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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있는 형 이야기(화평편)

작성자swchoi|작성시간17.04.19|조회수88 목록 댓글 0

 

알고 있는 형 이야기(화평편)

 

누구나 알다시피 가정도 화평한 가정이 좋은 가정이요 교회도 화평한 교회가 좋은 교회지.

인간이 평화를 희구 하면서도 세상은 늘 평화롭지 못하고 교회는 평화를 누리고 가르치는 곳이면서도 교회 안에 싸움이 많았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어.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 보다도 평화가 그리운 때를 살아가고 있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무엇보다 화평의 열매가 필요한 때야.

 

지난 400년 지구 역사속에서 전쟁이 없었던 시간은 채 3년이 못될 것이라고도 해.

그들에게 왜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한결같이 평화를 위해 싸웠다고 말하지.

이것이 모순된 인간의 실존이야.

 

20세기만도 지구촌엔 엄청난 전쟁들이 있었지.

세계 1차 대전, 2차대전, 6.25 전쟁, 월남 전쟁, 걸프 전쟁, 아프칸 전쟁, 그리고 이라크 전쟁에 이르기까지 크나큰 전쟁들이 있었어.

지금은 시리아 등지에서 내전이 진행되고 있지.

마지막 때가 되면 전쟁과 전쟁의 소문이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오늘이야 말로 세계 구석구석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을 안방에서 볼 수 있는 - 전쟁의 소문이 있는 시대야.

 

예수님께서도 평화를 잃은 땅을 바라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지.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라고 하셨지.

 

형 사실 우리 분단된 한반도가 통일 이전까지 아니 통일 된 후에도 평화를 완전히 정착시킬 때까지는 시간이 걸리지 않나?

 

 그렇지. 사실 오늘 우리의 눈에서야말로 예수님의 눈물이 흘러내려야 할 때야.

 "한강아 압록강아, 서울아 평양아 너도 이제 평화를 알았으면 좋겠다!" "한반도야, 너도 이제 평화로운 땅이 되었으면 좋겠다." "

한국교회야, 너도 이제 화평하여 세상의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고 울어야 할 때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안녕하십니까?"라고 인사를 축복 형식이 아니라 질문형식으로 인사를 하는데, 이는 오랜 세월 안녕할 수 없었던 우리민족의 아픈 역사를 담고 있지.

배고픈 시절 "진지 드셨습니까?"하는 인사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인사야.

우리 민족과 똑같이 아픈 역사를 많이 가진 나라가 유대역사지.

 

유대인들은 세계 그 어떤 나라보다 더 많은 전쟁에 시달려왔어.

때문에 일편단심 유대인의 소원은 평화였지.

그들은 만날때마다 평화를 의미하는"샬롬"이라는 말로 인사를 나누었고 그들의 수도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

구약성경은 메시야를 예언하면서 그분은 "평강의 왕"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

예수님께서 이땅에 오셨을 때 천사들의 노래는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했어.

 

우리나라 평양도 그렇지 않나?

 

, 공교롭게도 평양이란 뜻도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지.

참 모순된 이름인데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 평화의 도시 평양 땅이 평화는 커녕 늘 전쟁과 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아파하는 모순 속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야 해.

, 성도들은  전쟁의 땅에서도 화평을 만들어 가고 분쟁의 환경속에서도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지.

 

신약성경에서 "화평"이란 말은 에이레네라고 하는데 신약성경에 88번 정도 나와.

이 말은 구약 "샬롬"을 번역한 말인데 신구약을 합하면 이 평화란 말이 400번 이상 등장하지

"화평케 하는 자"란 평화를 만드는 자 즉 영어에 Peace Maker라는 말과 같은 말이야.

이 말은 단순히 평화를 즐기는 사람, 평화를 사랑하는 자, 평화예찬론자 정도의 소극적인 뜻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하는 사람, 화해를 창조하는 사람을 의미하지.

알라스카 에스키모인들은 "평화" "원수를 친구로 삼는 것"이라고 해석을 해

 

아 적극적인 평화를 만드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가 보네.

