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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해설

[독서]2026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제1독서 (2열왕 2,1.6-14)

작성자모아|작성시간26.06.17|조회수22 목록 댓글 0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강을 건넌 다음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서
데려가시기 전에, 내가 너에게 해 주어야 할 것을 청하여라." 그러자 엘리사가 말하였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 엘리야가 말하였다. "너는 어려운 청을 하는구나.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갑자기 불 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그 두사람을 갈라놓았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8-11)
 
 

'엘리야가 겉옷을 들어 말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쪽저쪽으로 갈라졌다.'

 
엘리야가 겉옷을 말아서 요르단강을 내리치자 요르단강이 갈라지는 이적이 일어났다. 여기서 
'겉옷'으로 번역된 '앗다르토'(adartho)의 원형 '앗데레트'(adereth)는 길고 헐렁한 소매없는
외투 또는 어깨를 감싸는 망토(mantle, cloak)를 가리킨다.
 
이 명사는 '장엄하다' 혹은 '영광스럽다' 라는 뜻의 동사 '아다르'(adar)에서 유래된 것으로, '화려함' 
내지는 '영광'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이러한 자구적 의미는 모세의 지팡이가 그의 권위와 위엄의
상징물이었던 것처럼, 엘리야의 '겉옷' 또한 예언자 직분의 위엄과 영광을 상징함을 보여준다. (1,7.8)
 
 

따라서 예언자가 겉옷을 던진다는 것은 예언자직을 위임한다는 의미가 되며
(1열왕19,19), 이후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생도들 앞에서 보인 것은 자신이 엘리야의 후계자가 되었음을 명백히 하는
상징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다. (12-14절)

'그리하여 그 두 사람은 마른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일정한 장소나 유사한 사건과 관련된 이적이 성경속에서 다른 위대한 인물이나 사건들과 연관되어
반복되는 경향이 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요르단강 도하의 이적 역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이 
요르단강(여호3,13)을 건넌 사건과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넌 사건(탈출14,16.21)등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취한 것과 함께 본문의 이적 사건을 함께 동일하게 수행한 것
(12-14절)은 이것을 지켜보는 생도들에게 엘리야의 후계자로서 엘리사의 정통성을 완전히 입증해
주는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또한 '마른땅'으로 번역된 '하라바'(haraba)는 '건조하다', '황량하다' 라는 뜻의
동사 
'하레브'(hareb)

에서 유래된 명사로서, '육지'(마른땅 ; dry ground)를 의미하며 성경에 9번 정도 등장한다. 이 단어는
단순히 '육지'를 가리킬 때도 있지만, 사막 혹은 광야처럼 건조한 땅을 가리킬 때도 사용된다. 본문에서도
요르단강을 갈라 물기가 없는 땅을 건넌 사실을 생생하게 나타내기 위해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

무엇이든지 청하라는 엘리야의 말에 엘리사가 제시한 요청이다. 이 문장은 '제발' 혹은 '원컨대'를
뜻하는 부사 '나'(na)가 '이다' 또는 '있다'를 뜻하는 동사 하야'(haya)와 함께 사용되어, 간절한
기원문의 형태로 되어 있다.
 
한편, '영'으로 번역된 '루아흐'(ruah)는 '바람' 내지 '영'(靈)을 뜻하는 단어인데, 본문에서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는 '영적 능력'이란 의미로 쓰였다. 또한 '두'(갑절)로 번역된 '쉐나임'(shenaim)은
'반복하다' 라는 뜻의 동사 '샤나'(shana)에서 유래된 명사로서 '둘'로 해석되며, 원래 '입'을 뜻하지만
추상적 의미로 '부분'(portion)을 뜻하는 명사 '페'(phe)의 연계형 '피'(phi)와 결합되어 
'두 몫'(a double portion)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 두 몫의 비교 대상에 대해서, 종전까지는 엘리사의 받을 능력이 엘리야가 받았던 
영적 능력의

두 배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으나, 최근에는 엘리사가 엘리야의 예언자 지망생(생도)들
중에서 맏아들이 가지게 되는 분깃을 의미한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즉 이것은 한 집안에서 맏아들이 다른 형제들의 받는 몫의 두 배의 유산을 차지하며, 그 가문을 잇는 
권리를 가지는(신명21,17) 히브리 전통과 관련된 표현으로서, 자신을 엘리야의 영적 장자와 같이
취급하여, 그의 예언자직을 계승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12절에서 엘리사가
사라진 엘리야를 '아버지'로 호칭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따라서, 엘리사의 요구는 엘리야보다 더 많은 능력을 행하고 싶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스승이
가진 능력을 자신도 가지며, 스승이 걸어간 예언자의 길을 자신도 그대로 걸어가고 싶다는 의지의 표현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이후 엘리사에게 임한 능력은 갑절이 아니라 단순히
엘리야의 영감 그 자체였다(15절)는 예언자 지망생들의 증언도 이러한 해석이 타당함을 보여준다.
 
 

'네가 어려운 청을 하는구나'


본문에 사용된 동사 '히크쉿타'(hiqshsitha)는 '어렵다' 혹은 '곤란하다' 라는 뜻의 동사 '카샤'
(qasha)의 사역형으로서, '네가 나를 곤란하게 만드는구나' 라는 의미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이를
통해서 볼 때, 엘리사는 엘리야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아마도 '예언'
(prophecy)을 하고, 이적을 일으키는 영적 능력을 가지며,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혜였으므로, 어떠한 인간도 그것을 부여할 권한을 가질 수 없다는 
의미가 이러한 엘리야의 고백 배후에 깔려 있었을 것이다.
 
