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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 묵상

2026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살아가면서 자주 발끈한다면?> ...

작성자모아|작성시간26.06.15|조회수45 목록 댓글 2

2026년 6월 15일 연중 제11주간 월요일 (마태 5,38-42)

 

복음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8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39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40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41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 주어라.
42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살아가면서 자주 발끈한다면?>
 
우리 ‘영성의 수준’은 어떻게 평가될 수 있을까요?
저는 제가 발끈할 때를 돌아봅니다. 타인으로부터 받는, 혹은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반응하고 발끈한다면 딱 저의 수준이 거기까지입니다.

발끈한다는 말은 공격받는 것에 대해 나의 ‘자아’가 반응한다는 뜻입니다. 큰 개나 큰 물고기와 같은 동물들은 작은 물고기나 고양이가 괴롭혀도 별로 반응하지 않습니다.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싸우겠다고 으르렁거리면 비슷한 수준이란 뜻입니다. 만약 우리가 자전거를 배우고 있다면 뒤에서 아버지가 자전거를 잡아주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데 거센 바람에 두려워하고 길이 울퉁불퉁해서 소리를 지른다면 뒤에서 잡아주시는 아버지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자신을 버리고 주님께 신뢰를 두는 사람은 세상 것에 두려워 반응하거나 발끈하지 않습니다.

유튜브로만 보았지만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 중의 한 분이 박보영 목사입니다. 그분은 의사를 하다가 모든 재산을 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길거리 아이들을 키우며 목회를 시작했던 분입니다.

그분을 제가 존경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이 사건 때문입니다.

한 번은 자신이 키우는 여자아이가 길거리 생활을 다시 하기 위해 가출했습니다. 몇 주 뒤에 아이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통사정하고 다시 다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목사님을 부르더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아이가 임신한 상태인데 그 아버지가 목사님이라고 아이가 말했기 때문입니다. 아이를 집으로 데려올 때 등 뒤에서 선생님들의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도 뭐라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이는 죄책감을 견딜 수 없어 목사님의 아이가 아니라 가출했을 때 만난 오빠의 아이라고 실토하였습니다.

어떻게 자신을 흉악한 범죄자 취급을 하며 욕을 하는데 반응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자신을 그렇게 만든 은혜를 원수로 갚는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자기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아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영성은 자아를 얼마나 죽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저는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발끈하면 나의 영성은 거기까지입니다.

비오 신부님은 사제 서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에 오상을 받으셨습니다. 신자들은 성인 신부님으로 좋아했지만 몇몇 고위 성직자들은 그것을 마귀의 장난으로 여겼고 그렇게 보고하여 교회는 신부님이 신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금지했습니다.

신부님은 아무 반응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순종하여 혼자 몇 년 동안 미사를 드렸습니다.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지만 신부님은 어떠한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그리스도의 다섯 상처를 받을 때 그분의 자아도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분 영성의 수준입니다. 내가 어떤 일에 자주 발끈한다면 나의 수준이 거기까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자주 꾸던 꿈이 슈퍼맨이 되어 하늘을 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높이 날아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계속 건물과 산에 부딪혀서 떨어졌습니다.

우리 영성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로 오르는 방법은 그리스도처럼 못 박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실 때 참지 못하시고 발끈하셨다면 이 지구상에 어떤 생명체도 생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눈 한 번 깜빡이는 것으로 모든 인간을 재로 만들어버리실 수도 있으십니다. 만약 그러하시다면 그분은 하느님이 아니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되시기 위해 그분은 당신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하는 인간들의 공격을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못들에 의지하여 하늘로 높이 들리우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처럼 지상의 어떠한 것에도 반응하는 수준이 되지 말라고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하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 오히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대어라. 또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 누가 너에게 천 걸음을 가자고 강요하거든, 그와 함께 이천 걸음을 가주어라. 달라는 자에게 주고 꾸려는 자를 물리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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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작년에 이어서 올해에도 ‘생활 성가 대회’가 있었습니다. 작년에는 ‘나는 꽃이야’와 ‘감사해’가 공동체 안에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많은 교우가 함께 무대에 올라 하느님을 찬양했고, 서로를 격려하며 하나가 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올해는 ‘인생’이라는 노래가 1등을 차지했습니다. 저는 이 노래를 들으면서 우리 교우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노래의 가사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길고 길었던 겨울/ 봄은 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 견뎌내고 보니 어느덧 봄이더라/ 숨 막히게 더운 여름/ 지쳐 쓰러질 것만 같았는데/ 참아내고 나니 어느새 가을이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움/ 등불 같은 친구 곁에 있었고/ 멀고 먼 길 홀로 걸을 때/ 누군가 내 손잡고 함께 걸으니/ 걸어온 길 돌아보니/ 나의 이야기 남아있고/ 빛바랜 기억과 흘린 눈물/ 우리의 인생이라/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두움/ 등불 같은 친구 곁에 있었고/ 멀고 먼 길 홀로 걸을 때/ 누군가 내 손잡고 함께 걸으니/ 걸어갈 길, 눈 들어보니/ 까마득해 보이지만/ 새겨질 발자국 하늘빛 미소/ 그것이 은총이라”