 

, 이것이 그리스도인이야.

그리스도인은 분쟁이 있는 곳에서 마냥 불안해하는 사람이 아니야.

혼자서 도를 닦고 평화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지.

그리스도인은 분쟁의 자리에서도 화평을 만들어 가는 사람이야.

 

싸움을 말리는 사람을 Peace Maker라고 하고 싸움을 붙이는 사람을 Trouble Maker라고 해.

바울 서신에 보면 교회생활에 죄목을 나열하는데 당 짓는 것, 분쟁하는 것, 수군수군하는 것, 남을 비방하는 것 등을 언급하고 있지.

이 사람에게는 이 말을, 저 사람에게는 저 말을 하므로 이간을 붙이고 싸움을 하게 해.

이런 사람이 Trouble Maker.

 

교회 생활을 바로 하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에 대한 나쁜 말을 안하기로 결심을 해야 해.

Peace Maker는 못되더라도 부디 Trouble Maker는 되지 말아야 돼.

성도가 성령의 사람이라면 성도가 가는 곳에 화평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어.

성도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지.

 

그러면 혼자 편안하면 되지 않나?

 

아니, 나 혼자 편안하면 다가 아니야.

성도는 평화의 방관자가 아니지.

그리스도인은 고발자나 방관자로 보냄을 받지 않았어.

그리스도인은 얻어맞으면서도 싸움을 말리고 평화를 창조하는 화해자가 되어야 돼.

 

그 사람이 평화를 만드는 자인가 아니면 문제를 만드는 자인가 이것은 곧 그가 하나님의 아들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 되지.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는  이 말씀을 바꾸어 말하면 "분쟁을 만드는 자는 마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리라"고 할 수 있지.

예수 나무엔 예수 열매가 맺히고 마귀 나무엔 마귀 열매가 맺히는 거야.

 

근데 화평하게 하려면 말을 잘해야 되는 것 아닌가?

 

입을 조심하지 않고 혀를 함부로 놀려대기 때문에 평화가 깨지지.

우리의 눈이 남의 허물을 보아도 혀로 비판하지 아니하고 그를 위해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그는 좋은 교인이 될 수 있어

 

가능하면 입을 다물고 말하기 보다는 듣기를 배워야 해.

화해자가 되는 최상의 방법은 침묵하면서 도와주는 방법을 배우는 거야.

공연히 아는 척하고 충고하고 비난하려는 유혹을 참아야 돼.

 

, 하긴 충고한답시고 사정 다 듣기전에 말하기부터 하면 상대방은 맥이 풀리지.

  

 다른 사람에 대해서 누가 비방하는 말을 할 때 그 사람에게 가서 그 말을 전하지 말아야 해.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해야 돼.

그리고 자신의 견해나 의견을 교회 안에서는 강하게 주장하지 말아야 돼.

자신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노출할 따름이야.

신앙생활에 승리하기를 원한다면 언어생활에 승리해야 돼.

화평의 열매는 입에서부터 맺혀져.

 

내가 알기로는 성경에서의 화평 개념은 다 대가를 치룬 것으로 알고 있는데?

, 구약에서 화평이 희생동물의 대가로 인해 획득된 것이라면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희생 제물이 되어서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맺게 된 거야.

이러한 사실은 평화가 막연한 소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값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과정의 결과라는 사실을 잘 설명해 주지.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명령을 했는데, 이는 하나님과 화평케 된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화평케 되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희생해야 됨을 잘 가르쳐 주고 있어.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라" - 는 로마서 말씀 중엔 이중적 의미가 있어.

 

첫째는 화평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거야.

그리스도인은 죄와 타협할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화평할 수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

예수님도 바리새인들과는 화평을 이루지 못했고, 가롯 유다와는 화해를 이루시지 않았어.

 

둘째는 말 그대로 할 수만 있으면 어떤 희생을 치루고서라도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라는 뜻이야.

미워할 사람 다 미워하고 원수 갚을 것 다 갚고 사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 아니야.

가정이나 교회 안에서 조금 섭섭해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로 풀고 사랑해야 돼

 

악은 하나님이 직접 다루실 거야.

