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36~38) 여기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에 해당하는 '에스플랑크니스테'(espllangchnisthe)는 '~을 불쌍히 여겨 마음이 움직이다'(be moved with compassion for)이다. '보기에 답답하고 딱해서 걱정하고 안쓰럽게 여기는' 단순한 감상적인 느낌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죄와 질병으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인간들을 향해, 인간들을 창조하셨고 또한 구원하러 오신 하느님의 마음을 드러낸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신 이유가 그들이 목자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라고 마태오 복음 사가가 전한다. 여기서 '시달리며'에 해당하는 '에스퀼메노이'(eskylmenoi; fainted; harassed)는 '지치고 쇠약해진'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기가 꺾여'에 해당하는 '에르림메노이'(errimmenoi; helpless; scattered abroad) 는 '의지할 데 없고 길거리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이라는 뜻이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결핍 상태에 있었고,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구심점이 없었다. 이런 차원에서 하느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을 포함하는 온 우주의 갈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며, 예수님은 여기서 영적인 목자의 의미를 통해 영적으로 방황하는 인간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고 구원하실 메시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태오 복음 9장 37절에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추수할 것은 많은데'라는 의미는 '양(羊; lamb)의 수효가 많음'에 대한 강조라기보다는 '때가 가까웠다'는 사실에 대한 강조의 말씀이다. 즉 하느님의 나라('바실레이아 투 테우'; Basileia tu theu; the Kingdom of God)가 드디어 도래했으며, 따라서 하느님 나라의 백성들을 불러모아야 할 때가 이르렀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심으로써 이 땅에 하느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전파할 일꾼이 많이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또한 예수님께서 일꾼의 수에 대해 언급하시는 이유가 단지 해야 할 일에 비해 현재의 일꾼의 수가 너무 적기에 지금보다 더 많은 수의 일꾼들이 필요하다는 의미만이 아니다. 이것은 그 다음 장인 마태오 복음 10장에서 언급되는 열 두 사도를 뽑으시고 파견하시는 일을 소개하기 위한 도입구의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수확할 것이 많다'는 의미는 '추수할 때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때문에, '일꾼이 적다' 는 표현 역시 '일꾼을 선발할 때가 임박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보내 주십사고'에 해당하는 '에크발레'(ekballe; to send out; he will send forth)는 '에크발로'(ekballo)의 변형인데, '밖으로'라는 뜻의 '에크'(ek)와 '던지다'는 뜻이 있는 '발로'(ballo) 의 합성어로서 '밖으로 던지다'는 뜻이다.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이루어지는 축출을 의미한다. 따라서 하느님의 일꾼은 인간의 의지적 결단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택에 의하여 주도적으로 파견된 자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부르심(성소; 聖召; Vocatio)을 받은 주님의 일꾼은 자신의 의지로 하느님의 뜻을 거부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느님의 자녀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주도적인 역사(役事)만을 기다릴 수 없다. 여기서 '청하여라'에 해당하는 '데에테테'(deethete; ask; pray)는 '제발 허락해 달라', '청하여 ~하라'는 의미를 지닌 매우 간곡한 부탁을 말한다. 하느님의 자녀들은 주님 추수 밭에 합당한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수확할 밭의 주인님이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점점 죄의 유혹이 많아 믿음의 생활이 힘들고, 선악의 분별력을 잃어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속출하는 이 시대에, 아버지께 가는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갈림없는 사랑과 온전한 봉헌과 추종을 통해 확실하게 착한 목자의 성소길을 생명을 바쳐 걸어갈 수 있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많이 달라고, 성소의 주인이신 주 하느님께 열심히 기도해야 한다. 일찌기 '성소란 있다고 해서 있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해서 없는 것도 아니다'는 말씀을 창설자 신부님으로부터 들었다. 이 말씀은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성소를 받았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부르심을 받고,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잘 살다가 사제로서 수도자로서 죽어 관 속에 들어가야 성소의 결실을 맺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과 자유 의지의 협력처럼, 부르심을 받은 사제와 수도자도 자신의 성소를 아끼고 사랑하고 잘 키워 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소받는 당사자들도, 하느님의 자녀들도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시대는 은총없이 성소받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처: 피앗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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