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관련된 오해 (五解, 다섯 가지 바른 이해)
신학자 칼 바르트는 “기도하며 두 손을 굳게 맞잡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의 무질서에 대항하여 일어나는 봉기의 시작이다”라고 했다. 기도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악한 마귀를 대적하여 이기기 위한 최고 강력한 무기임을 일깨워주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 크리스천은 어느 종교인보다 열심히 기도한다. 그래서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기독교는 기도를 독하게 하는 종교라고.
대다수 베뢰아교회는 2월을 ‘기도 100시간의 달’로 정해 독하게 기도할 것을 독려한다. 독하게 기도한 만큼 두둑하게 복을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한 우리의 기도 여정 가운데 크고 작은 장애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기도에 대한 잘못된 오해들이다. 본 기획 「기도로 하늘문을 열라」는 본지 주필 김정태 목사가 기도에 관한 잘못된 오해를 풀어 주어, 독자 여러분이 기도의 대로를 시원하게 활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마련됐다. 주>
1. 병자는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병자는 육신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기에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는 말은 언뜻 맞는 말 같다. 물론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하였으니, 기도하지 않고서 병이 나을 수는 없다. 문제는 병자에게 기도를 강조하면서 병이 낫지 않는 문제를 그 사람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것이다.
마가복음 9장에선 간질하는 아들이 병 고침 받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는 간질하는 아들, 그를 데려온 아버지, 그를 고치려 했던 제자 등 세 종류의 사람이 나온다. 예수께서는 그중 누구에게 기도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가? “기도와 금식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29절) 기도는 주님과 함께 있는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었다. 병자는 기도할 힘이 없어 병든 사람이다. 그런 자에겐 책망보다는 위로가 필요하며, 중보의 기도 동역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2.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아신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아시기에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 굳이 기도하여 하나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귀찮게 할 뿐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도를 통해 우리 인간의 사정을 아신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모르신다고 여겨야 한다. 출애굽의 역사도 기도가 상달된 후에야 이뤄졌다.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출 2:23)라는 말씀처럼,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듣지 않으시고, 일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기도는 자세히 구체적으로 하는 것이 좋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 상태부터 하나님께 낱낱이 아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3. 하나님은 귀가 먹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기 때문에 어떤 마음을 먹느냐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겨, 기도할 때에도 소리쳐 기도하기보다는 조용히 마음속으로만 기도하는 경우가 있다. 큰소리 기도에 대해 어떤 이는 ‘하나님이 귀 먹었냐’ 하며 부르짖는 기도를 타박하는 경우가 있다. 그는 작은 소리로 기도해도 하나님이 다 듣는데, 왜 옆 사람의 기도까지 방해하며 왜 큰 소리로 하냐며 책망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성경에서 말하는 묵상이란 속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소리를 귀로 들으면서 그 내용을 생각하는 것임을 모르는 것이다. 주 예수께서 보여주신 기도의 모본은 조용조용한 것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 22:44)의 말씀과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히 5:7)라는 구절이 바로 기도의 모본이다.
4. 기도는 좋은 말만 하는 것이다?
어떤 이는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 좋은 말만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부터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등 좋은 구절 위주로 기도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께 어찌 감히 불경건한 말을 토해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시편을 보면 다윗의 기도 중 어떤 것은 매우 공격적이었다. 탄원시로 불리는 그 시를 보면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라고 부르짖고 있다(시 35:1). 시편 109편은 흔히 말하는 저주의 시에 해당하는데, 여기선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에 대해 하나님이 보복해 주시기를 요청한다.
“… 그의 자녀는 고아가 되고 그의 아내는 과부가 되며 그의 자녀들은 유리하며 구걸하고 그들의 황폐한 집을 떠나 빌어먹게 하소서 고리대금하는 자가 그의 소유를 다 빼앗게 하시며 그가 수고한 것을 낯선 사람이 탈취하게 하시며 …자손이 끊어지게 하시며 후대에 그들의 이름이 지워지게 하소서”(8-13절).
욥의 언어 또한 상당히 공격적이었다. 욥의 친구들이 절레절레 할 정도였으니, 그의 호소는 조용한 토론이 아니라, 날선 공격이었다. 기도는 이런 마음을 다 토해 내는 것이다. 토설기도가 바로 이것이다. 미운 사람이 있다면 그에 대한 자신의 힘든 마음을 다 토해 내며 간구해야 우리는 응답받는다.
5. 귀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방언 위주로 해야 한다?
방언은 귀신이 알아듣지 못하는 기도이기에 신령한 기도, 특히 축사를 위해선 이런 기도가 필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생각은 고린도전서 14장 14절의 말씀, 즉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에 근거한다. 귀신은 주로 육신에 머물며 신경계통에 역사하므로 방언이라는 영혼의 기도를 하면 그런 기도는 육과 구별되는 영의 기도이기에 방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해가 귀신의 침입에 대한 지나친 염려에서 비롯됐다면 좋은 방법이 아니다. 귀신은 때로 성도가 기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도 하지만, 예수 이름으로 하는 기도는 어떤 경우라도 알아듣지 못한다. 방언이냐 한글 기도냐가 아니라, 믿음의 기도냐가 중요하다. 그 기도는 오직 하나님만이 들으신다.
관련자료
기도(祈禱)에 대한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