우리는 용서하고 그냥 사랑하는 거야.

구역이나 교회 안에서 내 맘에 걸리는 문제 깨끗이 다 해결하고 할 말 다 하고 살려고 하지 말아야 해.

거기서 화평이 깨지지.

내 맘에 좀 안들어도 덮고 품고 화평하게 살아야 해.

그냥 용서하고 사랑하면 언젠가는 변화되고 가족이 화평하게 되는 거야.

 

그래 보면 내가 존경하는 교회분들은 항상 손해보는 자리에 미리 서있더라고..

그냥 그게 습관적으로 굳어져 버려서 당연하게 여기고 내세우지도 않지.

 

교회에서도 누군가 시간의 손해를 보고, 물질의 손해를 보고, 자존심의 손해를 보아야만 교회가 영적으로 부흥하고 은혜로운 가족이 될 수 있어.

따질 것 다 따지고 주장할 것 다 주장하면 은혜는 없어지고 말지.

교회 안에서 자기가 자기 자신을 가르칠지언정 누군가를 가르쳐야 되겠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돼.

내가 배우기도 바쁜 세상이야.

 

형이 이전에 하던 말 생각나네.

친절한 금자씨 이영애 톤으로 나나 잘하세요하던 적 있었잖아.

 

부끄럽게 다 지난 일을 뭘 들춰보냐. 나부터 잘해야 한다는 뜻으로 했는데 그말 좋아하는 사람도 있더라고..

 

형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어?

 

첫째 화평은 하나님과의 화평이야.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분리하게 되었지.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장벽을 쌓고 말았어.

예수님은 십자가 상에서 화목 제물이 되시므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목의 다리를 놓으셨지.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게 되고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에 들어갈 수 있어.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이 이 땅의 모든 평화의 기초야

 

이 세상이 평화를 잃어버린 것은 인간이 하나님과의 화평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지.

하나님과 원수 맺고 하나님 싫어하는 인간이 되어 살지 말아야 돼.

그 길은 죽는 길이며 망하는 길이야.

 

둘째 화평은 우리 자신과의 화평이기도 해.

 

칼 융(Karl Jung) "마음의 평화는 모든 질병과 마음의 상처를 치료해 준다"고 했어

그리스도인은 분쟁의 땅에서 화평을 만들어가기 전에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마음이 평화로와야 해.

내적 화평을 즐길 수 있어야 하지.

온 세상이 분쟁의 파도로 넘실대고 있어도 내 마음이 고요하고 평화로울 수 있다면 밖의 파도는 반드시 잠들게 되어 있어.

 

셋째 평화는 이웃과의 평화야.

 

여러분, 가정 안에서 그리고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불화할 때가 언제인가 한번 돌이켜 보면, 그때는 필시 내 마음속에 평화가 없을 때 이었을 거야.

이 얘기는 문제가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지.

특별히 성도의 교제의 균열을 좋아하는 것은 사탄 밖에 없어.

 

형, 존 번연의 아픈 고백이 생각나네.

 "이상하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하나있다. 마귀와 더불어 대적해야 할 교회와 성도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는 구나!"

 

분쟁은 너를 죽이고 결국 나도 죽는 독약과도 같아.

부부간에도 화평하면 님이 되지만 화평이 깨지고 나면 남이 되지.

 

넷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사람이야. 

 

우리가 다른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들도 반드시 하나님과 화목해져야 돼.

그것이 구원이요 영생이요, 진정한 행복이기 때문이지.

그래서 주님은 먼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과 세상 사람들을 화목하게 만드는 책임을 맡겨 주셨어.

 

기독교의 사랑 - 아가페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께로 연결되듯이 화평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하나님과의 화평한 관계로 이어지지.

궁극적으로는 내 이웃들도 모두 하나님과 화평하고 그들의 이웃과 화평하고 각자 자기 자리에서 화평을 만들어 가도록 돕는 거야. 이것이 진정한 화평의 열매지.

 

, 그러니까 하나님으로부터 난 화평을 받아 그 화평을 이웃과 나눈다고 보면 되는 건가?

