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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해설

[복음]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루카10,25-37)

작성자모아|작성시간25.07.13|조회수22 목록 댓글 0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버렸다.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을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0~33)


루카 복음 10장 30~35절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이 올바르다고 확신하며 이웃이 자기 동족에 한정된다고 믿고 있는 어떤 율법
교사에게, 그의 생각이 틀렸고, 또한 그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자기 아님을 드러내며, 또한
그에게 진정한 이웃이 누구인지를 가르치고자 착한 사마리아인과 강도 만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
주신다.


예루살렘은 해발 760m의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며, 예수님 당대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하는 사제나
레위인들이 많이 살고 있던 예리코는 해면보다 250m 낮은 저지대이다.


이 두 지역간의 거리는 약 36km정도였으며, 길이 가파르고 길 옆에는 암석들도 많았으며 도둑들이 자주
출몰하였다.


루카 복음 10장 30절의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에 해당하는 '헤미타네'(hemithane; half dead)는 
'절반'을 뜻하는 '헤미'(hemi)와 '죽다'를 뜻하는 트네스코'(thnesko)가 합쳐서 만들어진
형용사로서, 강도 행각의 무시무시함을 보여주는 단어이다.


그래서 강도맞은 사람이 혼자 힘으로는 도무지 어쩔 수 없는 상태였음을 보여 주면서, 이웃의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상황을 더욱 부각시켜 준다.


마침 그때 백성들을 위해 성전에서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봉헌하는 임무를 지닌 사제가,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제의 의무 기간을 마치고 예리코에 있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도맞은 사람을 보게
된다.


그런데 그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에 해당하는 '안티파렐텐'(antiparelthen; he passed by on the
other side)는 '반대'의 뜻을 지닌 '안티'(anti)와 '지나가다'라는 뜻을 지닌 '파레르코마이'
(parerchomai)가 결합된 동사인 '안티파레르코마이'(antiparercho mai)의 부정과거형이다.


이것은 사제가 의도적으로 사고 현장을 우회하여 지나갔음을 명백하게 확인시켜 준다.


아마도 그는 자신도 강도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그 사람이 이미 죽었을것이라고 판단하여
시체를 만져 자신을 부정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율법 때문에 그렇게 헀을 것이다(레위21,1~3).




하지만 어떤 이유와도 상관없이, 강도만난 사람의 생사 여부를 확인하려는 최소한도의 노력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 사제의 행위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사제는 절실히 도움이 요청되는 사람을 보고도 의도적으로 외면했으며, 백성의 종교 지도자로서 
누구보다도 사랑의 실천에 모범이 되어야 할 사제(민수18,1~32)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도
도무지 용납이 될 수 없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또한 레위인도 사제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백성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성별된 지파의 사람이었는데
(민수18,1~32), 사제보다는 지위가 낮았지만 유대의 종교 특권층이 속해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이들이야말로 레위기 19장 18절에 명시된 이웃 사랑의 계명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고, 더 잘
지켜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 레위인도 앞서 지나간 사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게 강도 만나 죽어가는 사람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채 외면하고 떠나가 버린다.


한편, 세번째로 등장하는 사마리아인은 예수님 당대 유대인들에 의해 거의 사람 취급을 못받았던
부류인데도 진정한 이웃이 되어 준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마리아인과 앞서 나온 사제와 레위인을 비교시킴으로써, 교만하고 완고하며 사악한
유대주의자들을 책망하고 계신 것이다.


루카 복음 10장 33절에서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angchnisthe;
he took pity on him; he had compassion on him)는 원형 '스플랑크니조마이'
(splangchnizomai)의 부정과거형이다.


신약 성경에서 12회 등장하는 이 단어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자들에게 쏟아부어져야 할 인간의
기본적인 마음을 표현한다.


이 단어는 사제와 레위인도 강도만나 폭행당해 죽어가는 사람을 당연히 불쌍히 여겨 도와주어야 했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하지만 '가엾은 마음'은 어려움에 처한 상대방의 처지와 입장을 깊이 공감하고, 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어야만 생길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사제와 레위인은 극도의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 반면에, 사마리아인만이 비극에 처한 자를
가엾에 여기는 참된 사랑의 자비를 지녔던 것이다.


이 이야기의 역설과 아이러니는 유대인들이 보기에 이웃의 범주에도 속하지 않는 멸시받던 '이방인'이
불행을 당한 '유대인'에게 진정한 이웃이 되어 주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당시 이웃을 한계짓고 구별짓는 배타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 진정한 이웃의
자세를 상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출처: 피앗사랑, ri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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