즉 영적 능력을 주고 예언직을 계승케 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 재산을 떼어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어서 오직 하느님만이 그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따라서 엘리야는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오직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나를 데려가시는 것을 네가 보면 그대로 되겠지만'
 
엘리야는 엘리사가 자신의 예언자직을 계승받을 수 있는 조건을 제시한다. 여기서 '데려가시는'에
해당하는 '룩카흐'(luqqah)는'라카흐'(laqqah)의 강조 수동형이며, 문맥상 이 동작의 주체는
하느님이시다. 따라서 본문에서 엘리야의 말은 엘리사가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자 한다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목격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사실 하느님의 일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보여주셔야만 가능한 특별한
은혜에 해당한다. 이같은 내용들을 고려할 때, 본문의 엘리야의 말은 그가 영적 능력 부여를 통한 
예언자직의 위임을 하느님께 완전히 맡기고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자신의 승천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께서 엘리사에
대한 영적 능력 부여와 예언자직 계승을 인정한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걸어가는데'

일차적으로는 엘리야와 엘리사의 여행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두 인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동행하고 있으며, 행동과 말에 있어서 일치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후에 엘리사가 행동과 말에 있어서 엘리야의 능력을 그대로 전수받아, 
그와 같은 능력있는 종으로 사명을 감당할 것을 예시하는 효과를 지닌다.




'갑자기 불병거와 불말이 나타나서 그 두사람을 갈라놓았다.'
 
'갑자기'에 해당하는 '웨힌네'(wehinneh)는 접속사 '와우'(wau)와 '보라'를 뜻하는 '힌네'(hinneh)가
결합되어, '그런데 보라'로 번역될 수 있다. 이것은 뒤이어 나올 충격적인 사건에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한다.

한편, 본문에 나타난 '불'의 이미지는 엘리야가 예언자직을 감당하는 가운데 여러가지 형태를 가지고 
반복적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리고 각각의 현장에서 나타난 '불'은 특별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먼저, 카르멜산에서의 바알 예언자들과 대결할 때, 엘리야가 쌓은 제단 위에 임한 불은 엘리야가 전하는
말과 행하는 사명에 신적 인증을 확인시켜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1열왕18,24-38). 아울러 그를
잡으러 온 아하즈야의 군사들에게 내려진 불은 불의한 자들에게 엘리야가 느님의 예언자임을 
확인시켜주면서 동시에 그에게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보호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1,9-16).

본문에 나오는 불명거와 불말의 경우는, 그동안 엘리야의 사명 가운데 '불'이 하느님의 임재와 보호, 
신적 인증을 상징하고, 병거(수레)와 말이 당시 군대의 전쟁 수행 능력을 가늠하는 척도인 것(탈출14,7;
판관4,3)을 감안할 때, 이것은 지금까지의 엘리야의 사명에 대한 최종적인 신적 인증임과 동시에 
그를 도우시는 하느님의 도움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갈라놓았다' 에 해당하는 '와이야프리두'(waiyaphridu)의 원형 '파라드'(pharad)는 
'나누다' 혹은 '분리하다' 라는 뜻이다. 여기서는 하늘에서 내려온 불병거와 불말이 엘리야와 엘리사를
분리시켰음을 나타낸다. 진작에 엘리야는 엘리사와 헤어질 것을 고집하여 이 시점까지 이른 것을
생각해보면, 인간의 만남과 이별도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새삼 느끼게 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명을 마친 엘리야를 하늘로 인도하시고, 앞으로 사명을 감당해야 할 엘리사를 지상에
남기시기 위해, 초자연적 능력으로 개입하셔서 부자지간처럼 가까웠던 이들을 완전히 격리시키신
것이다.



'그러자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

 
'회오리 바람에 실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빠세아라'(basearah)이다. 그런데 나선형으로 공기가
선회하며 일어나는  바람인 '회오리 바람'을 묘사할 때는 일반적으로 '쑤파'(supha)라는 단어가 쓰인다.
 
본문에 등장하는 '싸아르'(saar)는 성경에 16번이나 나오는데, 기상학에서 쓰이는 용어로서 갑자기
일어나는 바람인 '돌풍'이나 몹시 센 바람인 '폭풍'을 나타낼 때 사용되며 대개 날씨를 나타내는 단어들이
동반된다. (이사29,6) 아마도 본문의 '싸이르'는 급작스럽게 불어닥친 강력한 돌풍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한편 '빠세아라'는 '~안에서'(in)란 뜻의 전치사 '뻬'(be)와  정관사 '하'(ha) 및 명사 '싸아르'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이것은 '싸아르를 타고' 라고 번역하기보다는 '싸아르 안에서'나 '싸아르
가운데'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또한 원문에는 엘리야가 불병거와 불말을 타고 승천했는지 혹은 바람 그 자체를 타고 승천하였는지의
여부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지 않다. 그러나 '싸아르'라는 단어가 하느님의 임재(theophany)에
뒤따르는 폭풍우를 가리킬 때 쓰인(욥기38,1) 사실을 통해 미루어보건대, 엘리야는 불병거나 불말을
타고 하늘로 라간 것이 아니라 주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바람을 타고 승천한 것으로 보인다.
 
다시말해서, 본문을 통한 엘리야의 승천 방법 그 자체는 정확히 말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임재
가운데서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났고, 그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엘리야의 모습을 감추신 것으로 풀이된다.





출처: 피앗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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