자신의 정체성과 가치관을 잃어버리고 심지어는 자기 중심적 환경속에서 나름대로의 방어벽을 쌓아 놓고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까지 드러나곤 한다.
여기에 다양한 문화 매체의 발달과 신세대들의 진리에 대한 개념의 왜곡, 상대주의의 만연, 자기 중심적 자유주의 등의 영향으로 점점 이전에 효과적이었던 복음전도에 있어서의 다양한 방법들이 조금씩 그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는 다양한 관심의 변화와 복음을 받아들이는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대처가 부족한 가운데 계속해서 과거의 틀과 방식을 고수하려는 어리석음 때문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복음을 듣게될 우리 친구들의 관심의 변화와 성향의 변화는 오늘날 캠퍼스에서 복음을 더욱 효과적이고도, 능력있게 증거하려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은 도전과 어려움을 가져다 준다. 오늘날 상황속에서 과연 능력있고, 진정으로 회심을 낳는 전도의 방법이 없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바로 이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우정전도라는 것이다.
이 우정전도는 변화되는 상황 가운데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전도방법은 아니다. 우정전도는 과거 예수님의 사역하시던 모습 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의 지상 사역을 위해서 신적인 권능과 권위로 사람들을 압도함을 통해서 자신의 사역을 완수하려 하시지 않으셨다. 오히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과 죄인들과 병든 자들의 친구가 되어주시며, 그들의 아픔과 부족과 문제들에 대해 실제로 함께 아파하고, 안타까워하며, 슬픔의 눈물과 기쁨을 나누기까지 하셨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과의 동화를 통한 우정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진정한 문제 곧 죄사함과 구원의 문제에 대한 해결을 주셨다. 이것이 진정한 예수님이 보여주신 참된 우정을 통한 전도의 본인 것이다.
오늘날 우리 캠퍼스를 돌아보고, 우리 주변의 믿지 않는 친구들을 돌아볼 때마다 우리 마음에 드는 생각이 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는 해야겠는데 어떻게 전해야 할까?” 우리는 주저하다가 대학생활을 마치고 그 친구와 헤어져 살아가게 되는 자신의 모습에 후회를 하곤 한다. 여기에는 우리의 전도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부담감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사단의 교묘한 술책일 수도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처럼 먼 곳에 나가서 열심히 복음을 증거할 만한 용기나 은사가 없을런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속한 학과, 캠퍼스, 그외의 생활 영역 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 불신 친구를 사귀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도록 도울 수는 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고, 오늘날 잃어버려 가는 인격성과 인간성 속에서 생활하는 친구들에게 진정한 회심을 경험하도록 하는 유용한 도구가 된다고 확신한다.

2.만남을 가지라!
우정전도의 첫걸음은 의미있는 만남을 갖는데서 시작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셨듯이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야 한다. 일부러 나설 필요 없이, 학과, 동문모임, 강의실에서 만난 친구, 동아리 가운데서 늘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들과 함께 놀기도 하고 그들과 함게 커피 숍에 간다든지 식사를 같이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어느 한 지부에서는 최근 전 멤버들을 대상으로 삶의 우선권과 행사일정에 대한 연구를 한 적이 있었다. 모든 멤버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전도라고 인정은 하면서도, 대부분이 지부와 각 그룹의 일정에 매여서 불신자들과는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두 주동안 큰모임을 제외한 모든 프로그램을 취소하기로 했다. 그 대신 각자가 자기 학과에 가서 그 나머지 시간을 사람들과 만남을 가지는 일을 위해 시간을 활용했다. 어떤 멤버는 학과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같이 먹으며, 여유있는 시간을 보냈다. 점심식사 시간이 다 지나고 대부분의 친구들이 각자 도서관으로 떠난 후에 한 친구가 남아서 “오늘 함께 점심을 먹으며 너랑 이야기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런데 너의 삶에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애.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며, 그리스도인의 삶이 무엇인지를 전하며 아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다. 우정전도, 아니 친구들과의 우정은 바로 만남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이 만남을 통해서 서로가 알아가고, 서로를 이해하며, 신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참으로 바쁘다. 학과 공부, 취직준비, IVF 활동, 교회 봉사, 취미 생활, 아르바이트 등 실로 잠깐의 시간도 짬을 내지 못할 정도로 바쁘다. 게다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불신 친구와 함께 지내는 것보다는 같은 그리스도인들끼리 함께 만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그리스도인들끼리 함께 공부하고, 신앙을 나누는 것은 참으로 유익하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캠퍼스와 학과속에 우리를 남겨두신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런 생각들이 편협된 것이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실제 우리 IVF 멤버들의 대부분은 ‘땡돌이’들이다. 우리 불신 친구들의 눈에는 강의 시간 마치는 ‘땡’하는 소리와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버려 안보이다가, 강의 시작 시간이 ‘땡’하고 울리면 어느새 자기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는 이상한(?) 사람들로 보일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자신의 시간과 관심을 불신 친구들과 나누고, 만남을 가지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이런 우리들의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만남의 시간을 가지기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몇가지를 제안하려고 한다.