고된 이민자의 삶을 살았던 추억과 기억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사업이 사람을 잘못 만나서 쫄딱 망했던 기억, 공부 잘해서 의대에 갔던 아들이 지독한 스트레스로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던 기억, 푸른 꿈을 안고 왔는데 아들은 평생 투석해야 하고 아버지는 뇌종양으로 엄마는 혈액암으로 긴 투병을 해야 했던 기억,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던 어린 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던 가슴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좋은 사람을 만나서 새롭게 시작한 사업이 성공하여 웃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죽을 줄만 알았던 아들이 건강을 회복하여 지금은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투석하는 아들도 좋은 직장을 얻었고, 암 투병 중이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아들과 딸을 선물로 보내 주셨고, 지금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쁘게 봉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노래 가사처럼 등불 같은 친구가 있었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함께 했었다고 합니다.

35년 저의 사제 생활을 돌아보면 ‘인생’의 가사처럼 추운 겨울도, 무더웠던 여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험난함의 길목마다 저를 지켜 주셨고, 좋은 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사제 생활 첫해에 ‘유행성 출혈열’로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있었습니다. 덕분에 인생은 하루만 살아도 ‘흑자’요, 인생은 ‘덤’이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서울 대교구에서 가장 작은 본당으로 갔을 때는 큰 본당으로 갔던 동창 신부님이 부럽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그 삼 년이 제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제게 딱 맞는 성당을 맡겨 주셨음을 알았습니다. 신문사에서 의욕적으로 홍보를 시작했을 때입니다. 미국 서부와 캐나다 밴쿠버까지 특강과 신문 홍보를 한 달 반 일정으로 야심 차게 기획했습니다. 제 앞에도 장밋빛 인생이 펼쳐질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은 그 모든 것을 포기하게 했습니다. 덕분에 코로나 팬데믹 동안에 좋은 신부님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주권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주사위는 사람이 던지지만, 결정은 하느님께서 하신다.’라는 잠언의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아합왕은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나봇의 포도밭을 탐합니다. 결국 악한 방법으로 그것을 빼앗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성공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눈으로 보면 실패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으로 얻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나봇은 억울하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목숨까지 잃습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실패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느님께서는 그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그의 억울함을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아라.” 이 말씀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상처를 받으면 되갚고 싶어집니다. 억울하면 똑같이 갚아 주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악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본능입니다. 그러나 악을 선으로 이기는 것은 믿음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보면, 우리를 살린 것은 복수가 아니라 용서였고, 미움이 아니라 사랑이었으며, 우리의 계산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살 것인가, 하느님의 방식으로 살 것인가. 세상은 “되갚아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노래 가사처럼 우리의 인생은 눈물과 기억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 위에는 하느님의 손길이 있었고, 앞으로의 길에도 그 손길은 계속될 것입니다.

“주님께 청하는 오직 한 가지, 나 그것을 얻고자 하니, 내 한평생 주님의 집에 사는 것이라네.” 이 고백처럼, 우리가 악을 선으로 이기며 살아간다면, 우리의 인생은 이미 하느님 안에서 완성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출처: 복음말씀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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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아롱다롱 | 작성시간 26.06.15 주옥같은 신부님의 말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답댓글 작성자모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6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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