 

, 미국 카네기 공대를 졸업하여 성공한 사람들을 추적 조사한 결과, 그들은 한결같이 "성공하는데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은 15%밖에 영향을 주지 않았으며, 나머지 85%가 인간관계였다"고 말했어.

우리 주위에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여러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온 것을 봐.

화평은 이처럼 세상을 행복하게 해.

 "세상 살기가 힘이 든다. 어깨에 힘이 빠지고 살 재미가 없다"고 느낄 때가 언제냐 하면 틀림없이 관계가 깨졌을 때야.

좀 배가 고파도 화평하면 세상 살만해 .

 

화평의 열매가 나타나는 사람은 뭐가 있다고 하던데 기억이 안나네?

 

화평의 열매가 나타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이 있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지.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여 "너는 참 내 아들이구나" 인정하시는 장면을 상상해 봐.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겠니?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리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지.

우리가 화평케 하며 살 때 하나님께서 바로 이런 인정을 해 주시겠지. 과연 내 아들이다!

 

부럽네. 왕자라고 해도 들뜨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그것도 하나님께서 직접 말하신다면 더욱 그렇겠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하게 되지.

성도들이 철야기도를 한다고 불신자들이 도전을 받겠니?

아니면 우리가 성경박사가 된다고 그들이 감동을 받겠니?

우리가 화평케 하며 살 때 그들이 인격과 삶속에 도전이 되고 감동이 되어 저들도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을 하게 되는거야.

 

그렇네, 남들을 화해시키고 적극적인 평화를 만드는 사람, 그게 형이 되고자 했던 외교관 아니야?

 

오히려 지금 하나님의 대사역할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훨씬 더 성직을 수행하는거야.

지금은 외교관에 대한 미련 하나도 없어.

 

이천년 기독교 역사상 최대의 실수는 십자군 전쟁이었지.

십자군 전쟁의 결과로 수천의 고아와 미망인들이 생겼고 기독교들과 마호멧교도들 사이에 무서운 증오심이 생겼어.

 때문에 오늘날 전세계에서 복음을 전하기가 가장 어려운 지역이 회교 지역이지

그런데 이 십자군 전쟁이 계속되던 그때 이 전쟁의 잘못을 지적하고 아군 진영뿐만 아니라 적군들에게까지 평화의 사신을 보내고 복음전도자들을 파송하며 눈물로 기도했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아씨시(Assisi)의 성자 성 프란시스(St. Francis).

그가 외쳤던 기도문인데, 한 번 들어봐.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심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소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자기를 버려 죽음으로써

영생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멋있는 시다. 나도 화평케 하는 자는 못되더라도 더 이상 트러블 메이커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확고한 생각이 드네.

그나저나 4월 27일 전쟁난다는데 꼭 그시기에 딱 맞춰 한국가야겠어?

그래봤자 형이 아무리 거짓예언자들 전쟁론자들 싫어해도 그들은 계속 틀린 예언을 할 것이며, 틀린 국제정세 예측을 할거야.

물론  귀가 가려운자들은 뭔가 신봉할 예언을 찾겠지.

 

그들에게 내가 이런식으로 저항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고, 그럴 가치도 없어..

내가 이 장사(?)하루 이틀한 것도 아니고, 다미 선교회시절부터 지금까지 예언틀리게 한 사람이 반성이나 회개한다는 말 조차 들어본적이 없어.

오히려 회개는 커녕 그 수많은 잘못을 해놓고서도 기독 카페랍시고 개설해놓고 온갖 미혹의 영과  정치인들 선동에 놀아나는 꼴만 실컷 보았지.

그들에게는 오직 빨갱이만 있을 뿐 예수님은 그냥 선전용 장식품일뿐이야.

예수를 믿으면 도저히 내기준으로는 그럴 수 없어.

그들은 이명박이 불당에 가는 것 김진태가 통일교당에 있는 것은 사진을 봐도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며 조작이라고 보는 거지. 

진리는 커녕 진실도 못보는 수준으로 예언을 한다? 웃기는 일이지.