◉우정의 목적은 사랑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의 불신친구들과 더욱 친밀하게 사귈 수 있도록 간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만 사귀어야 한다고 단정해서는 안된다. “내가 전하는 복음을 네가 만일 듣지 않는다면 넌 나의 친구가 될 수 없어!”하는 식의 모습은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나의 불신 친구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관계가 시작되어야 한다.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관심을 나누며,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나누는 우정이다.
◉시간과 관심을 나누라.
만남을 가지고 서로 우정을 쌓아가기 위해서는 서로의 공동의 관심사를 찾고, 함께 이를 위해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태도, 신념, 행동이 불신 친구들과 다를 수 있다. 실제로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들과 대화를 하고,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통해서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복음서를 통해서 우리는 실제 예수님도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일부러 찾아가기도 하셨으며, 대화를 나누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나의 불신 친구가 가지는 관심사에 대해 함께 할 필요가 있다. 만일 그 친구가 농구를 좋아한다면 함께 운동장에서 농구를 할 수 있다. 콘서트에 가고 싶어하는 친구를 위해 함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다. 함께 영화를 보러가는 것도 물론이다. 도서관에서 함께 공부하며 리포트를 서로 도와 주는 것도 할 수 있다. 언젠가 한 자매가 찾아와서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한다. “간사님! 제 친구가요, 예수 믿는 사람도 이런 것 하니? 난 예수 믿는 사람은 고리타분하고 함께 할만한 친구가 못된다고 생각했었는데 널 보니깐 그렇지도 않네.”
◉사랑으로 서로 섬기라.
실제 우리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 못하는 고민과 어려움으로 힘들어 한다. 겉모양으로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 같고, 우리들보다 더 뛰어난 것 같은데도 대부분은 그들만의 심각한 고민을 한가지 이상 가지고 있다. 보통의 친구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는 가정 문제와 개인의 성격과 취업에 대한 고민들이다. 우리는 이런 고민을 하는 친구들을 도와 줄 수 있다. 우리가 직접적인 해결을 이루어 주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친구가 되어주는 것을 통해서 그들을 도울 수 있다.
사도행전 3장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자기가 가진 것은 없지만 구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것을 통해서 앉은뱅이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았던가! 그렇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의연할 수 있는 것은 모든 문제의 해결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서 친구들에게 반드시 도움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서는 안된다. 때론 그들을 도우는데서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인격적인 관계로까지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우정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적인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는 어려움과 걱정, 그리고 답답함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론 우리의 이런 연약함이 그들로부터 더욱 깊은 우정의 신뢰와 그리스도를 깨닫게 되는 자리까지 이끌기도 하기 때문이다.

3.우정전도를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한 번에 한 사람씩 집중하라.
우리가 자신-마음과 감정, 시간과 돈-을 많은 사람과 교제하는데 내어 놓기 보다는 몇 사람에게 집중하거나 한 사람에게서 시작하는 것이 현명하다. 예수님은 많은 제자들이 있었지만 그의 대부분의 시간을 열두명의 제자들과 보내셨다. 또한 그 중에서도 특별히 세명에게 집중하시고, 종종 개별적인 만남을 갖기도 하셨다. 우리는 만인의 친구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많은 복음을 전해야 할 친구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특별히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에게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이 한 사람은 학과에서 가장 친한 나의 단짝일 수도 있고, 노방전도에서 만난 친구일 수도 있다. 이제 눈을 감고 생각해 보라. 우리의 친구 중에 성실한 섬김으로 집중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친구를 위해 기도하라.
이제 대상을 정하고 그 친구에게 집중하기로 했다면 먼저, 기도를 시작해야 한다. 특별히 그 친구를 위해 매일, 정기적으로 경험을 통한 이해력을 바탕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다. 기도할 때 우리는 친구를 더욱 깊게 이해하게 되고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의 증거가 약하다는 것과 하나님께서 친구에게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게 해 주신다. 기도를 통해서 점차적으로 친구에게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할 기회에 대해 민감하게 되고,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있도록 하는 담대함이 더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친구에게 말하라.
