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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해설

[독서]2026년 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제1독서 (2역대 24,17-25)

작성자모아|작성시간26.06.20|조회수13 목록 댓글 0




"여호야다가 죽은 다음, 유다의 대신들이 와서 임금에게 경배하자, 
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다른 우상들을 섬겼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17~19)

여호야다 사제의 죽음과 영광스러운 장례에 대하여 기술한 역대기 하권 24장 15~16절에 이어지는
역대기 하권 24장17~19절은 여호야다 사제가 죽은 직후의 요아스의 타락과 우상 숭배에 대하여
보도한다.

요아스왕의 정신적 지주였던 여호야다 사제가 죽자 요아스는 마치 망망대해에서 방향을 상실한
배처럼 산같은 파도에 흔들리고 풍랑을 따라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가 만일 하느님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면, 주위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하느님 앞에서
일관되게 선(善)을 행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는 여호야다 사제에게 의존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맺고 있었던 까닭에 여호야다
사제가 그에게 영향을 미칠 동안에는 우상을 척결하고 성전을 수리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지만, 여호야다
사제가 죽고 악한 자의 마수가 그의 목을 잡는 순간부터는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로 돌변하고 말았다.

한편 역대기 하권 24장 17~22절은 요아스가 하느님의 집을 버리고 아세라 우상을 섬기는 데에 대해서
하느님의 책망의 말씀을 전하는 즈카르야 예언자를 성전 뜰에서 돌로 쳐죽인 사실이 기록되어 나온다.

그런데 병행 본문인 열왕기 하권 12장에는 이러한 사실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처럼 저자가 열왕기 저자와 달리 요아스의 추악한 부분까지 낱낱이 기록한 것은 
아람 군대에 의한

요아스의 대패(2역대24,23~24절)와 신복들에 대한 암살(2역대24,25~26)사건이 하느님을 버린 자에
대한 엄중한 심판이라는 사실을 후대의 독자들에게 교훈하기 위해서이다.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어제가 어떠하였든지간에 오늘 하느님 앞에 바로 서서 올바로 살지
않으면, 넘어질 수 밖에 없을 뿐 아니라 하느님의 엄중한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대신들'에 해당하는 '사레'(sare)의 원형 '사르'(sar)는 본래 '주권을 소유하다', '통치권을
행사하다' 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사라르'(sarar)에서 유래한 명사로서 기본적으로 '통치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구약성경에서 무려 369회나 사용된 이 단어는 '장관', '감독', '족장', '귀족', '방백', '신하' 등등 상당히
다양한 의미로 나타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번역에 나타나는 '사르'의 공통점은 한 나라의 왕은 아니지만, 왕에 버금가는 권한을
가지고 어떤 지역을 다스리는 상당한 권력자라는 사실이다.

여호야다 사제가 죽은 후에 요아스 왕에게 찾아온 유다의 '사르'들은 당시 상당한 정치적 영향력을
형성하고 있던 사람들로서 여호야다 사제의 생존시에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죽이고 있다가 여호야다
사제 사후 즉각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세우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임금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었다.'

'그들의'로 번역된 '알레헴'(allehem)은 '그들에게' 또는 '그들을 향하여'라는 의미인데, 왕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부추긴 인물은 한 명이 아니라 여럿이었던 것이다.

또한 '말을 듣게 되었다' 로 번역된 '샤마으'(shamah)는 주의를 기울여 듣고 따른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처럼 요아스는 하느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말을 아무런 비판 의식도 없이 듣고 따름으로써 남부 유다
왕국 전체를 타락의 길로 몰아가고 말았다.

'그들은 주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조상들의 하느님의 집을 저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 주체가 요아스 왕을 비롯한 남부 유다
백성 전체임을 보여준다.

특히 왕으로 즉위하여 하느님의 집을 수리하는 데 열정을 바쳤던 요아스는 이제 스스로 그 성전을
버리는 자기 모순에 빠졌으며, 이로 인해 백성들 전체도 하느님의 집을 버리게 되었고, 더 나아가
선민 유다 백성들이 하느님을 몰아낸 그 자리에 우상을 얹혀 섬기는 일까지 저지르게 되었다.

  



'이 죄 때문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가 내렸다'


요아스 왕 당시 하느님의 진노가 요아스 왕 한 사람의 죄로 인해서가 아니라 그와 그로 인해 우상숭배에
빠진 남부 유다 모든 백성들의 죄로 인해 발생한 것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진노'에 해당하는 '케체프'(qetseph)는 구약 성경에서 범죄한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진노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흔히 쓰인다(민수17,11; 1역대27,24).

역대기 하권 24장 24절에 '이렇게 그들은 요아스에게 내려진 판결을 집행하였다'는 진술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당시 하느님의 진노는 아람 군대의 침략으로 가시화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하느님의 진노는 요아스와 백성들이 하느님의 집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기 시작한 바로 그날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예언자들을 통한 하느님의 경계가 충분히 행해진 이후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2역대24,19.33).

'주님께서는 그들을 당신께 돌아오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셨다. 이 예언자들이
그들을 거슬러 증언하였지만, 그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예언자들'으로  번역된 '네비임'(nebiim)은 '나비'(nabi)의 복수형이다.

즉 하느님께서는 단 한 명의 예언자만 보내신 것이 아니라 여러명의 예언자들을 보내신 것이다. 
이렇게 보내어진 예언자들 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역대기 하권 24장 20~22절에 기록된 여호야다
사제의 아들 즈카르야였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은 두 가지 사실을 암시적으로 보여 준다.

첫째는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보내실 때마다 요아스와 백성들이 듣지 않는 강퍅함을 보였다는
사실이며, 다른 하나는 요아스와 백성들의 거듭되는 거부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상당한 인내를
가지고 그들을 돌이키려고 부단히 애쓰셨다는 사실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통한 여러가지의 경계를 통하여 그들이 회개하여 당신께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회를주시는 자비와 인내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예언자들이 '증언하였지만'으로 번역된 '와이야이두'(waiyaidu)의 원형 '우드'(wud)는 본래 
'반복하다','거듭 행하다'라는 의미의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확고한 진리를 반복적으로 진술하여 
듣는 자들로 하여금 그 진리를 확실히 알게 할 경우에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신명8,19; 1열왕21,10).

그러니까 여러 명의 예언자들이 서로 다른 말을 전한 것이 아니라 동일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동일한 경고를 발하였음을 나타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아스와 백성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에 해당하는 '우일로 헤에지누'(uilo heezinu)는 '듣지 않으려고 완강하게
버티다'라는 뉘앙스를 나타낸다.

예언자들의 증거와 경고가 거듭되는 동안, 요아스와 백성들의 마음 속 한 구석에서는 회개하라는 
세미한 음성이 들렸지만, 이미 어둠의 마수에 사로잡힌 그들은 세미한 음성까지도 억누르면서
예언자들을 배척해 버렸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악인들의 전형적인 삶의 자세이다.





출처: 피앗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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