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2일 평화목교회 주일예배 설교
김소리 목사
누가복음 1:67-79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대림절도 어느덧 2주가 지나고 3번째 주에 접어들었습니다. 대림절을 맞아 우리 평화목교회는 예배 전에 떼제 찬양 기도회를 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는 누가복음을 통해 말씀을 묵상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 역시 누가복음인데요. 본문은 ‘사가랴의 예언’ 또는 ‘사가랴의 찬가’라고 불립니다.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자기의 아들 요한의 삶을 예언하게 된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가랴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입니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엘리사벳입니다. 그 두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어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율을 흠잡을 데 없이 잘 지켰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고, 둘 다 이제는 나이가 많았습니다. 그런 가운데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나 “하나님께서 네 간구를 들어주셨다며, 너희가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아기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지고 주님보다 앞서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거역하는 자들을 의인의 지혜의 길로 돌아오게 해서,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백성을 마련할 것이라며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사가랴는 “저는 늙은이입니다.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무엇을 보고 그런 일을 믿으라는 말씀입니까?”라며 믿을만한 확실한 증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을 보였고, 이에 따라 이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출생 장면이 본문 바로 앞 단락인데요.(57-66절) 아기가 태어나고, 사가랴와 엘리사벳 모두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고 나니,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서, 말을 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64절)
본문의 사가랴의 찬양이 64절의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양한 그 찬양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사가랴는 이런 일련의 상황들을 겪은 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리고 그 찬양의 내용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다윗 가문에 메시아를 일으키심으로써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는 것에 대해 찬양합니다. 구원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오심을, 메시아를 보내심으로써 이루신 것에 대해 찬양합니다.
“자기 백성을 찾아와 구원하셨고, 우리를 위하여 능력 있는 구원자를 자기의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다”(68-69절)
이것은 구주이신 예수님을 마리아가 잉태한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찬양하는 것입니다.
68절을 보면, 우리가 사용하는 새번역 성경은 ‘돌보아’라고 번역했습니다. 이것의 헬라어는 ἐπισκέπτομαι(에피스케프토마이)로. 그 뜻은 방문하다, 돌보다, 관심 있게 지켜보다 등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פָּקַד(파카드)인데, 그 뜻은 마찬가지로 방문하다, 돌보다, 주의 깊게 살피다가 있는데, 헬라어와 다른 점은 처벌하다는 뜻도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정에 방문하신다면 느낌이 어떨 것 같으신가요?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정에 찾아오시는 것을 떠올리면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좋은 느낌이신가요? 아니면 뭔가 불편한 그런 안 좋은 느낌이신가요?
유대인들은 둘의 이미지를 모두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방문하신다는 것은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위해 찾아오신다는 좋은 의미도 있었지만, 반대로 죄를 물으시기 위해 찾아오신다는 무서운 의미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서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발견하기 어렵고, 여러 가지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방문, 심방의 의미로 많이 사용됩니다.
그래서 저는 ‘돌보아’ 대신 ‘찾아와’라고 번역해봤는데요. 개신교와 가톨릭이 함께 번역한 공동번역 성경 역시 ‘찾아와’라고 번역했습니다.
"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셨으며,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 있는 구세주를 당신의 종 다윗의 가문에서 일으키셨다."
이처럼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첫 번째 내용은, 당신의 백성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오심, 찾아오심이, 그리스도 예수께서 잉태되심으로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사가랴의 찬가 두 번째 내용은, 구원자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인해, 가까운 시일 내에 일어날 구원의 일들에 대한 찬양입니다. 그 일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이제는 실현될 것이라는 신뢰와 기대, 희망의 찬양입니다.
새번역 성경은 과거형으로 표현하며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개역개정과 공동번역은 앞선 첫 번째 내용인 68-69절을 보충하는 것 같이 번역되어 있는데요. 두 성경 모두,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구세주를 보내심으로써 일어날 구원의 내용과 그 목적을 이야기하는 듯합니다.
헬라어 원문의 느낌을 살려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로부터 주님께서 자기의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원수들과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으로부터 구원!
주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자비를 베푸셨고, 당신의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다,
이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고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하신 것으로,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주셔서 두려움이 없이 거룩함과 의로 주님을 평생 동안 섬기게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인해 일어날 구원의 내용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의 소극적인 의미로부터 시작해서,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평생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하신다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래 전부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이라는 것을 역사를 떠올리며 상기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심으로 당신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시작하셨으니, 그 약속이 이제는 실현될 것이라는 기대와 확신, 기쁨의 소망을 담아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사가랴의 찬가 세 번째 내용은, 세례 요한과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에 대한 찬양입니다.(76-79절)
먼저, 세례 요한의 사역에 관한 것입니다. “아가야, 너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릴 것이니, 주님보다 앞서 가서 그의 길을 예비하고, 죄 사함을 받아서 구원을 얻는 지식을 주님의 백성에게 가르쳐 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찬양은 “그는 해를 ~ ”인데요.