 

그래서 예언을 멸시하지 말라는 말이  예사로 안들려.

성령님은 다 아셔서 성경에 기록이 된거지.

앞으로 거짓 예언자가 그렇게 많은 것을 미리 예견하신거야.

자꾸 무시할만하게 여러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말 해놓고 아니면 말고 식이 너무 많으니까 말이야.

러니 잘 모르는이들은 무당과 비슷하게 보는거야. 무당이 더 용하다는거지.

 

그리고 공중권세 잡은 것들과는 영적 전쟁을 하는 거지.

굳이 프리메이슨이다 뭐다 해서 악령들에 대한 연구에  깊이 빠질 필요는 없어.

도 한때 제대로 믿기 전에 관심이 있었던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계속 보다보면 영혼이 탁해지거나 건강이 상하기 십상이야.

옛날에도 탁명환 소장님 이단 연구시절에도 그런 사역은 준비되어 있고 그쪽으로 은사가 확실히 있는 사람들이 하는거라고

하더라고..

은사가 확실해 차고 넘치거나, 시간이 남아 도는 것이면 몰라도.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하루가 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라도 시원찮을 판국에 참 한심한 일이지.

국제정치는  92년부터 학교에서 외무부장관, 통일부 장관등 기라성 같은 교수들 밑에서 혹독한 담금질당했고, 웬만한 교수들 강의나 책 신문등 탐독했지만

그 예측이라는게 결국 공중권세 잡은 것들이 아무리 애써도 하나님 손바닥안에서 노는거야.

하나님이 전능하시다 하는 수준이 타락한 천사(그보다 훨 못한게 프리메이슨)들과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모르는 거지.

그냥 때가 될 때까지 오래참아 주시는 것은 마귀들이 짓까부는 시간을 허용하기 위함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더 구원하시려하는 긍휼함과 사랑 때문이시지.

 

독립변수와 종속변수가 생각나네.

하기야 형은 살아도 천국 죽어도 천국이니까 그렇게 담대할 수 있겠지만, 형 가족들은 그렇지 않잖아.

 

야, 어차피  한국 5000만 국민과 함께 하는건데 그건 담대한게 아냐.

그냥 4.27일에 집사람과 같이 가기로 했던 것 바꾸지 않을 뿐이지.

안믿는 사람도 그정도는 하네 이 사람아.

그런데 요즘은 가족구원 문제마저도 하나님에 맡기는 게 옳바른 신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

내가 부모님 생각해서 지혜를 낸다고 해도 꼭 그게 선으로 이어지지는 않아. 하나님의 선한의지에 맡기는게 더 완전하고 안전해.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셔.

그리고 또 하나 말로만 크리스찬들이 모르는게 하나님이 우리나라를 많이 사랑하신다는 점이야.

아무리 트럼프 성향이 어떻고 북한이 핵개발을 해도 나는 군입대했을 때 준전시 상태에 북한NPT 탈퇴, 김일성 사망 다 거치면서 느낀점은 전쟁은 하나님께서 막아주신다는거야.  

그 반대로 말하자면 전쟁은 또한 하나님께서 허용하신다는 거고.

차라리 틀리더라도 휴거가 다가왔다고 하면 가능성의 측면에서 보면 어느정도 수긍이 가는데 말이지...

 

치...그래도 어차피 형은 형방식대로 가족구원을 위해서 뛸거면서...

그리고 영변 핵개발이다 뭐다 형이 뉴스위크 번역해서 나에게 침튀겨가면서 설명한게 벌써 25년이 됐네.

참 북한은 꾸준했는데, 왜 사람들은 그 꾸준하고 그 나름의 합리성을 못볼까?

신기한일이야.

 

# 다음카페 위로부터의 성령의 열매에서,

흐르는 음악: 새찬송가 327 주님 주실 화평

비발디 / 칸타타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RV.630 중 1곡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 엠마 커크비(소프라노), 크리스토퍼 호그우드(지휘), 고음악 아카데미,
 , 신실하게 진실하게, 하나님은 실수 하지 않으신다네.

배경 그림: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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