친구에게 친절하고도 정중하게 물어보는 것이 필요하다. “정은아, 중요한 일에 관해서 너와 얘기하고 싶어. 지금 시간있니?” “너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니?” “예수님에 대해서 넌 어떻게 생각하니?” “만약 오늘 죽음이 닥쳐온다면 넌 어떻게 하겠니?” “넌 지금 생활에 만족하고 있니?” 이 외에도 상황에 맞는 적절한 질문을 고안해 낼 수도 있다. 요점은 친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도록 도울 수 있기 위해 그가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제 친구가 질문에 대답을 한다면 우리는 그에게 복음에 대해 할 수 있는한 분명하고 설득력있게 말해야 한다. 한 번의 단순한 제시가 우리의 친구에게 복음을 이해하는데 불충분하다면 함께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해보자고 제의를 할 수 있다.
언젠가 한 자매에게 친구가 찾아와서 “성경을 좀 보여줄 수 있겠니? 성경을 한 번 읽어보려고 하는데 지금 성경이 없거든.”하고 말했다. 그러나 그 자매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냥 자신이 가진 성경책을 빌려주고는 그 이후로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 우리는 진지하고도 신중하게 우리의 친구에게 복음에 대해서와 영적인 관심에 대해서 말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성경에 대해 공부할 것을 제의할 수 있어야 한다. 전도 성경공부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다음 장에서 소개하고 있다.
◉책을 빌려주라.
좋은 전도용 책자의 강점은 처음에는 명확히 이해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다시 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우리가 그 친구의 주위에 있지 않을 때 조차도 메시지는 전달되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친구의 마음 문을 여는 좋은 수단이 된다. 만일 오늘 소책자를 빌려주고 내일 간단한 줄거리를 물어본다면 친구에게서 영적인 관심이 있는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다. 책이나 소책자를 주는 것보다 빌려주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나중에 간단한 설명을 해보도록 질문하거나 친구를 다시 만나서 물어보기가 보다 쉬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 주의할 점은 지나치게 두꺼운 책이나 어려운 내용의 책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 또한 그 친구의 관심사와 관련해서 책을 권할 필요가 있다. 과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친구일 경우 정서와 관련된 책보다는 오히려 과학과 기도교에 대해 조명한 책들을 소개한 것이 도움이 된다. 소개할만한 책과 관련된 정보를 따로 소개하고 있다. 이를 활용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다른 그리스도인과 함께 만나라.
하나님은 한 영혼을 당신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여러 사람들을 사용하시기도 한다. 한 사람이 말씀을 심고, 다른 사람이 물을 주고, 또 다른 사람이 추수를 하기도 한다(고전 3:5-9;요 4:37-38). 이처럼 내가 우정전도를 위해 계속해서 준비하며, 기도하고, 복음을 소개하기도 했던 관계를 가져왔던 친구를 때론 공동체 내의 선배들이나, 동기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교제하도록 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은 아주 유익하다. 우리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제한점-신앙적, 성격적, 생활적-들에 대해 보완을 해줄 수도 있고, 친구에게 폭넓은 복음의 이해를 경험하게 해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론 큰모임이나, 작은모임, 동기간의 모임 등에 함께 참석하는 것도 좋은 방법 중 하나이다.
실제 계속적인 복음 소개와 우정전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되지 않던 친구가 우연히 동아리방을 찾았다가 IVF 선배와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회심하게 되는 경우를 종종보곤 한다. 이는 우리에게 없었던 논리적 변증이나, 친절함, 공동체의 분위기와 같은 만남과 대화가 회심의 계기가 되곤 하기 때문이다.
◉우정에는 기간이 없다.
