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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의 향기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작성자마음이|작성시간23.05.26|조회수28 목록 댓글 0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질문을 

세 번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아가파스'(agapas), '아가파스'(agapas),

'필레이스'(phileis)라고 물으시고,

 베드로는 세 번 다 '필로'(philo),

'필로'(philo),'필로'(philo)라고 대답한다.

 

이들 동사에서 첫번째와 두번째의 경우에

 원형은 '아가파오'(agapao)이고,

세번째는 '필레오'(phileo)이다.

 

먼저 '필레오'(phileo)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자신의 

과거의 잘못에 대해 진심으로 회개하고, 

뜨거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다짐을 나타내지만,

'아가파오'(agapao)는

 그러한 관계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은 

무조건적이고 신적(神的)인 사랑이므로,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예수님의

 '아가파오'(agapao)동사를 통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자신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을 드러내고 싶어

 '필레오'(phileo)라는동사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아가파오'(agapao)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에서 이루어진 

사랑처럼 가장 고귀한 사랑을 가리키는 

반면에, '필레오'(phileo)는 인간적인 

열정이나 애착 같은 일시적 사랑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아가파오'(agapao)를 통해 

고귀한 신적(神的) 사랑을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필레오'(phileo)를 

통해 계속 인간적인 사랑만을 고백하자,

결국 예수님께서도 17절에서 

베드로의 인간적인 사랑에 국한하여

'필레오'(phileo)로 물으셔서 베드로가 

슬픔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두가지 차원의 접근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없게 된다.

 

첫번째의 경우, 요한 복음 21장 17절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처럼

'필레오'(phileo)로 물으시고 베드로도

 '필레오'(phileo)로 대답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뜨거운 사랑을

 인정하신 것처럼 보이지만, 베드로가

슬퍼했다는 내용이 나오므로 이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두번째의 경우도,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인간적인 사랑에 맞추어 주셔서

베드로가 슬퍼했다는 것도, 

요한 복음 21장 15절과 16절에서

 예수님의 질문에 긍정하는

 '주님께서 아십니다'라는 베드로의 대답을 

볼 때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엄밀히 따져 보면, 

베드로가 슬퍼한 이유는 세 번이나 

똑같은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며

 동시에 과거에 세 번 배반한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다른 가능성은 신약 성경에서 

대부분 '아가파오'(agapao)와 '필레오'

(phileo)가 성부와 성자 사이의 친밀성을

 드러내기 위해 혼용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요한 복음 3장 35절의

 '아버지께서는 아드님을 사랑하시고

모든 것을 그분 손에 내주셨다'에서는

 '아가파오'(agapao)가 사용되었고,

요한 복음 5장 20절의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시어 당신께서 하시는

모든 것을 아들에게 보여 주신다'에서는

 '필레오'(phileo)가 사용되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세 번을 물으신

 질문에서 어떤 용어가 사용되었는가보다는,

같은 질문이 반복되었다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된다고 본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 대한 

베드로의 사랑을 확증함으로써, 베드로를

 당신이 도래시킨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수위권을 가진 사도로 

사용하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동일한 질

문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은 베드로의 인격 위에 세워질 반석과

 같은 교회의 수위권을 가진 사도로서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주님을 향한 사랑'이라는 진리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서 중요한 것은 시제가

 '현재형'이라는 사실이다.

 

과거를 추궁하는데 중점이 이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네가 나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를 묻는 미래에 중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는 것이다.

 

물론 사랑과 충성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베드로의 과거를 책망하실 수도 있고,

앞으로의 새로운 출발에 대한 당부도 

하실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지금 여기서', 

'주님을 내 마음의 중심으로 모시고 

진실된 사랑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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