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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해설

[독서]202026년 6월 11일 목요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제1독서 (사도 11,21ㄴ-26; 13,1-3)

작성자모아|작성시간26.06.11|조회수16 목록 댓글 0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년 동안 그 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1,25)

본절은 사울이 이방인의 사도로서 사도행전의 핵심 인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된 직접적인 사건을
다루는 구절이다. 안티오키아 교회에서 바르나바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주님을 믿게 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였다. 그러나 그는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원조를 구하거나 또한 어떤 교회 지도자가 이
안티오키아에 다시 보내질 것인지를 묻지 않았다. 다만 그가 사울을 찾으러 갔다는 기록뿐이다. 
그는 사울이야말로 안티오키아 교회에 가장 적합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찾으려고'에 해당하는 '아나제테사이'(anazetesai)의 원형 '아나제테오'(anazeteo)
는 철저하게 '파헤치다', '애써 찾다' 라는 뜻이며, 본문에서는 목적을 나타내는 부정사로 사용되었다. 
정사 '아나제테사이'라는 단어 안에는 사물을 찾으려는 바르나바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잘 드러나 있다. 그래서 바르나바는 직접 사울을 찾으러 거리가 멀리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타르수스'
까지 간 것이다.
 
과거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예루살렘 교회에 소개하는 중개인 역할을 하였던 적이 있었다.(사도9,27) 
그런데 그 이후 그리스계 유대인들이 사울을 죽이려고 하자 그를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가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울의 고향인 타르수스로 보냈었다. (사도9,30) 그 이후 사울은 바르나바가 찾으러
올 때까지 약 7, 8년을 타르수스에 머물면서, 아마도 시리아와 킬리키아 지방에 복음을 전하였을 것이다.
(갈라1,19-24)





바르나바는 사울이 하느님으로부터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사도9,15.27 ; 22,21) 그리고 그는 안티오키아의 이방인의 회심으로 왕성하게 교회가 성장하는 이
시점이 사울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이 본격적으로  실행되기 시작하는 때라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바르나바는 안티오키아 교회의 동역자로 사울을 모셔오기 위해 안티오키아에서 타르수스까지
갔던 것이다. 참으로 이러한 그의 행동은 안티오키아에서 자기 자신이 확립할 수 있었던 지도자의
자리를 생각하기보다는 이방인을 향한 하느님의 뜻과 계획을 먼저 살피는 겸손함에서 우러나온
것으로서, 오늘날 교회 지도자들의 귀감이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은 만 일년 동안 그 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들을 가르쳤다.'

바르나바는 사울을 애써 찾은 결과 그를 만나게 되었고, 그를 안티오키아로 인도하였다. 그런 후 그는
만 일년동안 교회에 함께 모여 있었다. 여기서 '동안'으로 번역된 '홀론'(holon)은 '전체의',
'온'(whole)이란 뜻으로 그들의 일년 전부의 시간을 온전히 함께 하였음을 나타낸다.
 
교회의 지도자로서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무리를 가르쳤던 것은, 대부분의 신도들이 이제 막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였기 때문에, 기본적인 신앙 교육이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년이라는 시간을 안티오키아 교회 신도들의 신앙 성숙을 위하여 전적으로 헌신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승천, 진리의 성령 보내심, 현재의 일과 장래에
일어날 일 등에 관한 여러 사실들과 그에 따른 의미를 배웠을 것이다. 또한 이 가르침은 그리스도인
으로서의 그들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방향을 설정하여 주었을 것이다.

이러한 희생적인 봉사와 교육의 결과, 안티오키아 교회는 모범적인 교회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얻었을 뿐아니라 예루살렘 교회에 부조를 보냈으며(사도11,29.30) 후에
이방 선교의 전초지가 되었다. 실로 훌륭한 신앙의 지도자에 의한 지속적인 신앙 교육이 얼마나 위대한
결과를 가져오는지 안티오키아 교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게 되었다'


'크리스티아노스'명칭이 안티오키아에서 생겨났음을 보여 주며, 신약 성경에서 처음 등장함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 해당하는 '크리스티아누스'(christianus)는 '크리스티아노스' 
(christianos)의 복수형이다. '크리스티아노스' 에서 접미사 '이아노스'는 '~에게 속한 자', '~의 종' 이란
뜻을 갖고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복수형으로 쓰였으므로,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 '그리스도의 종들' 
즉 그리스도의 완전한 추종자들이란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이렇게 일컬음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안티오키아에 있던 제자들이다. 여기서 '제자들'은 누구를
지칭하는 것일까? 그들은 '형제들'
(사도1,16; 9,30), '구원받은 이들'(사도2,47), '새로운 길을 따르는 이들'(사도9,2), '도들'(사도9,13), 
'신자들'(사도10,45)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두고 그리스도만을 최종
목표로 하고 따르는 자들이다. 이들에게 드디어 그들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새로운 명칭이 주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안티오키아의 이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사람들 누구인가? 첫째,
유다인들일 가능성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메시아인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한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에, 명 예수님이 메시아되심을 거부하는
유다인들이 지어준 것은 아닐 것이다. 둘째, 제자들 스스로 지었을 가능성이다. 그러나 이것은
가능성에 그칠 뿐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그들 사이에서 '제자들' 혹은 '형제들'이라고 
부르면서 서로가 그리스도인임을 확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안티오키아의 불신자들
가능성이다. 바로 이들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믿고, 늘 그에 대해서만 말을 하는 제자들을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유대인들과 구별하기 위해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붙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으로 불리우게 된 제자들은 그 이름을 기분
나빠하거나 수치스럽게 여기거나 주변 유다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조롱과 야유의
의미로 불리워진 이 명칭이 후대에는 존귀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와같은 '그리스도인'이란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이것은 안티오키아의 이방인 신자들이 더 이상 어떤 유다교의 한 종파에 속한 사람들로 인식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어떤 유다교와 구별되는 완전히 새로운 신앙으로 인정받게
되었다는 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사도26,28; 1베드4,16)





출처: 피앗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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