친구가 살아있을 동안은 계속해서 우정이 지속되어야 한다. 우정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친구에게나 혹은 복음에 대하여 재빨리 응답을 하는 친구들만 편애해서는 안된다. 항상 우리의 친구로 남아있고 우리는 여전히 그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다른 친구들에 대해서도 책임이 있다. 왜냐하면 복음은 모든 사람들에게 지불되어야만 하는 빚이고 다른 친구들도 그것을 들을 동등한 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한 자매는 한 친구를 전도하기 위해 1학년 때 결심을 하고서 계속해서 노력해왔다. 그러다 결국 3학년 2학기 ‘행복에의 초대’ 행사에 참가한 뒤 회심하게 된 경우도 있다. 이 자매는 계속해서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편지를 쓰며, 모임에 초대하기까지 했다. 심지어는 ‘행복에의 초대’ 행사의 단골손님(?)이기까지 했던 이 친구는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감격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님으로부터 오는 지혜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한 사람만을 바라보면서 그의 회심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계속적인 우정은 이어가되 복음에 대한 구체적인 제시는 때론 유보하고 다음 기회를 선용할 줄 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그렇기에 우리의 친구과 계속적인 우정을 쌓아가는 가운데 추구자 수련회로 초대를 한다든지, 엽서를 지속적으로 보낸다든지, 기타 여러 가지 관심과 사랑의 표현들을 계속해야 한다. 이러는 가운데 진정으로 우리의 친구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날 기회를 잡게 될 것이다.
◉전도성경공부를 시작하라.
복음을 전하고, 전도 성경공부를 시작하려고 마음을 먹고 결심한 때로부터 가급적이면 한달을 넘기지 않는 것이 좋다. 대체로 이 한달이란 기간은 우리가 캠퍼스에서 생활하고 있는 학사일정 가운데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한달이상의 기간이 흐를 경우 중간고사, 학교 행사, 기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대체로 만남을 지속하기 어려워지고, 처음 다짐했던 마음이 누그러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2주 안에 전도 성경공부를 마치고(이를 위해서는 한주에 두 번 이상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양육과 관련된 공부를 새롭게 시작하든지, 다른 교재나, 방법을 활용하든지 하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 말라.
우리는 전도에 대한 많은 이론을 배우고 열정에 가득차서 대화 기술을 익히고, 실습한다. 그리고 늘 하나님과 동행하며 능력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전도에 있어서 실패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우정전도를 통해서 복음을 소개하고 깊이있는 우정을 통해 인격적인 그리스도를 체험하도록 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불신자로 남아있을 수 있다.
우리는 복음을 불신자에게 전하고, 복음을 잘 이해하고, 하나님과의 단절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들을 구원받도록 그들을 회심시킬 만한 아무런 능력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오직 구원은 그리스도께 있고, 성령께서 불신자의 마음을 움직이시고 그리스도께 나아가도록 하시는데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가 전한 친구가 복음을 통해 회심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사랑과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는 것이다.
때론 우리의 성급함 때문에 열려졌던 친구의 마음이 닫혀져 버리는 경우를 보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어쩌면 우리 평생에 한번도 우리 눈 앞에서 내가 전한 사람이 복음을 통해 회심하는 것을 보지 못할런지도 모른다. 우리 눈 앞에서 회심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구원을 받을 기회를 영원히 놓쳐 버린 것은 아니다. 우리의 안타까운 마음과 영혼을 향한 그 열정은 하나님께서 보상하실 것이다. 그리고 회심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 아니라고 해서 우리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무성의 하게 전해서는 더 더욱 안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는 우리 자신과 불신자 그리고 삼위의 하나님 모두가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다.

4.하나님 나라의 투시도를 그리는 작업이다.
우리가 앞으로 하게될 우정전도는 하나님 나라의 건설이란 관점에서 사고하고 계획을 세우고 비젼을 소유해야 한다. 내가 복음을 전한 나의 친구가 그리스도를 알게되고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그의 삶의 전영역을 통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올바른 기독 지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가는 모습을 한번 그려 보라. 얼마나 감격적인가? 또 나의 이 친구가 다시 다른 친구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를 통해서 또 다른 그리스도인이 탄생하고, 성장해서 또 자신의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게 된다면 그 이상 감격적인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나 캠퍼스 복음화를 위한 노력을 다른데서 찾지 않는다. 우리의 삶 한가운데서 조용히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드러내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전투에서 가장 최 전선에서 싸우는 전투병일 것이다. 또 하나님의 많은 군사들 중에서 일당 백을 해내는 특공대일 것이다. 왜냐하면 비록 눈에 보이지도 않을 조그마한 사역, 복음전도를 통해서 한사람을 회심케 하는 것은 장차 그 사람을 통해서 확장되어질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고백했던 것과 같이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라는 고백과 같이 전도를 한다는 것은 미련해 보이고 그리 뛰어난 사역을 하는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이 우정전도보다 더 위대한 사역은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우정전도를 해야 할 이유이며, 지금 친구를 만나기 위해 멈추어 서 있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아닐까?

