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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 (36) 은총과 공로의 균형을 통해 추구하는 참행복

작성자모아|작성시간26.06.19|조회수18 목록 댓글 0

오만한 주체에서 겸손한 응답자로…은총 따르면 찾아오는 행복

 

신앙인은 자신의 결단력이 구원을 만들었다는 자만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로운 응답조차 하느님의 은총이 선행하여 가능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간이 죄에서 해방됨을 표현한 요한 미하엘 프란츠의 <신적 은총의 알레고리>. 위키미디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은 흔히 자신의 한계를 망각한 채 모든 일을 스스로의 힘으로 성취할 수 있다는 근대적 자아의 환상에 빠져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자본의 위력은 인간이 스스로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전능한 주체’로 착각하게 만들었으며, 행복 또한 개인의 노력과 성취를 통해 도달할 수 있는 전유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자율성 신화는 역설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완벽을 향한 무기력한 질주와 실존적 허망함을 낳을 뿐이다. 신앙인은 현대의 흐름 안에서 인간의 노력을 긍정하면서도, 그 모든 활동의 근원이자 완성인 하느님의 은총을 어떻게 인식하고 자신의 공로와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에서 인간 본성의 능력과 은총의 필연성, 그리고 그 안에서 작용하는 공로의 의미를 정교하게 분석함으로써 우리에게 중용의 길을 제시한다.

 

은총의 본질과 인간 본성의 한계에 대한 고찰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은총(gratia)’이란 일차적으로 인간의 자연적 능력 위에 더해진 초자연적인 선물이다. 인간의 지성은 본래 ‘자연적 빛(lumen naturale)’을 지니고 있어 감각적 사물을 통해 자연 질서의 진리를 인식하기에는 충분하다. 그렇지만 신앙의 영역이나 영원한 생명과 같은 고상한 목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빛, 즉 ‘신앙의 빛(lumen fidei)’ 또는 ‘은총의 빛(lumen gratiae)’이 필요하다.(I-II,109,1)

 

특히 범죄 이후의 인간 본성은 마치 병자와 같아서 초자연적 선뿐만 아니라 자연적 선조차도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온전히 성취할 수 없는 나약한 상태에 처해 있다.(I-II,109,2) 토마스는 인간이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하고 계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부패한 본성을 고치는 ‘치유하는 은총(gratia sanans)’이 필수적임을 강조한다.(I-II,109,3-4) 치유하는 은총 없이는 십계명과 같은 명령조차 인간에게 폭력적인 억압으로 느껴질 뿐이며, 인간은 스스로의 힘으로 죄의 늪에서 일어설 수 없다.(I-II,109,7) 따라서 현대인이 믿는 ‘무한한 자아’의 환상을 깨뜨리고,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넘어서는 영원한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외부로부터 오는 초자연적인 조력이 필요하다.

기술의 시대 살아가는 현대인
스스로 운영 결정한다고 착각

본성 넘어 행복에 도달하려면
외부의 초자연적인 조력 필수


하느님 주신 은총에 순명하고

‘사랑의 공로’ 쌓는 책임 다해야

 

토마스 아퀴나스가 제시한 은총의 체계적 구분

 

토마스는 은총이 작용하는 방식과 목적에 따라 이를 정밀하게 구분하여 신앙인의 삶 속에서 은총의 위치를 설명한다. 먼저 은총은 인간을 하느님의 마음에 들게 만드는 ‘성화 은총(gratum faciens)’과 타인의 구원을 돕기 위해 거저 주어지는 ‘무상 은총(gratis data)’으로 나뉜다.(I-II,111,1) 또한 인간의 의지가 선으로 향하도록 먼저 움직이는 ‘작용 은총(gratia operans)’과 이미 선으로 움직인 의지가 그 선을 이룰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협력 은총(gratia cooperans)’의 구분은 인간 행위에서 하느님과 인간이 어떻게 협력하는지를 잘 보여준다.(I-II,111,2)

 

토마스는 은총의 결과를 다섯 단계, 즉 ‘치유하고, 작용하고, 협력하고, 인내심을 주고, 영광스럽게 만드는 것’으로 요약한다.(I-II,111,3) 이러한 세밀한 구분은 은총이 단순히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인간이 죄로부터 일어나 성화의 길을 걷고 궁극적으로 지복직관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에 걸쳐 지속적으로 작용하는 실재임을 드러낸다.

 

인간의 의화와 자유 의지의 역할

 

현대인의 주체성 강조와 달리, 토마스는 인간이 하느님께 돌아서는 ‘의화(義化, justificatio)’의 과정 자체가 하느님의 움직임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I-II,109,6)

 

그러나 이것이 인간의 자유 의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은 모든 피조물을 그 본성에 따라 움직이시기에, 인간의 의화 역시 자유 선택의 움직임을 통해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신다.(I-II,113,3) 의화는 죄의 용서와 은총의 주입을 포함하며, 이는 인간 영혼을 새로운 상태로 변화시키는 ‘성화 은총’의 효과다.(I-II,110,1)

 

토마스는 의화가 ‘무로부터의 창조’보다 더 위대한 초자연적 선을 종착점으로 삼는다고 보았다.(I-II,113,9) 신앙인은 자신의 결단력이 구원을 만들었다는 자만에서 벗어나, 자신의 자유로운 응답조차 하느님의 은총이 선행하여 가능해진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공로(功勞)와 은총 사이의 정교한 균형

 

공로(meritum)에 대한 논의는 은총과 인간 노력의 관계를 정립하는 핵심이다. 엄격한 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무한한 하느님과 유한한 인간 사이에는 대등한 거래가 성립할 수 없으므로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공로는 존재하지 않는다.(I-II,114,1)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당신의 도움을 받아 선행을 쌓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도록 질서를 정해 놓으셨다.

 

따라서 공로는 일차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귀속되며, 그다음으로 인간의 자유 의지에 귀속된다. 영원한 생명은 인간의 자연적 능력을 넘는 것이기에 인간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이를 얻을 자격이 없지만, 성령의 작용인 ‘성화 은총’을 통해 하느님과 우정의 관계에 놓일 때 비로소 영생에 합당한 공로를 세울 수 있게 된다.(I-II,114,2-3) 공로란 인간의 자력적 성취가 아니라, 하느님이 주신 은총의 열매를 하느님의 안배 안에서 다시 그분께 돌려드리는 거룩한 질서의 회복이다. 토마스는 공로가 이기적인 자기 성취가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사랑 안에서 행해질 경우에만 진정한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다.(I-II,114,4)

 

은총의 시대적 증언과 신앙인의 태도

 

오늘날 모든 것을 자신의 공로로 돌리려는 ‘위장된 자기 구원론’에 맞서, 토마스는 ‘인간은 최초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으며, 오직 무상의 선물로만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I-II,114,5)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신앙인은 자신의 노력이 하느님의 은총이라는 토대 위에서만 유효함을 인정하는 겸손함과, 동시에 주어지는 은총에 성실히 협력하여 사랑의 공로를 쌓아야 하는 책임감을 동시에 지녀야 한다. ‘궁극적 인내(perseverantia finalis)’의 은총 또한 자신의 힘이 아닌 하느님의 이끄심에 달려 있음을 고백할 때(I-II,114,9), 인간은 비로소 현대의 오만에서 벗어나 진정한 행복인 지복직관의 희망으로 나아갈 수 있다.

 

 

 

 

 

글 _ 박승찬 엘리야(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

출처: 가톨릭신문      발행일 2026-06-21 제 3496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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