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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과 휴식♧

이천 도드람산과 신륵사

작성자버드|작성시간10.10.01|조회수25 목록 댓글 0

'이천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도드람산은 일명 저명산(猪鳴山)이라고도 부른다. 저명산의 한문

표기의 '돗 저''울 명'의 돗울음산이 변하여 도드람산으로 부르게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불리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온다.

 

옛날 이 산 근처 마을에 병든 홀어머니를 극진히 모시던 효자가 있었다. 이 산에서만 나는 석이

버섯이 좋다는 스님의 말을 듣고 석이버섯을 따다가 드렸더니 과연 눈에 띄게 차도가 있었다.
어느 날 또다시 외줄을 타고 바위의 버섯을 따는데 돼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산돼지는 원래

울 줄 모르는 짐승이기에 이상하게 생각한 효자가 절벽을 올라가 보니 돼지는 없고 외줄이 바위

에 닳아서 끊어질 지경이었다. 효심이 지극한 효자를 가상히 여긴 산신령이 돼지를 보내 효자를

구했다 해서 '돋(돼지)울음산'이라 불렸다 한다. 돋울음산이 세월이 흘러 도드람산으로 변한

것이다. 한자로는 저명산(猪鳴山)이다.

     제1봉 입니다. 아래에 조그마한 표지석이 있습니다.

 

 

 1봉에서 2봉으로 가는 길은 편안한 흙길입니다.
 

 

 제3봉인 도드람산 정상입니다.

 

 

 

 

오대산 줄기가 공작산, 우두산, 고달산을 내달아 남한강에서 꼬리를 적시듯 봉황의 형세로 내려앉은 봉미산(鳳尾山)의 아담한 산세를 벗 삼아 자리한 전통사찰 신륵사(神勒寺).
강원도, 충청도의 물길이 서로 잇닿아 스미고, 섞이고, 휘돌아치는 남한강변에 위치한 신륵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전설(傳說)이 내려오고 있으며, 고려 우왕 2년(1376년) 나옹선사가 입적하면서 유명해졌다.
조선 예종 원년에 세종대왕릉이 여주로 천장(遷葬)되면서 세종대왕의 극락왕생을 비는 원찰로서 보은사란 사액을 받기도 한 신륵사에는 조사당과 다층석탑, 다층전탑 등 국가 지정 보물 7점을 보유한 한국의 보물창고이자 문화 유적지다.

                                       봉미산 신륵사 일주문

        주련(柱聯)이 걸려 있네요.  내용을 보니 삼일수심천재보(三日修心千載寶)요

        백년탐물일조진(百年貪物一朝塵)이라는 구절인데 야운비구(野雲比丘)의

        자경문(自警文)에 나오는 구절...  야운비구는 나옹스님의 제자이기도

        하다. 

        "삼일 동안 닦은 마음 천년의 보배요, 백년을 탐한 물건 하루 아침 티끌이네."

     지장보살(地藏菩薩) : 범어로는 크시티가르바(Ksitigarbha)이며,

          지지(持地), 묘당(妙幢), 무변심(無邊心) 등으로 번역됩니다.

          그러나 가장 널리 알려진 명칭은 지장보살입니다.

          그는 도리천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매일 새벽 항하사의

          선정에 들어 중생의 갖가지 근기를 관찰하는 보살로 부처가 없는 시대,

          즉 석가모니불은 이미 입멸하고 미륵불은 아직 도래하지 않는 시간에

          천상, 인간, 아수라, 아귀, 축생, 지옥의 중생들을 교화하는 대비보살입니다.

          특히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짐짓 지옥에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위무하고 교화하여 제도하는 위대한 '지옥세계의

          부처님'으로 신앙됩니다. '지장보살본원경(地裝菩薩本願經)'에는

          지장보살이 석가모니불에게 한 다음과 같은 서약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지옥이 텅 비지 않는다면 결코 성불을 서두르지 않겠나이다.

           그리하여 육도의 중생이 다 제도되면 깨달음을 이루리라."

          지장보살은 머리에 천관(天冠)을 쓰고, 왼손에는 연화(蓮花)를,

          그리고 오른손에는 보주(寶珠)를 든 모습이었지만,

          후세에 이르러 석장(錫杖)든 승려의 모습이라든가 동자를 안은

          지장의 모습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또는 육도를 맡아 교화하는

          육존지장(六尊地藏)의 모습이나 전쟁을 갈무리하는 승군지장(勝軍地藏)의

          형상도 출현하였습니다.  좌우에서 협시하는 존재는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이고,  지장보살이 봉안된 전각은 지장전(地藏殿),

          명부전(冥府殿), 시왕전(十王殿)이라고 불립니다.