전도지 활용법
I. 사용하기에 앞서서
1.마음자세
1)기도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라.
2)전도는 하나님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고, 우리는 그분의 도구임을 기억하자.
3)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전도에 있어서 실패란 없다.
4)전도하기에 앞서, 자신의 삶 속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간증을 회고, 정리하라.
5)밝은 표정과 부드러운 어투가 필요하다.

2.전도 전의 준비
1)전도지의 순서와 기본 성구를 암기한다.
2)예화나 보조 성구를 숙지하고 간단한 간증문을 작성해 본다.
3)먼저 질문을 던질 수 있도록 미리 질문을 준비한다.
“질문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설명하지 말라!” -칼 스티븐슨
①일방적인 이야기보다 대화를 촉진시킬 수 있다.
②상대를 곁길로 빠지게 하는 대신 대화에 흥미와 참여를 지속시킨다.
③상대방이 자기 자신을 잘 나타내도록 도움을 준다.
④그가 이미 알고 받아들인 것들을 확인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⑤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도록 도움을 준다.
4)반대 질문에 대한 처리방법을 익힌다.
「불신자들의 반대질문에 대한 답변」과 관련된 내용을 참고한다.

II.전도지 사용하기
1.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1)처음부터 전도지를 드리밀지 말라!
2)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려는 목적에 대해 간략히 말한다.
3)요즘 근황이나, 주위의 환경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로 서로의 긴장을 푼다.
4)어느 정도의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전도지를 편다.

2.이렇게 전하자!
1)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당신은 신의 존재를 믿습니까?”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하나님」에 대해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조주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의 삶을 위한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창조자이시며, 이 세상의 참 주인되시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27에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번 읽어 주시겠습니까?(전도지를 펴서 손으로 지적해 준다.)

2)인간의 목적
“당신은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지금껏 많은 철학자들은 인간의 존재목적에 대해 질문하고, 연구해 오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나님과의 교제 가운데서 진정한 삶의 목적을 찾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여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좀 읽어 주시겠습니까?(고전1:9을 가리킨다.)
★예화
부모님은 우리를 낳아 주시고, 지금껏 우리를 길러 주셨습니다. 왜 우리를 지금 먹이고, 입히고, 학교까지 보내 주신다고 생각하십니까?(대답-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아니, 자기 몸에서 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있겠습니까? 이런 부모님의 사랑에 우리는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께 사랑을 표현하게 됩니다. 이런 행동을 우리 사회에서는 공경(효도)이라고들 말합니다.
★밑의 도식으로 내려온다.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 인간들은 감사와 공경하는 마음을 통해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상호간의 관계와 의사소통을 하게 되는 상태를 교제라고 합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고의적으로 반항하고 불순종하는 모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또 이 사회는 그런 모습에 대해 무엇이라고 합니까?(대답-불효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인간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사랑의 배려와 계획에 대해 인간들은 고의적인 반항과 불순종으로 행동했습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인간과 하나님 사이는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3번 「죄-하나님과의 분리」로 넘어간다.
3)죄-하나님과의 분리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반역하고 떠나갔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이런 하나님과의 교제의 단절, 곧 불순종에 대해 성경에서는 ‘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59:2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파괴되고 나누인 것이 죄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한 번 읽어 주시겠습니까?(지적해 주고 읽도록 한다.)
★도식을 보며 설명한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서는 이제 죄 곧 죽음의 강이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간이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었고,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아담의 죄는 그 이후 유전되어 그 후손의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질문
죄의 문제에 있어서 당신은 완전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습니까?(대답-완전하지 않습니다.)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은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렇다면 혹시 죄를 지어본적이 있습니까?
음, 그러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는 말에 당신을 포함시켜도 되겠습니까? 여기에 대해 로마서 3:23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4번으로 넘어간다.
4)죄인된 우리
그 결과 우리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평안을 누리지 못하고, 죽음, 불안, 허무 등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가 죄인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질문
그런데 당신은 죽음, 불안, 허무, 가난 등과 같은 불행이 당신의 삶에 찾아온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러한 것들을 피하거나 예방하기 위해서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까?
★질문에 답을 하고 나면 5번으로 넘어간다.