이 역시 원문의 느낌을 살려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이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를 위해 찾아오게 할 것이고,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
새번역 성경에는 생략되어 번역되지 않았습니다만, 이 구절엔 68절에 ‘찾아오다’라고 번역했던 ἐπισκέπτομαι(에피스케프토마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점을 살려서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를 위해 ’찾아와’라고 번역해봤고, 앞의 68절에서 굳이 돌보다 대신 찾아오다로 번역했던 이유도, 이처럼 한 단락에서 같은 동사가 반복되어 언급되기 때문에 그 느낌을 최대한 살려보고자 한 것입니다.
더욱이 지금은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그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기에, 대림절과도 잘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셨고, 찾아오고 계시고, 찾아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절기이니까요.
그런데 세례 요한의 사역과 예수님의 사역 사이에 구문이 하나 있습니다.(78절상)
“이것은 우리 하나님의 자비로운 심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헬라어로는 διὰ σπλάγχνα ἐλέους θεοῦ ἡμῶν(디아 스플랑크나 엘레우스 데우 헤몬)입니다.
이 구문은 앞선 세례 요한의 사역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사가랴의 고백이자 찬양입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구원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준비하도록 하는 것의 직접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이, 떠오르는 해가 우리를 찾아오게 하고, 어둠 속과 죽음의 그늘 아래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게 하는 데에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흑암의 아래에 있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인도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정확히는 하나님께서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를 내세우셔서 그분을 통해 하십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행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 역시,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사가랴는 고백하며 찬양합니다.
구원을 위한 세례 요한의 사역과 구원을 주시는 예수님의 사역 양쪽 다,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으로 인한 것이라고 찬양합니다. 그 사역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에서 시작된 것이며, 그 자비로우신 마음이 사역을 중단 없이 진행하게 할 것이고, 그 자비의 마음이 우리를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완성을 이루실 것이라고 찬양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비의 마음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라고 번역한 헬라어 단어는 σπλάγχνον(스플랑크논)으로, 1차적으로는 신체의 내부기관인 내장, 간, 창자를 뜻하다가 그 의미가 확대되어 애정, 동정, 마음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됩니다.
자비를 뜻하는 헬라어는 ἔλεος(엘레오스)인데, 히브리어로는 חֶ֫סֶד(헤세드)입니다. 헤세드의 뜻은 <신실함>,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과의 관계에서 보여주시는 사랑을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호세아서인데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배반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이스라엘을 향해 <헤세드, 변치 않는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그러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헤세드를 알기 원하고, 그 헤세드를 거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헤세드는 <신실한 사랑, 변치 않는 사랑, 진실한 사랑>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에 대입하면,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시는 구원의 역사는 모두 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 변치 않는 사랑 덕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는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게 하셨고, 하나님의 신실하신 그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를 진행하실 것이고, 하나님의 성실하신 그 사랑이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완성시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둠에 있던 우리에게 빛을 비춰주시고 우리를 주님의 은혜와 평화의 길로 인도하시는 구원의 역사는 모두 다 하나님의 사랑, 신실하신 사랑 덕분입니다. 그것이 시작된 원인도, 지금 우리가 그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있는 원인도, 그리고 장차 완성될 원인도 다름 아닌,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이란, 우리 그리스도인을 넘어 온 인류를 가리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나님의 피조물 모두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연을 포함한 만물을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일관되게 사랑으로 돌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고 누리는 것의 원인은 다름 아닌, 당신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우리는 지금 그 은혜를 누리는 것이며, 이것은 모든 피조물을 지금도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사랑하신다는 반증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런 은혜를 누리는 것은 내가 잘났기 때문도 아니며, 나에게 죄가 없어서도 아니며, 내가 다른 존재들과 달리 더욱 특별한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직 만물에게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일관되게 변함없이 사랑하시는 그 마음 때문에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디, 내 삶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그것을 가져다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깊이깊이 묵상함으로, 모든 피조물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역사와 그 출발이자 과정이자 결과인 하나님의 신실하신 사랑, 변치 않는 사랑이 우리의 마음과 인생 가운데에 더욱 받아들여지는 대림절이 되기를, 그런 감격이 가득한 대림절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