하늘로 치솟은 듯한 아름드리고목 은행나무가 마주 건너다 보이며
역사를 함께 한 곳이 바로 봉미산의 신륵사와 미지산의 용문사이다.
오랜 세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봉미산 비탈에 벽탑은 우뚝 서 있고,
그렇듯 오랜 세월 한 왕조의 주권을 지켜온 신륵사를
옛 사람들은 봉미산의 아늑한 나라의 맥(중요 한 곳)이라 불러 왔다.

바로 문안에 들어서면
나옹 선사께서 지팡이를 꽂은 것이 살아났다는 은행나무가 첫 눈에 들어온다.
여주의 넓은 평야를 누리며 너그러운 굴곡으로 흐르는 여강이
여주의 생명이며 역사이듯이 은행나무도 또한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여강과 여주의 역사를 말하려면 빠뜨릴 수 없는 곳이 신륵사와 영릉인데,
바로 이 신륵사가 영릉의 원찰이다.
원찰이란 대개 죽은 조상의 명복을 비는 절을 말하는데
왕실(임금의 집안)에 의해 낡은 신륵사를
영릉의 원찰로 고쳐 만든 당시의 상황을
김수온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신하 한명회, 한계회에게 명하여 제조(들어 고름)로 삼고
여주 목사 이신효, 원주 목사 김춘향, 내시 부상선 이효지를
감역관(국가나 공공을 위한 일을 맡은 관리)으로 삼아
그 해 2월에 일을 시작하여 겨우 10월에 끝 마쳤다.

흰모래를 끼고 흘러가는 여강 주변에 위치 한 신륵사가
유명한 세종대왕의 원찰로 정하여 지기까지 큰 역할을 한 분들은
나옹 선사와 목은 이색이라 하겠다.
두 분은 같은 지역인 경북 영해에서 태어나
고려말에 왕실과 인연을 맺어 나라와 운명을 같이하다가
어떤 기연에서인지 여강의 주위에서
푯대처럼 곧고 참다운 삶을 마지막으로 보내어
그 정신이 서린 곳이 신륵사이다.

또한 [신륵사 중수기문]에서 김수온은
낡은 신륵사를 고친 일을 다음과 같이 찬양하고 있다.
신륵사 풍경은 우리 나라에 소문난 것으로서
사대부(양반)들이 돛을 달고 오갔으나
아직 한 사람도 그 절을 발전시키지 않더니
다행히
오늘날 임금의 지혜의 시대에 달하여 왕의 능을 이 고을에 정하였으매
큰 경사가 시작되었으며 이를 잘 계승하면
먼저 왕의 빛이 될 것이다.' 고 하였다.
아무튼 신륵사는 나옹 선사가 덕이 높은 스님들을 찾아
이곳저곳 이름난 곳으로 다니며 마음을 닦고 불도를 배우고
중국에서 들어와 짚고 온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으며
이 나무가 살면 후일 내가 죽어도 살 것이고
만일
이 나무가 죽으면 나는 아주 죽은 겉과 같다는 말을 남겼다.

다층석탑은 극락보전 바로 앞에 아담하게 서 있는 대리석 석탑으로 매우 아름다운 용과 구름 문양, 연꽃 문양을 남기고 있다.
현재 탑의 위치는 사찰의 구조로 볼 때 처음에 만들어졌던 원래 위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형태를 살펴보면 탑과 지면을 잇는 지대석 네면에 모두 연화문을 조각하였으며, 이 지대석과 본탑의 몸체를 구분하는 갑석에도 역시 연화문을 새겨 넣었다.
탑의 아랫부분 몸체에 섬세한 필치로 조각된 비룡문과 구름무늬는 그 기법이 매우 능숙하고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대장각기비는 높이 133cm, 폭은 88cm로서 비신 둘레에는 이를 보호하기 위해 돌기둥을 세워놓고 있다.
현재 이 비는 신륵사의 동쪽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는 목은 이색이 공민왕과 부모의 명복을 빌고자 나옹선사의 제자들과 함께 발원하여 대장경을 인쇄하고 이를 보관하기 위한 2층의 대장각을 지었다.
비신은 좌단이 깨어져 몹시 손상되어 글자를 알 수 없고 따라서 이 비를 세운 연대를 밝힌 부분에도 손상이 있어 이를 알 수 없으나 대체로 우왕 9년(1383)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문은 자경 2cm의 해서(楷書)로 예문관제학 이숭인(李崇仁)이 짓고 진현관제학 권주(權鑄)가 썼다.
뒷면에는 대장경 인쇄와 대장각 건립에 참여한 승려와 신들의 명단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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