5)죄의 결과
★대단히 미안한 질문입니다만, 당신은 언제 죽을 것 같습니까? 혹시 당신은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그런데,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와 같은 우리의 죄로 인해 모든 사람엑 죽음과 심판이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성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을 읽어 주시겠습니까?(손으로 지적해 준다.) 또, 로마서 6:23에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이런 죽음의 현상들 즉, 심리적, 사회적, 환경적 소외라는 죽음의 징조들을 항상 접하게 됩니다. 사실 우리 인간들 중에 죽음의 영향권 밖에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죄가 있는 모든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해 죽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죽은 뒤에는 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우리가 당면한 비참한 현실입니다.
★6번으로 넘어간다.
6)길은 어디에?
어떤 사람은 그래서 돈이나, 선행이나, 철학이나, 쾌락과 종교 등을 통해서 자신 앞세 닥쳐온 불행과 죄와 죽음의 결과들을 만회해 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들은 자기가 보기에 옳은대로 최선의 삶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도식을 보며 설명한다.
어떤 사람은 많이 배우고, 교육을 많이 받으면 조금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과학문명이 우리를 더욱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유토피아를 건설해 주리라 확신합니다.
심오한 철학이나 다양한 종교에 기웃거리는 것을 통해서 자기 수양도 하고, 만족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방법들은 진정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여기에 대해 잠언 14:2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번 읽어 주시겠습니까?(손으로 가리킨다.)
그렇습니다. 죄를 지은 사람의 노력으로는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도무지 도달할 수 없습니다. 또한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 죽음과 죄의 문제에 대해 해결책이 되지 않습니다.
★예화
만약 당신이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부모님은 당신을 어떻게 하실 것 같습니까?(대답-그냥 대버려 두지 않는다.) 또, 왜 부모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도록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느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때론 질책으로, 때론 부드러움과 따뜻함으로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이끌고자 애씁니다. 이처럼 우리 부모님의 진정한 사랑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 부모님과 마찬가지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절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자체는 결코 미워하지 않습니다. 우리 옛말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
그렇습니다. 지금 당신에게는 죽음과 심판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나간 삶에서 돌아설 수 있도록 인도해 줄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즉,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7번으로 넘어간다.
7)하나님의 사랑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즉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16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읽어 주시겠습니까?(손으로 가리킨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서 하나의 해결책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 해결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8번으로 넘어간다.
8)에수 그리스도
요한복음 14:6절에서는 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오직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주신 죄의 문제, 곧 죽음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그로 하여금 대신 받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18에서는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골로새서1:20을 읽어 주시겠습니까?(손으로 가리킨다.)
★밑에 있는 도식을 설명한다.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던 죽음의 강, 곧 죄의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잇도록 하는 다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이 진정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7번과 2번을 나란히 놓여지도록 6번을 접어 처음 상태로의 회복임을 설명해 준다.
★다시 2번을 펼친다.
당신은 지금까지 자신의 존재와 결국은 무엇이며 예수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보고 들으셨습니다. 당신은 지금 상태는 어떤 모습입니까? 성경은 당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하나님과 교제의 관계로 회복되는 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십니다. (오른쪽을 계속 해서 접으면 9번이 나오게 된다.)
9)그러면 어떻게?
로마서 10:9-10을 읽어 주시겠습니까?(손으로 가리킨다.)
그렇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요한복음 1:12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의 사실들이 당신에게 의미있는 일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 당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당신 삶의 주인으로 모셔들여야 합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당신의 삶에 모셔들이시겠습니까? 당신에게 사랑이 필요하며, 죽음과 죄의 문제를 해결할 예수님이 필요함을 고백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저를 따라서 다음과 같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 저는 죄인임을 시인합니다. 예수님께서 저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예수님을 제 마음에 모셔들입니다. 제 마음에 들어오셔서 제 삶을 다스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III. 전도지 사용을 마치면서...
1. 마무리를 어떻게?
1)목적이 끝이 났다고 곧장 일어서지 말라.
2)전달했던 내용 중에 질문이나 의문점들에 대해 물어 보라.
3)서로의 연락처를 나누라.
4)모임(성경공부 모임, 작은모임, 큰모임 등)과 IVF 동아리방, 혹은 모임 장소에 대해 소개하라.

2. 사후관리
1)결과에 관계 없이 당분간 지속적(일주에 1번정도로)인 연락을 한다. 적어도 한달 정도는 연락을 계속한다.
2)영접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엽서나 편지 등을 통해서 계속적인 관심을 표명하고, 위해 기도한다. 필요하면 소책자를 선물해 줄 수도 있다.
3)영접 했을 경우에는 성경공부 모임을 소개하고 참여하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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