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orge Martin-Three American Sketches II Old Boston-크레이그 오그던(기타)나탈리 클라인(vc)
작성자신의식작성시간26.06.18조회수25 목록 댓글 1George Martin
Three American Sketches: II Old Boston
크레이그 오그던(기타) 나탈리 클라인(vc) 外
Conductor: Craig Leon
Producer: Craig Leon
Orchestra: Berlin Music Ensemble
Music Publisher: George Martin Music
Composer: George Martin
Producer: Anna Barry
Recording Engineer: Gary Thomas
Recording Second Engineer: Chris Parker
Mastering Engineer: Mike Hatch
Composer: George Martin
George Martin
George Martin
영국의 전설적인 음악 프로듀서이자 작곡가, 지휘자로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로듀서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조지 마틴은 비틀즈의 Let It Be를 제외한 모든 음반에 대한 프로듀싱을 단독으로 담당했으며[10], 비틀즈에게는 단순한 프로듀서를 넘어서 형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다. Yesterday를 비롯한 대다수의 비틀즈 명곡들이 그의 훌륭한 프로듀싱과 편곡 과정으로 태어날 수 있었으며,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도 조지 마틴의 프로듀싱 기술에서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비틀즈 멤버들은 전성기 시절, 화성학을 몰랐고 악보도 보지 못하였기에 각 멤버가 입으로 흥얼거리던걸 직접 채보하고 지휘하는 등 비틀즈 모든 곡들에 매우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폴 매카트니는 조지 마틴의 사후, 그가 없었다면 비틀즈의 명곡도 없었을 것이라며 조지 마틴을 극찬했다. 이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그를 "제5의 비틀즈 멤버"라고 불러야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11] 실제로 필 스펙터가 프로듀싱한 Let It Be와, 조지 마틴이 프로듀싱한 Abbey Road를 들어본다면 조지 마틴이 이전 비틀즈 앨범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알 수 있다
조지 마틴은 정규적 수업은 받지 못했지만, 피아노를 배우며 자랐다. 청소년 시절에는 "포 튠-텔러스"(Fore Tune Tellers)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었으며, 영화의 OST 제작을 꿈으로 가지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영국 해군으로 복무한 이후, 마틴은 길드홀 음악-연극 학교에 진학하여 수학했다. 졸업 후, 그는 BBC의 클래식 음악 부서에서 일했으며, 1950년 EMI에 입사하게 된다. 그는 EMI의 산하 기업이자 당시 클래식 음악 및 극 음악 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던 팔로폰 레코드에서 일하게 되었다. 당시 마틴은 영국의 인기 코미디언 겸 배우 피터 셀러스의 코미디 음반을 전담하는 프로듀서였다.
마틴은 후에 팔로폰 레코드의 대표가 되었으며, 녹음 세션과 아티스트등을 관할하는 스태프 프로듀서도 겸임하게 되었다. 1950년대 중반, 로큰롤이 인기를 끌자 마틴은 팔로폰에서 활동할 록 가수를 물색하였다. 그는 몇 명의 음악가[13]를 찾아 음반을 내었지만, 큰 성공을 거둔 것은 없었다.
1962년, 여러 음반사를 찾아다니며 계약을 시도하던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은 조지 마틴에게 비틀즈의 데모 테이프를 전해주었다. 마틴은 그 음악이 마음에 들어 했으며, 비틀즈 멤버들이 다른 것들을 연주해 보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틴은 비틀즈에게 오디션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며, 드러머 피트 베스트를 제외한 멤버 전원이 오디션에 통과하게 되었다. 마틴은 피트 베스트의 드럼 실력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며, 비틀즈 멤버들이 새로운 드러머를 구하자 피트 베스트를 추방하고, 링고 스타로 대신했다. 그런데 1962년 9월 11일 녹음한 앨범 버전의 "Love Me Do"는 앤디 화이트라는 전문 드러머로 연주를 했는데, 이는 당시 비틀즈가 링고 스타를 영입해놨음에도 조지 마틴의 의중으로 앤디 화이트를 섭외했기 때문.[14] 다만 싱글로 발매된 9월 4일 버전은 링고가 드럼을 쳤다.
비틀즈의 프로듀서가 된 조지 마틴은 천재 음악인이지만, 음악적으로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은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등 음악적 아이디어를 개발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또한, 비틀즈의 곡들을 깔끔하게 손질하는 편곡, 악보를 볼 줄 모르는 비틀즈 멤버들을 위해 비틀즈 곡을 악보로 정리하여 타 밴드와의 라이브나 공연 때 전달하는 역할도 했다. 비틀즈와의 이러한 활동은 프로듀서로써의 조지 마틴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그는 EMI를 떠나 동료 프로듀서들과 함께 "Associated Independent Recording"(AIR)이라는 회사를 설립한다.
비틀즈가 해체될 조짐을 보이기 시작하던 1969년, 마틴은 더 이상 해결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비틀즈 멤버 간의 긴장감을 알게 되었다. 그는 비틀즈와의 작업을 거부하기 시작했고, 녹음 엔지니어나 비틀즈 멤버 스스로 그의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하지만 마틴은 비틀즈 멤버들이 "예전처럼" 그와 일할 것을 약속한 후, 그들의 사실상 마지막 앨범, "Abbey Road"를 만드는 것을 도와주었다.
가장 마틴과 가까운 비틀이었던 폴 매카트니는 1970년 비틀즈가 해체된 이후에도 조지 마틴과 몇 번 더 작업을 했다. 존 레논은 가끔 "특이한" 생각들을 음반으로 완성하기 위해 조지 마틴을 찾았으나, 조지 마틴의 스타일을 항상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그는 대부분 스스로 음악을 프로듀싱했다. 조지 해리슨은 자신이 만든 곡이나 생각들이 앨범의 더 큰 흥행을 위해, 조지 마틴에 의해 거절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6] 그래서 해리슨은 자신의 음반을 스스로 프로듀싱했으며, 심지어 애비 로드 스튜디오에서 몇번 작업한 이후에는 스스로 녹음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마틴은 링고 스타의 드럼을 "아주 안정적인 비트다"라고 칭찬했으나, 비틀즈 해체 후에는 따로 활동하게 되었다.
비틀즈 해체 이후 몇 년이 흐르고도 마틴은 비틀즈와, 그들이 만들었던 음악으로 작업했다. 그는 녹음된 것을 리믹스해서 재발매[17] 혹은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출시했다. 몇 곡은 비틀즈의 원곡에 오케스트라를 입히기도 했으며, 비 지스와 피터 프램튼이 출연했던, 영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의 음악 감독을 맡기도 했다.
1989년도에 버클리 음악대학에서 명예 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비틀즈 외에도 마틴은 셜리 배시, 버나드 크리빈스, 아메리카, 케니 로저스, 더들리 무어, 리틀 리버 밴드 등과 작업했다. 그는 All You Need is Ears이라는 회고록에서 그의 인생과, 그가 프로듀서를 맡았던 유명 음악들의 제작 과정 등을 설명했다.
조지 마틴은 1999년에 은퇴했으며, 이와 동시에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았던 곡들을 모은 회고적 성격의 앨범 "In My Life"를 발매했다.
우리 시각으로 2016년 3월 8일에 링고 스타의 트위터를 통해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향년 9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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